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98화 (98/892)

98화. 영령한 검이 귀신을 돕다 (1)

“흥, 다음 계절의 식량은 내가 책임지고 준비해오지. 지금은 너희에게 물을 것이 있다.”

여기까지 말한 홍씨 부인은 기억을 더듬으며 의논하듯이 물었다.

“의자와 침대를 태우지 않고, 장막이나 진흙도 태우지 않으며 회백색이 감도는 붉은 화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

주변의 요괴들은 다친 홍씨 부인의 모습을 보았지만, 상처를 제대로 보기 전에 그녀가 벽실로 들어가 버렸으므로, 이제야 약간 호기심이 생겼다.

“그런 화염도 있단 말입니까?”

“진화(眞火)의 일종이 아닌가?”

“그렇지만 실체 있는 것들을 태우지 않는다니?”

세 요괴는 한 마디씩 입을 열었다. 이를 들은 홍씨 부인은 비웃으며 소매를 들어 올려 그을린 흔적이 남은 오른팔을 보여주었다.

“이걸 보고도 실체를 태우지 않는다고 할 수 있느냐?”

이를 본 요괴들은 원인을 알 수 없어 입을 다물었다.

그중 한 여자 요괴가 입을 가리고 웃음 지었다.

“홍 언니께서 겁에 질렸나 봐요, 건드리면 안 될 고인이라도 건드렸나? 대정(大貞)에서 이리 오랜 세월 숨어있었는데, 옥회산 정도는 돼야 선문(仙門)으로 좀 쳐주지, 어디…….”

챙!

바로 그때 높은 하늘에서 마치 활시위가 떨리는 소리와 흡사한, 검집에서 검이 뽑히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산을 통과한 검이 그대로 요괴들의 동굴을 향해 날아왔다.

이 소리를 들은 네 요괴는, 오래전 자신들이 보잘것없는 요물이었을 때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치는 소리에 오들오들 떨던 그때의 공포를 떠올렸다.

두피가 저릿해지는 순간, 그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요기를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뿜어냈다. 이어 네 요괴는 각각 동굴의 네 방향을 향해 전광석화처럼 흩어졌다.

쉐에엑!

다음 찰나, 세 요괴의 시야는 온통 은빛으로 가득 찼다.

“참(斬)!”

천도(天道)를 집행하는 듯한 위엄 어린 목소리가 속삭이듯 담담하게 울려 퍼지며 빛이 다가왔다.

이 순간, 요괴들의 동굴 안은 어둡지 않았다. 동굴 위쪽 절벽 십수 장(丈) 높이에 일 장 너비의 구멍이 나며 오후의 햇빛이 동굴로 비쳐들었기 때문이다.

이어 홍씨 부인의 요기가 눈 녹듯 사라졌다.

둔갑한 세 요괴의 안색이 잿빛이 되더니, 이들은 떨리는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았다. 백 장(*약 300m) 높이의 공중에서부터 한 자루의 선검이 흑풍골을 향해 오고 있었다. 검 끝의 날카로움과 검의(劍意)의 충만한 기세가 한낮의 뙤약볕에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주(州) 하나를 넘어온 넝쿨검은 홍씨 부인을 발견한 순간 즉시 고공에서 낙하해 요괴를 베었다.

만 장(丈)에 이르는 검광이 지나가고, 홍씨 부인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신체와 혼이 절멸(絶滅)했다.

넝쿨검은 검집을 옆에 두고 고공에 떠서 아래의 세 요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넷이었다. 아직 요괴 동굴의 깊은 곳에는 겁에 질려 숨어있는 반쪽 얼굴의 요괴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가장 날카로운 첫 공격이 끝나고 넝쿨검이 검기를 조용히 거두어들인 후에도, 무형의 검의(劍意)는 태양이 빛을 잃을 정도로 여전히 하늘 저편을 물들이고 있었다. 아래에 서 있는 네 요괴는 보잘것없는 요물이 벼락을 맞은 것처럼, 움직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조금이라도 경거망동한다면, 하늘을 뒤덮는 살기가 자신들을 향해 오리라는 것을 홍씨 부인을 보며 깨달았다.

고공에 떠 있던 넝쿨검은 의혹을 느꼈다.

주인은 자신에게 삼매진화에 화상을 입은 요괴를 죽이라고 명했다. 그러나 일격에 요괴를 죽인 후 몇 명의 요괴가 더 나타날 거라고는 알려주지 않았다.

