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아무나 마실 수 없는 술
영안현과 구도구현의 번화함은, 춘혜부의 표향방(飄香坊)에 비하면 새 발의 피도 안 되었다. 흐릿한 시야와 출중한 청력, 후각에 의지한 채 거리를 걷던 계연은 번잡하고도 화려한 분위기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
반나절을 물은 끝에, 계연은 드디어 원자포(園子鋪)라는 이름의 주점을 찾았다. 은은하게 풍기는 엷은 술 내음이 마치 이 주점은 명불허전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 크지 않은 주점은 단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안에는 탁자 몇 개가 전부였고, 술을 사거나 마시는 사람이 그리 많아 보이진 않았다. 구석 자리에서 안주를 곁들여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게다가 음식이 연잎에 싸여있는 것을 보니, 그들은 주점에서 만든 요리가 아니라, 자신들이 직접 가져온 안주를 먹고 있는 듯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점소이처럼 보이는 사람이 꽤 많았다. 다들 텅 빈 탁자에서 쉬고 있었지만 말이다. 주점의 주인은 계산대 뒤에서 펄럭펄럭 장부를 훑으며 열심히 주판을 두드렸다.
“주인장. 이곳의 천일춘(仟日春)이 춘혜부에서 제일가는 명주라던데, 한 병이 얼마인가요?”
안으로 들어선 계연이 주인장에게 묻자, 후자가 주판을 두드리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저희 주점에선 딱 두 종류의 술만 팝니다. 천일춘은 한 근에 백은 두 냥이고, 단지째로 사시면 조금 할인해드립니다. 강화주(江花酒)는 다섯 근짜리 단지 하나에 100문입니다.”
“두 냥이라고요?”
화들짝 놀란 계연이 물었다. 여간 비싼 게 아니었다. 백은 두 냥이면 밥이 몇 끼인가. 보아하니 지난 생에도 이번 생에도, 바가지를 씌워 파는 술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듯했다!
“손님, 강화주로 하시겠습니까?”
주인장은 계속해서 장부 정리를 이어갔다. 아무 기복도 없는 목소리에 계연은 민망할 지경이었다.
“음, 주인장. 천일춘은 무게 단위로 파는 것 같은데, 한 잔만 구입해 맛볼 수 있을까요?”
“한 잔이요?”
보기 드문 요청이었다. 원자포에서 저리 뻔뻔하게 구는 사람은 계연이 처음이었다. 주인장이 고개를 들고 계연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소매통이 넓은 회색 장포를 입고, 머리에는 붉은 나무 비녀를 꽂은 그는 보따리와 지우산을 들고 있었다. 소박하고 단정한 차림새에, 산만하지만 이상하게 자연스러운 머리 모양을 한 것이, 부자로도 난동꾼으로도 보이지 않았다. 계연이 한쪽 눈을 반쯤 뜨자, 주인장이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춘혜부는 처음이십니까?”
“처음이에요. 천일춘의 명성을 듣고, 맛을 보러 왔습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주인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계연을 향해 손짓했다. 그가 뒤편에 놓인 선반에서 조그만 단지 하나를 꺼내고 마개를 열었다.
주인장은 조그만 잔을 계산대에 올려둔 뒤, 정교하게 만들어진 작자(*杓子: 술을 풀 때에 쓰는 기구)로 술을 펐다. 호박색의 액체가 조르르 잔을 채웠다. 술을 따르고 나니, 술이 얇은 실처럼 작자와 술잔 사이에 늘어졌다. 주인장이 작자를 툭툭 털고 나서야, 주변이 깔끔해졌다.
“손님, 드시지요. 저희의 천일춘을 맛보시고, 술값 대신 맛을 평가해 주십쇼!”
계연은 향기를 맡으며 계산대로 다가갔다. 그는 군말 없이, 잔을 입가에 대고 홀짝 맛을 보았다. 희한하게도 술이 지닌 첫 모금 특유의 씁쓸한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진한 향에 굉장히 부드러운 달콤함이 더해진 맛이었다. 게다가 이전에 마셨던 화조주보다 도수가 높았다.
그는 술잔에 남은 술을 모두 들이켰다. 그제야 희미한 쓴맛과 술 내음이 코끝을 찌를 듯 전해졌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달콤쌉싸름한 향기가 입 안을 가득 채웠다. 술을 삼킨 뒤에도 오랫동안 달큼한 향기가 느껴졌다.
지난 생의 계연은 술이라면 다 맛이 없다고 생각하여, 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생에 이토록 놀라운 맛을 알게 될 줄이야.
