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58화 (58/892)

58화.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남색의 장포를 두른 사내는 계연의 독특한 두 눈을 보고 있자니, 계연이 옥부적 너머로 자신의 진면모를 꿰뚫어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하, 저 또한 아무 생각 없이 소리친 겁니다. 진짜 어른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쪽이야말로 대단한 인내심을 지니셨군요!”

대화를 나누는 사이, 계연은 자리에 앉아 몸을 빙그르르 돌렸다. 그의 무릎 위에 놓인 <통명책>이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냈고, 이를 본 남색 옷의 사내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통명책? 저건 천록서잖아!’

그는 계연의 진심 어린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계연이 책을 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두 아이가 소란을 피웠군요. 다만, 벽수담에선 매년 단 한 마리의 은규자만 자랍니다. 두 아이의 수행에 크게 도움이 되는 녀석이라, 마음이 급했던 모양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남색 옷의 사내가 휘릭 손짓했다. 그러자 두 아이는 마치 보이지 않는 선에 이끌리기라도 한 듯, 사내에게 다가왔다. 계연이 보아하니, 두 아이에게 무례하게 굴어서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 같았다.

남색 옷의 사내는 생각에 잠겼다. 눈앞의 낚시꾼의 도행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상대의 성격은 온화해 보이지만, 그 또한 사실인지 확신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니, 조심히 일을 마무리하는 편이 좋았다.

‘고작 은규자 한 마리니까, 일단 핑계를 대고 물러나야겠어!’

“저는 옥회산의 구풍(裘風)이라고 합니다. 선생의 존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저희를 기다리려고 이곳에 찾아오신 겁니까?”

구풍이 온화한 말투로 호칭까지 바꿔가며, 계연에게 살며시 공수했다.

계연은 쓸데없이 거만을 떨 수 없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수하던 계연이 짧은 망설임 끝에, 자신의 본명을 이야기했다.

“저는 계연이라고 합니다.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러 외도전을 읽었다가, 이곳에 물의 요괴가 산다는 이야기를 보고 사실인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당신들 기다리려고 온 거 아니거든!’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겨우 시름을 내려놓은 구풍이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선생께서 이미 은규자를 낚으셨는데, 계속 방해할 순 없지요. 저희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화(和), 의의(依依)! 가자.”

구풍은 다시 한번 계연에게 예의 바르게 공수한 뒤, 두 아이를 데리고 연못을 벗어났다.

계연은 구풍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방어적으로 자신을 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연못 옆에서 공수할 때를 제외하면, 계연은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다.

‘수선자와의 첫 만남이 이대로 끝나 버린 것인가?’

억지로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기던 두 아이는, 바닥의 돌과 풀을 마구 걷어찼다. 연못을 어느 정도 벗어나자, 결국 참다못한 여자아이가 원망의 목소리를 꺼냈다.

“이게 뭐야, 우리 은규자도 뺏고! 애들한테 양보 좀 하지…….”

구풍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아이는 정말 벽수담을 자신의 집처럼 여기고 있었다.

곧이어 사내아이가 생각지도 못한 말을 덧붙였다.

“맞아, 뻔뻔한 놈이야.”

앞서 몇 마디는 아이의 투정으로 생각할 수 있었지만, ‘뻔뻔한 놈’이라는 말에 구풍이 곧바로 얼굴을 굳히며 호통쳤다.

“화야!”

사형(師兄)의 두 아이는 말 그대로 하늘 높은 줄을 몰랐다. 이 세상에 오감이 놀라울 정도로 예민한 고인이 얼마나 많던가. 하물며 다른 건 둘째 치고, 면전에 대고 욕을 하는 건 절대 해선 안 되는 행동이었다.

“하하하. 일리가 있네요. 아이의 물건을 뺏는 건 뻔뻔한 놈이나 하는 행동이죠!”

이때, 계연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웃고 있었지만, 갑작스레 긴장한 구풍은 매섭게 법력을 발휘했다. 그의 머리에 채워진 파란 옥비녀는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붉은빛을 내뿜었다. 옥회산의 원로인 그라 할지라도, 이 상황에서는 모든 뱃심을 잃은 기분이었다.

* * *

계연은 난폭한 사람이 아니다. 지금도 진정 횡포하게 굴 생각은 없었다. 그저 구풍의 속내가 눈에 선할 뿐이었다.

물의 요괴가 깃든 은규자는 진귀한 생물이었다. 적어도 현재 계연에게는 보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르지만, 국을 끓여 먹든 찜을 쪄 먹든, 톡톡히 몸보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요리해 먹다니, 이보다 더한 낭비가 어디 있으랴. 마침 이 물고기의 활용법을 아는 사람이 단 수십 보 밖에서 잔뜩 경계하고 있지 않은가.

