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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31화 (31/892)

31화. 곧 요괴가 될 것

계연이 국수를 먹자, 잠시 망설이던 윤재성은 군말 없이 아들과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 시간 내내, 어색한 기류가 맴돌았다. 계 선생님이라는 사람은 대화할 생각이 없는 것인지, 소 내장이 나왔을 때 윤씨 부자에게 같이 먹자고 말을 건 것 외에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계연은 성인(聖人)이 아니었다. 윤청의 성품으로 미루어 보아 윤재성 또한 냉담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는 윤재성이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가르친 학생들은 훗날 관직에 올라 나라를 보살피기 위해 과거에 도전할 테니 말이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치자, 윤재성은 계연의 몫까지 재빨리 계산해 버렸다. 별말이 없던 계연은 떠나기 전 윤재성에게 말 한마디를 던지고 자리를 떴다.

그의 말에 윤재성은 한참 동안 넋을 잃었다. 계연의 한마디가 여전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윤 훈장님, 천민은 조정의 거울입니다. 자고로 선생이라면 자신의 품행에 유의해야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지요.”

노점 옆에 서 있던 윤청이 지루한 듯 아버지의 손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아버지, 계 선생님도 가셨는데, 언제 집에 가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윤재성은 제 아들과 점점 늘어나는 손님에 허덕이는 손 씨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 이만 가자. 내일 아침 거안소각에 가서, 계 선생님을 찾아뵙자꾸나.”

* * *

한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계연은 내내 윤청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에 만난 셋째 장주라는 사람이 무공이 뛰어나고 기질이 특별해 또렷하게 보인 것이라면, 윤청은 천부적인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에 또렷하게 보였을 것이다. 다만, 그 잠재력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계연은 윤청에게 신선이 될 만한 저력이 숨어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했다. 신선이 되기 위해선 문무(文武)가 모두 뛰어나야 했으니, 앞으로 어찌 될지는 두고 봐야 했다.

계연에게 윤씨 가문은 그가 영안현에 정착한 이후 만난 진정한 첫 이웃이었다.

* * *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윤재성은 윤청을 데리고 거안소각을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국화떡 한 상자와 전통 발효주인 화조주(花雕酒) 두 병이 들려 있었다.

윤씨 부자는 과거 음산한 분위기를 뿜어내던 가옥을 바라보았다. 대문 앞에 선 지금, 희한하게도 맑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물씬 느껴졌다. 가슴이 확 트이고, 모든 공포와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국화떡 상자를 오른손으로 옮겨 든 윤재성이 대문을 두드리려던 그때, 안에서 올곧고 단단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문 열려 있습니다.”

잠시 당황하던 윤재성이 재빨리 옷매무새를 정돈했다. 잠시 후, 그가 대문을 열고 정원으로 들어섰다.

“윤청과 함께 계 선생님을 뵈러 왔소!”

“하하, 훈장님 어서 오세요. 빈손으로 오셔도 괜찮은데, 뭘 그리 사오셨어요.”

계연이 죽간을 내려놓고 윤재성을 향해 공수했다. 재성은 손에 선물을 든 채, 공수하며 예를 갖추었다.

“처음 오는 건데, 빈손으로 올 순 없지 않소이까. 더구나 계 선생님께서 어제 해주신 말씀에 큰 이치를 깨달았소. 작게나마 준비하였으니, 사양 말고 받으시오!”

윤재성이 가까운 돌탁자에 선물을 내려놓았다. 탁자 가득 널브러진 물건을 본 그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읊조렸다.

“죽간……?”

지금 이 시대에는 종이가 많이 보급되어, 죽간으로 만든 책은 보기 드물었다.

“네, 죽간이에요.”

계연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는 분께서 선물로 주셨습니다. 제가 눈이 좋지 않아, 평범한 서책은 읽지 못하거든요. 훈장님, 거기 서 계시지 말고 이리 와서 앉으시죠. 윤청아, 너도.”

윤재성이 윤청을 데리고 돌탁자 앞에 앉자, 계연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영안현 서당의 훈장님으로 취임하셨다는 소식은 일찍이 들었는데, 찾아뵙질 못했네요. 훈장님께서 먼저 와주시다니 참 감사합니다. 요즘 서당 준비는 어떠세요?”

“별말씀을……. 영안현 주민들께서 많이 도와주신 덕분에, 서당 준비는 순조롭게 마치는 중이오. 이틀 뒤면 첫 수업이구려.”

