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강으로 흘러간 미주
계연이 가까이 다가오자, 승객들이 반사적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은 줄곧 뱃머리에서 책을 읽던 계연을 사공의 친척으로 알기도 했다.
우람한 사내 주변으로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본 계연이, 그와 가까운 곳에 앉으며 물었다.
“형씨, 배에 타기 전에 술을 드셨나 봐요?”
우람한 사내는 자신에게 말을 건 게 맞는지 확인하는 듯, 의아한 눈빛으로 계연을 쳐다보았다. 계연의 얼굴이 자신을 향하자, 그제야 그가 거친 목소리를 냈다.
“떠나기 전에, 집안 어르신들께서 연회를 열어 주셨소. 집에서 빚은 맛있는 술을 가져오셨길래, 몇 잔 마셨지요.”
“아, 그럼 구도구현 분이세요? 체격이 굉장히 좋으신데, 무술 같은 거 배우셨습니까?”
계연의 질문이 우람한 사내의 흥을 돋운 듯했다. 우람한 사내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동외촌(東崴村)에서 온 이대우(李大牛)라고 합니다. 어려서부터 몸집이 커서, 촌락 사람들은 웬만한 소보다 농사일을 잘할 거라고 하셨죠. 어렸을 땐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대협을 사부로 모시며 무공을 배우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기회가 없었소. 그리고…….”
이윽고 이대우의 기분이 푹 가라앉았다.
“몇 해 전 현도를 찾았을 때, 무술단 사범께서 저를 보시더니 참 아쉽다고 그러시더군요. 무공의 기초를 다질 나이가 훌쩍 지나서, 이번 생에는 무예로 공을 세우기 어렵겠다며 말이지요…….”
‘꿈이 짓밟힌 거구나.’
“아하하, 형씨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잖아요. 제가 알기로는 나이에 상관없이 연마할 수 있는 강호의 무술도 있다고 합니다. 형씨는 선천적인 조건을 타고났으니, 반드시 뜻을 이룰 수 있을 거예요.”
“하하, 위로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포기했습니다. 사실 저희 외숙(外叔)께서 춘혜부에서 명성이 좀 있으신데, 힘 좋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셔서 가는 중입니다. 나중에 돈을 모아서 장가를 가고 편안히 살아야죠!”
포악한 생김새의 사내, 이대우는 쇳소리 나는 목청으로 정직하고 조심스러운 말을 이어갔다. 그는 악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대도시에 대한 동경과 불안을 품은, 더할 나위 없이 순박한 촌민이었다.
“맞아요. 만족할 줄 알아야 인생이 즐거운 법이죠!”
생긋 웃음 짓던 계연이 덮개 아래에 있는 모두를 향해 공수를 해 보였다.
“전 계연이라고 합니다. 춘혜부로 놀러 가는 중이죠. 사흘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계연의 소박하고 느긋한 태도와 더불어, 우람한 사내에 대한 두려움까지 사라지니, 나머지 승객들도 차례대로 자기소개를 하기 시작했다. 배 안의 분위기는 한결 화목해졌고, 승객들은 서로 편안히 담소를 나누었다.
두 서생은 유학을 가는 길이었고, 노인과 손주는 춘혜부에 사는 가족의 부고 소식에 장례를 치르러 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비쩍 마른 몸의 중년 사내는 그저 춘혜부에 볼 일이 있다고 소개했다.
늙은 사공의 아들도 간혹 안으로 들어와 승객들과 담소를 주고받으며, 새로운 소식을 전해 들었다.
* * *
저녁 무렵이 되자 배는 강어귀에 다다랐다. 멀리 광활한 춘목강이 보였다.
“그물 내릴 준비 하자!”
“예!”
선실에 앉아있던 승객들은 사공 부자의 목소리에 관심을 보이며 밖으로 나왔다. 때마침 젊은 사공이 그물망을 들고 뱃머리 한편으로 걸어갔다.
“이곳 강어귀에서 큰물고기가 잘 잡힙니다요. 다들 편히 기다리시지요. 오늘 저녁,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잡수게 해드리겠습니다요!”
선미에서 배를 멈춰 세우던 늙은 사공이 승객들을 향해 웃으며 소리쳤다. 배 위에 펄럭이던 돛은 고이 접어 내린 지 오래였다.
젊은 사공이 커다란 그물망을 손에 쥔 채, 몸을 한쪽으로 살며시 기울였다. 뒤이어 그가 온몸의 힘을 실어 그물을 앞으로 내던지자, 그물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강물을 뒤덮었다.
