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얻으면 행운, 얻지 못하면 운명
계연이 성 관문에 다다르니, 도시의 시끄러운 소리가 이따금 계연의 귓바퀴를 타고 전해졌다. 요즘 삼매진화 때문인지, 아니면 진화가 제련된 이후 법력이 더 강해졌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자신의 시력이 조금 좋아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는 시력을 더 끌어올릴 방법이 없는지 찾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시야는 여전히 흐리멍덩했다.
“취병(*炊餠: 밀가루 반죽을 여러 겹으로 말아 쪄낸 중국식 찐빵), 취병 팝니다! 갓 쪄낸 취병 팔아요! 하나에 1문!”
성에 들어서자마자, 멜대를 멘 누군가 성문 쪽으로 걸어왔다. 우렁찬 목소리에 계연은 행상인을 바라보았고, 결코 작지 않은 행상인의 키가 그의 흐릿한 시야에 들어왔다.
우연히도 보게 된 이자의 기운은 요사스럽진 않지만, 꽤 독특했다. 계연은 재빨리 그에게 다가갔다.
“여기요. 취병 두 개 주세요!”
“알겠습니다!”
멜대를 지고 있던 사내가 계연의 주문에 재빨리 멜대를 내려놓았다. 맞춤 제작한 상자의 뚜껑을 열자, 뜨거운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마치 찜기에서 갓 쪄낸 만두를 꺼내 먹는 느낌이었다.
“여기 있습니다. 성 밖에서 오셨나 보군요. 저희가 취병 하나는 제대로 만들어서, 참말로 맛있습니다.”
고소한 취병 냄새를 맡던 계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냈다. 그는 그대로 취병을 한 입 베어 문 다음, ‘정말 맛있네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행상인은 웃으며 멜대를 지고 계속해서 걸음을 옮겼다. 물론 여전히 우렁찬 목소리로 취병을 판다고 외치면서 말이다.
계연은 취병을 먹으며 그의 뒤를 졸졸 쫓았다. 그 때문에 행상인의 주변에는 파리 한 마리도 꼬이질 않았다.
“아니, 선생께서는 왜 절 계속 따라오시는 겁니까?”
“아, 사실 균천부가 처음인데 딱히 구경할 게 없어서 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그나저나 형씨는 하루에 멜대를 지고 얼마나 걷는 거예요?”
취병을 팔던 사람은 이런 계연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이런 손님은 생전 처음이었다.
“멜대를 지고 점심이랑 저녁에 한 번씩 돌아다닙니다. 장사가 잘될 땐 거리를 반만 걸어도 취병이 다 팔리는데, 그저 그럴 땐 온종일 수도 절반을 돌아다녀도 시원치 않죠.”
“와, 형씨 다릿심이 장난 아니겠어요!”
“으하하, 그걸로 먹고 사는 거잖습니까! 취병 팝니다! 갓 쪄낸 취병 있어요!”
계연과 몇 마디를 나누던 행상인이 갑작스레 소리 높여 외쳤다.
잠시 후, 취병 두 개를 모두 먹어 치운 계연이 취병을 더 사 먹으려 2문을 꺼냈다.
“형씨, 두 개 더 주세요!”
“이야, 선생께서는 혹시 뜨끈뜨끈한 취병 드시고 싶어서 따라오시는 겁니까?”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죠!”
계연은 행상인과 담소를 나누며, 좌씨 가문에 관한 일을 묻고, 행상인에 관한 일도 살며시 떠보았다.
이각(*二刻: 약 30분) 정도가 흐르자, 행상인은 다급해졌다. 이 선생이 여전히 제 꽁무니를 쫓으며 취병을 열댓 개째 먹고 있는 게 아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양이었지만, 선생은 두 개를 사고, 잠시 후 또 두 개를 사고, 그렇게 할 일 없는 사람처럼 걸으며 소름 끼칠 정도로 말을 걸었다.
“선생, 이게 마지막 남은 취병입니다. 공짜로 드릴까요?”
길모퉁이에 자리한 문구점 앞에서 멜대를 진 행상인이 조심스레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계연이 마지막 취병까지 모두 먹어 치우고도 자신을 쫓아올까 봐 겁내는 것이었다.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계연이 활짝 웃어 보였다.
“하하, 그럼 좋죠. 다만 그렇게 하면 제가 너무 신세를 지는 거잖아요? 아,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제가 글을 적어 드릴게요.”
