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6화 (86/892)

86화. 살 수 없어요

두 판관은 코를 킁킁거리는 박연의 모습에 또다시 서로를 쳐다보았다.

“설마 우리 냄새를 맡은 건가?”

무판관이 그 말에 갑자기 웃음을 짓더니, 문판관을 향해 한마디를 건넸다.

“법령 때문일 걸세!”

곧이어 두 사람은 웃음보를 터뜨렸다.

“자네와 같이 일하는 동안 자네가 이리 흥미를 느끼는 건 처음 보는군. 가지!”

문판관이 말을 마치기 무섭게, 그들은 형체를 드러냈다.

먹색의 관복을 입은 붉은 수염의 판관과 검은 수염을 한 판관은 손에 커다란 책자와 붓을 들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박연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으아악! 당신, 당신들은……?”

비틀거리고 넘어지던 박연은 쭉 뻗은 손을 벌벌 떨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진 두 사람의 모습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려웠다. 박연은 무예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지만, 겁에 질린 나머지 말도 꺼내지 못했다.

“으하하하……! 겁먹을 것 없소. 우리는 균천부 성황신 휘하의 문판관과 무판관이오. 고인의 부탁을 받아, 친히 좌씨 일가를 살피러 왔소.”

“상공, 상공 무슨 일이에요?”

이때, 방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판관은 웃으며 박연을 향해 살며시 공수했다.

“그럼 우린 이만 가보겠소!”

그 말을 끝으로 두 판관은 뒤로 돌아 그대로 문을 통과해 사라졌다. 땀에 흠뻑 젖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던 박연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상공? 왜 아무 대답이 없어요. 거기서 뭐 하는 거예요?”

방 안에서 옷자락이 끌리는 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휘장을 젖히고 걸어 나온 박연의 부인은, 땀을 뻘뻘 흘린 채 바닥에 주저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는 상공을 발견하였다.

화들짝 놀란 부인이 재빨리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박연은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아니, 상공. 대체 무슨 일이에요?”

박연은 머리카락까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박연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것을 확인한 부인은 재빨리 제 남편의 가슴팍을 쓸어내리며 진정시켰다.

아내의 따듯한 손결 덕분인지, 겨우 안정을 되찾은 박연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허어……. 후……. 방금, 내가 죽는 줄 알았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러는데요!”

“쉿!”

매우 놀란 박연이 조심스레 대문을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말조심하시오. 진짜 귀신을 보았단 말일세! 균천부 성황신 휘하의 두 판관 나리께서 오셨소. 조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다고!”

박연은 여전히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은 채, 팔선상 앞을 가리켰다.

“후우……. 내 수명이 다한 건 줄 알았는데, 두 판관께서 고인의 부탁을 받아 찾아오셨다고 그러시더군. 어휴…….”

박연은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가까이에서 귀신을 보았으니, 얼마나 무섭겠는가. 이야기꾼의 이야기처럼, 귀신을 만나는 일은 긴박감이 넘치긴커녕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무섭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박연의 마음에서 흥분감이 조금씩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러한 감정이 점차 강렬해지며 박연의 창백했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박연은 무술을 연마한 사람이었다. 다리를 주무르고 자리에서 일어난 박연은, 팔선상 앞으로 걸어가서 그 위에 놓인 서첩을 바라보았다. 계 선생이 균천부 성황당을 찾아뵐 것이라고 말한 당일 밤, 판관이 찾아왔다.

판관을 보았다는 상공의 말을 믿지 않던 박연의 처는 탁상에 놓인 서첩을 보는 순간, 어쩌면 상공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되었든 이것은 선인의 약조였으니 말이다.

반 시진 정도가 지난 뒤에야, 두 부부는 다시금 침상으로 돌아갔다.

* * *

이튿날, 박연은 좌씨의 후손과 언씨 일가에게 어젯밤 두 판관이 처소를 찾아왔었다고 이야기하였다. 물론 언씨 철공소는 모두 믿음직한 사람들이기에, 집안의 이야기를 함부로 밖에 옮기지 않았다.

그렇게 박연이 판관을 마주친 지 사흘째가 되는 날이 밝았다.

