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화. 괴이한 사건
정신을 집중하자, 계연은 곧 바둑돌에서 느껴지는 옅은 흉악한 요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동시에 호연한 기운도 느껴졌으나, 그것은 너무 약했다.
‘윤 훈장님이 위험해!’
이번 생에 얻은 자신의 가장 친한 벗이 이 순간 위험에 빠졌는데도, 계연은 속수무책이었다. 순간 마음이 조급해져 윤재성이 무엇을 맞닥뜨린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으나, 윤재성이 마주친 것이 평범한 것이 아님은 확실했다.
‘방법을 생각해야 해, 방법을……!’
그는 강제로 입정(*入定: 마음을 한 경계에 정하고, 고요히 생각하는 것)하여 머릿속에 산과 강물이 흐르는 대지를 불러내 바둑돌을 수습했다. 계연의 마음속 하늘에 있던 다른 네 개의 바둑돌은 전과 같은 상태였다.
계연은 전설에 나오는 거인처럼 하늘과 땅 사이에 서서는 손에 별을 쥐고 눈썹을 찌푸리며 고민했다.
먼 곳 높은 산봉우리에 있는 단로를 보고 계연이 처음 한 생각은, 바둑알을 위해 단기(丹氣)를 보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바로 삼매진화(三昧眞火)였다.
단로 내의 진화(眞火)가 유용할지 알 수 없고, 이 백돌이 단로의 진화를 버텨낼 수 있느냐도 미지수였지만, 윤재성이 이미 위험에 빠져 있었으므로 깊이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러자 세상이 계연의 생각에 따라 움직였다. 산과 강이 펼쳐진 곳에 서 있던 계연은 한순간에 단로 옆으로 옮겨가 그 구멍 사이로 나오는 들끓는 진화를 볼 수 있었다.
계연이 단기를 뽑아내 백돌에 주입한 후 가만히 백돌을 안정시키려던 중, 단로 내에서 굴러다니던 돌이 갑자기 동작을 멈추었다.
이에 계연이 주문을 외웠다.
“칙(*敕: 도사가 주문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데 쓰는 명령).”
그의 목소리와 함께 단로 주위에 떠올라 있던 바둑돌 뒤로 현황(*玄黃: 검은 하늘빛과 누른 땅 빛. 즉, 천지(天地)를 말함)의 기운이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했다. 조심스레 가늠해 본 계연은 곧 그 기운을 가느다랗게 뽑아내어 백돌을 감쌌다.
‘윤 훈장님, 조금만 더 버티세요!’
그는 더는 망설이지 않고 단호하게 백돌을 단로에 넣었다.
쾅!
백돌이 단로의 삼매진화를 뚫고 지나며 거의 불이 붙을 뻔했다. 그와 동시에 현황의 기운이 불꽃과 만나며 한 줄기 빛을 만들어냈다.
현황의 기운과 돌에 서려 있던 호연한 정기가 함께 진화에 맞서 싸우자, 그 중압감을 이겨내지 못한 백돌에서 삐걱대는 위험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를 듣자 머리가 쭈뼛 서는 것을 느낀 계연은, 상황이 나쁜 것을 깨달았다. 곧바로 그는 백돌을 단로 안에 오래 둘 생각을 접고는 다른 쪽으로 가서 백돌을 구멍 바깥으로 끌어냈다.
바둑돌이 끓기라도 할 것처럼 뜨거워지던 그 짧은 순간, 백돌의 표면에는 이미 미세한 균열이 나타났다. 그러나 은은한 술 냄새가 퍼지더니 돌은 점차 매끈하게 변했고, 이를 본 계연은 마음을 놓았다.
계연의 의식 경계에서 삽시간에 벌어진 작은 소동의 여파는, 저 멀리 계주 춘혜부에 닿았을 때 더는 작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 * *
원래 윤재성은 질식하는 도중에 요괴에 대한 공포와 고통에 질려 있었으나, 한순간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짧은 순간, 온몸이 기름 솥에 들어간 듯, 수만 개의 화살이 심장에 꽂힌 듯, 천둥과 번개가 온몸을 쪼개는 듯하다가 또 불길에 온몸이 타오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에 그의 의식이 흐려졌다.
이러한 고통은 윤재성의 신체를 삽시간에 끓는 듯 뜨거워지게 했고, 그의 온몸은 잘 익은 새우처럼 빨개졌다.
치이익…….
홍씨 부인은 막 얼굴을 들이밀며 윤재성의 양기와 그의 기운을 모두 빨아들이려다가, 너무 뜨거워 손을 놓고 말았다.
그녀가 의아함을 느끼기도 전에, 어두웠던 눈앞에 잿빛이 감도는 새빨간 불빛이 나타났다.