“네?”
“대신 남은 취병은 꼭 저한테 주셔야 합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어, 네!”
행상인이 넋을 놓은 사이, 계연은 곧장 옆에 있는 문구점으로 들어갔다. 책을 읽고 있던 주인이 계연을 보고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손님, 찾으시는 거 있으십니까? 저희 문구점에는 최고급 벼루와 붓, 유명한 방묵과 문진도 있습…….”
“아, 주인장. 선지 한 장에 얼마죠?”
문구점 주인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손님, 한 장만 사시려고요?”
“네, 한 장은 얼마예요?”
기분이 확 처진 주인은 계산대로 돌아갔다.
“평범한 화목선지는 한 척에 2문이고, 그것보다 큰 건 조금 더 비쌉니다. 단향목 껍질로 만든 선지는 훨씬 고급이라…….”
“네, 그럼 가장 많이들 쓰는 거로 주세요.”
종이 한 장이 취병 두 개 값이라니. 계연은 주머니에서 3문을 꺼내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주인장, 붓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주인이 계연을 슬쩍 노려보았다. 그의 행색을 아래위로 살피던 그는 선지 한 장을 가져와 계산대에 올려두고, 계연이 낸 금액에서 2문만 가져갔다. 이후 주인이 옆에 놓인 붓걸이의 붓과 벼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도 학자입니다. 마음껏 쓰시지요!”
계연이 활짝 웃으며 나머지 1문을 챙겨 넣었다. 뒤이어 붓을 든 그는 진한 먹물 냄새를 맡으며 벼루에 먹을 갈았다. 그다음, 계산대 한쪽에 서서 선지 위에 거침없이 붓을 휘갈겼다.
붓이 스치고 지나간 곳에 사도는 정도를 이길 수 없다는 뜻의 ‘사불승정(邪不勝正)’ 네 글자가 적혔다.
“고마워요!”
붓을 돌려준 계연은 선지에 먹물로 적힌 글을 후후 불어 말리며 문구점을 나섰다. 한편 문구점 주인은 살며시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넋을 놓고 재빨리 그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조금 전 그 글은 결코 평범한 글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에게 감명을 주기에 충분했고, 서예의 대가가 아닌 이상 선보일 수 없는 수준의 글씨였다!
계연이 문구점 밖으로 나왔을 때, 그 행상인은 이미 멜대를 지고 도망친 지 오래였다. 계연은 멀리 길모퉁이를 바라볼 뿐, 행상인을 뒤쫓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허, 나도 참 한가하지…….”
계연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문구점 주인이 겉옷을 들고 부리나케 달려 나왔다.
“손님, 손님! 잠시만요! 손님, 저희 문구점에 귀한 단향목 선지가 있습니다. 그것을 손님께 선물해 드릴 테니, 훌륭한 글씨 한 점만 남겨주실 수 있으십니까?”
잔뜩 기대에 찬 주인을 본 계연이 손에 들고 있던 마르지 않은 선지를 건네었다.
“이거 드릴 테니까, 2문을 돌려주시는 건 어때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놀란 주인이 조심스레 종이를 건네받았다. 볼수록 마음에 드는 글이었다. 심지어 이 글 속의 경지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밀려왔다.
“2문은요?”
“아, 아아……. 잠시만요, 잠시만요!”
주인이 허겁지겁 계산대로 달려가 돈을 꺼내 왔다. 놀랍게도 그는 2문이 아닌, 쇄은자 한 움큼을 쥐어 와 그대로 계연에게 건네주었다.
계연은 웃음을 지으며 건네받은 쇄은자를 세어 보았다. 그리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던 그는 2문이면 된다는 겉치레 따위는 하지 않았다.
“네, 이거면 되겠네요!”
그 말을 끝으로 계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심지어 이 문구점의 이름마저 모르는 채로 말이다. 문구점의 주인은 뭐라고 입을 뻥긋거렸지만, 계연에게 글을 더 써달라거나 낙관을 찍어 달라는 것과 같은 뻔뻔한 요구를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주인은 환한 표정으로 돌아가 네 글자가 적힌 선지를 자세히 살펴보며 음미했다. 보기만 해도 글을 모사하고 싶은 충동이 마구 일어났다.
“이건 잘 표구해서 놔둬야겠어!”