서당일은 윤재성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일이었다. 말하면서도 윤재성의 입가에서는 웃음이 가실 줄 몰랐다. 한편, 옆에 앉아있던 윤청은 나무 덮개로 가린 우물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선생님, 정원에 우물이 있는데, 왜 바깥에서 물을 길어오시는 거예요?”

거안소각 주방 앞에는 크고 작은 물독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계연이 물을 길은 지 열흘이나 되었지만, 큰 물독에는 물이 반이나 남아 있었다.

우물을 슬쩍 보던 계연이 아무 말이나 얼버무렸다.

“이 우물에 더러운 게 묻어 있었거든. 내가 결벽증까진 아니지만, 도저히 저 우물물은 못 마시겠더라고.”

모든 일을 상세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총명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터였다.

과거에 떠돌던 소문과 계연의 말을 연관 지은 윤재성은, 낌새를 눈치채고 몸을 살며시 움직였다. 우물과 멀리 떨어지려고 탁자를 짚은 그의 손끝에 죽간 하나가 맞닿았다.

‘무척이나 차갑구나!’

그가 고개를 돌려 보니, 죽간에는 <기단 36수(棋斷三十六手)>라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 덕분에 윤재성은 계연과 담소를 나눌 화제가 늘었다.

윤재성은 성황신 등 영과 관련된 이야기를 묻지 않았다. 그가 이곳을 찾아온 목적은 단 하나, 계연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다.

어색하고 조심스러운 시간이 흐르고 나니, 윤재성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계연의 태도가 어찌나 살갑던지, 옆에 있는 부자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더군다나 정원 안의 모든 것이 가슴을 후련하게 만들어 주었다.

두 사람이 즐거운 담소를 이어가는 동안, 윤청은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

담소를 나눌수록, 윤재성은 계 선생이라는 사람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천문부터 지리까지 모르는 게 없었고, 생전 들어본 적 없지만 상당히 독창적인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모든 걸 아는 듯했으나, 의외로 단순한 세상살이나 상식 따위는 부족한 게 많아, 하나하나 알려주어야 하기도 했다.

윤씨 부자는 정오경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윤재성은 아쉬운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윤청은 한참 전부터 무료함에 지쳐 있었다.

계연 또한 윤재성과의 대화가 즐거웠다. 지난번 묘외루에서 성황신과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살면서 혼잣말을 가장 많이 해온 참이 아니던가.

윤재성은 학식이 있지만 고리타분하지 않은 학자여서, 공통된 대화거리가 많았다. 자질구레한 일을 물어볼 때도, 성황신께 무공에 관해 여쭐 때처럼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

윤씨 부자가 떠난 후 계연은 돌탁자에 놓인 화조주를 들어 붉은 마개를 뽑고 냄새를 맡았다. 엷은 주정 냄새가 후각을 자극하자, 계연은 화조주를 병째로 들어 한 입 들이켰다.

“냄새는 순한데, 맛은 좋네!”

계연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지난 생에 할아버지와 함께 술잔을 몇 번 기울인 적은 있었지만, 한 번도 술맛이 좋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술병을 내려놓은 그의 손가락이 병 입구를 휙 스쳤다.

그러자 술이 얇은 물줄기가 되어 병 입구에서 튀어 올랐다. 계연의 손가락을 따라 날아간 물줄기는 허공에서 한 바퀴를 빙 돌아, 계연의 입으로 들어왔다.

‘음, 인제 피수술도 터득한 셈이네.’

피수술의 입문 기술은 어수술(御水術)의 일종이었다. 이 수법을 터득했다는 사실에 계연은 더할 나위 없이 흐뭇했다.

* * *

그리고 시간이 흘러 4월 초이튿날이 되었다.

바야흐로 입하였다.

이날이 되자 거안소각 대추나무에 꽃이 피었다.

200여 리(*약 80km)에 달하는 우규산은 덕성부 가장자리를 지나, 정원부(定元府)를 가로질러 천월부(天越府)와 맞닿은, 삼부(三府)를 잇는 곳이었다.

이날 밤, 정원부에 속한 우규산의 심처.

크아악-!

범의 포효 소리가 하늘에 널리 울려 퍼졌고, 수백 마리의 새와 짐승들이 놀라 달아났다!

우르르…….

하늘엔 서서히 먹구름이 깔리고, 천둥과 번개가 몰아쳤다. 한 시진(*一時辰: 약 2시간)정도가 지나자 갠 하늘에서 시원한 비가 내렸다.

