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화. 아리따운 여인
방 안의 유등(*油燈: 기름으로 켜는 등불)이 어슴푸레 주변을 비추었지만, 실내는 여전히 흐릿하고 어두웠다. 가물거리는 불빛은 마치 계연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했다.
입을 열고 사람의 말을 하는 요괴는 모두 도를 닦는 존재들이었기 때문에, 쇠망치나 도끼 따위에 맞아 죽을 하찮은 괴물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 꽃뱀은 사람의 머리까지 지녔다잖은가.
계연은 그만 상상하고 싶었다. 심지어는 촌락을 떠나고 싶은 충동이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대로 밖에 나가려니 가슴이 꽉 막히고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이곳에도 성황신이 있지 않나? 요괴로부터 백성을 보호해야 하는 거 아닌가?’
“아, 이건 많이들 알고 있는 사건이오. 당시 이 일로 인해, 우리 촌락이 한동안 공황에 빠졌었소. 내 뭐 하러 당신을 속이겠소, 아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노인이 침상을 정돈하기 시작했다.
“선생. 내 처소는 촌락 안쪽에 있고, 이곳은 촌 입구를 지키는 자들이 돌아가며 지내는 임시 거처요. 오늘은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도록 하시오. 저녁에 변소에 갈 일이 있으면, 나를 깨우시오. 내 변소까지 부축해 주겠소. 참, 시장하진 않으시오? 시장하시면, 내 간단히 먹을 거라고 준비해 드리지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계연은 겸손하게 사양하며, 걸어가 침상을 정돈했다. 침구의 냄새를 맡아 보니, 자주 햇빛에 말리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자질구레한 것에 신경 쓰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침구에서 냄새가 나더라도 별 상관이 없었다.
왈왈, 왈왈왈!
이때, 밖에서 개 짖는 소리와 짧은 욕설이 들려왔다. 계연이 귀를 기울이니, ‘맛없어’, ‘재수 없어’ 등의 단어가 들려왔다.
옆에 있던 노인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계연은 불안한 생각들을 떨쳐내고, 길이나 묻기로 했다.
“노인, 이 촌락은 이름이 뭡니까? 순보현 어느 쪽에 있는 촌락이지요? 여기에서 초현(焦縣)으로 가려면, 어느 길로 가야 합니까?”
“순보현?”
노인의 의문 섞인 목소리에 계연이 불길함을 느꼈다.
“선생, 길을 잘못 들어도 한참 잘못 들었구려. 이곳은 세원현(歲遠縣) 영내 동북 모서리에 있는 상하구촌(上河溝村)이오. 순보현과는 한참 떨어진 곳이오.”
“네?!”
‘세원현? 젠장, 내가 현을 두 개나 건너뛴 거야?’
지도가 정교하긴 했지만, 그 위에 그려진 선이 너무 세밀한 탓에, 지도에 새겨진 눈금을 헤아리기가 어려웠다. 계연은 잔뜩 압축된 지도를 들고, 각 지역의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해야만 했다. 나무판자에 대정의 13주를 새겨 넣으려니, 지도상 한 현은 조그만 점으로 표기해야 했다. 아주 작게 이름과 길을 표기한 것만으로도 무판 나리는 경탄할 만한 솜씨를 선보인 셈이었다. 거리감을 표현하려면, 지도 하나에 마을 하나를 새겨 넣어야 했다.
경공으로 말 세 필을 뒤쫓다가 자신도 모르게 목적지를 지나친 것 같았다.
‘너무 빠르게 움직인 나머지, 일을 그르치고 말았어!’
속으로 한탄하던 계연이 재빨리 노인에게 물었다.
“그럼, 춘혜부에 가려고 하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게 낫습니까, 아니면 더 적당한 길이 있습니까?”
“그건…… 나도 그 먼 곳에는 가본 적이 없어서 말이오. 이리하시지요. 계 선생은 우선 편히 쉬시오. 내일 아침, 촌락에 묵고 있는 상인에게 물어보면 될 터요. 듣기로는 최종 목적지가 두명부(杜明府)라던데, 그자라면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알고 있을 것이오.”
“아……. 그래야겠군요!”
왠지 계연에게는 길 찾기 애플리케이션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 * *
밤이 깊었다.
촌락 사람들은 도시 사람들보다 일찍 잠을 청하는 편이었고, 이곳에는 야경꾼도 없었다. 방 안에는 노인의 코 고는 소리와 밖에서 간혹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만 가득했다.
