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1화 (81/892)

81화. 지난 일의 실마리

홍안객잔(洪安客棧) 안.

누군가가 정청(正廳)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정청의 어슴푸레한 등불 아래, 주인장은 계산대 뒤에서 타닥타닥 주판을 두드렸다.

계연이 들어오자, 겨우 정산을 마친 객잔 주인장이 생긋 웃으며 주판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주인장, 빈방 있나요?”

“그럼요. 천자호실(天字號室), 현자호실(玄字號室) 둘 다 있어요. 천자호실은 120문이고, 현자호실은 80문이요.”

주인장은 숙박부에 기록할 준비를 하며, 얼른 장부와 붓을 꺼내 들었다.

“아, 그럼 현자호실로 주세요. 며칠 묵을지 몰라서, 우선 선금을 낼게요.”

“네,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 참! 손님 다른 요청 사항은 있으십니까?”

“아니요.”

고개를 끄덕이던 주인장은 계연이 건넨 은자의 무게를 달고, 장부에 글을 적어 내렸다.

-현자 2호실, 성인 남성 1인, 요청 사항 없음.

주인장이 장부를 쳐다보며 외쳤다.

“유복(有福)아! 손님, 현자 2호실로 안내해드려!”

뒤편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 갑니다!”

계연은 이 틈을 타서 주인장과 한담을 나누었다.

“주인장, 이 객잔은 얼마나 됐어요?”

“하이고, 오래됐죠. 저희 증조부 대부터 물려온 건데, 수리도 하고, 개조도 한 번 했어요.”

“아, 그렇군요. 그럼 주인장께선 성 서쪽을 잘 아시겠네요?”

장부를 적은 주인장이 계연을 향해 웃어 보였다.

“당연하죠. 어느 쪽으로 놀러 가실 계획입니까? 길을 잘 모르시는 거면 제가 알려드리고, 아니면 가볼 만한 곳을 추천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여쭤볼 게 있긴 합니다. 제가 강호와 연관이 좀 있는데, 수십 년 전의 좌선협께서 이 균천부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분을 삼가 뵙고 싶어 이곳까지 찾아왔으나, 좌씨 가문의 저택을 찾지 못했어요. 큰일은 아닙니다만, 균천부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지 못해 유감스러워서 말이죠.”

집을 떠나 먼길에 오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이 시대에는 충분히 공감을 불러일으킬 만한 화제였다.

“좌선협이요?”

주인장이 다시금 계연을 살펴보았다. 이후 그의 시선은 계연이 짊어지고 있는 물건에 향했다. 헝겊에 칭칭 싸여있는 것은 아마도 칼일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좌씨 가문에 대해 잘 모를 거예요. 사실 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좌씨 가문은 명망이 높은 가문이었어요. 안타깝게도 서서히 몰락해 버렸지만 말이에요. 저 또한 강호의 사람이 아니라 자세한 일은 모르지만, 가장 힘들었던 그해, 좌씨 가문에선 매달 사람들이 죽어 나갔어요. 아휴……!”

계연이 인상을 찌푸렸다. 온종일 쫓은 끝에, 드디어 좌씨 가문에 대해 아는 사람을 찾았다. 그런데 그의 입에선 실로 참담하기 그지없는 소식이 터져 나왔다. 주인장은 가볍게 이야기를 건네었지만, 계연은 그에게서 당시 좌씨 가문 사람들이 느꼈을 억울함을 엿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좌씨 가문의 후손은 아직 남아있나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당시 좌씨 가문이 어마어마한 대가문이었거든요. 사생아 같은 게 있었을지도 모르죠.”

잠시 생각하던 주인장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만약 좌씨 집안을 찾아가시려는 거라면, 이만 마음을 접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그 집엔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가 살고 있거든요. 다만 성 밖에 철공소가 하나 있어요. 요즘엔 주방용품을 팔아서 명성이 많이 죽었지만, 당시 좌씨 가문이 사용한 병기는 모두 그곳에서 만든 거였다더군요. 좌선검의 무기도 말이죠!”

계연이 두 눈을 번뜩이며 주인장에게 공수했다.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말씀을요!”

주인장 또한 두 손을 모아 답례했다.

그때 머리에 두건을 두른 사동 하나가 나타나, 계연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었다.

“손님 이쪽으로 오세요. 위층, 위층으로 모실게요!”

“뭐 하다가 이제 오는 거야, 변소라도 갔었어?”

주인장이 굳은 표정으로 그런 사동을 나무랐다.

위층 객실은 매우 반듯했다. 계연이 수고비로 당오통보를 쥐여주자, 신이 난 사동은 빠릿빠릿하게 목욕물을 떠다 주었다. 사동이 물을 따르는 동안 계연은 계속해서 한담을 이어갔다. 하지만 사동은 좌씨 가문에 관해 눈곱만큼도 모르는 듯했다.