“구 선생, 긴장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소한 언쟁일 뿐인데, 제가 어린아이와 똑같이 굴 리 없잖습니까. 더구나 아이의 언행이 불손하다면, 집안 어르신께서 직접 가르치셔야죠.”

계연의 목소리가 평온하게 울려 퍼졌다. 보따리와 우산을 들고, 어깨에는 대나무 장대를 짊어진 그가 나뭇가지와 덩굴을 교묘하게 피하며, 무공의 ‘무’ 자도 모르는 사람처럼 느긋하게 걸어왔다.

재미나게도, 대나무 장대의 끝에 물방울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물방울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손톱만큼의 차이로 나뭇가지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펑 터져 버릴까 봐 아슬아슬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자연스럽고 털털한 계연의 행동에 보는 이의 마음마저 편안해졌다.

가까이 다가온 계연은 여전히 미소진 얼굴로 ‘화’라는 이름의 아이를 향해 눈을 깜빡였다. 그러자 그 아이는 찍 소리도 내지 못했다. 아이는 아마도 조금 전 계연의 너그러운 말이 어떤 위력을 지녔는지 깨닫기도 전에, 혼쭐이 날 것이다.

계연의 짓궂은 표정을 목격한 구풍은 외려 안심이 되었다. 그는 돌아가는 대로 사내아이를 모질게 혼낼 생각이었다. 마음 약한 사형이 아이를 혼내지 못한다면, 사제(師弟)인 자신이 나서야지 않겠는가!

구풍은 이 자리에서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아이를 혼내지 않고, 먼저 계연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 따라오신 거죠?”

“하하, 가르침이라니요. 사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당신들이 이 은규자를 그렇게 원하는데, 제가 이걸 냉큼 끓여 먹기엔 좀 아깝지 않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혹시 물물 교환을 하시겠습니까?”

만약 조금 전에 계연의 요구를 들었다면, 구풍은 제일 먼저 이 미지의 고인에게 무슨 속셈이 있는 것일까 고민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희한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선생께서 무엇이 필요하신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얼마든지요!”

구풍은 상대의 선의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계연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는 정말 배고프고 돈이 없어서, 직접 잡은 물고기를 끓여 먹으려고 했다. 그러니 상황이 이보다 좋을 순 없었다.

물론 그는 이 은규자의 진정한 가치를 몰랐으니, 그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터놓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는 그저 촌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견식이 좁아 귀한 물건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다만, 현재 선도를 닦는 것에 대해 궁금한 게 많습니다. 무공이나 술법, 기서, 그리고 자잘한 묘법이나 재미난 것이라면 무엇이든 은규자와 맞바꿀 의향이 있습니다. 아, 가장 기초적인 연기결이라도 좋습니다!”

계연은 통명책과 외도전을 통해, 연기결의 기초 단계는 모두 엇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기결에는 오행의 차이도, 음양의 차이도 없었다. 비록 각 선문(仙門)에는 독특한 연기결이 있었지만, 사실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툭 까놓고 이야기하면, 연기결은 선도를 닦는 보급형 법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연은 이 보급형 법결을 무척이나 갈망했다.

지난번 그가 성황신에게 오해를 샀을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구풍은 자신을 고인으로 생각하고, 자신을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게 틀림없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지 않던가. 지금으로선 상대가 경외심을 유지하는 것이 좋았다. 특히 지금처럼 이익을 다투는 것과 흡사한 상황에서는 말이다.

“어어! 《기초 수선 연기결》 저한테, 저한테 있어요. 사숙(師叔), 그거랑 바꿔요!”

여자아이는 신이 나 펄쩍펄쩍 뛸 지경이었다.

“의의야!”

구풍이 호통치며 아이를 조용히 시켰다. 정말로 기초 연기결과 교환한다면, 은규자를 공짜로 가져오는 것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조금 전 보았던 통명책과 계연이 말한 외도전은 구풍이 한 번도 보지 못한 100년 전의 잡서였다. 보아하니, 계 선생이라는 작자는 희귀한 물건에 관심이 많은 듯했다.

이윽고 구풍은 결단을 내렸다.

‘속내를 헤아릴 수 없는 고인과 좋은 인연을 맺겠어!’

“선생의 고아한 흥취가 실로 부럽습니다. 제겐 그런 희귀한 보물이 없어 아쉽지만, 선생께서 좋아하실만한 오래된 서표(*書標: 책갈피)가 하나 있습니다!”