* * *
문구점을 떠난 계연은 손에 쥐어진 쇄은자의 무게를 가늠했다. 못해도 2냥은 넘을 것이다. 지난 생에 본 드라마에서 툭 하면 나왔던 천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금액이었지만, 그렇다고 적은 액수는 아니었다. 계연에겐 당연히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세계에서 은자는 오래도록 쓸 수 있는 돈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총 세 번에 걸쳐 큰돈을 냈다.
첫 번째는 자신의 운명을 함부로 예측해선 안 된다는 것을 모르고 청송도인에게 점을 봐달라고 했을 때였다. 청송도인이 생명에 지장을 입을 만큼 심각하게 다친 바람에, 계연은 청송도인과 그의 제자에게 자잘한 금 조각와 쇄은자를 비롯해 총 30냥을 나눠주었었다. 그 정도라면 두 사제가 편안히 건강을 챙기며 살아가기에 충분했다.
두 번째는 배를 탈 때였다. 다른 사람들과 뱃삯을 나누어서, 600문이 채 안 되는 돈을 냈다. 백은 반 냥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세 번째는 바로 춘혜부에서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틀 연속 천일춘 2근을 샀을 때였다. 당시 계연은 4냥이 조금 안 되는 금액을 지출했다.
나머지 숙식에는 돈이 별로 들지 않았다. 식당이나 주루에서 식사할 때, 아무리 비싼 음식을 주문해 봤자 고작 몇백 문밖에 하지 않았다. 만약 국수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면, 겨우 몇 문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다. 덧붙여 설명하자면, 은자 1냥은 꿰미 하나, 즉 1000문과 같은 금액이다.
숙박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여정에 오른 이후로 계연은 객잔에 묵은 적이 손에 꼽았다. 간혹 목욕하고자 객잔에 하루 정도 묵긴 했는데, 아무리 최고급 객잔의 고급 객실이라고 할지라도 하룻밤에 100문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계연은 테두리를 살짝 쪼갠 황금 한 덩이 외에, 은자만 해도 자그마치 10냥이나 있었다. 거기에 문구점 주인이 그에게 쇄은자 한 움큼을 주었으니, 주머니 사정이 더 좋아졌다.
그는 은자를 품에 가지고 다니는 주머니에 넣은 뒤, 지우산을 짚고 보따리를 업었다. 계연은 온전히 한가롭게 구경하는 마음으로 부도를 돌아다녔다.
수레가 지나갈 때마다 나무 바퀴가 딱딱한 돌바닥과 맞닿으며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탕후루를 든 어린아이들은 까르르 웃으며 서로를 쫓았고, 길가의 노점상과 점포에서는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목청을 높였다. 연지분의 텁텁한 향과 간식의 달콤한 향이 멀리 퍼져 나갔다…….
“좌 대협. 대협께선 바로 이곳에서 자라셨군요!”
가끔 계연은 정취가 가득했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그는 어린 좌리가 목검을 쥐고 친구들을 쫓으며 강호 놀이를 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담백한 차향과 소리를 따라 걷던 계연은 장사가 꽤 잘 되는 다루(*茶樓: 찻집) 앞에 멈춰 섰다. 안에서 이야기꾼의 감정이 풍만한 이야기 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박사(*茶博士: 다루의 심부름꾼) 하나가 다루에 들어서는 계연을 보고 곧바로 다가와 인사를 건네었다.
“손님, 이쪽으로 오십쇼. 찹쌀이 들어간 차도 있고, 찻잎만 고이 달여낸 차도 있습니다!”
“네, 좀 북적이는 곳이면 좋겠어요. 이야기꾼 옆이면 더 좋고요.”
“아이고, 이걸 어쩌죠? 그쪽 자리는 이미 만석이라, 최대한 이야기꾼과 가까운 곳으로 안내해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다박사가 다루 중앙에 서 있는 이야기꾼을 보며 말했다.
“그러죠, 뭐!”
“그럼 이쪽으로 오십쇼, 손님!”
친절한 다박사의 안내에 따라, 계연은 중앙 왼편의 기둥 옆 탁자에 앉았다. 다박사는 빠른 동작으로 헝겊을 꺼내 탁자에 앉은 찻물 때를 닦았다.
“손님, 어떤 차로 올려드릴까요?”
계연은 다박사의 추천을 받지 않고, 흐릿해 보이지도 않는 현판을 보는 척했다.
“최고급 찻잎으로 달여낸 차 주시고, 여기서 제일 유명한 과자 세 접시도 같이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