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주멸
영안현보다 조금 작은 세원현 성황당 안.
평범한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초혼종(招魂鐘)이 크게 울리자, 성황당 각 기관의 관리들이 성황당 주전, 성황신상 아래에 모여들었다.
방금 막 돌아온 야간 순시관이 보고 들은 내용을 고스란히 세원현의 성황신에게 보고했다. 짧은 서너 마디로 그곳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설명했다.
“허, 제 수행이 깊고 선법(*仙法: 선인이 행하는 술법)이 높다는 연유로, 감히 본현의 순시관을 오라 가라 하다니! 정녕 그 고인은 오랜 시간 요괴를 막는 게 불가능하단 것을 모른답니까?”
고인의 말만 들으면 순시관에게 화를 내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세원현 성황당의 모든 체계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벌악사(罰惡司) 기관장이 대놓고 불만을 표하자, 옆에 있던 상선사(賞善司) 기관장이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요. 그자의 공격에 뱀 요괴가 꼬리를 끊고 도망갔지만, 그는 더는 검을 휘두르지 않았습니다. 거만한 행동일 수도 있으나, 저희 세원현 성황당을 공경하였기에 그리했을지도 모르죠!”
“됐네, 이 일은 후에 다시 이야기하지. 지금 급선무는 뱀 요괴의 목을 베는 것일세. 순시관이 세원현의 저승계를 대표해 그와 약조하였으니, 괜한 우스갯거리가 될 순 없지 않은가!”
저승의 주인인 성황신은 허리춤에 법검(法劍)을 찬 채, 신상에서 걸어 나왔다. 그가 소매를 펄럭이며 명령을 내렸다.
“나를 따라 율구하(溧溝河)를 봉쇄하거라. 인간의 양기를 탐하였던 뱀 요괴는 몸에 중상을 입었으니, 세원현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놈이 아직 둔갑하지 않은 이상, 꼬리가 잘린 요괴는 마치 다리가 잘린 사람처럼 빠르게 달리지도 못할 것이다. 더군다나 심각한 상처를 입은 지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야간 순시관은 놈의 꼬리가 잘렸는데도, 붉은 불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꺼지지 않고 꼬리 곳곳을 헤집었다고 설명했다. 그 고인이 위세를 숨기고 서슬만 드러낸 채로, 단칼에 뱀 요괴의 꼬리를 잘라내는 건 절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상선사 기관장은 확신했다. 뱀 요괴가 조금 더 위로 칼을 맞았다면, 진작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인은 놈의 꼬리만 활활 태워버릴 뿐이었다. 좋게 생각하면, 그가 세원현을 관할하는 성황당의 권력을 존중한다는 뜻이었다. 벌악사 기관장이 성화를 내는 것 또한, 단지 고인의 호통에 성황당의 체면이 깎였기 때문이었다.
성황신의 인솔 아래, 일곱 기관장과 수행원 넷, 각 기관의 저승사자 수십 명이 총출동했다.
그들의 존재와 위세를 드러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이곳의 터주신인 성황신은 뛰어난 경신술과 신통력을 발휘하며, 각 기관을 데리고 순식간에 율구하로 향했다. 멀리서부터 또 다른 순시관의 초혼종 소리가 들렸다.
* * *
성황신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폈다. 이미 뒤집혀 물 위를 둥둥 떠다니던 새하얀 뱃가죽이, 동쪽 하늘 아래 놓인 채로 율구하 양쪽 기슭 사이에 또렷이 보였다.
“해가 뜨면 일 처리가 번거로울 테니, 속전속결로 움직이도록!”
성황신이 선두에, 기관장 넷이 그 뒤에 섰고, 저승사자들은 양쪽 기슭에 길게 늘어선 채, 진중하지만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음, 역시 중상을 입었군!”
뱀 요괴의 몸짓에 강물이 혼탁해졌다. 콧구멍을 찌르는 비린내 덕분에, 뱀의 몸에 묻은 게 핏자국이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기다란 뱀은 그들의 앞에서 온몸을 허덕이며 발악하고 있었다.
“바로 저기 있다! 공격해!”
성황신의 명령이 떨어지자, 기관장 넷이 급작스레 속도를 높이며, 각자 법기를 손에 쥐었다.
“죽어라!”
잠시 후, 빛이 눈부시게 번뜩였다. 모두가 강물을 향해 공격을 퍼붓자, 혼탁했던 강물은 완전히 진흙탕이 되어, 끊임없이 물결을 일으켰다.