* * *

이튿날 아침, 객잔을 나와 주변 노점상에서 고기만두를 산 계연은 성 밖으로 향했다. 균천부를 떠나는 게 아니라, 성 밖 원자하(元子河) 인근에 있다는 철공소를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아, 지금은 무기가 아닌 농기구와 주방 기구를 주로 파는 그 철공소 말이다.

당시 좌리가 지니고 다니던 검이 현재 계연의 넝쿨검이니, 어쩌면 넝쿨검의 본체도 그 철공소에서 주조하였을 것이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곳은 가장 가볼 만한 탐색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성문을 향해 가던 그는 어제 취병을 팔던 그 사내와 또 마주쳤다. 그 사내는 계연을 발견하자마자 멜대를 메고 멀리 줄행랑을 쳤다.

길을 지나던 계연은 그의 뒷모습을 슬쩍 쳐다볼 뿐,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진정한 신선도 성질이 있는데, 계연이라고 다르겠는가. 이 행상인의 경우는 그저 스스로 제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늘 아래 일어나는 많은 일만으로도 계연은 버거웠다.

균천부를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곳곳에 논밭과 숲이 펼쳐졌다. 푸르른 녹음과 맑은 새소리 속에서 도시의 소음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복잡했던 춘혜부 수로와 달리, 균천부성 밖의 논밭은 장관을 이루었다. 계연은 마치 시야가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원자하’라는 강의 이름에 계연은 춘혜부의 원자포가 떠올랐다. 그 잊을 수 없는 맛의 천일춘을 떠올린 그는 이따금 술단지를 열고 술을 들이켰다. 한참 걷다 보니, 그는 어느덧 원자하에 도착했다.

원자하는 맑고 투명한 강이었다. 강 저편에는 강물을 끼고 있는 여염집도 보였다. 스무 가구 정도로 규모가 그리 크진 않아서, 계연은 그곳이 마을이라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정상적인 보폭으로 일각 정도를 걸으니, 계연은 곧 백성들의 처소에 다다랐다. 곧이어 철공소에서 탕탕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과 가까운 원자하 강가에 있는 철공소는 이곳 하나뿐이었다. 길을 물을 필요도 없이, 계연은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댕, 댕, 댕!

탕! 탕!

소리가 정신없이 뒤섞여 울려 퍼지는 걸 보니, 철공(鐵工)이 여러 사람인 듯했다. 철공소를 대충 살펴보니, 쇠를 두들기거나 형체를 만드는 단조실(鍛造室)만 해도 네 개가 있었다. 금속과 활활 타오르는 불은 삼복더위를 더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주변의 여염집이 아마도 철공들의 처소인 듯했다.

계연은 자질구레한 일들과 잠시 후 물어볼 말을 생각하던 중, 농기구와 칼이 가득한 가장 바깥쪽 단조실에 웃통을 벗고 부채질을 하며 누워있는 근육질의 철공을 발견했다. 그가 잰걸음으로 그를 향해 걸어갔다.

“말씀 좀 여쭐게요. 여기에서 칼도 주조하나요?”

철공이 부채질하며 계연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장포를 두른 고상한 문인의 얼굴을 확인한 그는 찬찬히 시선을 옮겨 계연이 짊어진 막대기 모양의 물건을 바라보았다.

“칼이 망가져서 그런 거라면, 저희 언씨 철공소에서 수리 정도는 해드릴 수 있습니다. 수리하고 나면 멀쩡히 쓸 수 있을 겁니다. 만약 새로운 칼을 주조하고 싶으신 거라면, 다른 곳을 찾아보십쇼.”

“아, 그렇다면 칼집은 주문할 수 있나요?”

철공이 상체를 일으키고선 부채를 한쪽에 내려놓았다.

“그건 되죠. 나무, 가죽, 원하시는 대로 제작해 드립니다. 감당하실 수만 있다면 철로도 만들어드릴 수 있고, 예산이 충분하시다면 동이나 은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어느 걸로 해드릴까요?”

“나무 칼집이면 충분합니다. 정교한 조각은 없어도 되니까, 소박하고 내구성 좋게 만들어 주세요.”

철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습니다. 그럼 우선 검신(劍身)의 길이와 무게를 재러 가시죠. 그다음 원하는 목재를 고르시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계연은 철공을 따라 앞뒤로 훤히 뚫린 방에 들어섰다. 앞뒷문이 활짝 열린 덕분에, 활활 타오르는 불 옆에서 쇠를 두드리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이 방에는 똑같이 웃통을 벗은 나이 든 철공이 물을 마시며 쉬고 있었다. 환갑이 훌쩍 넘은 노인 같았지만, 그의 몸은 튼실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었다.

“손님, 칼 좀 주시겠어요?”