철썩!
강물과 그물이 맞닿으며 내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려 퍼졌다. 그물이 물 아래로 가라앉고 한참이 지나자, 사공이 있는 힘껏 그물에 달린 밧줄을 끌어당겼다.
촤르르, 촤르르륵.
그물을 겨우 반 정도 끌어 올렸는데, 그물 안의 물고기가 팔딱이며 사방으로 물을 튀겼다.
“이야, 오늘은 운이 좋네요. 큰놈이 몇 마리나 잡혔어요! 아무나 저 좀 도와주세요!”
젊은 사공이 신이 난 목소리로 승객들을 향해 소리쳤다. 낚시에 관심이 많았던 계연과 우람한 체격의 이대우가 두 팔을 걷고 나섰다.
촤르륵.
파닥파닥, 파바밧!
그물을 올리자, 팔딱거리는 물고기들에 의해 배 앞쪽이 소란스러워졌다.
“하하하, 수확이 좋네요!”
“저희 아버지께서 만드신 생선탕이랑 생선찜이 진짜 끝내줘요! 다들 기대하세요.”
“우와! 좋아요, 좋아요. 생선이다, 생선!”
어른이고 애고 할 것 없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20근은 족히 넘어 보이는 강청어 한 마리와 10근 정도 크기의 초어 한 마리, 그리고 머리가 큰 물고기 두 마리와 정신없이 튀어 오르는 민물 새우 여러 마리가 잡혀 올라왔다. 배에 타고 있던 모두가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대형 여객선을 탔다면, 결코 하지 못했을 경험이었다.
늙은 사공은 선미에 준비된 도기 화로를 이용해 밥도 짓고, 생선도 찌고, 탕도 끓였다. 작은 범선은 다시금 항해를 이어갔다. 춘목강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이 내려앉았다. 강물이 평온해지자, 범선은 닻을 내리고 식사 시간을 가졌다.
그 무렵 강가에는 커다란 누선(*樓船: 층루가 있는 배)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환히 등불을 밝힌 누선에선 웃으며 떠드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따금 연주 소리도 들리는 것을 보니, 배에서 연회를 열어 흥겹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듯했다.
계연이 타고 있는 작은 범선은 거대한 누선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었지만, 뒤에 선실도 있고, 빈틈없이 씌워진 덮개 덕분에 앞쪽 발을 내리지 않아도 바람이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작은 배에서 새어 나오는 등불이 어슴푸레하게 강물을 밝혔다. 낮에만 해도 데면데면하던 사람들은 어느덧 한자리에 모여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
늙은 사공의 요리 솜씨 덕분에 사람들은 신선한 민물고기 요리를 고스란히 맛볼 수 있었다. 거기에 사공이 집에서 직접 빚었다는 미주(米酒)로 반주를 했다. 특히 매건채(*黴乾菜: 갓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뒤 말린 것)를 넣고 만든 생선찜은 특별한 양념장 없이 소금만 살짝 찍어 먹어도 비린내 없이 입안 가득 퍼지는 풍미를 느낄 수 있었다.
풍덩!
이때, 희미한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여전히 식사를 이어갔지만, 계연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람……! 사람이 물에 빠졌어요!”
밖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덮개 아래의 모두가 그 소리를 듣고 갑판으로 걸어 나갔다.
“저 누선에서 누가 물에 빠졌나 봐요.”
“그러게요.”
“아이고, 구할 수 있으려나?”
누선은 그들과 반 리(*약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정박해 있었다. 거리가 멀어, 자세한 상황을 알 수는 없었다. 하물며 계연은 말할 것도 없었다. 가뜩이나 시력이 좋지 않은 계연은 저 멀리 있는 누선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매서운 비명과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가늠할 뿐이었다.
다만 그는 뛰어난 청력 덕분에 아직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마도 어느 집 공자가 술에 취해 물에 빠진 듯했다. 심지어 수영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풍덩!
풍덩!
풍덩……!
먼 누선에서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 옷을 벗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배와 멀찍이 떨어진 강은 먹물처럼 검디검어, 시야를 확보하기가 어려웠다. 배에서 사람들이 등롱을 들고 비춰주었지만, 이 또한 한계가 있었다.
“아이고, 또 몇 명이 뛰어들었네. 아직 못 구했나 봅니다요!”
“그러게요…….”
