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87화 (87/892)

87화. 하늘을 엿볼 기회

우웅-.

넝쿨검이 또다시 공명했다.

“아직이야, 아직!”

계연은 마치 장난감을 눈앞에 두고 안달이 난 아이를 달래듯, 넝쿨검을 진정시켰다. 그는 하던 일을 마저 이어갔다.

계연이 오른손으로 검지(*劍指: 검지와 중지를 곧게 펴고, 약지와 소지를 구부린 뒤, 엄지로 약지 첫마디 위를 누르는 자세)를 쥐자, 법력이 얇디얇은 칼날처럼 가볍게 칼집 위로 떨어졌다. 계연의 손목과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칼집에 두 마디 글귀가 새겨졌다.

《영기의 넝쿨, 찬연한 예봉.》

글자는 빛을 번쩍이며 사라졌고, 곧이어 칼집이 파르르 떨리더니 움직임을 멈추었다.

“후……. 그래, 네 거라 이거지?”

쉼 없이 공명하는 넝쿨검을 보며 계연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

부웅-.

공명음을 일으키던 넝쿨검은 ‘척’ 하는 소리를 내며 칼집으로 들어갔다. 이내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넝쿨검은 아무런 기척도 내질 않았다.

계연은 또다시 웃음을 지으며, 넝쿨검을 푸른 천으로 돌돌 감싸 등에 짊어졌다. 드디어 최근 그를 옭아매던 매듭들이 모두 해결된 것이다. 이제 계연은 자신의 수행에 관해 고민할 때가 되었다.

도행이 얕은 수선자와 달리, 계연은 눈을 감지 않고도 마음속의 세상을 볼 수가 있었다. 산과 물로 이루어진 세상의 높은 봉우리에는 단로가 타오르고 있었다.

단전에서 끝없이 펼쳐진 물안개는 계연의 법력을 가득 채워주었다.

오늘까지 계연은 선도를 가늠하는 기준인 ‘덕(德)’, ‘법(法)’, ‘심(心)’ 세 가지 방면을 따라 수행을 이어갔다. 도행을 닦는 계연은 나날이 성장하였고, 단로에서 피어오른 계연의 법력은 이미 단전 하나를 뛰어넘었다. 아마 단전의 1.3배는 될 것이다.

조그만 단전으로는 이제 계연의 커다란 단로를 지탱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의 단로에는 건(乾)과 곤(坤)이 숨겨져 있었고, 단기를 품은 삼매진화가 단로에서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이 삼매진화는 계연이 언제든 법력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기이하게도 허와 실 사이에 존재하는 이것을 <통명책>에서는 ‘어둠 속의 빛이자, 마음속의 세상과 단로를 잇는 다리’로 형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연의 단전은 어둡지 않았다. 단전에서는 어렴풋이 하늘과 땅의 풍경이 보였고, 들끓는 법력은 마치 물안개처럼 단전을 감쌌다. 산수(山水)가 단전 때문에 가려진 건지, 단전이 산수(山水) 속에 가려진 건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계연은 자신의 수련 속도가 결코 느리지 않다고 자부했다. 어쩌면 신의 경지와 맞닿은 선문의 수선자들도 계연 같은 효율을 내지 못할 것이다.

바둑돌도 무조건 단기를 흡수하는 건 아니었다. 물론, 며칠에 한 번씩 바둑돌은 대량의 단기를 필요로 하긴 했다. 실속이 없는 단기가 필요하다기보다는, 참된 단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정상적인 상황에서 바둑돌은 계연의 수행을 방해하지 않았다.

기초 연기결인 옥회소련(玉懷小鍊)의 경지 또한 최고봉에 이르렀다. 비록 계연이 대련(大鍊)을 익히진 못했지만, 그의 체내에 있는 오장육부는 이미 오행의 기를 품고 있었다. 소위 ‘대련’이란, 그저 자신의 특성에 따라 더욱더 적합한 수행법을 찾아 선택하는 것을 말했다. 태백(太白), 금기(金氣)나 계수(癸水), 진음(眞陰)처럼 말이다.

고급 기술이긴 하지만, 다루지 못한다고 해서 죽는 건 아니었다. 이에 계연은 스스로 위안할 수 있었다. 지금 계연에게 중요한 건, 전반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었다.

법력과 자신이 익힌 훈련법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 순수한 영기로 영혼의 경지를 높이는 도기결 연마를 지속하기 위해, 계연은 가능한 한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훈련을 이어갔다.