두 철공을 스윽 보던 계연이 헝겊에 칭칭 감겨있는 장검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이어서 푸른 헝겊을 걷어내자, 넝쿨검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순간 넝쿨검의 검신에선 녹슨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여전히 검신은 탁하기 짝이 없었다. 유일하게 날카로운 한기를 내뿜는 건 칼날뿐이었다. 칼자루는 더더욱 이상했다. 손을 보호하기 위해 툭 튀어나온 부분도 없을 뿐더러, 푸른 넝쿨 같은 생김새를 하고선 모순적이게도 장검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호기심을 참다못한 철공이 칼자루에 감긴 넝쿨을 만지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의 손가락이 검에 닿기도 전에 찌릿한 느낌이 그에게 전해졌다. 검신을 만지기가 두려울 정도로 괴이한 느낌이었다.

황당함에서 우러난 공포심을 애써 억누른 채, 철공은 다시금 칼자루를 향해 손을 뻗었다. 다행히 아직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칼자루의 촉감이 마치 싱그러운 넝쿨처럼 부드럽고 차가워서 색다를 뿐이었다.

옆에서 느긋하게 쉬고 있던 두 철공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신기한 듯 칼을 구경했다.

“손님. 이 칼에 무슨 내막이 있습니까?”

계연이 대수롭지 않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평온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있긴 하죠. 한 80년 전쯤, 바로 이곳 언씨 철공소에서 만들어진 칼이거든요…….”

이내 계연이 잠시 뜸을 들였다. 의미를 헤아릴 수 없는 미소를 지은 그는 주변의 철공들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잠시 능력을 발휘해 목소리를 키웠다.

“바로 청영이라는 검이지요!”

언씨 철공소를 가득 채웠던 시끄러운 쇳소리가 삽시간에 멈추었다.

계연은 단조실의 건장한 사내들과 이 방에 있는 한 중년과 두 노인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어……. 허허! 좋은 이름이군요, 좋은 이름이에요. 아마도 저희 조부 대에 만들어진 칼인가 봅니다.”

중년의 철공이 어색하게 웃더니, 검신의 길이를 재기 위해 자를 꺼냈다. 한편 두 늙은 철공은 다시금 자리를 잡고 앉아, 장검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뒤편에선 귀를 찌르는 쇳소리 대신 작게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철공께선 이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없으신가 봅니다?”

계연이 웃으며 물었다.

“처음 들어봅니다만, 손님 말씀처럼 저희 철공소에서 주조된 검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가 만드는 물건은 내구성이 뛰어나 오래 사용할 수 있거든요. 이 칼도 80년이 지난 지금까지 멀쩡하지 않습니까…….”

중년의 철공이 서서히 어색함을 깨고 유창하게 말을 잇자, 계연은 그들이 오해를 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한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는 이상, 이들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게 더 나을 터였다.

“아, 그렇죠. 80년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니까요. 그러니 이게 좌리의 무기였다는 것도 잊으실 만하죠…….”

그의 입에서 ‘좌리’ 두 글자가 나오자, 자를 쥐고 있던 중년 철공의 손이 움찔하며 떨렸다. 하지만 계연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뭐, 사람은 잊을 수 있다지만 이 녀석은 잊을 리 없겠군요. 안 그렇습니까?”

계연이 말한 ‘이 녀석’은 다름 아닌 탁자 위의 장검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우웅-.

탁자 위의 장검이 이명 같은 소리를 내며 붕 떠오르는 게 아니겠는가!

끽, 끼긱…….

중년 철공이 쥐고 있던 나무 자가 날카로운 칼날에 조각이 나자, 화들짝 놀란 철공은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여러분. 저는 좌씨 가문의 원수도 아니고, 무언가를 노리고 온 것도 아닙니다. 전 그저 좌선협께서 제게 베푸신 은혜를 갚고 싶을 뿐이죠. 그래서 좌씨 가문의 후손이 아직 살아 있다면, 그들을 찾아가 작게나마 힘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늙은 철공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에 놓인 넝쿨검을 바라보았다. 그가 충격에 휩싸인 마음을 쓸어내리며 단호하게 말했다.

“장검 청영을 손에 얻었다면, 좌선협의 비결서도 가지고 있을 텐데, 좌씨 가문의 후손은 뭐하러 찾으시는 겁니까? 저희 언씨 가문은 그들에게 시달릴 만큼 시달렸습니다. 아무튼 저희도 그들의 생사를 모릅니다. 다 죽어 버렸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저희랑은 상관없는 일입니다!”

“맞아요. 손님의 무공이 깊다는 건 저도 알겠습니다. 방금 그것만 해도 상상 밖의 일이었으니까요. 그러니 솔직히 말씀드리죠. 좌씨 가문은 분명 모두 죽어, 씨가 말라버렸을 겁니다!”

중년의 철공 또한 그렇게 말했다.

“맞소. 좌씨 가문은 이미 다 죽어 버렸을 거요!”

“그래, 다 죽었겠죠!”

“어차피 우리 철공소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맞아요!”

어느새 몰려든 철공과 수습공들이 밖에서 소리쳤다. 하나 같이 격분한 모습을 보니, 모두가 언씨 가문의 사람들인 듯했다. 주변은 팽팽한 활시위처럼 긴장감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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