정원부 성택현(成澤縣) 성황당 지붕 위에서는 금빛 옷에 높은 관을 쓴 노인이 코앞의 우규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의 시선은 서서히 걷힌 비구름까지 이어졌다.

“후, 곧 요괴로 둔갑할 놈이 있구먼!”

고개를 저으며 탄식하던 성황신의 법체는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 시각 우규산 심처에서는, 평범한 범보다 덩치가 두세 배는 더 큰 맹호가 눈을 치켜뜬 채 달을 올려 보았다. 다름 아닌, 맹호 육 산군이었다.

방금 산을 뒤덮은 먹구름에 육 산군은 두려우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흥분되었다.

수행은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천둥은 하늘의 위엄을 상징하고, 모든 생물은 천둥을 무서워한다. 영험한 지혜를 지닌 정령들이라면 본능적으로 빗속에서 몸을 숨기기 마련이었다. 마치 영혼 깊은 곳에 천둥에 대한 공포가 새겨져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정령…… 그중에서도 특히 요괴로 둔갑하기 직전의 존재가 있는 곳에는 천둥을 동반한 비가 내릴 확률이 높았다. 가끔은 심지어 계절에 상관없이 거센 비가 내리기도 했다. 하늘이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아무리 무서워 봤자 천둥은 그저 기상 현상에 불과했다. 요괴로 둔갑하려는 존재는 대부분 뛰어난 지혜를 지니고 있었기에, 얼마든지 천둥으로부터 도망치고 피할 수 있었다. 개중에는 벼락을 맞아 죽는 재수 없는 놈들도 있었지만, 소수에 불과했다. 천둥이 칠 때 나무 밑동에 숨으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상식도 모르는 한심한 놈들에게나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육 산군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곳곳의 바위를 뛰어다녔다. 맹호는 생각했다. 아마도 10년, 아니 어쩌면 단 몇 년 안에 자신을 옭아매는 족쇄에서 벗어나, 진정한 바깥 세계를 자유로이 뛰어다닐 수 있으리라고!

* * *

그 무렵, 우규산과 맞닿은 천월부에서는 무예가 훌륭한 무술인 두 무리가 서로 쫓고 쫓기며 우규산에서 싸우고 있었다. 오로지 무림의 보물에 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 말이다.

쫓기는 쪽은 총 11명으로, 모두 야행복(夜行服)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중 몸집이 가장 크고 안령도(雁翎刀)를 쥔 자는 빠르게 쫓아오는 적과 계속해서 맞붙으며, 동료들을 엄호했다.

탕탕탕!

거대한 몸집의 사내가 공중에서 한 바퀴 돌며, 표창 세 개를 쳐냈다. 어둠 속에서 서로 맞닿은 칼몸과 표창이 불씨를 튀겼다. 표창에 실린 힘을 빌려 나무를 박찬 그는 또다시 속도를 내며 도망쳤다.

쫓는 쪽은 열 명이 넘었고, 하나 같이 예사롭지 않은 경공 실력을 뽐냈다. 그들은 이를 악물고 전방의 야행복 일행을 바짝 쫓았다. 이따금 그들은 표창이나 산에서 주운 돌을 던지기도 했지만, 대부분 거대한 몸집의 사내가 막아냈다.

“항봉(項峰), 검의첩(劍意帖)을 내놓으면 모두 살려주지!”

하얀 옷을 입은 사내가 소리치며, 발로 힘차게 나무를 딛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의 손에 들린 구절강편(九節鋼鞭)이 마치 한 마리의 독사처럼 앞을 향해 던져졌다.

“개소리 집어치워! 이 몸이 네 집 여인들을 차례대로 가지고 논 다음 처참히 죽여주마!”

탕!

검은 옷의 사내가 구절강편을 쳐내자, 구절강편은 옆에 있던 나무를 내리쳤다. 뒤쫓아 오던 하얀 옷의 사내가 왼손으로 제 구절강편을 움직이니, 막아낸 줄로만 알았던 강편이 끈질긴 독사처럼 머리를 돌려, 검은 옷의 사내를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네놈이 죽고 싶구나!”

쾅!

구절강편은 그대로 나무에 작은 구멍을 내었고, 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가루가 사방으로 흩날리며 시야를 가렸다. 뒤쫓아 오던 두 사람이 힘을 잔뜩 비축한 오른손으로 동시에 활을 쏘듯 표창을 던졌다.

피슉—! 탕!

푹…….

표창 하나는 빠르게 떨어져 나갔지만, 하나는 붉은 피를 봤다. 검은 옷의 사내는 끝내 왼쪽 어깨에 부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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