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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67화 (67/892)

67화. 얼른 도망쳐

계연은 참배객들을 따라 토끼상이 들고 있는 등잔을 이용해 향에 불을 붙였다. 그럴싸하게 신상 앞에 서니, 주변 참배객들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정상적인 기도, 황당한 기도, 그리고 재미난 기도와 듣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기도까지 쉼 없이 그의 귓바퀴에 맴돌았다.

배를 타고 강을 순조롭게 건너게 해달라는 기도도, 강가의 비바람을 다스려 달라는 기도도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그러나 금과 옥을 얻게 해달라거나, 긴 수명과 부귀영화, 과거 급제나 혼인 따위를 빌고 싶다면 차라리 성황신을 찾아가는 편이 나을 터였다.

산과 물을 다스리는 신들은 성황신 같은 토지신과 달라서 특별히 칙봉해야 할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 수행 중에 있었다. 이들은 긴 세월 동안 수행을 통해 산이나 강물을 잇거나, 전설 속에 나오는 ‘칙봉부’로 정통 산수신(山水神)의 신위를 획득했다.

향불을 올리는 백성을 살피는 일은 이들에게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강물을 다스리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부지런한 셈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산이나 강의 일부를 점거하고 함부로 향불의 힘을 빌려 정통신이 되려는 존재들은 어쩌면 백성들의 기도에 영향을 미칠지도 몰랐다.

춘목강의 신은 비늘이 없는 늙고 하얀 교룡이었다. 외도전에서는 춘목강의 신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다.

《두 번이나 용이 되려 하였으나, 모두 실패하여 비늘을 전부 잃었다.》

그렇지만 하얀 교룡은 보기 드문 정통한 강의 신으로, 춘목강을 다스리는 진정한 존재였다.

계연은 아무것도 빌지 않았다. 그저 예의를 갖추며 두어 번 절을 올린 그는 향을 향정에 푹 꽂았다.

향을 꽂자 계연의 눈앞에 누런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더니 휙 사라졌다. 간혹 신당에 흘러다니는 기운에 비해 훨씬 장관이었다.

곧이어 계연은 갑작스러운 현기증을 느꼈다.

* * *

춘목강은 춘혜부 수도 남쪽 부근에서 100리(*약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 길에 길고 굽이진 강줄기 하나와 언덕 두 개가 있었다. 강의 폭은 최소 0.6리(*약 300m)이상이었는데, 춘목강에서 수심이 가장 깊은 구간이라 물살이 다소 완만했다.

강바닥에 미궁처럼 펼쳐진 수초와 바위 아래에는 신비로운 기운이 가득했다. 거대한 기포가 강바닥을 덮었고, 기포 위에는 온갖 모래와 수초가 뒤덮여 있었다. 기포 속에는 희한하게도 음(陰)과 양(陽)이 존재했다.

춘혜부 밖의 신당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의 저택이 바로 이곳에 있었다.

저택일부는 자갈을 마구잡이로 쌓거나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것이었지만, 처음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웅장한 기세를 드러냈다. 독특하게도 평범한 속세의 건축물처럼 정자와 누각, 정전(正殿), 그리고 방이 있었다.

뒤뜰 정중앙의 광활한 모래밭에는 비늘이 없는 하얀 교룡 하나가 만족스러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비늘이 없는 것만 제외하면, 겉모습은 교룡보단 진룡에 가까웠다.

이따금 하얀 수염이 조그만 기포에 의해 나풀거리지 않았다면, 평범한 사람들은 이 저택이 물에 잠겨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광경으로 보아 이 저택에 가득 찬 물이 얼마나 맑고 투명한지 알 수 있었다.

저택 입구에는 희미한 형광빛의 현판이 높이 걸려 있었다. 그 위에는 또박또박한 붓글씨로 ‘춘목부(春沐府)’ 석 자가 적혀 있었다.

이때, 늙은 거북 한 마리가 등에 술 단지를 지고 이곳을 찾아왔다. 등에 놓인 십수 개의 단지는 모두 물의 술법을 이용해 밀봉되어 있어, 술이 강물에 흘러갈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거북이 네 다리로 강바닥을 짚자마자, 거센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추거라! 이곳은 강신의 저택이다. 함부로 난입해선 안 된다!”

양옆에서 검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나타났다. 시퍼런 몸에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사람 형상의 악귀들이었다. 그것들의 긴 머리칼은 물살을 따라 머리 위를 둥둥 떠다녔다.

“야차(夜叉) 대인, 접니다! 저, 거북입니다!”

거북이 재빨리 등에 지고 있던 술을 내려놓으며, 물살을 빌려 단지를 야차의 앞까지 들이밀었다.