계연은 체내의 상황에 감탄을 내뱉으며, 가지고 다니던 <통명책>을 꺼내 자신이 배운 것을 검증하였다. 뒤이어 그는 책장을 넘기며, 자연스레 수행과 관련된 어려운 내용들도 살펴보았다.

<통명책>에 따르면, 법력의 깊이 외에도 수련에는 두 가지 중요한 점이 더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기조원(五氣朝元)’과 ‘삼화귀일(三華歸一)’로, 이는 수선자의 도행을 깊게 하는 데 어느 정도 참고가 될 만한 사항이었다.

‘오기조원’의 경지란 체내 오행의 기운이 대성하고 활발해지는 단계로, 개인의 수련이나 법력의 깊이, 소천지와 연결된 규혈의 규모, 마음을 얼마나 수행했는지와 큰 연관이 있었으며, 이는 모든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통명책>에서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는 모르나, 오기 중 하나의 기운만 조원을 이루어도 조원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었다. 참 우습기 짝이 없었다.

한편, 삼화귀일은 진정 도를 성취한 ‘진선(眞仙)’의 상징이었다. 수선자의 정신력과 체력은 하나가 되어야 할뿐더러, 수선자는 세상과 사람 사이에서 완벽한 일체가 되어야 했다. 모두 현관(玄關)의 대통을 위한 것이었기에, 진정 도가 트이지 않은 고인은 이를 성취할 수가 없었다. 보통 이러한 고인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은 법력을 지녔으니, 고인에게 예외가 생길 리는 없었다.

그 밖에, 마음과 수련 등 여러 가지 각도에서 ‘도(道)’와 ‘술법’, ‘신통력’에 대한 해설이 책에 적혀 있었다. 더욱이 마음을 다스리는 법, 덕행을 수련하는 법, 고요함을 찾는 법을 비롯한 여러 현묘한 술법이 ‘통명책’에는 기록되어 있었다. 대도(大道)의 경지에 오르는 방법을 여러 방향과 각도에서 해설하고 있는 것이었다.

수행이란 천 가지 대도와 만 가지 법결을 가리켰다. 각 선문(仙門)과 선부(仙府), 선동(仙洞), 선산(仙山), 선도(仙島)에서는 모두 도를 달리 이해했고, 이들이 소중히 여기는 오묘한 이치가 서로 달랐기에,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통일할 순 없었다.

심지어 표면상의 도리에도 상호 간의 수많은 쟁점이 존재했으니, 누구도 다른 이에게 복종하지 않았다. <통명책>에서는 이것을 ‘실로 비통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진정한 선도를 닦는 고인이라면 ‘도(道)’에 대해 깊은 이해를 지니고 있어야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만물의 규칙을 통찰하는 능력이 뛰어나며, 신묘한 기회를 날카롭게 포착하는 능력 말이다. 이것은 요괴들이 그토록 ‘진리를 찾으려’하는 까닭 중 하나이기도 했다.

자세히 글을 읽다 보니, 어느덧 정오가 되었다.

마음이 탁 트인 현재의 경지에 오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계연은, 이만 나무에서 내려와 식사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이전의 실증이 계연의 마음속에서 어떠한 작용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마음속 세상의 경지가 한층 높아진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성으로 들어가려던 그때, 계연은 몸의 법력이 바깥세상의 영기와 서로 융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계연의 마음속 세상에 산과 강물이 나타났다. 그 속의 계연은 끝없이 거대해지는 기분이었고, 바깥 세계의 육신은 세상과 하나가 된 것만 같았다. 걸음을 내딛는 것 자체가 꿈결처럼 신비로웠다.

계연의 마음과 정신은 수선자의 길에 올라선 듯했다.

그 순간, 마치 하늘에 뜬 별자리처럼 계연의 마음속 세상에 다섯 개의 바둑돌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돌은 살기를 내뿜고, 백돌은 화생의 기운을 내뿜는 듯했다. 처음으로 계연의 마음에 그러한 기운들이 차올랐다.

‘어라?’

걸음을 옮기던 계연은 서서히 의문에 잠겼다. 분명 땅 위를 걷고 있었거늘, 마치 물속을 걷는 것처럼 발밑에서 강한 저항력이 느껴졌다. 끝내 더는 발을 내딛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왜 이러지? 뭔가 이상해!’

