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선검이 공중에 떠오르니 흑풍골이 벌벌 떠네
계연은 휴식을 취한 후에 검집을 집어 넝쿨검을 그 안에 넣은 다음, 침상 머리맡의 창문을 열면서 고개를 돌려 넝쿨검에게 당부했다.
“삼매진화의 공격에서 그리 쉽게 회복하진 못할 거야. 어서 윤 훈장님이 계신 곳으로 가서, 진화의 기운을 이용해 그 요괴를 찾아 죽여야 해! 그것이 둔갑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 이 주문을 사용할 기회는 한 번뿐이며, 그 후에 너는 이전의 실력으로 돌아올 거야. 그러니 만약 단칼에 끝낼 수 없다면 더는 미련을 갖지 마!”
우웅-!
넝쿨검이 당당한 기세를 드러내며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대답했다. 이어 검신을 둘러싼 2촌(*약 6cm) 너비 정도의 공간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가거라!”
계연은 약간 피곤한 기색으로 말했다.
슈욱!
넝쿨검은 한 자락의 빛이 되어 창문 밖으로 날아가 하늘을 향해 떠올랐다. 계연이 호흡을 몇 번 하는 사이에 검은 하늘로 높게 치솟더니, 바람을 타고 계주 춘혜부 방향으로 날아갔다. 계연의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였다.
영지는 기르기도 완성하기도 힘든 데다가, 연분(緣分)이 이어지는 것은 수행 중 득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현묘한 일이다. 게다가 이 세계에 선기(仙器)나 영기를 띤 보물이 많겠는가?
넝쿨검의 영지가 이미 완성되었고 또한 넝쿨검이 기민했기 때문에, 계연과 같이 분수를 알고 균형을 지키는 이에게 선검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계연은 자신의 선검이 저 멀리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부러워라…….”
다시 한번 어지러움이 밀려와 계연은 머리를 흔들며 침상으로 돌아갔다. 가부좌로 앉은 그는 곧 도기결을 펼치며 영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영기가 조금씩 모이며 신체를 편안하게 하자, 그가 느끼던 불편함이 점차 사라졌다.
* * *
시간을 돌려 전날 밤으로 돌아가 보자.
계주 춘혜부와 두명부의 경계에 자리한 와풍산(瓦風山)에는 흑풍(黑風)골이라 불리는 골짜기가 하나 있었는데, 이는 사시사철 햇빛이 들지 않고 산바람이 세게 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곳의 백성들은 만약 골짜기로 미끄러져 떨어지기라도 하면 혼자서는 올라오기가 힘들기에, 산에 들어가더라도 흑풍골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흑풍골에서 목숨을 잃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날 밤 흑풍골에서는 어슴푸레한 황색 연기가 이리저리 떠돌더니, 땅 위로 솟아올라 비틀거리는 홍씨 부인이 되었다. 동시에 그녀의 왼손에 쥐고 있던 황색 부적이 재가 되어 사라졌다.
“허억…… 헉……!”
그녀가 덜덜 떨리는 오른팔을 들어 바라보자, 손톱 전체는 이미 그을려 구부러졌고, 손톱으로부터 이어진 오른팔도 완전히 새카매져 있었다. 신체의 많은 부분이 핏빛의 해골로 돌아왔고, 그 외에도 까맣게 탄 부분이 적지 않아 마음이 쓰라렸다.
“아니, 홍씨 부인!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범상치 않은 요기를 느낀 어떤 이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경악한 얼굴로 홍씨 부인의 낭패스러운 모습을 바라보았다.
“헉…헉……. 실수로, 도술에 당했다……. 어서 와서 부축해라.”
이에 그자는 급히 홍씨 부인을 부축해 흑풍골 아래쪽의 동굴로 들어갔다. 동굴에는 또 다른 공간이 있었다.
동굴에는 핏빛 기운이 만연했지만, 그 사이로 드넓은 공간이 드러났다. 정자나 누각은 없었지만, 양탄자가 깔려 있고 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도 있었다. 굽이진 동굴 안쪽 길에도 각각 벽실(壁室)이 들어차 있었다.
“음?”
“홍씨 부인……?”
“이게 무슨 일입니까?”
“춘혜부 성황신에게 이런 능력이 있었단 말입니까?”
“혹시 그 늙은 교룡(蛟龍)이 손을 쓴 게 아닐까요?”
“그건 아니야, 만약 교룡이 나섰다면, 하핫! 홍씨 부인은 아마 돌아오지 못했을걸!”