수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술에 취해 물에 빠지다니, 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운이 나쁘면 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애석하게도 자신은 법력에 통달한 선경의 신선이 아니었다. 자신이 피수술을 발휘해 물에 뛰어드느니, 수영 실력이 뛰어난 사공들에게 맡기는 편이 나았다.
“어!?”
그때, 살며시 눈을 뜬 계연이 먼 강물 아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저기 있다! 공자가 저기 있잖아! 저기 떠 있는데, 빨리 안 구하고 뭣들 하는 거야! 등신 같은 것들, 바로 저기 있잖아!”
누선에서 누군가 격분하며 소리치자, 강물에 뛰어든 사공들이 방향을 틀어, 조금 전 지나온 곳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곳에 정말 흰 옷을 입은 공자가 둥둥 떠 있었다. 허겁지겁 발장구를 치며 다가간 사공들은 재빨리 공자를 누선으로 데리고 갔다.
거대한 누선에서 어렴풋이 들려오는 소리에 작은 범선의 일행도 시름을 놓았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사람을 구했나 봐요!”
“금방 건졌으니, 죽진 않았을 겁니다요.”
“다행이에요, 다행이에요!”
“네, 그럼 다시 식사하러 가시죠.”
“그래요, 그래. 식사나 마저 합시다!”
계연 또한 일행을 따라 선실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잠시 용변을 보고 오겠다는 핑계로 다시금 선실을 빠져나왔다.
선실 안, 늙은 사공이 미주를 따르려 조그만 술병을 들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술병이 텅 비어 있었다.
“이상하네, 벌써 다 마셨나?”
“에? 벌써 없어요? 얼마나 마셨다고!”
“아이고, 걱정하지 마십쇼. 단지에서 더 뜨면 됩니다요!”
* * *
휘휘 불어오는 밤바람 아래, 계연은 홀로 뱃머리에 올랐다. 그의 소매에는 미주 한 덩이가 숨겨져 있었다. 그가 오른손을 앞으로 휘두르자, 술이 얇은 용처럼 변해 꿈틀꿈틀 움직이며, 소리 없이 강의 한복판으로 흘러 들어갔다.
“어부가 담근 맛있는 미주(米酒)야. 즐겁게 마셔!”
말을 마친 계연은 다시 선실로 돌아왔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공이 방금 떠온 미주를 잔에 따랐다. 한편 강물 아래에선, 커다란 강청어 한 마리가 쏟아진 미주 주변을 즐거이 헤엄쳤다.
* * *
“잠시만요. 생선 좀 뒤집을게요…….”
사람들이 접시에 놓인 생선 한 면을 다 발라먹었을 때, 서생 한 명이 재빨리 생선을 뒤집겠다고 말했다. 사공 부자는 그가 선택한 단어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생선을 똑바로 하는 겁니다요, 똑바로! 공자, 방금 공자께서 말씀하신 그 단어는 뱃일하는 사람들에겐 굉장히 불길한 단어입니다요!”
늙은 사공이 불쾌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곧바로 말뜻을 알아차린 서생이 황급히 사과하며 나섰다.
“아이고, 내 입 좀 보게나. 죄송합니다. 사공 어르신, 정말 죄송합니다. 소생, 이런 것에 익숙치 않아서 실례를 범했군요. 벌주 한 잔 마시겠소이다!”
“하하, 나리. 그저 술 욕심 부리는 것 아닙니까! 제가 생선 뼈를 발라내었으니, 이대로 드시면 됩니다요.”
왁자지껄한 선실에선 까르르 웃는 아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간혹 급하게 먹다가 생선 가시가 목에 걸린 사람이 나오면, 늙은 사공이 능숙하게 도와주곤 했다.
사공이 담근 미주는 독하지 않고 풍미가 좋았다. 거기에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진 생선 요리까지 어우러지니, 승객들은 반 시진(*半時辰: 약 1시간)이 넘게 첫 식사를 이어갔다.
“아버지, 저 볼일 좀 보고 올게요!”
젊은 사공은 아랫배가 팽팽한 느낌에 소변을 누고 싶었다.
“갔다 와. 멀리 싸는 거 잊지 말고!”
“예!”
대답을 마친 젊은 사공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선실을 빠져나갔다.
미주를 꽤 많이 마시긴 했지만, 젊은 사공은 뱃일로 단련된 체력을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독한 술도 아니었으니, 걸음을 휘청거릴 정도로 취할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