쿠웅!
꽈광!
펑, 파바바밧!
안 그래도 몸에 중상을 입었던 뱀 요괴는 가죽이 찢기고 살이 뜯겨나가는 고통에 또다시 몸부림을 쳤다.
“아직 사람으로 완벽히 둔갑하지도 못하면서, 감히 빈틈을 노리다니! 저승사자, 놈의 혼을 끄집어내!”
성황신이 뱀 머리에 법검을 들이밀며, 마치 무거운 물건을 얹은 듯, 커다란 뱀을 강물에 눌러 죽이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놈의 몸이 가라앉지 않았다. 성황신은 강 양쪽 기슭에 있던 저승사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명 받들겠습니다!”
여섯 명의 저승사자들이 움직였다. 강물을 밟고 달려나간 그들은 구혼삭(*勾魂索: 영혼을 끄집어내는 밧줄)을 휘둘렀다.
끄아아아악!
뱀은 비명을 지르며 허덕였지만, 구혼삭에 휘감긴 몸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이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여섯 개의 구혼삭이 거대한 뱀의 환영을 옭아매자, 뱀의 몸이 드러났다.
* * *
하늘이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강가는 이미 촌락 사람들로 붐볐다. 그들은 흥분하고 경악하면서 배 옆을 둥둥 떠다니는 뱀 꼬리를 구경했다.
지금은 뱀 꼬리가 새까만 색을 띠었다. 꼬리에서 가장 두꺼운 부위의 굵기는 성인의 허벅지만 했고, 길이는 10척(*약 3.3m) 정도였다. 이를 본 수많은 촌민이 천만다행이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가에서 지내던 촌민들은 더욱이 이야기에 살을 붙여, 당시 상황을 묘사하기도 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어젯밤, 촌락에 있는 개들이 모두 짖을 때부터 뭔가 잘못된 거 같았어요!”
“그러고 보니 요즘 밤마다 같은 시간만 되면 개들이 마구 짖었잖아요!”
“맞아요, 맞아. 날이 밝기 직전에 말이야!”
“아휴, 생각할수록 무섭네!”
“고인께서 때마침 지나가시지 않았으면, 촌락에 인명 피해가 났을 거요!”
“제가 보기에, 그 고인께서 일부러 찾아오신 거 같아요. 솔직히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정확히 어제 찾아오신 게 이상하지 않아요?”
“내 말이……!”
“다들 그거 알아? 그 고인께서 이장(二壯)네 처소 지붕에 서서, 꽃뱀한테 버럭 소리를 치신 거야. 들은 사람이 꽤 많은 것 같더라고!”
“맞아, 그때 놀라서 지릴 뻔했다니까!”
“나도. 놀라서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귀가 먹먹하더라고.”
“근데 고인께서 호통치지 않으셨으면, 그 상인은 이미 요괴 밥이 되었을걸?”
“그래서, 다음엔 어떻게 됐는데?”
“다음에는 뭐, 요괴를 처치하셨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 갑자기 그 요괴 주변에 불이 펑 터지더니, 막 고통스러워하면서 데굴데굴 구르더라고.”
강가에서 촌민들이 여전히 두려워하며 감탄하는 동안, 계연은 촌장을 따라 촌장댁에 들어왔다.
이곳을 지나치는 척하면서 계연을 힐끔 쳐다보거나, 멀리서 이들을 지켜보는 촌민들이 더러 있었다. 만약 촌장이 버럭 화를 내며 그들을 쫓아내지 않았다면, 강가처럼 이곳에도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터였다.
계연은 다소 불편했다. 그는 쉽게 주눅 드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동시에 무대 체질도 아니었다.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불편했지만, 대놓고 불만을 표현하지 못할 뿐이었다. 다행히도 눈치가 빠른 촌장이 구경하는 촌민들을 내쫓아준 덕분에, 계연은 한결 편안해졌다.
한편, 상인은 이제야 정신을 차렸다. 방금 혼비백산이 되어 온몸에 힘이 풀린 그는 이곳에 와 인중을 꾹꾹 누르며 생강차를 마시고는 겨우 숨을 돌렸다.
정신을 차린 그는 함께 온 다른 상인과 촌락의 어르신들, 그리고 긴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는 계연을 발견했다. 그는 옆에 있던 친구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허겁지겁 계연의 앞으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선장, 목숨을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쾅쾅쾅!
