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92화 (92/892)

92화. 이상한 거래

안을 둘러보던 여인들이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았는지 주인장을 불렀다.

“주인장, 이 복사꽃 색 비단 참 예쁘네. 한 필에 얼마인가? 이걸로 옷을 만들면 어느 정도 나오지?”

몇 척이 아닌 한 필이라니. 주인장은 기뻐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하, 낭자들 눈썰미가 역시 대단하십니다. 여기 분홍색 비단들은 멀리 완주(婉州)에서 공수해온, 순수 잠사로만 만든 비단입니다. 한번 만져 보십시오, 얼마나 매끄러운지 모릅니다. 이 비단으로 옷을 만들면 분명 더할 나위 없이 편하고 아름다울 겁니다!”

“그래서 얼마냐니까?”

한 여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아하하, 이건 완주에서 공수해온 최고급 비단이라, 값이 조금 나갑니다. 한 필에…… 백은 10냥입니다!”

‘10냥?’

두 여인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계연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단이 황금보다 비싸다니, 말이 되는가. 천 한 필이면 그래 봤자 옷 몇 벌을 지을 수 있을 뿐인데, 평범한 백성의 일이 년치 생활비와 맞먹다니……. 이러니 평범한 백성들은 돈을 쓰려야 쓸 수가 없었다.

“좋네, 그럼 한 필 주게나. 옷은 다른 곳에 맡길 것이니, 옷감이 상하지 않게 잘 포장해주게!”

“아이고, 알겠습니다. 금방 포장해드리죠!”

주인장은 입이 찢어질 듯이 웃었다. 흥정조차 시도하지 않는 통 큰 여인들 덕분에 오늘 주인장은 큰 몫을 챙길 수 있었다. 비단을 포장하려던 주인장은 두 여인처럼 손을 뻗어 벽에 걸린 비단을 만지고 있는 계연을 발견했다.

“저기 손님, 손님, 아, 그게…… 저희 가게는 규모가 크지 않아, 이쪽은 전부 견주(繭紬)와 능(綾) 같은 비단들입니다. 그러니…….”

주인장은 최대한 완곡하게 자신의 우려를 드러내었다.

계연이 손을 거두며 미소 지었다.

“네, 요즘 비단은 어떤지 만져 본 것뿐이었어요. 주인장, 옷 두 벌, 아니 세 벌만 골라주시겠어요?”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자, 계연은 품에서 은자를 꺼내며 말했다. 은자를 본 주인장의 얼굴엔 다시금 환한 웃음이 피어났다.

“그럼요, 그럼요. 손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우선 두 낭자께 비단을 포장해드리고 바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제야 두 여인이 슬그머니 계연을 살펴보았다. 지금 상점에는 그들 넷뿐이었다.

계연의 시선은 두 여인에게 머문 적이 없었다. 행여나 그들을 향했다고 하더라도,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두 여인은 자신들의 미모를 무시했다며 화를 내진 않았다. 이상한 손님은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듯 시선을 옮겼으니 말이다. 조금 전 옷감을 만질 때도 옷감을 들여다보기는커녕, 오로지 손끝의 촉감에 의지한 듯했다.

옷차림은 그렇다고 쳐도, 사내의 머리는 잔뜩 산발이 되어 있었다. 비녀로 삼기엔 나뭇가지가 꽤 미끄러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계연의 모습은 보기 싫지도, 우습지도 않았다.

계연은 상점에 들어올 때, 이미 두 여인을 훑어보았다. 그들에게서 부귀한 기운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두 여인의 혈기가 왕성한 것만큼은 분명했다. 게다가 두 사람의 기다란 숨소리를 들어보니 여인들은 무예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계연이 그들에게 큰 관심을 둔 것은 아니었다.

“낭자, 복사꽃 색 비단 여기 있습니다. 은자는…….”

“여기, 그거면 충분할 걸세!”

“아, 아, 네!”

허겁지겁 저울을 꺼낸 주인장은 은자의 무게를 확인한 뒤에야 두 여인에게 비단을 건네주었다. 두 여인이 상점을 빠져나간 다음, 그가 계연에게 말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손님께선 어떤 옷을 원하십니까? 유삼(*儒衫: 문사들이 걸치는 옷)도 있고, 대섶옷도 있고, 경장이나 일상복도 있습니다. 전부 저희 가게에서 만든 것이지요!”

“음, 청색 옷 하나, 흰색 옷 하나, 회색 옷 하나 주세요. 전부 소매가 넓은 장포로요. 참, 안감이랑 바지도 같이 주세요.”

