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33화 (33/892)

33화. 놀라운 소문

계연은 수련을 잠시 멈추고, <철형전첩>에서 소개하는 진기 운행법을 사용해 영기를 움직이고, 진기를 제거했다.

비록 영기를 유지하는 데 손해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영기를 완전히 잃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더구나 무공도 눈에 띄게 늘었고 말이다.

어찌 되었든, 요괴나 선신 앞에서는 명함도 못 내밀겠지만, 사회의 평범한 대중들 앞에서 자신을 보호할 정도의 실력은 충분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기경을 만져 읽으며, 천우방 골목을 거닐었다. 길에서 마주친 천우방 주민들은 모두 공손한 목소리로 “계 선생님, 좋은 아침이에요”라며 인사를 건네었고, 그럴 때마다 계연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계연처럼 청력이 뛰어나면, 소리만 듣고도 누가 누구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니 인사를 나눌 때 사람을 잘못 알아봤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왈왈…… 왈왈왈왈…… 크릉…… 왈왈……!

이때, 먼 골목에서 사나운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개 몇 마리가 무언가를 쫓는 것 같았다.

곧이어 사람들의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누구 집 개인데 이렇게 사나워!”

“어머, 여우잖아!”

“진짜 여우네! 하하하, 개한테 물려 죽겠네요!”

“아유, 저 아까운 가죽!”

“비켜봐, 비켜봐. 여우라니, 어디, 어디? 저거 완전 고급 가죽이잖아!”

“저기, 개한테 쫓기고 있어요. 가죽은 이미 다 물어뜯겼어요!”

왈왈왈…….

콰당!

끼이잉…….

“저기 있다, 잡아! 저놈 털 속에 뭐가 있는 것 같은데, 어서 개부터 떼어내요! 망할 놈의 개, 얼른 놔, 놔!”

크릉…… 왈왈왈……!

* * *

인상을 찌푸린 계연은 궁금증에 걸음을 재촉했다. 계연이 천우방을 벗어나자, 멀지 않은 곳에서 소란스러운 풍경이 펼쳐졌다.

영기를 이용해 무공을 다진 그는 마치 푸른 기운이 거리를 활보하는 것 같았고, 걷는 속도가 마치 날아다니는 것만큼 빨랐다.

계연이 속임수를 쓰지 않았다면, 거리에 가득한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가축들까지 놀라 자빠졌을 것이다.

길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구경하고 있었다.

“개자식, 놔! 놓으라니까!”

퍽, 퍽!

끼깅…….

험상궂은 사내 둘이 여우를 물고 놓지 않는 커다란 개 두 마리를 나무 막대로 때렸다. 그들이 때릴 때마다, 누런 개들은 아파하며 몽둥이를 피했다.

족히 스무 명은 넘는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싼 채, 길가에서 피를 흘리는 붉은 여우를 구경했다.

“하하하, 이 여우는 이제 우리 거다!”

한 사내가 손을 뻗어 여우 꼬리를 잡으려던 그때, 죽은 줄 알았던 여우가 벌떡 일어나더니, 사람들 틈새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와, 죽은 척한 거야!”

“여우가 엄청 총명하네!”

놀란 사람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도망치지 못하게 해!”

“멀리 못 갈 거야!”

붉은 여우는 다리를 절며, 절망에 내몰린 채 죽어라 도망쳤다. 주변을 연신 배회하던 누런 개들이 다시 여우를 쫓기 시작했다.

그때, 장포를 입은 푸른 그림자가 여우의 눈앞에 순식간에 나타나더니 멈춰 섰다.

죽간을 들고 거니는 사내의 모습은, 마치 봄바람을 타고 나는 것 같았다.

붉은 여우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녀석은 곧장 계연을 향해 앞발을 휘저으며 비는 시늉을 했다.

우으으으…… 우우……!

여우의 참담한 목소리는 서글피 우는 것 같았다. 녀석의 온몸 곳곳에는 상처가 가득했지만, 여우는 앞발을 모아 비는 동작을 멈추지 못했다.

누런 개 몇 마리가 주변에서 왈왈 짖으며 여우를 위협했다. 일부 사람들은 이 광경에 겁에 질렸고, 일부는 혀를 차며 여우를 칭찬하기도 했다.

“흠……. 저 여우, 설마 요괴인가? 지금 사람한테 비는 거 맞지?”

“와……. 진짜네!”

“좀 무서운데…… 그냥 때려죽여요!”

“저 사람은 누구지?”

“천우방의 계 선생님이야. 윤 훈장님의 벗이세요!”

