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96화 (96/892)

96화. 요괴를 베는 주문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객잔의 지붕 위에 춘혜부 성황신과 그 수하들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러 저승사자는 인간 세상의 관원들과 마찬가지로 사건을 조사하고 있었다. 이렇듯 두 세계의 사건 조사는 한쪽은 꿈에도 모르는 채로 진행되고 있었다.

“방금 화염이 솟아올라 요괴를 물리쳤는데, 객잔에서는 휘장 한 장 그을린 흔적도 없으니 기이한 일일세!”

성황신은 건물 안을 투시하여 객잔에서 윤재성이 머무른 방의 상황을 살피더니, 이어 시선을 돌려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진 윤재성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서생들은 저런 호연한 기운을 얻기 힘들고, 기운이 모여도 흩어지기 극히 쉽지. 한데 저 사람은 그 기운이 강할 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기까지 하다니, 참으로 드문 일이야!”

“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 사람은 결국 범인(凡人)일 뿐, 그러한 힘이 있은들 이를 이용해 요괴를 물리치기는 불가능합니다.”

음양사 기관장은 일찍이 근처에 도착하여 윤재성의 상황을 지켜보았으므로, 윤재성이 무공을 연마하지도 영기(靈氣)가 있는 자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윤재성은 탁월한 문인의 기운을 가진 데다 호연한 기상을 지녔으니, 이것만으로도 이미 보통 인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다.

“저 사람이 지닌 호연한 기운이 왕성하니, 그 요괴의 실체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잠시 후에 내가 직접 그의 꿈에 현몽(現夢)하여, 요괴에게서 뭔가 보았는지 물어보겠다.”

말을 마친 성황신은 수하들을 데리고 묘사방으로 돌아갔다.

성황신이 쓰는 현몽과 수선자(修仙者)들이 사용하는 입몽(入夢)은 얼핏 비슷하지만, 같은 술법이 아니었다. 전자는 귀신들의 타고난 능력이고, 후자는 도 닦는 이들이 수련 끝에 얻은 술법이었다.

한편 객잔에서는 윤재성을 살피던 의원이 그가 감기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열이 이미 전보다 많이 내렸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약을 마신 후 땀을 좀 흘리면 나을 거라고 설명했다. 그 후 윤재성은 극심한 피로로 다시 잠이 들긴 했지만, 의원이 온 후 확실히 상태가 나아졌기 때문에 객잔의 주인과 관원들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윤재성이 정신을 차렸을 때, 관원에게는 그저 붉은 옷을 입은 홍씨 부인이라는 여인이 자신을 공격했다고만 설명했다. 그도 해원이 미쳤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신이 본 것이 요괴라는 둥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시간은 어느새 사경(*四更: 오전 1~3시)이 되었다. 야경꾼의 소리가 멎은 뒤 윤재성이 묵는 방에 향불의 냄새가 나는 바람이 일더니, 성황신이 친히 강림했다. 다른 귀신들이 나타날 때와는 달리 그 어떤 음산한 기운도 내뿜지 않고서 말이다.

춘혜부 성황신은 윤재성의 곁을 지키다 지금은 탁자에 엎드려 잠이 든 객잔의 점원을 한 번 쳐다보고는, 다시 윤재성을 바라보았다. 이어 성황신이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그 모습이 모호해지며 곧 사라졌다.

침상에 누워 단꿈을 꾸던 윤재성이 미간이 즉시 찌푸려졌다.

꿈속에서 그는 자신이 캄캄한 실내의 침상에 앉아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앞에는 상반신이 어둠에 가려 희미한, 조정의 관원처럼 보이는 이가 탁자 앞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윤재성이 자세히 보려 할 때마다 상대의 모습은 더욱 모호해졌다. 게다가 상대방에게서 그를 압박하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이곳이 어디입니까? 나리께서는 누구신지요?”

“두려워하지 말게, 윤 해원. 나는 이 춘혜부의 성황신이고, 자네에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네.”

분명히 앞에서 흘러나온 성황신의 목소리는 마치 종소리처럼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이는 윤재성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거의 모든 사람은 꿈속에서 정신이 맑지 않고 감정의 폭도 넓어져, 때때로 비논리적이거나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곤 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성황신이라는 것을 듣자, 윤재성은 매우 놀라 다급히 공수하며 예를 행했다.

“소인, 성황신을 뵙습니다!”

“음, 윤 해원. 자네에게 묻겠네. 방금 객잔 내에서 자네를 공격한 그 여인의 용모를 보았는가?”

이런 종류의 일은 다른 사람에게는 사실대로 말할 수 없지만, 성황신에게는 사실대로 말해야 했다. 동시에 윤재성은 방금 자신이 요괴에게 목숨을 잃기 직전에 성황신이 자신을 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먼저, 목숨을 잃을 위기에서 소생을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방금 그 여인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옵고, 용모에서 어렴풋이 핏빛의 해골 같은 것이 겹쳐 보였습니다. 또한, 그녀는 저 자신을 ‘홍씨 부인’이라 칭했습니다.”