“알겠습니다. 내의부터 겉옷까지 전부 원하신다는 말씀이시지요?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우선 몸의 치수부터 재보겠습니다.”

주인장이 계산대에서 나무로 만든 자를 가져와 계연의 신체 치수를 확인했다. 서너 번에 걸쳐 치수를 재던 주인장은 계연이 입고 있는 옷의 촉감이 참 독특하다고 생각했다.

좀 전의 말실수를 만회하려는 것인지, 계연에게 옷을 골라주던 주인장이 가벼운 한담을 건네었다.

“조금 전 두 손님도 참 희한해요. 못난 얼굴도 아닌데, 왜 굳이 두껍게 분칠을 하는지, 참……. 화장할 줄 몰라서 그런 건지, 일부러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아마 화장을 할 줄 몰라서 그랬겠죠. 하면 주인장께서 두 분에게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

계연이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그는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두 여인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주인장이 밖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어찌 그럽니까. 부잣집 여손님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분들입니다. 특히 외모로는 말이죠. 제가 그리 말하면, 그분들이 제 말을 곱게 들으시겠습니까?”

“하하하……. 듣고 보니 그렇네요. 현명하세요!”

계연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좀 전까지 그를 옥죄던 압박감이 한결 사그라들었다. 왠지 지난 생에 저속한 농담을 듣던 기분과 비슷했다.

“하하, 그럼요. 자, 손님, 이거 한번 입어보세요. 몸에 딱 맞을 겁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주인장은 계연에게 어울릴 만한 겉옷을 모두 골랐다.

대략 일각(*一刻: 약 15분) 정도가 지나고 상점에서 나온 계연은 새하얀 장포를 두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상점에서 산 천가방도 들려있었고, 안에는 옷 두 벌이 더 들어 있었다. 이렇게 계연은 총 600문을 들였다. 그 복사꽃 비단과는 가격이 천지 차이였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낡은 옷가지가 들려있었다. 계연이 두 손을 합장해 마구 비비자, 낡은 옷이 손바닥 사이에서 가루가 되어 저잣거리 바닥으로 바스스 흩어졌다.

이제 계연은 자신이 바둑판을 훔쳤던 노점이 있는 저잣거리로 향했다. 행상인들은 보통 같은 자리에서 물건 팔기를 좋아했기 때문에, 여전히 그곳에 바둑판 파는 노점이 있을지도 몰랐다.

조금 전 의류 상점에서 주인장과 한담을 나누던 계연은 빙빙 돌려 물은 끝에, 지금이 벌써 원덕 15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계연이 어림짐작했던 시기와 얼추 비슷했다.

계연은 가는 길에 새 신도 하나 장만했다. 그렇게 이각(*二刻: 약 30분) 정도를 걷던 계연은 드디어 예전 그 길에 들어섰다. 역시나 그때 그 행상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옥 장신구, 새로 나온 옥 장신구 있습니다. 옥팔찌, 옥패, 옥반지, 최고급 옥으로 만든 장신구들입니다!”

행상인은 목청 높여 소리쳤지만, 걸음을 멈추고 노점을 구경하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가 칼칼한 목을 달래기 위해 대나무 통을 들어 목을 축이는 사이, 노점 앞에 하얀 옷의 계연이 걸음을 멈추었다.

번뜩이며 정신을 차린 행상인이 재빨리 소리쳤다.

“손님. 보아하니 학식이 있는 분이신 것 같은데, 옥 하나 사세요. 왜, 군자는 좋은 옥을 좋아하고, 군자는 옥과 같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 여기 이 옥 장신구들 좀 보세요. 색이 참 곱지요!”

계연의 흐릿한 시력으로는 옥 장신구의 구체적인 모양은 구별할 수 없었지만, 옥이라는 물건은 굉장히 독특했다. 좋은 옥에서는 위무외가 선물했던 옥패처럼 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노점에 깔린 장신구들에선 기가 흐르기는커녕, 손으로 대충 만져 보아도 마감이 나쁘고 품질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록색 옥을 대강 살피던 계연이 다소 먹색을 띠는 비녀를 하나 골라 들었다.

“이 비녀는 얼마인가요?”

노점에서 가장 질이 안 좋은 비녀였다. 계연과 비녀를 번갈아 바라보던 행상인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30문입니다!”

