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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73화 (73/892)

73화. 이토록 신비로운 일

첫 번째 마차는 드디어 조용해졌다. 중간 마차에서도 한 계집종이 첫 번째 마차를 모는 마부를 불렀다. 그녀의 말투와 태도는 좀 전의 사내종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어르신, 청수현에 안개가 자주 끼나 봐요?”

쉰이 훌쩍 넘은 마부가 고개를 돌렸다. 대부호의 계집종은 역시 평범한 농가의 여인네와 다르게 눈이 초롱초롱했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제 손녀보단 못하지만 말이다. 그가 문발 너머를 보니, 마차 안의 아씨도 바깥 상황에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제가 청수현 사람은 아니지만, 이 길로 자주 다녀서 잘 압니다. 이곳에 안개가 자주 끼긴 해도, 이번처럼 열흘 넘게 이어진 적은 처음입니다. 낮에도 안개가 자욱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마부가 무언가 떠오른 듯 말을 덧붙였다.

“청수현 사람한테 들었는데, 처음에 안개가 며칠 동안 걷히지 않는 걸 보고 한 노인은 악령이 몰린 것 같다고 하더랍니다. 한데 상인들이 모두 별 탈 없이 이 길을 오갔다지요. 또 안개가 가장 짙은 곳을 통과하면, 정신이 맑아지고 숨통이 트인다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마부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래서요?”

계집종이 다소 큰 소리로 물었다. 마차 세 대가 줄지어 나아갔기 때문에, 사실 앞뒤 마차에서도 그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하하하! 상황이 이러하니 또 어떤 어르신께서는 고인이나 선인이 수련하는 중이라 그런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안개를 통과하는 자에겐 복이 따를 것이라며 말이죠!”

“이봐요, 어르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선인이 동굴이나 산봉우리를 두고, 왜 이런 구석진 시골에서 수련을 하겠어요!”

앞 마차에 타고 있던 사내종 위동이 마부의 말에 반기를 들었다.

그의 말에 기분이 상한 마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소인은 속세를 노니는 선인이 존재한다고 들었습니다. 속세의 인간과 비슷한 선인도 있고요. 그리고 저도 들은 얘기일 뿐, 제가 선인 때문이라고 말한 적도 없지 않습니까?”

위동의 말에 맥이 끊기니, 흥미를 잃은 마부는 그저 묵묵히 마차를 끌었다.

대략 일각(*一刻: 약 15분) 정도가 지나자, 마부의 말대로 안개가 더 짙어졌다. 맨 앞에서 마차를 끌다 문발을 쳐다본 마부는 마차에 타고 있던 사내종과 눈이 마주쳤다. 마부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어차피 자신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말이다.

마차 세 대를 끄는 마부들과 마차 안의 사람들은 모두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온몸의 혈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조금 전 말다툼으로 인해 불쾌해진 기분도 눈 깜짝할 사이에 누그러졌고, 긴 여행으로 인한 피로 또한 눈 녹듯 사라졌다.

“이리 신비로운 일이 있다니…….”

마차에 타고 있던 공자를 비롯한 모두가 매우 놀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 * *

그 무렵, 저편에서 들려오는 마차와 사람들의 대화 소리에 계연이 정신을 차렸다.

계연은 수련이 충분한 것 같아, 잠시 일단락을 짓고 쉬기로 했다. 수련 상태에서는 체력 소모가 적긴 했지만, 배가 고픈 건 어쩔 수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왠지 익숙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저 위동이란 사내종은 그날 누선에서 공자가 술에 취해 강에 빠졌을 때, 사공에게 욕을 했던 사람이었다.

계연은 그날 보았던 공자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었다. 사실 그를 꼭 만나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왠지 그 부잣집 공자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었다. 자신이 아니라, 강청어를 위해서 말이다.

그날 강청어는 이 공자를 구했다. 그전에도 또 누구를 구한 적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토록 선량한 요괴에겐 어떻게든 보답을 해주어야 했다. 게다가 이 공자는 제대로 된 보답을 해줄 형편이 되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물방울을 털어낸 뒤, 가볍게 나무에서 뛰어 내렸다.

아직 대낮이었지만, 이곳은 안개가 가장 짙은 곳이라 가시거리가 2장(*약 6m)도 채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짜고짜 길을 가로막는 건 부적절한 것 같아서, 계연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걷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 세 대가 느릿한 속도로 계연을 따라잡았다. 그들이 탄 마차는 홀로 걸어가는 계연을 곧 따라잡아 추월할 지경이었다.

마부와 줄곧 밖을 내다보던 사내종 위동은 평범한 행색으로 혼자 걸어가는 행인을 별생각 없이 쳐다보았다. 경험이 풍부한 마부는 앞서가는 행인의 옷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차 안에서 사람들의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첫 번째 마차가 계연의 옆을 지나칠 때, 그는 무심코 고개를 돌리는 척하며 마차를 보았다.

곧 낮고 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차에 타고 계신 공자께선 춘목강에 빠졌던 일을 아직도 기억하십니까?”

계연의 목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모든 사람의 귀에 정확히 내리꽂혔다. 마부들은 그를 수상쩍게 여기며 눈길을 주지 않았으나,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때, 사내종 위동이 계연을 향해 물었다.

“당신도 누선에 타고 있던 승객인가요?”

위동은 계연이 자신을 알아보고 마차 속 공자의 정체를 추측했으리라고 생각했다. 계연이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것은 생각지도 못한 듯했다.

독특한 관점에 계연이 당황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아, 그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질문을 부인했다.

“하하! 아니요, 누선에 탄 적 없습니다. 그저 우연히 마주친 것뿐이지요.”