“대정국 각지의 훌륭한 술입니다. 천일춘은 물론, 취금소와 두강주도 있습니다. 다 귀한 술입니다. 소인, 특별히 강의 신께 술을 바치러 찾아왔습니다. 소인이 나리를 한 번만 뵐 수 있도록, 대인께서 말씀 좀 전해주십쇼!”

거북이 몸을 일으키더니, 파도와 수초 사이로 앞발을 감싸며 인간처럼 읍을 해 보였다.

“거북, 아직도 단념하지 못했나 보군. 신께서는 잠시 눈을 붙이고 계셔서, 우리가 함부로 방해할 수가 없네!”

“야차 대인, 강의 신께서 매년 여름이 되면 강을 둘러보시는 것을 대인도 아시지 않습니까. 하지(夏至)가 임박했으니, 신께서도 곧 깨어나실 겁니다. 대인께서 한 번만 봐주십시오. 강의 신께서도 맛있는 술을 드시면 필히 기뻐하실 겁니다!”

거북은 쉼 없이 공수하며 달변을 늘어놓았다. 드디어 두 야차의 마음이 움직였다.

“알겠네. 잠시만 기다리게. 내 가서 보고드리고 오지!”

말을 마친 야차 하나가 몸을 숨기더니, 물살을 따라 천천히 춘목부로 들어섰다.

잠시 후 야차가 모래밭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하얀 교룡이 중얼거리며 입을 열었다.

“또 그 거북인가?”

야차가 황급히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모았다.

“예, 그 늙은 거북입니다. 올해도 역시 훌륭한 술을 가득 짊어지고 왔습니다. 대정국 각지에서 공수해 온 것이랍니다.”

몸길이가 200척(*약 66m)이 넘는 하얀 교룡이 살며시 실눈을 뜨자, 호박색의 영롱한 빛이 스며나왔다.

“그간 술을 얻어 마셨으니, 올해는 얼굴 한번 봐야겠군. 가서 들여보내거라!”

“예!”

대답을 마친 야차가 빠르게 입구로 돌아갔다.

“강의 신께서 들어오라시네. 따라오게!”

거북은 그 말에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네었다. 그는 맛 좋은 술을 한가득 짊어진 채, 야차를 따라 교룡의 저택으로 들어섰다.

이 저택에는 정자와 누각이 있었지만, 무척 썰렁했다. 주변에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야차과 늙은 거북뿐, 다른 물고기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신께서 지니신 용의 기운이 왕성하여, 평범한 물고기들은 이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 다른 저택에서 서식하고 있네. 이곳이 썰렁한 까닭도 그 때문이지.”

야차는 거북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렇게 말했다.

뒤뜰 모래밭과 가까워질수록, 거북 또한 더욱더 거센 압박감을 느꼈다. 둘이 대문을 지나자, 둘의 눈앞에 병풍 하나가 나타났다. 거북이 병풍 양옆을 살펴보니, 공포스러운 용의 자태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신이시여, 검은 등 거북입니다. 속하, 물러나겠습니다!”

야차가 인사를 올리고 물러나자, 거북은 흠칫 놀라며 병풍을 향해 예를 갖추었다.

“춘목강의 검은 등 거북 오숭(烏崇), 강의 신을 뵙습니다!”

“음……. 가까이 오너라!”

하얀 교룡의 느릿한 말투에 거북이 황급히 술 단지를 끌고 병풍을 빙 돌아갔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새하얀 교룡의 자태에 그의 심장이 움찔했다.

“오숭이란 이름은 자네가 직접 지은 건가?”

하얀 교룡이 살며시 눈을 뜨자 날카로운 눈빛이 드러났다. 그의 날카로운 시야에 거북이 들어왔다.

“강의 신이시여, 제가 직접 지은 이름입니다.”

머리를 끄덕이던 하얀 교룡은 입꼬리를 슬쩍 끌어 올리며 얼음장처럼 서늘한 이빨을 드러냈다. 거북은 금방이라도 자신을 잡아먹을 듯한 교룡의 표정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교룡이라면 정말로 거북을 잡아먹을지도 모른다.

“자네는 오랜 수행에도 정진하지 못하였으나, 점술에 정통하였으니, 근본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비늘이 다 떨어진 나는 자네보다 겨우 세 푼 나을 뿐이야.”

거북은 바닥에 철썩 엎드린 채, 앞발로 땅을 꾹 누르고는 연신 머리를 움직였다. 마치 절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강의 신이시여, 신께서는 저 같은 요괴의 고충을 아시지 않습니까. 저는 제 삶이 헛되이 흘러가는 것을 그저 보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당신께 가르침을 구하는 것이 저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입니다.”

거북이 계속해서 머리를 조아리는데도 하얀 교룡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자네가 몇 년간 속세의 인간들이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번번이 보고되었다. 그런데, 그들 중 자네에게 보답한 자가 있느냐?”