“훌륭하군요. 역시 천일춘이란 이름에 걸맞은 맛이에요!”
계연은 노골적인 칭찬 대신, 품에서 은자 한 냥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한 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군요. 끼니를 거르는 한이 있더라도, 한 근은 사야겠어요.”
주인장은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환히 웃었다.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칭찬이지 않은가.
“잠시만 기다리십쇼!”
은자의 무게를 잰 주인장이 선반에서 조그만 술병을 꺼내 계연에게 건네었다.
“천일춘 한 근입니다.”
술을 건네받은 계연이 주점 안을 둘러 보았다. 이 술은 이름난 대형 주루나 객잔에서 열리는 연회에 공급되고, 사방팔방으로 수출되고 있을 것이다. 원자포는 그저 일종의 간판인 셈이었다.
“아이고, 주인장, 술이 너무 비싸서 신선이 와도 못 사 마시겠군요! 이만 가볼게요.”
계연이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격려와 동경의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계연은 자신을 신선에 비유하는 말을 남긴 채, 술병을 들고 문을 나섰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농담처럼 들릴 뿐이었다.
주인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맛을 보자마자 이를 악물고 술을 사는 계연의 행동에 그는 날아갈 듯 기뻤다.
잔을 정리하려 오른손을 뻗던 그가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천일춘이 널리 명성을 떨치는 까닭은 맛이 좋고, 농도가 짙기 때문이었다. 매우 매끄러운 도자기 잔을 사용하더라도, 잔에 술이 끈끈하게 묻어나기 마련이었다. 혀로 핥아도 몇 번을 핥아야 겨우 끈적임이 사라지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놓인 잔은 술이 담겨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말끔했다. 손가락으로 잔 안 쪽을 스윽 문지른 주인장은 당황스러움을 더 금치 못했다.
‘말랐잖아? 설마 고명한 강호의 협객인가?’
조금 전에 있었던 손님의 느릿한 동작과 그가 떠나기 전 남긴 말을 떠올리니, 주인장의 마음이 떨렸다.
번쩍 고개를 든 그가 큰 소리로 ‘손님!’ 하고 외쳤지만, 어디에서도 그는 계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 * *
‘에잇, 사치 부렸네!’
계연은 귀중한 천일춘을 들고 춘혜부를 거닐었다. 춘혜부는 20여만 인구를 자랑하는 곳으로, 자그마치 42개의 방(坊)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모든 방의 규모는 영안현의 12방보다 훨씬 넓었으며, 사통팔달(*四通八達: 도로나 교통망, 통신망 따위가 이리저리 사방으로 통함)한 도로에는 마차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방향 감각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토록 복잡한 곳에 들어서니, 어디로 가야 할지 막연한 감정이 밀려왔다.
결국, 그의 배가 선택을 내렸다. 그는 저렴한 곳에서 허기를 때웠다.
다행히도 춘혜부 전역이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계연은 몇 푼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노점을 찾을 수 있었다.
* * *
같은 시각, 춘혜부 남쪽의 계월방(桂月坊).
한 객잔의 고급 객실에서 위무외가 인상을 찌푸린 채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좋은 객잔은 투숙객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서, 간판이 걸린 커다란 본채 외에도 위무외가 묵고 있는 곳과 같은 독채로 된 객실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가격은 일반 객실에 비해 훨씬 비쌌다.
똑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위무외가 고개를 들고 활짝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들어오너라!”
그러자 중년의 집사처럼 생긴 사람이 방으로 들어왔다.
“가주, 정원부와 두명부에서 사들인 취금소(醉今宵)와 두강주(杜康酒)가 도착했습니다. 진주(晋州)의 홍분두(紅粉頭)도 곧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경기부(京畿府)의 금옥주(金玉酒)는 주마를 놓아도 제때 도착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음, 나머지 술로도 충분하니, 상관없어. 백부와 셋째 숙부께서 술을 드셔 보셨나? 어느 술이 가장 좋다고 하시더냐?”
잠시 생각하던 집사가 대답했다.
“소인이 듣기로는, 수많은 술 중에서 춘혜부 본토의 천일춘이 제일 낫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이만 가보거라.”
“예, 소인 물러나겠습니다!”
집사가 소리 없이 방을 빠져나가자, 위무외가 종이에 적혀있던 취금소와 두강주의 이름을 붓으로 지웠다.
오월 열닷새를 위해, 위씨 가문은 서른 종이 넘는 귀한 술을 준비했다. 그중에는 천일춘과 이름을 나란히 하는 명주도 여럿 있었다. 덕성부에서 가져온 술도, 춘혜부에서 직접 사들인 술도 있었으며, 주마를 놓아 먼 곳에서 가져온 술도 있었다.