계연은 침상에 누워 두 눈을 껌뻑일 뿐, 도통 잠을 청하지 못했다. 청각이 예민한 그가 듣기에 옆에서 코를 고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기도 했거니와, 지도를 곰곰이 쓸어내리며 다시금 노선을 계획하고 있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왈왈, 왈왈왈왈…… 왈왈왈!
월월월!
이때,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계연은 그 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마을 개들이 한곳에 모여, 미친 듯이 짖어대고 있었다.
조용히 들어보니, 개 짖는 소리가 차차 줄어들었다.
나이 든 개를 오랫동안 키우다 보면, 영기가 생길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이 점은 계연이 영안현에서 몸소 보고 느낀 것이었다. 현대에서 개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계연은 시끄럽게 짖는 개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조금 불안한데…….”
* * *
촌락 밖 강가.
기다란 검은 그림자가 바닥을 기어 다녔다. S자를 그리며 천천히 움직이던 그림자는 강가에 도착하자 촘촘한 비늘로 돌멩이를 스치며 서걱서걱, 마찰음을 냈다.
검은 그림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멀리 촌락을 바라보며, 건장한 체격과 복부의 하얀 비늘을 드러내었다.
스으, 스윽.
그림자가 혀를 날름거리며 가만히 서 있으니, 숲속에서 개 짖는 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졌다. 사실 그 개는 온종일 울타리 옆에서 짖기만 할 뿐, 뛰쳐나와 쫓아올 생각도 없는 듯했다.
쓱.
커다란 뱀이 몸을 낮추더니, 다소 퉁퉁한 몸을 이끌고 강가를 따라 움직였다.
풍덩-!
곧 기다란 검은 그림자는 물살을 가르며 강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주변의 조그만 배들도 일렁이는 물결에 의해 정신없이 흔들렸다.
* * *
사람은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계연은 끝내 잠을 청했다. 하지만 우규산 산신당에서 교훈을 얻은 뒤로, 그는 정신없이 잠을 자진 않았다.
꼬끼오, 꼬끼오!
마을에 닭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계연이 곧장 잠에서 깨어났다. 지금은 아마 오경쯤, 그러니까 현대 용어로는 새벽 3시 정도가 된 듯했다.
이 시대의 사람들에겐 이상한 심리가 있었다. 어둠을 두려워하는 사람일지라도, 이른 새벽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안심한다는 것이었다. 아직 해가 밝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물론, 그들에게 동화된 계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건 아니었다. 당시에 영안현 성황신과 담소를 나누며, 계연은 꽤 많은 기본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태양을 두려워하지 않는 귀신은 극히 드물다고 한다. 하물며 요괴마저도 어느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태양 앞에 서면 힘이 약해진다고 한다. 그렇기에, 그들이 낮을 싫어하는 것이었다.
현재 수탉의 울음소리를 들은 계연은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곤히 잠든 노인을 본 계연은 잠을 청하기로 했다.
바깥의 하늘이 아직 어두울 무렵.
상하구촌 동북쪽의 조그만 가옥 안에서는 한 사내가 하품을 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가 바로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은 상인이었다.
“하음…….”
여전히 죽은 듯이 자는 사람들을 본 그는 겉옷을 걸치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닭은 이따금 우렁차게 울어 젖혔지만, 밖에 나와 활동하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 아무래도 시간이 아직 이른 듯했다.
“변소가…… 변소가……저기 있다!”
그는 꽤 멀리 걸어간 뒤에야, 담벼락 한쪽에 마련된 변소를 발견했다.
직사각형에 비탈진 건축물은 주변의 저택과 확연히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면서 봐도 이곳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변소로 다가가자, 코를 찌르는 악취가 그의 정신을 번뜩 일깨웠다.
문을 여니, 악취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으욱……! 변소가 더러워도 너무 더럽잖아!”
작은 거라면 대충 밖에서 해결하겠지만, 지금은 큰 거였다. 상인은 하는 수 없이, 코를 꽉 움켜쥔 채 변소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첫걸음을 내딛자마자, 무언가를 밟은 듯 발아래가 물컹했다.
“제기랄! 미치고 팔짝 뛰겠네!”
마구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는 일단 변기에 쭈그리고 앉았다. 마음이 불에 타듯 바짝바짝 말라 갔다. 재빨리 볼일을 본 그는 변소 주위에 난 잡초를 뜯어 휴지처럼 사용한 뒤, 도망치듯 변소를 뛰쳐나왔다.
“아이고, 참, 더러워 죽겠네!”
그는 한쪽 발을 툭툭 털기도 하고, 질질 끌기도 했다. 손도 더러워진 기분이었다.