넝쿨검은 주인이 검을 처음 휘두를 때의 날카로움이 사라지면, 더는 싸우지 말라고 한 말을 떠올렸다. 그러나 아래쪽의 요괴들은 자신을 보며 움직일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굳이 서둘러 돌아갈 필요가 있겠는가? 겁에 질린 건 자신이 아닌데 말이다!

요괴들은 두려워 간담이 서늘해지는 와중에도 억지로 정신을 붙잡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선검은 자신들을 죽일 생각이 없는 듯했고, 검의 주인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움직이지 마. 저건 홍씨 부인을 노리고 온 선검이야. 홍씨 부인을 죽이라는 것 외에 주인이 다른 명령을 내리진 않았을 거야, 그러니 저렇게 고공에 떠 있기만 하지…….”

그래도 같은 요괴라고 다른 이들을 걱정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요괴들이 멍청한 짓을 저질러 자신을 끌어들일까 하는 걱정에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 인제 어쩌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해?”

또 다른 여자 요괴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

“기다려! 선검이 인내심을 잃고 스스로 떠날 때까지. 아니면 뱀요괴 네가 한번 도망쳐 보든가. 나와 혼하(渾河)는 말리지 않을 테니.”

뱀요괴는 화를 내면 제 몸의 요기가 움직여 선검이 오해라도 할까 봐, 차마 화를 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쪽에 서 있던 요괴가 원망을 담아 불평했다.

“도대체 홍씨 부인은 어떤 존재를 건드린 거야? 어쩐지 우리를 불러낼 때부터 이상하게 불안해하더라니!”

“큰일이야. 선검의 기세가 저렇게나 강하니, 이미 성황신 같은 작자들에게 들켰을 거야!”

“성황신 같은 귀신들과 한판 붙는 한이 있더라도, 이유도 없이 저 검 아래에 목숨을 잃을 수는 없어.”

세 요괴가 나눈 대화 때문인지, 고공에 떠 있던 넝쿨검의 검 끝이 회전하여 가장 마지막에 입을 연 요괴를 향했다.

세 요괴는 마치 몸이 굳고 벙어리가 되는 저주에라도 걸린 것처럼, 모골이 송연하여 숨조차 내쉬지 못했다. 검 끝에 놓인 ‘혼하’라는 이름의 요괴는 안색이 뻣뻣해지며 우는 것보다 흉한 표정이 되었다.

* * *

춘혜부 성안.

성황신의 법체는 성황당 높은 하늘에 떠서 두명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그곳에서 날카로운 검광이 번뜩이며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기가 가득 퍼졌기 때문이다.

그 방향에 있는 지역은 춘혜부에 속한 변방이었다. 현(縣)의 성황신이 담당하는 지역이라고 해서 그가 출입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비록 종속 관계는 아니지만, 한 부의 성황신이면 그 정도의 위엄은 세울 수 있었다.

성황당 안의 초혼종이 울린 잠시 뒤, 24개 기관 중 16곳의 기관장이 모였고, 이어 주간 순시관이며 음피산(*陰避傘: 저승사자들이 영혼이나 귀신을 불러모으는 우산)을 받쳐 든 저승사자들도 모여들었다.

“가라!”

춘혜부 성황신이 소매를 펄럭이며 향불의 힘과 터주신 고유의 신령함을 이용해 수하들을 한 번에 이동시켰다.

두명부의 성황신도 그와 같은 결정을 내렸고, 두 개의 부가 만나는 경계에 놓인 몇 곳의 큰 현(縣)의 성황신들도 법체를 드러내어 각 기관의 수하들을 관할 경계로 보내며 만약 필요하다면 필사적으로 싸울 결심을 드러냈다.

와풍산은 두 개의 부의 경계에 놓인 데다 많은 현이 교차하는 곳에 있었다. 양쪽 부에서 각각 신령한 빛이 날아오더니, 두명부 성황신과 춘혜부 성황신의 법체가 드러났다. 그들은 잠시간 서로를 바라본 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할 데 없이 강력한 검의를 가진, 한 자루의 선검이 공중에 떠서 와풍산의 흑풍골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 끝은 아래쪽의 뻣뻣이 굳어 있는 둔갑한 네 명의 요괴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스슥-!

솨앗-!

이때 또 다른 세 개의 신령한 빛이 날아왔다. 두명부와 춘혜부에 속한 세 현의 성황신들이 각각의 수하들을 데리고 나타난 것이었다. 심지어 근처 다른 세 현의 성황신들도 담당 지역을 떠나 수하들을 데리고 법체를 드러내며 날아왔다.