“허허……. 비녀 하나에 30문이요? 그건 아니죠. 얼핏 보아도 한…… 1냥은 되어 보이는데!”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계연이 머리에 꽂혀있던 나뭇가지를 빼고, 그 자리에 옥비녀를 살며시 꽂았다. 뒤이어 그가 품에서 쇄은자를 한 줌 꺼내었다. 딱 봐도 1냥은 족히 넘어 보였다.

“여기, 옥비녀 값이요!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요. 하하하……. 마음에 들어, 비녀가 참 곱네…….”

행상인은 계연이 건넨 쇄은자를 손에 쥔 채 멀뚱히 서 있었다.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가는 흰옷의 손님을 다소 넋 나간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냥, 저대로 가는 거야?’

계연이 20보 정도 걸어갔을 때, 정신을 차린 행상인이 손에 쥐어진 은자를 확인했다.

‘두세 달 치 장사해야 버는 돈인데…….”

한참을 망설이던 행상인이 끝내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저기요! 거기 손님, 손님! 옥비녀 값보다 훨씬 많이 주셨습니다! 남은 돈 가져가세요!”

걸음을 멈춘 계연은 얼굴에 방긋 미소를 머금은 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행상인을 돌아보았다.

“손님! 정말 이만큼 필요 없어요!”

사실 행상인은 소리를 지르는 순간 아뿔싸 하며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저잣거리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른 마당에 후회해 봤자 무슨 소용이랴. 그나마 다행히도 손님을 불러 세우고 나니, 마음이 후련했다.

하얀 옷의 손님은 그저 20보 밖에서 뒤로 돌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행상인은 감을 파는 노인에게 잠시 노점을 맡겼다.

“진(陳) 아저씨, 저 손님한테 다녀올 테니까 잠시 노점 좀 봐주세요. 금방 올게요!”

“하하. 그래, 그래!”

조금 전 진 노인은 공돈이 생긴 행상인을 보며 질투에 휩싸여 있었지만, 지금은 젊은 행상인이 기특하다고 생각했다.

노인의 대답에 행상인은 재빨리 계연을 따라갔다.

행상인의 부름에 걸음을 멈추거나 뒤를 돌아보는 손님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모두 무슨 일이냐며 수군거렸고, 일의 전말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또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편에서 저들끼리 추측을 하며 속닥거렸다.

계연은 마치 행상인을 기다리듯,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행상인이 정말로 노점을 내팽개치고 다가오자, 계연이 눈을 살며시 떠 보였다.

성큼성큼 다가온 행상인은 손에 들고 있던 은자를 계연에게 건네었다.

“손님……. 사실 이건 싸구려 비녀입니다. 많이 쳐줘 봤자 이삼십 문이지, 1냥은…… 도저히 받을 수가 없습니다. 50문 정도면 몰라도 말이죠. 그 비녀가 정말 마음에 드시는 것이라면, 제게 동전으로 주세요. 은자는 도저히 받을 수가 없습니다.”

단숨에 말을 내뱉은 행상인은 그제야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하지만 그가 말을 마칠 때까지, 맞은편에 선 하얀 옷의 손님은 아무런 말도 없이 자신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혹시 말이 너무 빨라서 못 들으셨나?’

바로 그때, 계연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하지만 비녀와는 무관한 이야기였다.

“당신의 이름을 여쭤봐도 될까요?”

“예?”

행상인이 다소 당황한 듯 되물었다. 상대방은 은자를 받지 않고, 왜 자신의 이름을 묻는 걸까?

“임전(林田)입니다. 항상 저 자리에서 노점을 열고 있죠. 우선 손님, 은자부터 가져가시죠. 안 그럼 그 옥비녀를 팔지 않을 겁니다!”

“진정해요. 저는 이 옥비녀가 제 마음에 쏙 들어서, 꼭 사야겠어요. 다만, 임 씨에게 한 가지 여쭈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제가 만약 금자 1냥을 드리면, 그래도 또 저를 쫓아오실 건가요?”

정말이지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사람을 환상에 빠지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임전이 결국 마음을 다잡았다.

“손님, 농이 지나치십니다. 저는 한평생 금자를 본 적이 없어 대답을 드릴 수가 없군요. 다만, 그만한 돈이라면 제가 냅다 들고 도망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하…….”

계연이 살며시 눈썹을 씰룩이더니, 임전의 손에 들린 쇄은자를 건네받았다.

“그래요. 다소 외람된 질문이었던 것 같군요. 자, 그럼 다시 노점으로 가시지요. 아 참, 균천부 취향루(醉香樓)의 음식이 그리 맛있다던데, 가보신 적 있으신지요?”

“네?”

계연의 말이 길어질수록, 임전은 혼란스러워졌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