“쳇, 정천추(鄭千秋)도 기껏 해 봤자 매년 술 서너 가지를 준비했다는데, 그게 뭐든 우리 위씨 가문한테는 상대도 안 될 거다. 그 거북이가 안 나타나고 배기나 보자고!”
중얼거리던 그는 품에서 남옥을 꺼내, 퉁퉁한 손으로 조물거렸다. 창문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에 남옥을 비춰 보았지만, 어째서인지 이전에 나타났던 글자를 찾을 수 없었다.
‘신선들이 산다는 산에서도 은자를 쓸 수 있나? 만일 은자를 쓰지 못하면, 먹고 입는 건 어떻게 해결하고, 집에 있는 첩실들은 또 어떡한담? 매년 명절마다 집에 갈 수는 있나? 차라리 다른 사람한테 기회를 양보하는 게 나을까? 근데 난 아들도 없잖아…….”
위무외의 기나긴 고민이 시작되었다.
* * *
오월 열닷새 당일.
날이 서서히 저물었다.
일찍이 남쪽 성 밖에서 기다리던 계연은 드디어 위무외의 목소리를 들었다.
위씨 가문의 일행은 이날 오후부터 작은 수레에 각지에서 그러모은 술을 담고, 일고여덟 무리로 나뉘어 남쪽 성문을 빠져나왔다. 저녁이 되자, 위무외는 집사처럼 보이는 사람과 함께 성문을 나섰다. 그는 천일춘 한 단지를 손에 쥐고서 맛을 보기도 했다.
“이야……. 춘혜부는 역시 물이 좋은 곳이구나. 이토록 고아한 술을 빚다니!”
위무외의 평을 듣고, 옆에 앉아있던 집사 또한 웃으며 말했다.
“듣자니, 처음에는 원자포라는 조그만 주점에서 만들어 팔던 술이랍니다. 맛은 훌륭했지만, 명성을 떨치진 못했다더군요. 당시 지부(*知府: 부의 장관) 나리께서 무심코 맛을 보고 감탄하시더니, 곧바로 이 술을 경기부에 바쳤다고 합니다. 이를 맛보신 황제 폐하께서 매우 흡족해하셨고, 특별히 천일춘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셨답니다.”
“오호라,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성 바깥 나무 위에 앉아있던 계연 또한 남몰래 고개를 끄덕였다. 위무외의 단지에는 반쯤 찬 술이 찰랑찰랑 소리를 내었는데, 그의 단지에는 술이 고작 두어 모금밖에 남지 않았다. 정말이지,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지고 하늘색이 점점 어두워지자, 춘혜부 성 사방의 대문 또한 굳게 닫히기 시작했다.
그 무렵, 춘혜부 성 밖의 인파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강물에 둥둥 떠 있는 누선과 성 동쪽 부두에만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 있었다.
한편, 성 남쪽에는 일찍이 성을 벗어나 몸을 숨긴 위씨 가문 사람들만이 있었다.
위무외는 집사와 함께 강변을 따라 서남쪽으로 걸어 올라갔다. 가는 길목에는 수많은 버드나무가 바람결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대략 5리(*약 2km) 정도 떨어진 곳에 유난히 커다란 버드나무 몇 그루가 강 쪽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하늘 높이 둥근 달이 뜨고, 강물에는 시원한 밤바람이 불어 왔다. 저 멀리 보이는 누선 한 척을 제외하면, 주변에는 다른 사람의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파바박!
집사가 두 손을 펼치더니, 바람을 가르며 장풍을 선보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숲속에서 조그만 수레를 끈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대략 스무 명 정도의 사람들이 총 여덟 개의 수레를 끌고 있었다. 어떤 수레에는 꽉 찬 5근짜리 술 단지가 한가득 실려 있었고, 또 어떤 수레에는 어른 키의 허리 정도까지 오는 커다란 술 단지 두 개가 놓여 있었다.
“가주!”
“가주!”
“가주를 뵙습니다!”
조그만 인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위무외는 다른 사람의 안부에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그중 두 명의 웃어른은 홀대할 수가 없었다.
“백부, 셋째 숙부. 어렸을 때부터 저를 보셔놓고 가주라니요!”
“하하하, 규율을 어길 수는 없지 않소이까.”
“그렇소이다. 가주, 모든 준비를 마쳤는데, 단지를 강으로 옮길까요?”
위무외가 광활한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러지요. 우선 강에 천일춘과 두강을 부으세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