그때, 마차에 타고 있던 공자가 책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내밀어 바깥의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지는 않았다. 무예를 할 줄 알면서 술에 취해 물에 빠지고, 다른 사람에 의해 구조된 것은 조금 창피한 일이었다. 물론 수영을 할 줄 몰랐으니, 무예와는 별개이지만 말이다.

공자는 아무런 말이 없는데, 사내종이 더 분노했다. 위동은 계연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말했다.

“뭐라고요? 저희 공자께서 물에 빠지신 게 재미있나 보죠? 당신 그때 누선 한쪽 구석에서 몰래 웃고 있었죠? 그런 누추한 행색을 하고 어떻게 누선에 올랐는지조차 이해가 가지 않네요!”

사실 계연의 행색이 고급스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추한 건 아니었다. 사내종은 화가 난 나머지, 일부러 계연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한편,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공자는 사내종의 말에 기분이 껄끄러워졌다.

“됐다, 위동아. 그만하고, 마부에게 빨리 가자고 해!”

마차 안에서 공자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는 최대한 교양 있게 자신의 불만을 표출한 것이었다.

마부 또한 걸음을 재촉하며, 말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앞쪽에서 말소리가 끊이질 않자, 중간 마차에 타고 있던 아씨와 계집종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었다.

“춘방(春芳)아, 너도 방금 그 소리 들었지?”

“네, 저도 들었습니다. 행인한테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 위동이 또 시비를 거는 것 같습니다.”

“그자가 누군지 아느냐?”

“저도 모릅니다만, 그날 공자께서 물에 빠지신 것을 보았다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마차에는 늙은 시녀 하나와 사내종 둘이 타고 있었다. 그들 또한 슬그머니 문발을 젖히고 바깥 상황을 살폈다. 다만 안개가 자욱한 탓에, 조금만 거리가 있어도 보이질 않았다. 그들의 안색도 그리 좋진 않았다.

마차가 속도를 높이자, 계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대뜸 이 이야기를 언급하면 그가 화낼 것이라고 예상하긴 했지만, 설명조차 듣지 않고 욕을 하며 가버리니 당황스러웠다.

그는 눈을 크게 뜨고 그 사내종을 쳐다보았다. 곧이어 세 번째 마차까지 훑어보던 계연이 다시금 맑은 목소리로 외쳤다.

“잠시 멈추시죠!”

목소리를 높이고 끝 음에 떨림을 더했다. 또 한 번 무공과 법력을 결합해 발휘했다. 그리 크게 소리를 내진 않았는데, 듣는 이들은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곧이어 계연이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마차를 끌던 말들이 차례대로 걸음을 멈춘 것이었다. 녀석이 갑작스레 멈춰 서자, 마부들은 힘없이 비틀거렸다. 그들이 아무리 고삐를 당겨도, 말은 꼼짝하지 않았다.

마차가 갑자기 멈춰 서니, 마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휘청거렸다. 고개를 내밀고 있던 위동은 더욱이 ‘아야’ 소리를 내며 허둥댔고, 하마터면 밖으로 떨어질 뻔했다.

화들짝 놀란 공자가 재빨리 옆에 세워 두었던 칼집을 손에 쥐어 들었다. 곧이어 그는 위풍당당한 걸음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뒤편에 타고 있던 아씨와 계집종도 마차에서 내리려고 하자, 그가 재빨리 저지하며 나섰다.

“내리지 말아라. 춘방아, 아씨를 잘 보고 있거라!”

그 말을 끝으로, 하얀 옷을 입고 있는 공자는 말을 끌던 마부를 쳐다보았다. 곧이어 그는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계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째서인지 낯익은 얼굴이었다.

“실례지만, 누구신지요? 무슨 일로 저를 찾으시는 겁니까?”

좀 전의 목소리도, 마차가 갑자기 멈춰 선 것도 이상했다. 게다가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상대가 곧 안개와 하나가 될 것 같은 느낌이 전해졌다.

말들이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나니, 하얀 옷의 공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요괴나 귀신을 마주친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계연은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뒤로 돌아 그 공자를 바라보았다. 그날처럼 새하얀 옷을 입고 있던 공자는, 그날 아침에 보았던 것과 비슷한 기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공자께선 훌륭한 무림인이시군요!”

이윽고 계연은 마부에게 공수하며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야기만 마치고 금방 가겠습니다. 폐를 끼쳐 죄송합니다.”

말을 마친 그는 다시금 시선과 말머리를 돌렸다.

“그날 술에 취해 강에 빠졌을 때, 물속의 광경이 어땠는지 기억하십니까?”

“물속?”

공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가 어두운 밤이었으니, 아마 공자는 제대로 본 게 없었을 터였다. 계연은 이 질문을 뒤로하고, 편안한 중저음의 목소리로 감탄하며 말했다.

“그날 밤, 공자께선 흥취가 무르익은 누선에서 떨어져 강에 빠지셨죠. 수영하지 못해 익사할 운명이셨으나, 강청어 한 마리가 공자를 강물 위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제야 사공들이 모여 공자를 구한 것이지요. 공자께서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계연이 수련을 마친 덕분에 안개는 한층 옅어졌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나 믿을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그로 인해 놀란 사람들은 안개의 변화를 알아차릴 정신이 없었다.

‘강청어가 사람을 구했다고?’

공자의 얼굴에는 경악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날 밤, 그는 꿈속에서 혼탁함 속에 스쳐 지나가는 하얀 빛을 보았다.

‘이튿날 아침까지도 그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는데, 설마 그게 진짜 강청어였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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