홍씨 부인의 동굴 안에는 이 상황을 놀랍고 기이하게 여기는 목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모두 어쩌다가 그녀가 이렇게 큰 상처를 입게 되었는지 놀라고 있었다.
“윽……! 멋대로 추측하지 마라, 일부는 춘혜부 성황신이 남긴 상처지만, 대부분은 일개 서생에게 방비할 새도 없이 당한 거니까!”
“속세의 인간에게요?”
“그래, 한낱 서생이 그 정도로 호연한 정기를 가졌다는 건 어떤 고인에게서 호신 부적 같은 거라도 얻은 것이 분명해. 내가 잠시 한눈이 팔려 제대로 확인도 해보지 않은 틈에 화상을 입었어…….”
그 화력을 다시 떠올리자 홍씨 부인은 조금 두려워졌다. 하지만 그 불길이 두렵긴 했어도 대항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비록 대비하지 못한 채로 그 위력을 고스란히 체험하게 되었지만, 상처도 그리 위중하지 않았다. 그저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참기 어렵고, 쉽게 없어지지 않을 뿐이었다.
다만 걸리는 것은 그 순간 어렴풋한 의식 속에서, 홍씨 부인은 자신이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친 불바다에서 나온 고작 한 줄기 화염에 당했다고 착각했었다.
홍씨 부인은 요기를 만연하게 풍기는 이들이, 겸손하거나 건방진 태도로 각자의 벽실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보았다. 진심 어린 걱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질문들은 홍씨 부인을 부끄럽고 짜증 나게 했다.
그녀는 자신을 부축하던 남자에게 물었다.
“나는 이만 방으로 돌아가 상처를 치료하겠다. 동굴에 아직 먹을 게 있느냐?”
이때, 동굴 내의 핏빛이 조금 약해지며 동굴 밖의 흑풍골보다 동굴 안이 좀 더 밝아졌다. 드러난 남자의 얼굴은 윗부분만 인간의 형상이고, 아랫부분은 털이 숭숭 나고 뾰족한 송곳니가 달린 야수의 모습이었다.
“아직 네 명이 남았습니다. 모두 정원부(定元府) 쪽 한 강호인 무리에게서 사온 놈들로, 그중 두 놈은 무공을 닦은 속세의 인간이라 아직 기운이 왕성합니다.”
이는 세속인들의 탐욕과 무지를 이용해, 터주신들과 순시관들을 피하는 방법이었다. 확실히 이들은 산에 틀어박혀 도를 닦으며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요괴가 아니었다. 이런 일도 한두 번 해온 게 아닌 것이 분명했다.
“음, 전부 내 방으로 보내라. 상처가 낫길 기다렸다가 내가 직접 식량을 찾으러 가겠다.”
홍씨 부인은 아직 네 명이 남았다는 말을 듣고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헤헤, 부인께서 원하시면 뭐든지요!”
남자는 지난날의 아리따운 자태를 잃고 더없이 낭패스러운 모습을 한 홍씨 부인을 부축해 동굴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 그는 홍씨 부인이 분내가 배어 있는 동굴 방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후에 자리를 떴다.
요괴 동굴의 또 다른 갈림길 깊은 곳에 있는 한 석실에는 육중한 돌문이 그 내부를 막아 놓고 있었다. 문 안에는 절망스러운 얼굴을 한 남녀들이 구석에서 맥없이 웅크리고 있었다.
본래 스무 명이 이곳에 갇혀 있었는데, 2주가 지나자 이들 몇 명만이 남았다.
음식은 주지 않고 매일 물 두 통만 제공되었다. 그러나 굶주림은 부차적인 문제였고, 진정 그들을 갉아먹는 것은 바로 공포였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조상들의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사람을 잡아먹으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는 바로 그 요괴에게 붙잡혀 온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괴들이 데리고 나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밖에서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으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요괴에게 죽은 것은 아니었다. 이들 중 세 명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
똑…… 똑…….
석실 위에 달린 종유석에서 물이 방울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깜깜한 어둠뿐인 석실 안을 더욱 적막하게 했다.
곧 먼 곳에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석실 내에 남은 네 명의 인간들은 즉시 팽팽하게 긴장하여 호흡이 떨려왔다.
“요, 요괴다! 요괴가 왔다!”
“흑…… 흑흑…….”
“으허억……!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반만 인간의 얼굴을 한 요괴는 석실 앞에 도착해 안쪽을 바라보았다. 안쪽에서는 오줌 지린내가 났는데, 석실 내에 감금되어 따로 공간이 없으니 누군가 실례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하하……!”