구풍이 소매를 펄럭이자, 백옥으로 만든 얇은 서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중지만 한 길이의 맑고 투명한 선표였다.

“이건 구신술(拘神術)에 대해 적힌 한 권으로 된 책입니다. 제가 십수 년간 연구하였는데, 비록 기이한 기술은 얻지 못하였으나, 술법에 대해 이해하고 심신을 집중하는 데에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물건은 어떠실까요?”

구풍의 짧은 소개가 끝나자, 백옥 서표가 휘이익 날아가 계연의 손에 쥐어졌다.

‘구신술? 맨 처음 수선에 관한 책에서 보았던 기술이다!’

아무리 한 권으로 된 책일지라도, 이것이 귀한 물건이라는 것쯤은 계연도 알 수 있었다. 은규자 한 마리로는 턱없이 부족해 보였지만, 거절하자니 아쉬움이 눈을 가렸다.

‘어차피 구풍이 먼저 제안한 것이니, 괜찮지 않을까?’

기분은 좋았지만, 어째서인지 계연은 연기결에 마음이 끌렸다…….

“은규자 한 마리로 맞바꾸기엔 과한 것 같습니다. 구 선생의 호의는 감사합니다.”

계연이 어깨를 살짝 움직이자, 대나무 장대가 흔들리고, 물방울이 또다시 물줄기를 그렸다. 마치 어부의 손에 날아가는 낚싯대처럼, 계연의 뛰어난 힘과 균형 감각 아래, 물방울은 구풍을 향해 날아갔다.

구풍은 재빨리 술법을 부려 물방울을 붙잡았지만, 물방울 속 물이 마구 넘실거렸다. 옆에서 지켜보던 두 아이도 극명한 수준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구풍은 남몰래 감탄했다. 상대는 어수술 외에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술법을 부려 물방울을 붙잡고도, 하마터면 물방울이 터질 뻔했다.

계연은 술법으로 물방울의 존재만 유지할 뿐이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술법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교묘한 힘과 기술을 사용한 것이었다.

“계 선생, 일도 해결되었으니,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부디 옥회산을 찾아주시지요!”

“네, 기회가 된다면 꼭 찾아뵙겠습니다!”

나름 만족한 두 사람은 서로 공수하며 인사를 고했다.

은규자를 품은 물방울은 여자아이에게 넘겨졌다. 그 아이 또한 어수술을 사용해, 위아래로 물고기를 굴리며 장난을 쳤다. 구풍이 재촉하자, 그제야 두 아이는 그를 따라 자리를 벗어났다.

몇십 보 걸었을 무렵, 구풍과 대화를 나누던 여자아이가 돌연 뒤로 돌아 계연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이내 소매 안 주머니에서 손가락 크기만 한 백옥 서표를 꺼내 건네었다.

“계 선생님, 이건 제 기초 연기결이에요. 방금 갖고 싶다고 하셨던 그거요. 그런데 저한테는 하나밖에 없어요!”

게연이 허둥대는 사이, 여자아이가 백옥 서표를 휙 던지고는 재빨리 구풍에게로 돌아갔다. 구풍은 웃으며 계연을 향해 공수를 해 보였다.

계연의 마음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가득했다. 구풍의 가르침이든 여자아이의 처세든, 계연에겐 크나큰 의미로 와닿았다. 백옥 서표를 손에 쥔 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하하하……. 고맙다. 네 이름이 의의 맞지? 훗날 네가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내 반드시 너를 도와주도록 하마. 나중을 기약하자, 하하…….”

그 웃음소리에는 희열과 계연의 기개, 자신감이 들어차 있었다. 아직은 보잘것없는 인물일 뿐이지만, 그는 자신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호탕하게 웃던 계연이 자신을 향해 공수하자, 구풍은 웃음이 그치지 않는 얼굴로 두 아이를 데리고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어가던 그들은 서서히 점이 되어 사라졌다.

* * *

반 각(*半刻: 약 7~8분) 후, 두 아이와 함께 바람을 거스르고 달려가는 구풍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다.

“사숙, 은규자 하나에 그리 기뻐하시는 겁니까!”

사내아이의 말에, 구풍이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물방울을 가지고 노는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이내 그는 질문과 상관이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하하, 인간 세상에서 도묘(*道妙: 깊고 심오한 이치)를 깨달은 훌륭한 자는 자유롭고 소탈하며, 악의 없는 순박함을 지니고 있단다. 지금이야 아직 어려 모르겠지만, 훗날 이런 자와 인연을 맺는 것을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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