상인은 계속해서 무릎을 꿇은 채, 계연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계연은 그를 막지 않았다. 그가 몇 차례 머리를 조아리자, 그제야 계연이 손을 뻗어 그의 이마를 막았다.
“앞으로 잊지 마세요. 색(色)의 끝에는 칼날이 숨겨져 있고, 탐욕스러운 욕망은 목숨을 해치기 마련이에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이 다치게 될 거예요. 다음번에는 당신을 구해줄 사람이 없을지도 몰라요.”
“네, 네, 선장의 교훈을 달게 받겠습니다. 오늘 일은 평생토록 잊지 않겠습니다!”
“그래요. 저는 선장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저 약간의 기술을 지니고 있을 뿐이지, 선인의 도리는 알지 못하지요.”
앞의 말은 상인을 향한 것이고, 장난기 있는 표정으로 말꼬리를 늘리며 말한 뒤의 말은 모든 촌민을 향한 것이었다.
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알았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하지만 아직 말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다. 어젯밤, 경악하며 기절한 상인은 잠시 유체이탈을 경험하였고, 우연히 저승사자를 보게 되었다. 당시 두 저승사자는 자신들을 성황신 휘하의 야간 순시관으로 소개하였고, 이 고인을 ‘선장’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상인은 반사적으로 그를 ‘선장’이라 부르며, 머리를 조아린 것이다.
때마침 허 노인이 계연의 짐을 들고 들어왔다.
“계 선생, 여기 보따리랑 우산이오!”
대충 훑어만 보아도, 아무도 보따리를 들춰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연은 보따리를 건네받으며, 허 노인을 향해 웃어 보였다.
“고맙습니다, 어르신!”
“계 선생 덕분에 살풀이를 한 것 같소이다. 저희를 위해 요괴를 물리쳐 주시다니요.”
“어르신, 어르신께서 어젯밤 제가 하룻밤 묵을 수 있게 해주셨잖아요.”
사람 좋은 웃음을 짓던 계연은 옷을 툴툴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촌락에선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촌민들의 구경거리가 되는 건 둘째 치고, 만에 하나 관아에서 심문을 나오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사실 둔갑하지 않은 요괴는 사람을 과도하게 해치지 못한다. 광야에서든 숲에서든, 평범한 마을의 백성들이 불가사의하게 죽음을 맞는다면, 망자의 악기가 원한을 품고 움직이기 때문에, 성황당 선악부(善惡簿)와 복수부(福壽簿)에 이상 현상이 나타나곤 했다. 뱀 요괴가 본모습을 숨긴 건, 이러한 약점을 노려 사냥하기 위해서였다.
* * *
계연은 원래 날이 밝기 전에 떠날 생각이었다. 그는 행여나 세원현 성황당에서 그를 찾아올까 봐, 몰래 떠나려던 것이었다. 길을 묻는 건 외려 부차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하늘 높이 밝은 해가 떴는데도 저승사자가 보이지 않자, 계연은 이곳에서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이번 일은 영안현에서 있었던 일과 사뭇 달랐다. 그 당시에는 기껏 계연이 기인이라는 소문만 돌 뿐이었다. 이 또한 행여나 계연의 귀에 들어갈까, 영안현 사람들 전부가 쉬쉬하던 풍문이었다. 백성들의 일상과 거리가 먼 소문은 차차 뇌리에서 지워지기 마련이다. 영안현 사람들은 평소 저잣거리에서 식사할 때마다 계연을 마주치다 보니, 곧 계연을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 요괴를 공격한 일은 촌민들과 직접 연관되어 있었다. 촌민들의 반응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뱀 요괴는 운 좋게 살아났다 하더라도, 원기가 많이 상했을 것이다. 거기에 세원현 성황당 관리들이 적절한 방비를 갖출 테니, 문제가 크진 않을 터였다.
계연은 상인 몇을 불러 춘혜부로 가는 길과, 묵을 만한 객잔 등을 물었다. 질문을 마친 그는 잠시 낮잠을 잔다는 핑계로 처소에 돌아와, 환영술을 발휘하며 몰래 촌락을 떠났다.
뒤늦게 식사 시간이 되어 촌장이 식사하라며 친절하게도 직접 계연을 찾아왔다. 하지만 계연의 처소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그가 주변 촌민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본 적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계연은 이미 반나절 전에 촌락을 떠난 지 오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