성황신이 눈썹을 찌푸렸다.

“홍씨 부인?”

“그렇습니다. 당시 의식도 흐렸고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 외에는 저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성황신은 미소 지으며 생각했다.

‘귀신 한 번 본 적 없을 속세의 인간이 요괴를 만났으니. 그나마 호연한 정기(正氣)라도 가지고 있어 망정이지.’

그러나 성황신은 조금 전의 화염을 떠올리며, 이 윤재성이라는 자에게 어떠한 기이한 만남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 가지 물을 것이 더 있네. 윤 해원, 그 요괴가 자네를 해치려고 할 때 기이한 화염이 나타나 요괴를 공격했는데 객잔에는 불에 그을린 물건이 하나도 없으니, 이전에 어떤 고인(高人)이 자네에게 호신(護身) 부적이라도 준 적이 있는가?”

성황신이 이렇게 묻자, 윤재성은 그 위험했던 순간에 자신을 구한 것이 성황신이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윤재성이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계연이었고, 그다음에 떠올린 이는 한입에 대추나무를 반 넘게 먹어 버렸던 그 노인이었다.

“감히 속이지 않겠습니다. 소생이 연이 닿아 벗을 한 명 사귀게 되었는데, 그분은 귀신이나 요물들조차 그분에게 감복하게 하는 능력을 지니셨으며, 확실히 속세의 범인이 아닙니다. 그분이 작별할 때 제게 서신을 한 통 남기긴 하였는데, 그저 그분의 동의 없이는 성함을 말씀드릴 수가 없어…….”

성황신은 원인이라도 알았으니 되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람의 비호가 있었던 게 확실하군. 틀림없이 그 당시에도 윤 해원의 기운이 뛰어난 것을 보고 도와주었겠지.”

성황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윤재성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까닭이 있겠거니 했다.

“의혹을 풀어주어 고맙군, 이만 가겠네!”

꿈속에서 성황신이 그를 향해 가볍게 공수하였고, 윤재성도 황급히 인사했다. 곧이어 꿈이 흩어지며 윤재성은 다시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 * *

균천부(均天府)에 있던 계연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하고 의식 안으로 들어가, 친우인 윤재성에게 속하는 백돌을 조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바둑돌 표면을 덮고 있던 단기(丹氣)가 흡수되면 곧바로 보충해주면서 말이다.

그가 이렇게 조심스러워하는 이유는, 백돌의 뜨거운 열이 계속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계연도 자신이 이렇게 지키고 선다고 해서 별 차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따로 제지하지만 않는다면, 바둑돌은 스스로 단로(丹爐) 옆으로 가서 흘러나오는 단기를 한 가닥씩 흡수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친한 벗에게 변고가 생겼는데, 어떻게 편히 잠들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아예 지키고 서서 오행(五行)의 기운과 단전(丹田)의 법력을 단련하기 시작했다.

비록 예전에 만났던 늙은 용도 계연의 친우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상 한 번 대화를 나눈 것에 지나지 않아 교분이 깊다고 할 수는 없었다.

하늘에 여명이 밝아올 때가 되자, 백돌의 온도가 조금씩 내려가며 상태를 회복해 계연은 마음을 놓았다.

의식 속의 세상에서 빠져나와 가부좌를 틀고 있던 계연은, 침대 위로 드러누웠다.

하룻밤 내내 자신을 긴장시켰던 일들을 떠올리며 계연은 자조하듯 웃었다.

“삼매진화라……. 보통 일이 아니구나.”

곧이어 계연의 안색은 다시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윤 훈장님, 대체 어떤 것을 건드린 거예요?”

조금 전 삼매진화의 화염이 홍씨 부인과 충돌했던 그 순간, 계연도 그 요기를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 그 원한에 가득 찬 울부짖음이 어렴풋하게 들려올 정도였다.

윤재성은 이미 요괴의 원한을 샀고, 후에 분명 춘혜부 성황신도 소동을 알아차리고 왔겠지만, 그 요괴를 잡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만약 잡지 못했다면?’

계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먼 곳의 물은 당장 갈증을 풀지 못한다고, 그와 윤 훈장은 주(州) 하나만큼 떨어져 있고 직선거리로도 이천 리가 넘었다. 게다가 중간엔 산맥과 강, 온갖 지형이 놓여 있어 길을 조금만 헤매도 제시간에 닿지 못할 것이다.

삼매진화를 이용하는 방법은 두 번은 쓸 수 없었다. 윤 훈장이 단로 안의 진화(眞火)에 타죽을 가능성이 있었고, 여전히 요괴를 죽일 수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때는 요괴도 그에 관한 준비를 하고 올 것이었다.

게다가 그 요괴는 도력이 깊어, 계연이 직접 간다 해도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였다. 그나마 그의 공격이 갑작스러워 요괴가 채 방비하지 못한 순간에 삼매진화에 크게 다치게 된 것이다.

