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섣부른 예측
계연은 구석 자리에 앉아서도 몇몇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방금 점소이가 계연을 구석진 자리로 안내하는 모습을 적잖은 사람이 지켜보았으니, 그럴 법도 했다.
계연과 점소이가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눠서 다른 사람들은 듣지 못했지만, 모두는 상황을 이렇게 이해했다. 주머니 사정이 딱한 초라한 사내 하나가 회객루에 밥을 먹으러 들어 왔는데, 주루에서 장사가 방해될까 봐, 그를 구석진 자리로 안내했다고 말이다.
겉모습만 보면, 그 누구도 계연이 한 상 가득 음식을 주문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모두들 기껏 해 봤자 만두나 뜨거운 물, 거기에 짭짤한 절임 채소 정도를 시켰으리라고 생각했다.
물론 일부는 작은 목소리로 계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도중에는 ‘딱하다’, ‘냄새나’ 등의 말이 섞여 있었다.
계연은 이 모든 것에 개의치 않았다.
‘당신들은 당신들 거나 먹으세요. 내가 당신들 식탁에 남은 음식을 훔쳐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솔직히 내가 주문한 음식이 한 상 가득 차려지면, 다들 놀랄걸.’
음식을 기다리는 도중, 계연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미난 일들에 귀를 기울였다. 계연의 자리로부터 탁자 서너 개 정도 떨어진 곳에는 도복을 입고 총채와 죽통을 쥔 사람과 마찬가지로 도복을 입은 열다섯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 앉아 있었다.
계연이 이 세계에 온 뒤로 처음 마주친 도사였다. 물론 저들은 선인의 길을 걷는 고인이 아니라, 속세의 도사였다.
두 사람은 작은 문제를 맞닥뜨린 듯했다.
어린 도사가 물 한 그릇을 꿀꺽꿀꺽 들이마시더니, 입가에 묻은 물을 닦으며 울적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부님. 여비를 거의 다 써서, 이번에도 만두랑 배추밖에 먹지 못합니다. 대체 언제쯤 운산관(雲山觀)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여비는 걱정하지 마라. 이번 식사를 마치면, 내 저잣거리에 노점을 펴고 점을 봐줄 것이다. 그럼 대충 밥 먹을 돈 정도는 벌 수 있을 게다. 돌아가는 일은 천천히 생각하자꾸나.”
도사 또한 물배를 채우며, 제자의 푸념에 대답했다. 하지만 사부가 노점을 펴고 점을 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제자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사부님, 또 점을 치시다니요? 안 됩니다. 지난번 청류현(靑柳縣)에서 사람들이 노점을 부수고, 저희는 얻어맞기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벌써 그 일을 잊으신 겁니까!”
“아서라. 나도 그 일을 잊은 적 없으니,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언급하지 말거라. 할 말은 해야 하지만, 좋은 말만 골라서 하고, 안 좋은 말은 삼가면 될 것이다. 일이 잘 풀리면, 돈을 충분히 모을 수 있을 게야. 그런 흉악한 사람들의 운명이야 점치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도사는 지난 일이 부끄러운 듯, 자신감이 한풀 꺾였다.
“매번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도사는 제자가 작게 중얼거리는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외려 이를 들은 계연이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었다. 아무리 봐도 저들은 도사들이 아니라 두 명의 광대들 같았다. 아니, 광대 하나와 상당히 속을 썩고 있는 제자 하나가 분명했다.
“손님, 주문하신 만두와 배추볶음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점소이가 커다란 나무 쟁반 위에 음식을 내어왔다. 사제가 주문한 만두 두 개와 배추 요리를 그들의 식탁에 올린 점소이는 이만 자리를 벗어났다.
도사와 소년은 점소이의 쟁반 위에 놓인 갖가지 고기 요리에 시선을 빼앗겼다. 점소이가 떠나자, 둘은 그제야 아쉬워하며 식탁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 먹자…….”
“네…….”
두 사람은 서리 맞은 구렁이처럼 계속해서 한숨을 쉬었다.
이 광경에 계연은 웃겨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그가 못된 성품이라 그러는 게 아니라, 아무리 봐도 희극 같은 분위기에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기 때문이었다.
“손님,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여기 돼지고기졸임, 떡, 배추찜, 무볶음 그리고 절인 무채입니다. 닭찜과 버섯볶음은 시간이 조금 걸려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금방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점소이는 우렁찬 목소리로 음식명을 읊으며, 계연의 식탁에 음식을 내어왔다.