쿵!
비현실적인 화염 덩어리가 윤재성의 몸에서 솟구쳐 나와, 그가 걸친 옷과 실내의 가구 등을 그대로 관통하여 한쪽에서 경악에 차 있던 홍씨 부인에게로 향했다.
삽시간에 홍염이 그녀를 훑고 지나갔다.
“아악!”
여인의 고통스러운 비명이 구석구석 울려 퍼졌다.
펑! 펑! 펑!
그녀가 날아가 방문에 부딪히며 문이 산산이 조각났다. 반대편 객실을 뚫고 나간 그녀가 곧 객잔의 벽에 부딪히며 벽이 가루가 되었다. 홍씨 부인은 공격당해 날아가는 도중에 까맣게 타서 객잔의 바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헉, 헉…….”
노기와 두려움을 감출 수 없었던 홍씨 부인의 쉰 목소리에는 약간의 떨림이 묻어났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일개 서생에게 당하다니!’
분노와 함께 하늘을 뒤덮는 요기(妖氣)가 솟구쳤다.
“아악! 윤재성! 내 너를 죽이고 말겠다!”
“요괴 주제에 건방지구나!”
우르릉-!
묘사방(*廟司坊: 성황당이 있는 구역)이 있는 방향에서 보통 사람들은 들을 수 없는 춘혜부 성황신의 노기 띤 고함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홍씨 부인은 원한에 가득 차 여전히 엄청난 열기와 연기가 솟아오르는 객잔 쪽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느 곳의 고인이 윤재성을 돕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어, 그녀는 화를 삼키고는 소매를 휘둘러 성 밖으로 날아가려 했다.
“건방진 요괴야, 어딜 가려고 하느냐!”
두 야간 순시관이 거리 중간에 서서 칼을 뽑아 휘두르자, 음산한 귀기(鬼氣)가 서린 검광이 홍씨 부인을 뒤덮었다. 그녀는 피하지 않고 맨손으로 지옥도를 잡아채 두 순시관과 함께 날아올랐다.
검에서 손을 놓은 그녀가 공중에서 손톱으로 상대를 수십 번 긋자, 순시관들의 사지가 토막 났다. 홍씨 부인이 입을 열어 숨을 들이마시자, 그 음기가 전부 그녀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네 이년……!”
노성과 함께 향불의 힘이 섞인 금빛을 내는 빛 덩어리가 날아와 홍씨 부인의 맹렬한 요기와 충돌하며, 우레와 같은 폭발음이 났다.
콰광!
홍씨 부인은 흥하고 코웃음을 치더니, 그대로 성 밖으로 벗어나 10리 밖의 작은 산속으로 도망쳤다.
바로 춘혜부 성황신이 음양사(陰陽司)와 공과사(功過司) 기관장들을 데리고 실체화하여 나타났지만, 도망친 요물의 기운을 느낄 수는 없었다.
“망할 요괴 년! 화가 나 죽겠구나!”
성황신은 노기에 차 소리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매우 놀라 의아하게 여겼다.
‘대정국은 항상 태평한 나라였고, 그중 계주는 더욱이 민심이 평안한 곳이었는데 오늘 내가 담당하는 구역에서 저렇게나 괴이한 요물이 나타나다니! 게다가 내게 발견된 후에도 요괴가 도망칠 수 있다니! 저것이 방금 출현한 것인가, 아니면 전부터 있던 것을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인가?’
춘혜부 성황신의 안색이 침침하게 가라앉았다. 이대로 떠나고 싶지 않은 그의 법체는 공중에 뜬 채로 계속해서 요괴가 숨어든 산을 바라보았다. 공과사의 두 판관과 음양사 기관장은 그의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음양사 기관장의 두 눈은 공중에 떠서 음양의 기운을 이용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공과사의 문판관(文判官)과 무판관(武判官)은 한 손에 각각 장부와 판관붓을 들고 조금의 흔적이라도 발견하면 바로 그것을 묶어버릴 태세였다.
“저 요물이 벌써 완벽하게 숨다니…….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찾지도 못하게 되다니요?”
음양사 기관장은 놀라며 의혹에 휩싸였다.
춘혜부 성황신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산을 바라보다가 다시 성 쪽을 바라보았다.
“저 요괴가 춘혜부에서 악행을 저지르고도 나에게 발견되지 않았으니,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인간이 해를 입었는지 알 수가 없구나!”
두 판관과 음양사 기관장은 모두 굳은 얼굴로 입을 열지 않았다. 요괴가 방금 두 야간 순시관에게 한 짓은 그 요괴가 춘혜부 성황당을 안중에도 두지 않는다는 보여준 셈이고, 이는 그야말로 이들을 면전에서 모욕한 셈이었다.