화염이 스쳐 지나가며 실제로 불에 탄 것은 아니라 해도, 절대 가볍게 볼 화염이 아니었다. 단로 내의 무궁무진한 진화의 화염을 제대로 맞았으니, 가볍게 다치진 않았을 것이다.

계연은 계속해서 친우의 안전을 확보할 대책을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좋은 것은 요괴를 베어버리는 것이었다. 윤 훈장은 그에게 중요한 백돌이었을 뿐만 아니라, 진실한 벗이기도 했다.

‘벤다고?’

방금 떠오른 생각은 계연으로 하여금 어떤 것을 의식하게 하였고, 이어 그는 침상으로 시선을 던졌다.

이제 계연이 길을 나설 때마다, 넝쿨검은 공중에 부유한 채로 그의 등 뒤에 형태를 숨기고 있었다.

그러나 선검(仙劍)은 영지(靈智)를 지녔기 때문에, 천록서(天籙書)처럼 검이 스스로 몸을 숨기면 보통 사람들은 물론, 수련이 일정한 경계에 이르지 못한 수선자나 요괴들도 볼 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천록서도 영지를 흉내 낸 문자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검 자체에 영지를 지닌 선검은 정체를 숨기기 훨씬 쉬웠다. 게다가 천록서보다 훨씬 주동적이어서 주인을 제외하고는 그 실체를 볼 수 있는 자가 아주 적었으니, 형태를 숨길 수도 있는 넝쿨검은 그야말로 신통하다 할 수 있었다.

계연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알아차린 침상 곁의 넝쿨검은 공중으로 떠올라 그의 곁으로 날아갔다.

‘내가 비록 그 요괴와 정면 대결할 실력은 안 되지만, 그래도 내게는 넝쿨검이 있어! 준비한다면 기회가 없지는 않을 거야.’

여기까지 생각한 계연은 다시 자리에 앉아 넝쿨검을 검집에서 꺼냈다.

“이번 일은 너만 믿으마!”

우웅-.

주인의 말뜻을 다 알아듣진 못했지만, 넝쿨검은 그래도 대답했다.

계연은 깊게 심호흡한 다음, ‘칙(敕)’자를 입에 머금기만 하고 소리로 내지 않았다.

곧이어 계연의 의식에 존재하는 세계에, 천지의 기운이 금교(金橋)를 따라 올라왔다. 이 기운은 계연의 법력을 따라 계연의 오른손 손가락 끝으로 옮겨갔다.

손가락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지더니, 손끝이 검붉게 물들기 시작하며 피가 배어 나왔다.

계연이 오른손 검지를 검신(檢身)에 올리자, 천지의 기운과 법력, 그의 피가 함께 뿜어져 나오며 전서체(*篆書體: 한자의 고대 서체 중 하나)로 된 글자 하나를 반복적으로 휘갈겼다.

《참(斬: 베다), 참, 참…… 참, 참, 참…….》

한 글자를 완성할 때마다, 다음 글자를 쓰는 게 더욱 어려워지며 소모되는 법력의 양이 커졌다. 뒷부분에 이르자 단전의 법력이 모두 소모되어, 계연은 단기의 일부분을 법력으로 전환하여 한 글자를 쓰고, 다시 그것을 반복했다.

전부 쓰고 나자, 검신에는 총 49개의 ‘참’ 자가 새겨졌다. 안색이 창백해진 계연은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로 어지러움을 느꼈다. 바깥의 하늘을 보니 이미 정오를 삼 각(*45분)이나 지난 시각이었다.

계연은 마지막 자를 쓰고 나서 어지러움을 억누르며, 바둑돌을 쥐어 끌어낸 천지의 기운을 검신으로 이끌어 봉인했다.

천지의 기운이 넝쿨검 위의 핏빛 글자에 섞여 빛나며 천천히 사라지더니, 검신은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왔다.

“허억…… 헉…….”

계연은 약간 힘이 빠져서 침대 곁의 벽에 기대어 앉았다. 손을 뻗어 얼얼한 코를 만져보니, 역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전에 산에서 과일을 베어낸 일을 빼면, 넝쿨검은 3년간 영지를 가졌으면서도 그 날카로움을 숨겨왔다. 계연이 세상의 기운을 이용해 주문을 외운 데다가 49자의 ‘참’ 자를 연달아 썼으니, 이것이 넝쿨검의 기운과 합쳐지면 그 요괴를 죽일 수 있을 것이다.

영지를 지닌 데다가 외양도 바꿀 수 있는 요괴이다 보니, 계연 자신도 확신이 없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비록 이 방법이 통할지 확신할 수 없다 해도, 글씨를 쓰던 순간 반드시 죽이겠다는 신념 외에는 어떤 잡념도 없었기 때문에 넝쿨검의 힘을 축적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넝쿨검은 이제 침상 앞에 가만히 떠올라 소리를 내거나 날아다니지 않고, 무거운 기운을 누르듯 날카로움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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