“맞아요. 천우방 사람들은 기인이라 부르더라고요. 거안소각에서 몇 달이나 지냈다던데…….”

“흠…….”

사람들 사이에서 호기심 섞인 대화가 오갔다. 나무 막대를 들고 여우를 잡으려던 두 사내는 눈앞의 기이한 광경에 선뜻 나서질 못했다.

한편, 계연의 눈에는 다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계연은 그저 어디서 본 듯한 붉은 여우와 녀석의 등 속에 숨겨진 범의 털을 뚫어질 듯이 쳐다볼 뿐이었다.

이 붉은 여우는 영지를 얻은 게 분명했다. 하지만 개에게 물려 죽을 뻔한 걸 보니, 요괴까지는 아니었다. 여우의 몸에서도 악한 기운이 느껴지진 않았다.

처참한 몰골로 두 발을 싹싹 비는 여우의 모습이 계연의 측은지심을 자극했다. 하물며 붉은 여우는 계연을 찾아온 게 틀림없었다. 고로, 이 상처 또한 계연으로 인해 입은 상처라고 할 수 있었다.

계연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에워싼 사람들을 둘러보았고, 흐릿한 시야 속에서 단 2초 만에 대화할 상대를 찾아내었다.

“실례지만, 두 분께서 이 붉은 여우를 제게 양보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여우가 개에게 물려, 가죽을 벗겨도 가치가 없을 겁니다. 제가 100문을 드릴 테니, 두 분께서 여우를 제게 파시면 어떨까요?”

계연이 살며시 공수하며, 막대를 든 두 사내 쪽을 바라보았다. 평온하지만 희뿌연 눈동자에는 초점이 하나도 없었다.

“어…… 여우 가죽인데, 100문은 좀……. 허, 뭐 하는 거야?”

한 사람이 가격을 흥정하려 하였지만, 그의 동료가 초를 치고 말았다. 후자는 동료의 원망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계연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죠, 좋죠. 계 선생님께서 필요하시다면 데려가세요. 100문도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계연이 소매춤에서 돈주머니를 꺼내어 당오통보 20개를 건네었다. 계연이 뒤이어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개들을 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사람은 돈으로 해결했다만, 개는 어쩐담? 뼈다귀? 그런 걸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으흠, 너희도 이만 물러나지?”

계연이 맹세하는데, 그는 그저 개들을 달랠 시도를 해 본 것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개들이 잠시 어물쩍대더니 이만 뒤로 돌아가 버리는 게 아니겠는가. 이 광경에 계연은 잠시 넋을 잃었고, 주변 사람들 또한 깜짝 놀라 눈을 의심했다.

주변을 에워싼 사람들은 경악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점점 인파가 몰리자 계연은 한숨을 푹 내쉬며, 긴장이 풀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붉은 여우를 품에 안아 들었다.

“다들 이만 돌아가세요!”

그 말을 끝으로, 계연은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수많은 인파와 이유도 모르고 구경거리를 보러 몰려든 인파를 헤치고 골목 어귀로 사라졌다.

사람들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옆에는 구경하러 몰려든 사람들뿐, 푸른 그림자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 * *

부상이 심각해!

이것은 계연이 여우를 만지자마자 얻은 결론이었다. 온몸에 뼈가 보일 정도로 여우의 몸에는 깊은 상처가 났고, 피는 여전히 멈출 줄을 몰랐다. 이대로 숨이 끊기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얘를 어떻게 구하지? 난 수의사도 아니잖아!’

계연의 마음은 잿더미처럼 타들어 갔다. 여우를 안고 구석진 골목을 걷던 그는 가장 가까운 의원을 찾았다. 동시에 녀석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자신의 영기를 진기로 바꾸어 붉은 여우의 경맥에 주입했다.

여우의 몸 중에 나름 성한 곳이라고는 등이 전부였다. 아마도 녀석의 등에 묶여있던 것이 여우를 보호해준 듯했다. 계연이 여우의 털을 들추니, 그 속에서 두루마리 하나가 나왔다. 글이 적혀 있는지,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두루마리를 살필 시간이 없었다. 이 여우를 구하는 게 더 시급했다.

작은 골목을 벗어나면, 바로 대로가 나왔다. 씁쓸한 약재 냄새도 나는 걸 보니, 의원이 머지않았다.

* * *

제인당(濟仁堂)은 영안현에서 유명한 의원이자, 약방(藥房)이다. 의원과 약방이 함께 운영되었고, 동 의원이 바로 제인당의 주인이었다.