이건 회객루 점소이들의 습관이었다. 손님이 주루의 대표 음식을 주문하면, 유난히 낭랑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음식명을 외치며 음식을 날랐다. 주루 전체는 물론, 주루 밖 길가에서도 무슨 음식을 시켰는지 들릴 정도였다. 도사와 제자가 시킨 음식이 나왔을 때, 점소이는 이보다 훨씬 작은 목소리로 음식명을 읊었다.
하지만 앞서 계연이 사람들에게 남긴 인상과 그가 주문한 음식은 도무지 어우러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놀라 경악을 금치 못하는 중이었다.
점소이가 절인 무채를 내려놓고 뒤로 돌아서려던 그때, 계연이 그를 불러 세우며 저편의 도사들을 바라보았다.
“점소이. 미안하지만 저기 두 도사 분들께 저와 합석하시겠냐고 여쭤봐주시겠어요?”
잠시 자신의 행색을 살피던 계연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 저들이 괜찮다면 말이죠.”
방금 재미난 구경을 하였으니, 계연은 그들에게 기꺼이 식사를 대접하고 싶었다. 게다가 좀 전의 대화 내용으로 미루어 보면, 점쟁이 도사는 순수한 강호의 무당이 아닌 듯했다.
“아……. 예, 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무 쟁반을 든 점소이가 잰걸음으로 두 도사에게 다가갔다.
“저기, 손님. 문 귀퉁이에 앉으신 손님께서 두 분이 괜찮으시다면 함께 합석해 식사하시겠냐고 물으십니다. 아, 지금 이쪽을 보고 웃고 계신 저분께서요.”
두 도사는 점소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이요? 저 사람은 본인 음식값도 지불하기 어려워 보이는데……. 알게 뭐야, 문(文)아, 가자꾸나!”
조용히 중얼거리던 도사는 점소이를 향해 웃어 보이더니, 재빨리 제자를 데리고 계연에게로 향했다. 그는 그들이 주문한 하얀 만두와 볶은 배추 요리도 잊지 않고 가져왔다.
긴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앉은 도사가 자기소개를 했다.
“으허허. 선생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군요. 저는 제선(齊宣)이라 하고, 호(號)는 청송(靑松)입니다. 이쪽은 제 제자 제문(齊文)입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어찌 저희에게 식사를 대접하시는 겁니까?”
어린 도사는 한마디도 없이, 넋이 나간 채 식탁에 놓인 음식만 바라보았다.
“저는 계연이라고 합니다. 평소 도사분을 뵐 기회가 없는데, 이 기회에 함께 식사하며 알아가고 싶었습니다.”
그들은 괜한 겉치레 없이, 여유롭게 한담을 나누었다.
“아, 그렇…….”
청송도인은 말을 하다 말고 넋을 잃었다. 그는 밝고 투명하지만, 희뿌연 색을 띄는 계연의 눈을 보며, 하마터면 ‘당신 맹인입니까?’라는 질문을 툭 던질 뻔했다.
“자! 그럼 이야기는 나중에 이어서 하고, 우선 식사부터 하시지요. 음식이 식으면 맛없지 않습니까?”
계연은 자신이 권하지 않으면, 두 사제는 지나치게 조심하느라 젓가락조차 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침 도사님들께서 만두를 시키셨군요. 아! 안 그래도 밥 시키는 걸 까먹었는데, 잘됐군요!”
먼저 만두를 한 입 문 계연은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침을 흘릴 지경이었던 두 도사 또한 젓가락을 들었다.
비록 상황은 달랐지만, 세 사람은 오랜 시간 맛있는 음식에 굶주려 있었다. 음식이 한 입 들어가니, 그들은 마치 걸신이 들린 것처럼 젓가락질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계연의 먹음새는 나름 봐줄 만했다. 몇 달 동안 습관을 들인 덕분에, 소매를 붙들고 음식을 집어 먹는 그의 모습은 꽤 품격이 있어 보였다. 하지만 먹는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았다.
두 도사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 치웠다. 목에 걸리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그들의 대조적인 모습에, 주변에서 식사하던 손님들은 이상한 착각이 들었다. 냄새나고 더러운 행색의 계연에게서 외려 기개가 느껴졌고, 반대로 두 도사는 궁핍한 부랑자처럼 느껴졌다.
나머지 음식이 모두 올라오자, 계연은 간단한 요리 두 개와 흰쌀밥 세 공기를 추가로 주문했다. 세 사람은 뱃가죽이 터질 때까지 식사를 이어갔다.