요괴가 소리 내어 웃은 후 손을 뻗어 밀자, 석실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문이 지면의 돌과 맞닿으며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마찰음을 냈다.
“더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너희들은 이제 이곳을 벗어날 수 있어.”
반쪽 얼굴의 요괴는 무공을 익힌 두 남자를 훑으며 다시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너희 둘은 어쩌면 죽기 전에 여복을 좀 누릴 수도 있을 텐데……. 흠, 아무래도 오늘은 그날이 아닌 것 같구나.”
반쪽 얼굴의 요괴는 홍씨 부인의 상태를 떠올리며, 오늘은 아마 흥미가 없을 거라고 추측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고 건강한 남녀 넷이 혼미한 채로 홍씨 부인의 벽실 안으로 옮겨졌다. 그들의 젊은 얼굴을 바라보던 홍씨 부인은 반쪽 얼굴의 요괴가 떠나자마자 그들을 향해 다가갔다.
후우욱……!
홍씨 부인이 입을 열어 한 번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숨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핏빛의 안개 같은 것이 남녀 네 명 각각의 일곱 개의 구멍에서 흘러나왔다. 정신을 잃은 이들의 손발에 경련이 일어나며 이들의 피부 가죽이 점점 쪼그라들더니, 점차 이들의 발버둥이 약해졌다.
대략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그들은 완벽한 네 구의 시신으로 변했다. 홍씨 부인의 벽실 안은 짙은 핏빛의 안개가 자욱했다.
동물의 가죽을 깐 침대 위에 누운 홍씨 부인은 천천히 토납(*吐納: 입으로 더러운 기(氣)를 토하고 코로 신선한 기를 마시는 수련술)을 시작했다. 흑풍골에는 영기가 한 가닥씩 동굴로 모여들며 홍씨 부인의 벽실로 날아 들어왔다.
홍씨 부인이 다시 호흡하자, 영기와 핏빛 안개가 뒤섞이며 그녀의 작고 빨간 입술을 통해 체내로 들어갔다. 그을린 반쪽 몸 위를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빨간빛이 자욱하게 감쌌다.
와풍산의 하늘이 밝아오며, 태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높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산골짜기 깊은 곳에는 요사스러운 기운이 가득했다.
미시(未時: 오후1~3시)에 이르러 홍씨 부인은 마침내 상처를 치료하고 수련을 마쳤다. 동굴 안의 핏빛 안개는 이미 공중으로 사라졌고, 그녀도 이제 화염에 당한 통증을 겨우 참을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다만 마치 곧 큰 재난이 닥칠 것 같은 느낌이 들며, 홍씨 부인은 이유 없이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 화상과 관련이 있나?”
수행한 세월이 짧지 않은 해골 요괴다 보니, 그녀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포악한 영지를 지녔어도 닥쳐올 일은 희미하게나마 미리 감지할 수 있었다.
그 춘혜부 성황신은 토둔(*土遁: 도가(道家)의 술법인 오둔(五遁) 중 하나로, 땅속으로 숨어드는 술법) 부적을 알아채지 못했으니 이 불안감은 성황신과 연관된 것이 아닐 것이다. 강에 사는 늙은 교룡은 그 강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 외엔 신경 쓰지 않았고, 신의 반열에 올랐다곤 하나 그도 결국 자신과 같은 요물이었다. 아마 그 교룡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를 것이다.
고공(高空)에 부는 세찬 바람에는 어느새 한 주(州)를 넘어 날아온 넝쿨검이 올라타 있었다. 그 검집에는 ‘영운청등장봉만장(靈韵靑藤藏鋒萬丈: 영험한 넝쿨이 만 장(丈: 한 장은 약 3m)의 날카로움을 숨기다)’라는 여덟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중 ‘장(藏)’자는 흐르는 빛에 휩싸여 사라지고 있었다. 곧 용솟음치는 검의(劍意)가 실체를 드러내며 검신을 뒤덮더니, 열 장 주변의 바람이 찢겨 나갔다.
요괴들의 동굴에서는 홍씨 부인이 전에 없던 예감 때문에 좌불안석의 상태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녀는 더는 체면을 차리지 않고 벽실을 나와 동굴 입구에 있는 정원의 돌탁자에 앉았다.
“내가 물어볼 것이 있으니 모두 나와라!”
홍씨 부인이 한 번 소리치자, 동굴의 각 방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하, 홍씨 부인께서 이제 회복하셨습니까?”
“내가 보기엔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일인가?”
세 개의 요기가 널리 퍼지더니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 정원에 도착했다. 그들은 예전 모습대로 완벽하게 회복한 홍씨 부인을 훑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