요 며칠, 언씨 철공소에는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바로 서른 명 정도 되는 튼실한 체격의 철공들이 쇠를 제련하긴커녕, 하나같이 칼집을 만드는 데 몰두하는 게 아니겠는가.

모양을 잡는 단계부터 잘 다듬어서 기름칠하는 단계까지, 그들은 서로 손발을 맞추며 매끄럽게 일을 이어갔다. 전 과정을 혼자 도맡아 처리하는 철공도 있었다. 그야말로 전통 수공예방이 따로 없었다. 선인의 검을 끼울 칼집을 만든다는 생각에, 철공들은 들뜬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이 모든 일을 일으킨 장본인은 그 시각 아무 생각 없이 균천부성을 구경하고 있었다.

계연은 균천부에 오자마자 며칠 전에 소식을 전해 들었던 그 다루를 찾았다. 계연은 그때 듣다가 만 <황장군전>을 이어서 듣고 싶었지만, 다루에는 그때와 다른 이야기꾼이 색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었다.

“손님,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갓 쪄낸 떡과 전병, 뜨끈한 차도 있습니다!”

입구에서 서성이는 계연을 발견한 다박사가 걸어와 말했다.

계연은 그저 웃으며 고개를 젓더니, 별말 없이 다루를 벗어났다. 이야기꾼이 바뀌고, <황장군전>이 아닌 다른 이야기를 늘어놓으니, 계연은 흥미가 떨어졌다.

다박사는 멀리 걸어가는 계연을 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차 마실 돈이 없어 보이진 않는데, 왜 그냥 가 버리는 걸까?’

계연은 아무런 경신술도 발휘하지 않고, 천천히 두 다리로 걸으며 원자하 인근에 자리한 언씨 철공소로 향했다.

이번에 그는 사람들을 귀찮게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할 일을 모두 마쳤으니, 굳이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이래저래 놀랄 만한 일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원자하 주변에 도착한 계연은 곧바로 환영술을 펼쳐 자신의 형체를 숨긴 뒤, 언씨 철공소 안으로 들어섰다.

계연은 제일 먼저 말도 없이 빌려 갔던 우산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뒤이어 그는 소리와 냄새를 따라, 언씨 철공소 단조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어쩐 일인지, 계연이 숨을 헉 들이쉬며 중얼거렸다.

“저게 뭐야……?”

지금까지 속세의 그 무엇도 계연을 놀라게 할 수 없었으나, 지금 눈앞의 펼쳐진 광경을 보고 계연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커다란 천막 몇 개 아래, 웃통을 벗어 던진 스무 명에서 서른 명이나 되는 철공들이 칼집을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게다가 선반과 바닥에는 수십 개에 달하는 완성품이 보관되어 있었다. 재료부터 모양, 색깔, 문양까지, 겹치는 것 하나 없이 천차만별이었다.

‘언씨 가문 사람들이 뭔가 약을 잘못 먹었나?’

이내 이 사람들이 이러는 이유를 깨달은 계연은 실소를 터뜨렸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선인’으로 알려진 자신 때문이었다.

단조실을 가득 채운 칼집을 보니, 언씨 가문이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 재원을 소모했을지 차마 가늠이 가질 않았다. 계연은 원래 칼집 제작비로 100문과 쪽지 한 장을 남기고 갈 생각이었다.

계연은 이 많은 칼집을 전부 사 버리는 어리숙한 짓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수많은 칼집 중 화려하게 장식된 것을 제외한 모든 칼집이 계연의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조심스레 구석에 놓인 선반으로 걸어가, 소박한 담청색의 나무 칼집을 집어 들었다. 환영술을 펼치고 있는 그의 손결이 닿자, 칼집도 형체를 감추었다.

계연은 잠시 망설였지만, 끝내 품에서 1냥짜리 은자 두 닢을 꺼내어 여전히 칼집을 제작하고 있는 언씨 노인에게 던졌다.

짤랑!

은자는 언씨 노인의 머리를 살며시 치고선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뒤를 돌아본 노인은 머리에서 데굴데굴 굴러떨어진 은전을 보고 괜히 성화가 났다.

“누구야? 누가 감히 은자를 던졌어!”