닭찜 국물을 들이마신 두 도사는 더는 뱃속에 음식을 밀어 넣을 공간이 없었다.
두 도사가 배를 쓸어 만지며 만족한 표정을 짓자, 계연이 웃음을 지었다.
“더 안 드십니까?”
“꺼억. 배불러요, 배불러…….”
“더는 못 먹습니다! 턱 끝까지 찼어요…….”
“하하, 알겠습니다. 그럼 남은 건 제가 먹겠습니다.”
계연은 국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식탁에 놓인 모든 음식을 마치 소용돌이처럼 휩쓸며 입속으로 빨아들였다. 두 도사는 놀란 표정으로 이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지막 한 입까지 맛있게 식사를 마친 계연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점소이에게 소리쳤다.
“점소이, 여기 계산이요!”
“예, 손님!”
계산이라는 말에, 점소이는 어느 때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식사 한 끼에 백 문이 넘게 나왔다. 동판을 세기가 귀찮았던 계연은 쇄은자 하나를 건네며, 점소이에게 무게로 계산해 달라고 말했다.
그가 정말로 돈을 내자, 두 도사는 시름을 놓았다.
“선생, 저도 머리와 팔다리가 제대로 달린 사람입니다. 멀리 보려면 아주 먼 곳까지 볼 수 있지요. 선생께서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해 주셨으니, 제가 점을 한 번 봐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점이요? 재미있겠군요. 사주팔자를 보시는 겁니까, 아니면 관상이나 손금을 보십니까?”
“사주팔자가 가장 정확하긴 하지만, 관상과 손금도 좋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제 사주팔자를 봐주세요.”
계연이 웃으며 지난 생의 사주(四柱)를 말했다. 고모부 덕분에, 계연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팔자를 알고 있었다. 그때 당시, 점쟁이들은 모두 그가 좋은 팔자를 타고났다고 말했다.
그의 팔자를 듣고 꼼꼼히 계산하던 청송도인은 여느 점쟁이들과 똑같이 생각한 듯했다. 그러나 잠시 후, 청송도인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졌다. 끝내 그가 고개를 들어 계연을 올려보았다.
“지금 거짓말하시는 거죠? 이게 당신의 팔자라고요?”
“가짜일 리 있나요?”
계연은 자연스레 대답했다. 이번 생의 팔자는 모르지만, 어쨌든 지난 생의 팔자 또한 자신의 것이지 않던가?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이게 당신의 팔자라면, 당신은 이미 죽은 몸입니다!”
“사부님!”
옆에 앉아있던 제자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뜨끈한 식사에 기분 좋게 흘린 땀이 식은땀으로 변해갔다. 그의 스승은 또다시 미움 살 말을 하고 만 것이다.
“어…… 아아, 그게……. 방금은, 잘못, 잘못 말했…… 습니다…….”
청송도인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그는 눈앞이 핑 돌고, 가슴이 답답했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버거워졌다. 그러다 하늘이 노래졌다…….
“커억!”
시뻘건 피가 식탁을 적시고, 청송도인은 그대로 식탁 위에 고꾸라졌다.
“사부님! 사부님!”
당황한 어린 도사 제문은 반사적으로 제선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려 했지만, 덜컥 겁이 났다.
“사부님! 사부님! 돌아가시면 안 돼요, 사부님! 사부님, 저 혼자 두고 가시면 어떡해요! 으흐흑……. 사부님!”
“어머! 저 사람 피를 토했나 봐!”
“어디, 어디?”
“저기요!”
“세상에나, 진짜네!”
“아이고, 설마 주루 음식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
“설마!?”
“쉿!”
“괜히 놀라게 하지 마!”
주루 전체가 떠들썩해졌다. 점소이와 주인장 또한 허겁지겁 이쪽으로 달려왔다.
다행히도 계연이 민첩하게 행동했다. 지금은 놀란 마음을 쓸어내릴 시간이 없었다. 재빨리 의원을 찾아가는 것이 관건이었다.
“제문아. 네 사부님은 아직 돌아가신 게 아니야! 내가 네 사부님을 의원에게 보일 테니, 어서 나 좀 도와줘!”
“아, 아, 네, 네…… 의원, 의원에게로 가야죠!”
계연은 옆에 놓인 긴 의자를 발로 뻥 찼다. 제문에게 도와달라곤 했지만, 사실은 이미 그는 혼자서 축 늘어진 제선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잠시 제선의 혈을 짚어보던 계연이 재빨리 뒤로 돌아 무릎을 굽히자, 제선이 계연의 등에 청송도인을 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