그는 참을 수 없었다. 잠을 자던 처소까지는 거리가 꽤 있었고, 처소 물독에 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다. 그때, 촌락 밖에 흐르는 강물을 발견한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가 옆의 울타리는 대충 나무 걸쇠로 잠겨져 있었다. 문을 몇 번 흔들던 상인은 걸쇠를 풀고, 살짝 열린 울타리 문 사이를 비집고 나갔다.
왈왈, 왈왈!
등 뒤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 무심코 고개를 돌리니, 개의 눈동자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초록색 빛이 깃들어 있었다. 이를 본 그는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왈왈왈!
으르르, 왈왈!
월월! 월월월!
처음에는 개가 한 마리뿐이었는데, 어느덧 여러 마리가 모여들어 그를 향해 미친 듯이 짖기 시작했다.
“망할 놈의 개자식들! 왜 짖는 거야! 물기만 해봐, 내가 아주 개고기를 만들어 버릴 테니까!”
일부러 흉포한 척을 하며 개들에게 소리를 지른 그가 재빨리 땅에서 돌멩이를 줍는 시늉을 했다. 역시나, 개들이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
“무서운 거 알면 썩 꺼져!”
한편, 그칠 줄 모르고 짖어대는 개들 때문에 계연이 놀라 잠에서 깨었다. 강과 가까운 마을 안쪽 주민들 또한 소란스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개 짖는 소리가 끊기긴커녕, 외려 점점 더 사납고 거칠어졌다. 한참을 뒤척이던 계연은 아무래도 잠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후……. 나가 봐야겠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겉옷을 걸치던 계연은 세상모르고 자는 노인을 슬쩍 살핀 뒤, 탁자 앞으로 걸어갔다. 그가 화절자(*火折子: 입으로 불어 불을 붙이는 도구)를 후후 불자, 화르르 불이 붙었다.
탁자 위 유등 심지에 화절자를 가져다 대니, 유등에 자그마한 불씨가 타올랐다.
화절자를 덮고 노인을 다시 확인한 계연은 유등에 붙은 등불을 소매 춤에 집어넣었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확인해야겠어!’
계연이 정신을 가다듬고, 천천히 걸쇠를 열었다. 살며시 나무문을 열고 밖으로 나선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동쪽을 바라보자, 저 멀리 하얀 선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헛!”
힘차게 발을 구른 계연은 그대로 하늘 높이 뛰어올라, 가까운 단층집 지붕 위에 올라섰다. 또다시 가볍게 뛰어올라 환영술을 펼친 그는 옷자락과 긴 머리를 휘날리며, 개들이 짖어대는 촌락의 동북쪽으로 달려갔다.
* * *
강가에 도착한 상인은 우선 손을 씻고, 신발을 벗었다. 그는 안가에서 잡초를 한 움큼 뜯어 물에 적신 뒤, 신발 밑창을 깨끗이 닦기 시작했다.
솨아아.
멀리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드니, 조금 떨어진 곳의 강 표면에 물살이 빙빙 돌며 움푹 파이더니, 점차 사라졌다.
‘물고기를 잡으려 미끼를 쳐놓은 거겠지…….’
상인은 속도를 높여 재빨리 신발을 닦아내었다.
솨아아.
또다시 물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조금 멀리 떨어진 강가에서였다.
“어우, 이게 무슨 냄새야!”
옆에서 불평 섞인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발을 닦던 젊은 상인이 고개를 들고 그곳을 힐끔 바라보았다. 어두운 하늘 아래, 눈부시게 하얀 무언가가 펼쳐졌다.
“어머나! 어딜 보시는 거예요!”
“우악! 오, 오해 마세요. 낭자가 여기서 씻고 계시는 줄 몰랐어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상인의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아무도 안 나올 줄 알았단 말이에요. 갑자기 누가 오길래 강가에 숨어서 가기만을 기다렸는데, 어, 어떻게 여기서!”
손에 들린 신발과 물이 흐르는 방향을 보던 상인이 난처해하며, 재빨리 등 뒤로 신발을 숨겼다.
“이, 이건……그게…….”
“아직도 가만히 앉아서 뭐 하시는 거예요. 물이 더러워서 당장 나가고 싶다고요!”
“아, 예, 예! 자리 피해드릴게요, 지금!”
상인은 깊이 심호흡했다. 자리를 피해 주겠다던 그의 심장이 얼마나 빠르게 뛰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조금 전, 아리따운 여인의 매력적인 눈빛에 그의 심장이 요동쳤다.
촤르르-.
물소리가 들렸다. 상인은 저도 모르게 불그스름한 얼굴로 등 뒤의 장면을 상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