바로 그때, 계연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칼집을 이렇게 많이 만들면 어떡합니까? 저에겐 칼도 딱 한 자루밖에 없습니다. 남은 건 알아서 잘 팔아 보세요!”

계연의 목소리는 서서히 멀어지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화들짝 놀란 언씨 노인은 제 입을 틀어막았다. 노인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방금 내가 선인에게 욕을 한 건가?’

정신없이 일하던 철공들은 귓가에 울리는 소리에 동작을 멈추었다. 철공소는 삽시간에 쥐 죽은 듯한 적막에 빠져들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언씨 노인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선인이 뒤끝 없이 떠난 것을 확인한 언씨 노인은 반사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떠올렸다. 곧이어 노인이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누구의 칼집이 선택되었어? 선인께서 누구의 칼집을 고르셨는지 당장 확인해봐, 대체 어떤 거야? 얼른……!”

“그, 그래! 어떤 게 사라졌는지 보자!”

“내 건 아직 완성도 못 했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제발 내 거여라, 제발 내 거여라…….”

“당연히 내 거겠지!”

철공들은 바삐 움직이며 선반과 바닥에 놓인 칼집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 내 거다! 내 거야! 내 칼집이 선택받았어! 하하하하……! 맨 끝에 두었던 청색으로 칠한 칼집이 사라졌어요! 하하하, 분명 선인께서 가져가신 게 틀림없어요!”

이때, 30대 정도로 보이는 철공 하나가 잔뜩 신이 난 채 펄쩍펄쩍 뛰더니, 나무 선반을 가리키며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주변의 철공들은 희망을 잃지 않은 채, 여전히 제 작품을 들춰 보며 확인하였다. 물론 끝내는 다들 자신의 작품이 선택받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은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그 철공을 보고 결국에는 투덜거리며 한숨을 쉬다가, 마지못해 축하 인사를 건네었다.

으스대던 그 사내는 사당 쪽으로 걸어가는 제 할아버지를 발견했다. 제 할아버지께서 아직 칼집값을 주지 않았다는 게 생각이 난 사내는, 재빨리 제 할아버지를 뒤따랐다.

“조부님, 조부님! 은자, 은자 주셔야죠. 적어도 한 닢은 주셔야 해요. 선인께서 주신 거잖아요, 조부님!”

“흥, 선인이 주신 걸 알면서도 달라는 게냐! 이런 귀한 물건을 네게 주어 낭비하느니, 사당에 있는 조상님의 위패와 나란히 둘 것이다. 향불을 올릴 때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말이다!”

언씨 노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노인이 남긴 말에, 사내는 얼빠진 표정이 되어 멀뚱히 멈춰 섰다.

* * *

계연은 균천부 성이 아닌, 아무도 없는 숲속으로 향했다. 가지와 잎사귀가 무성한 나무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앉은 그는 손에 들린 칼집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칼집은 옅은 청록색을 띠었다. 아마도 염료를 씌워 칠한 것 같았다. 나무 본연의 색은 가려졌지만, 나무의 결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자연스러웠으며, 이상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건, 칼집이 넝쿨검과 상당히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나무 칼집에는 복잡한 문양도, 과도한 장식도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단순한 청록색 나무 막대로 오해할 정도였지만, 어찌나 신경 써서 만들었는지 모서리 마감이 더할 나위 없이 매끄러웠다. 넝쿨검도 칼집이 마음에 들었는지, 살며시 공명음을 내었다.

“일단 진정해. 아직 칼집의 기운이 약해서, 네 힘을 견디지 못할 거야!”

계연이 등에 메고 있던 넝쿨검을 꺼내, 손을 뻗어 영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넝쿨검에서 매우 얇은 가지가 새로 뻗쳐 나오더니, 그 가지가 칼자루를 따라 ‘톡’하고 새싹을 트며 칼집 위에 안착했다. 새싹은 곧이어 칼집을 타고 천천히 자라났다.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성장 속도였다. 이각(*二刻: 약 30분) 정도가 지나자, 청록색 칼집 위에 푸르른 넝쿨무늬가 새겨졌다. 곳곳에는 싹이 트이려는 흔적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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