계연은 마음속에 떠오른 하늘과 땅…… 즉, 온 세상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그대로 균천부 거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의 옆을 지나치는 백성에게서 붉은색, 노란색, 혹은 혼탁한 색의 기운이 피어오르는 것을 계연은 똑똑히 확인하였다.

‘어디로 날아가는 거지?’

계연은 무심코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올려보았다.

스멀스멀-.

눈앞의 빛은 마치 흑과 백 사이에서 번쩍이는 듯했고, 환상과 사실의 경계에서 끝없이 변했다. 계연의 몸이 현실과 환영 사이에서 무한대로 붕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멀리 보이는 산과 강물 너머 천지는 무척이나 광활했으며, 계연의 시선이 닿는 곳에는 모든 것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수천수만 개의 무수한 기운들이 온 사방을 뒤덮은 채로 말이다.

백색, 흑색, 청색, 적색, 황색을 비롯한 갖가지 색들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문득 계연의 머리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저것은 다름 아닌 선령의 기운이거나 무한한 요기, 들끓는 마기(魔氣), 음기, 향불의 신기, 인도(人道)의 기운, 오행의 기운이었다.

자신의 몸이 끝없이 방대해지고 끊임없이 떠오르는 동안, 눈앞에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경악과 충격, 공포, 그리고 황당함…….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계연은 하늘과 땅 사이를 가득 채운 기운이 세상 모든 생명의 기세에 이끌리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선도, 귀도(鬼道), 신도(神道), 마도(魔道), 요도(妖道), 인도, 영도(靈道)……. 이 무궁한 기세가 뒤섞여, 셀 수 없이 많은 기운이 마치 굵고 얇은 밧줄처럼 서로 뒤엉켜 하늘을 가득 메웠다.

욕망과 분쟁을 품은 기운이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할 때마다, 도(道)를 향한 마음과 비뚤어지고 타락한 마음이 맞붙을 때마다, 왕조가 바뀌고 세력이 변화할 때마다, 선인과 요괴의 싸움으로 혼란이 일어날 때마다, 모든 존재의 운수가 바뀔 때마다…… 이 기운들은 전부 하나의 근원이 되어, 천지의 묘연한 기운을 찢어발겼다.

계연은 검붉은 색을 품은 상서로운 기운이, 여러 개의 무늬가 되어 하늘과 땅에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명확한 깨달음 하나가 계연의 마음에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하늘이 살기를 띠면 별자리가 이동하고, 땅이 살기를 띠면 용과 뱀이 요동치며, 인간이 살기를 띠면 하늘과 땅이 뒤집힌다. 하늘과 인간이 힘을 합치면 대재앙을 일으킬 수 있고, 만물의 발전이 극치에 달하면 그것이 지니고 있던 기본마저 변화하게 된다. 어쩌면 만 년, 수천 년, 아니면 그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세상은 큰 변화를 겪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결국 세상을 가득 채운 만물의 기운에 의해 나타날 터였다. 그때가 되면 하늘은 무너지고 땅은 꺼질 것이며, 그 끝에 새로운 낙이 찾아올지는 미지수였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세상이 대변화를 이룰 무렵에 산과 강물이 사라짐은 물론 무수한 생명이 목숨을 잃게 될 터였다.

생사의 갈림길에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존재한다. 하늘이 무너지고 변화하는 순간에 느껴지는 공포는 숨을 멎게 할 수도 있었다.

지금 계연은 마치 생기를 잃은 사람처럼, 손가락 하나조차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끝이 보이지 않는 공포에 잠긴 채, 그는 창공을 올려다보며 질식할 듯한 적막에 잠겨 버렸다.

‘이대로 죽어 버리는 건가’ 하고 계연이 생각하던 그때, 숨겨져 있던 기운이 하늘과 땅 위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계연의 마음속 세상과 현실이 뒤엉킨 하늘에 다섯 개의 별이 빛을 눈부시게 번뜩였다. 다름 아닌 다섯 개의 바둑돌이었다!

무궁한 변화 속에서 계연은 형체도 질량도 없는 선의 환영이, 수천수만 개의 기운을 잇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산과 물이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건곤의 위력과 이어졌고, 눈부신 기운이 그 가운데를 관통한 듯했다.

곧이어 계연은 이 모든 것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는 굴곡이 있지만, 경계가 없는 바둑판이었다!

우르르!

‘계연의 세상’에 있는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에 파도가 일렁이더니, 그의 감정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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