성황당의 감찰권은 많은 제약이 있어, 어떤 요괴나 귀신들은 일시적으로 성황당 관리들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다. 개중 도력(道力)이 깊은 존재들이 기운을 숨기고 인간들 사이에 숨어드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저승의 두려움을 아는 요괴들은 사람을 해칠 때 너무 험악한 수단은 쓰지 않았다. 왜냐면 아기가 태어나면 집안의 어른들이 사당에 가서 기도하거나 조상께 제사를 지내면서, 아기가 태어난 날짜며 태어난 계기가 모두 저승의 명부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일단 사악한 것들이 음험한 수단으로 인간을 해치면, 저승의 명부가 빛나며 변하고 당직 관리들에게 이 모습이 발견된다. 이는 곧바로 기관장에 보고되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저승에서 모두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도력이 깊다거나 술법에 정통한 요괴들에게는 이를 피하는 방법이 없진 않았다. 예를 들면, 천천히 시간을 들여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다. 그중 가장 흔한 방법은 미색으로 상대를 유혹하여 당하는 사람 스스로 덫에 걸려들도록 하는 것이다.
춘혜부 성황신은 화를 이기지 못해, 소매를 휘둘러 금빛의 사슬을 불러내어 아래쪽 산을 향해 휘둘렀다. 사슬은 허상처럼 산의 암석과 흙을 통과해 그 지하를 휘저었으나 아무 소득이 없었다.
대략 일각(*15분) 정도가 지나자, 성황신과 그 수하들은 요괴의 종적을 놓쳤다는 것을 인정하고 성으로 돌아가 다시 계획을 짜기로 했다.
“일단 성으로 다시 가보세. 방금 그곳에서 치솟은 불길도 꽤 기이했어. 저승에 있는 책자를 다시 한번 샅샅이 살펴보게.”
일찍이 마음의 준비를 했다지만, 두 판관은 성황신의 말을 듣고 고생길이 열렸다며 속으로 우는소리를 했다.
책자를 한 번 살펴보라니. 춘혜부 인구는 20만이었다. 이는 저승의 관리라고 해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공과사를 비롯한 24개의 기관에서 모두 매달려도 며칠은 걸릴 것이다.
성황신은 물론 이런 사소한 업무에 친히 참여할 필요가 없었다.
객잔 쪽에서는 윤재성이 바닥에 쓰러져 몸을 말고 있었다. 신체의 강렬한 고통은 이미 사라졌으나, 그 여파가 아직도 그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윤재성의 체온은 기이할 정도로 높아, 온몸이 붉었으며 방금 떨어진 땀방울이 증발할 정도였다. 뱃속의 어떤 온화한 힘이 신체의 고통을 조절해주지 않았다면, 그는 아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흑…… 허억…….”
잠시 후, 고통이 전부 사라지고 윤재성의 체온도 천천히 내려가 고열에 시달리는 정도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짧은 한순간이었겠지만, 그에게는 숨 쉬는 일 분 일 초가 억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실제로도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던 게 확실했다. 왜냐면 방금 홍씨 부인이 반격당하며 객잔의 벽을 부수고 튕겨 나갔을 때 난 큰 소리가 이제야 사람들의 반응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방금 이게 무슨 소리야?”
“모르겠는데, 벼락이 친 게 아닌가?”
“이보게, 당신들 여인의 비명을 못 들었단 말인가?”
“난 들었다네, 정말 끔찍했지!”
“이쪽에 무척 큰 구멍이 나 있어!”
“벼락이 뚫고 간 건 아니고?”
“세상에, 이분은 윤 해원이 아닌가?”
“정말 그렇군!”
객잔의 두 종업원과 몇몇 손님들이 드디어 윤재성을 발견했다. 어떤 이가 달려와 윤재성이 아직 숨을 쉬고 있는 것을 확인했고, 이어 그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윤재성의 이마는 마치 끓는 것처럼 뜨거웠다.
“어서 가서 의원을 부르게!”
“참, 관아에도 신고해야 해!”
한밤에 일어난 소동으로 인해 거의 모든 손님이 깨어났고, 그중 어떤 이는 나와서 상황을 살펴보고 어떤 이는 방에 그대로 누워 있기도 했다. 물론, 양기와 수명을 빨린 몇몇 서생들은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침상에 누워 있었다.
한바탕 다친 이들을 수습하고 이 사건이 관아에 보고된 후에야 혼란이 수습되었다. 사람들은 등롱을 들고 밖에 나가 부서진 목판과 기와 등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곧 관원이 도착했다.
계방이 어제 겨우 걸렸는데, 해원이 공격을 받았으니 이는 절대 작은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