하얀 교룡의 질문에 거북은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너를 도와 신당에 거북상을 세워줄 수는 있다. 향불과 민심의 힘을 빌리면, 충분히 둔갑할 수 있을 것이야. 그러나 이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자네도 알고 있겠지…….”

하얀 교룡이 머리를 들어 미동도 없이 엎드려 있는 거북을 바라보았다.

천일춘 한 단지가 둥둥 떠오르더니, 굳게 닫혀 있던 마개가 펑 하고 열렸다. 맑은 술이 강물을 타고 흘러나와, 용의 입으로 들어갔다.

“술맛은 좋군.”

바로 그때, 누런 기운이 마치 안개처럼 저택 상공에 나타났다. 하얀 교룡이 무언가 낌새를 알아차린 듯 고개를 들었다. 그 기운이 머리에 스며들자, 교룡은 갑작스러운 현기증을 호소했다.

“윽……!”

모래밭 주변 물살이 순식간에 팽창했다. 고운 모래는 마치 폭탄을 맞은 듯, 투명한 물살을 가로지른 채 사방으로 흩어져 날아갔다.

거북은 네 다리로 있는 힘껏 땅을 짚었지만, 여전히 물살의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미끄러졌다.

눈앞의 하얀 교룡은 술에 취한 것처럼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술이 저렇게 독했나?’

거북은 이토록 황당무계한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부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에 휘몰아친 파도가 잠잠해졌다. 하얀 교룡은 마치 약주를 거나하게 마신 속세의 인간처럼 여전히 어지러운 듯 머리를 툴툴 털었다.

그 무렵, 정원 구석까지 미끄러진 거북은 몸을 바들바들 떨며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전방에서 퍼져 나오는 용의 기운이 거북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압박감을 선사했다.

“신이시여, 왜 그러십니까?”

야차 하나가 경악하며 저택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나도 모르겠다. 강하게 맞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해.”

교룡이 고개를 젓자, 그의 눈앞이 서서히 또렷해졌다. 곧이어 이상한 감각이 교룡에게 밀려왔다. 하얀 교룡이 다시금 거북과 야차를 바라보았다.

“잠시 나갔다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거라!”

그 말을 끝으로 하얀 교룡은 파도를 거스르며 순식간에 춘목부를 벗어났다. 그는 하얀 그림자로 변해 북녘으로 향했다.

* * *

약 일각(*一刻: 약 15분) 뒤, 춘목부 부근의 강이 ‘쾅’ 하는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희미한 용의 형체가 찬란한 빛으로 변해 저 멀리 날아올랐다.

때마침 인근 누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갑작스레 폭발한 파도를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쉰은 족히 넘어 보이는 부유한 행색의 노인이 신사 본당에 들어섰다. 주변 참배객들을 둘러보던 그는 신상 앞에 놓인 커다란 향로 속을 자세히 살폈다. 그 순간, 그의 시선이 다 죽어 버린 향 하나에 꽂혔다.

고작 한 마디를 태우고, 다른 향불에 밀려 향로 구석에 쓰러져 있던 향이었다.

“시주(施主)님, 향로를 가로막고 계시면 아니 됩니다. 시주님, 지금 무엇 하시는 겁니까. 강의 신께서 벌을 내리실 겁니다!”

신당을 관리하는 이가 좋은 말로 말리려던 그때, 부유한 행색의 노인이 향로에 손을 뻗었다.

노인은 못 들은 체하며, 손가락으로 향을 툭 건드렸다. 향은 시커먼 가루가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사라졌다. 재도 남기지 않은 채 말이다.

“시주님, 무례하게 구시면 아니 됩니다. 얼른 손 빼십시오! 안 그러면…….”

노인에게 다가간 도관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노인이 그의 팔을 확 붙잡았다.

“도관, 방금 이 향을 올린 특별한 자가 누구요? 어찌 생겼고, 언제 떠났고, 또 어디로 갔는지 아시오?”

다소 흥분한 노인은 주름진 눈으로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한 기세를 드러냈다. 겁에 질린 도관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고, 주변에 있던 참배객들도 숨죽여 상황을 지켜보았다.

한참 뒤에야 노인이 실망한 기색을 드러내며 도관의 팔을 놓아 주었다.

“당신이 그걸 알 리 없지…….”

* * *

한편 신당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계연은 화들짝 놀라며 신당 쪽을 바라보았다. 교룡은 자신의 기운을 감추지 못한 채 신당으로 달려왔다. 마치 ‘내가 왔다’며 선포하는 것처럼 말이다.

“후. 그래도 다행히 한발 빨랐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마지막으로 신당을 바라본 계연은 성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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