그 무렵, 동 의원은 제인당을 찾은 손님에게 약을 지어주고 있었다. 익숙하게 서랍에서 이것저것을 꺼내 담은 그는 저울에 약의 무게를 단 뒤, 누런 종이에 약재를 포장했다. 약을 하나 짓는 데 30초면 충분했다.

“여기, 보양탕 받으세요. 먼저 찬물에 이각(* 약 30분) 정도 불린 다음에 센 불로 끓이다가, 물이 끓으면 약한 불로 한참 우려내는 거 잊지 마세요. 물을 네 그릇 붓고 끓이다가, 한 그릇 정도 남았을 때 불을 끄시면 돼요! 아침저녁 한 번씩 드시고요!”

“네, 네, 감사합니다! 동 의원님, 감사합니다요!”

계산대 앞의 사내는 연신 감사 인사를 하며 약재를 건네받았다. 그가 막 뒤로 돌아섰을 때, 제인당에 엷은 바람이 불어왔다. 대체 언제 들어온 것인지, 계연이 순식간에 제인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깜짝이야!”

피를 철철 흘리는 붉은 여우를 품에 안고 있는 계연의 모습에 제인당 환자들과 의생들이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계연은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의원님, 이 여우 살릴 수 있으시겠어요?”

저잣거리에 나타난 붉은 여우가 자신을 구해달라며 두 발을 모아 빌었다는 소문은 아직 이곳까지는 퍼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괴이하기 짝이 없었다.

동 의원은 놀란 눈으로 계연을 바라보더니, 이번에는 피가 흥건한 채 그의 품에 안겨있는 여우를 살펴보았다.

“어, 그게…… 한 번도 가축을 치료해본 적이 없소이다. 게다가 이건 산짐승이잖소이까?”

“동 의원님, 의로운 사람은 자애로운 마음을 지닌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우도 생명이에요. 제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세요!”

여우를 안고 있느라 동 의원에게 공수할 수 없었던 계연은 온 마음을 담아 말했다.

“그, 그럼 한번 치료해보겠소. 선생, 안으로 따라오시오. 너희 둘은 여기서 약 짓고 있거라. 절대 실수하지 말고!”

“네, 사부님…….”

“사부님, 저도 보고 싶습니…….”

“어허, 일하랬지!”

두 제자에게 호통을 친 동 의원은 계연을 데리고 제인당 내실(內室)로 들어왔다. 동 의원의 제자들은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스승의 말을 거역할 순 없었기에, 그저 바깥에 남아 스승의 뒷모습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내실은 진료실로, 장식과 배치가 굉장히 단순했다. 침상과 의자, 그리고 문방사보가 놓인 탁자가 전부였다.

동 의원이 하얀 천을 탁자에 깔았다.

“자, 여기에 여우를 내려놓으시오!”

계연이 조심스레 품 안의 붉은 여우를 천 위에 눕혔다. 이에 반쯤 정신을 잃었던 붉은 여우가 몸을 움찔거렸다.

동 의원은 군말 없이 여우의 상처를 살피기 시작했다. 다친 피부를 꼼꼼하게 보고, 여우의 눈 상태를 확인한 다음, 마지막으로 목 아래를 만져 맥박이 잡히는지도 확인했다.

“몸집이 팔뚝보다도 작은데, 출혈이 심각하네. 가만, 맥박은 또 힘이 있잖아? 희한하군, 기혈이 떨어졌는데 어찌 이럴 수 있는 거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동 의원은 가볍게 여우의 몸 구석구석을 누르고 만져 보았다. 검사를 마친 뒤, 그가 의약용품을 가져오며 계연에게 말했다.

“여우의 몸에 상처가 너무 많소이다. 막대나 둔기에 맞은 것도 그렇지만, 이빨 같은 거에 물려서 입은 상처가 심각하오. 선생, 우선 십회산(十灰散)과 금창약(金瘡藥)으로 지혈하고, 오미소독음(五味消毒飮)으로 열을 식히고 해독할 거요. 그다음 고기를 먹여 보양을 해줘야 하오. 이 녀석이 살 수 있을지는 하늘의 뜻에 달렸소!”

“네, 의원님. 부탁드립니다!”

“네, 일단 여우 몸 좀 잡고 있으시오!”

그 무렵의 제인당은 한산했다. 정신을 딴 데 팔고 있던 두 제자는 내실에서 갑작스레 들려오는 여우의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 소리는 우는 것 같다가도, 알 수 없는 짐승의 포효소리 같기도 한 것이, 너무도 소름이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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