그러자 상황이 갑자기 미묘해졌다.

와풍산에는 사방에서 온 귀신들이 모였고, 흑풍골 안에는 네 요괴가 여전히 긴장한 채 굳어 있었다. 그들은 이번 생에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암담한 상황을 가정해 본 적이 있으나, 이런 상황은 그중에 없었다.

넝쿨검은 자리를 떠나지도 않고, 검집으로 들어가지도 않은 채 공중에 떠서 그 날카로움을 감추고 대기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귀신들과 요괴들 모두 넝쿨검의 다음 움직임을 기다리는 듯, 한쪽은 선검을 주시하며 날아오고 한쪽은 선검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춘혜부 성황신은 흑풍골과 그 위쪽의 산체에 거대하게 뚫린 구멍을 보고, 속으로 저것이 바로 그가 조금 전 느꼈던 선검의 위세라고 확신했다.

‘설마 선검이 주인의 명을 받아 목표를 제거했지만, 다른 요괴들이 있는 것을 보고는 이에 대한 명은 받지 않았으니 요괴들을 이곳에 누르고만 있는 것인가?’

춘혜부 성황신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어찌 되었든 저 요괴들을 도망가게 둘 순 없다고 결심했다. 그는 성황신답게 흑풍골 아래에서 올라오는 원한과 악기(惡氣)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저들은 진정으로 흉악하기 짝이 없는 요괴들이었다.

이 중에서는 주부의 성황신인 춘혜부 성황신의 위세가 제일 드높았다. 이에 그는 공중의 선검에 공수하여 예를 보인 후 즉시 입을 열었다.

“우리를 도와 요괴를 눌러줌에 대해 영령한 선검에게 감사하네. 이분들과 나는 모두 현과 부의 성황신들로서, 저 사악한 요괴들을 반드시 섬멸하겠네.”

말하는 동시에 그의 법체에 금빛이 반짝이며 향불의 힘이 법력과 함께 타올랐다. 수하인 저승의 각 기관장은 이미 요괴들의 모습을 저승의 책자에 상세히 묘사하여, 요괴들이 담당 지역 내에서 둔갑할 수 없도록 준비를 마쳤다.

“마땅히 그리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제 수하들은 함께 요괴들을 처벌하겠습니다!”

“양 부와 각 현의 저승사자들은 쇄혼진(鎖魂陣)을 펼쳐라!”

음피산이 한 자루씩 솟아올라 태양을 가렸고, 이에 따라 판관붓, 타혼편(*打魂鞭: 육신을 통과해 영혼을 때리는 채찍), 정사책(*定邪冊: 사악한 것을 바로잡는 저승의 책자), 여의관(*如意冠: 공력(功力) 높은 도사들이 쓰는 머리에 쓰는 관) 등을 비롯한 저승의 온갖 법기(法器)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많은 귀신이 위세 좋게 제각각 법력과 향불을 운용하자, 신령한 빛이 번뜩이며 서로 연합하려는 형세를 취했다.

와풍산과 흑풍골의 산수초목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아래쪽에 있던 네 요괴는 더는 기다리지 못하고 온몸의 요기를 솟구쳐 올렸다. 그와 동시에 한 요괴가 포효했다.

“각자 도망쳐!”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요사스러운 빛이 여러 귀신의 법력이 깃든 빛과 충돌했다. 요괴들은 요풍(*妖風: 요괴가 불러일으키는 바람)을 일으켜 귀신들의 공격을 몇 번이나 필사적으로 버텨내면서 와풍산을 떠나려 했다.

요괴들이 막 산꼭대기를 떠나려는 찰나,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던 선검이 그들을 베어버릴 듯한 검광을 뿜어냈다. 이에 놀란 요풍은 마치 제동이 걸린 것처럼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하하하! 얌전히 있거라!”

춘혜부 성황신은 소매 안쪽에서 은은한 금빛이 도는 사슬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영지를 가진 뱀처럼 요풍을 향해 날아가 순식간에 요풍을 휘감더니, 다른 쪽 산으로 요풍을 탄 요괴들을 집어 던졌다.

콰광!

요괴들이 집어 던져진 곳의 암석들이 박살 나고 나무들이 쓰러졌다.

“사방에서 혼을 가두고 쇄혼진을 펼쳐라!”

와풍산의 네 방향에서 구혼삭(*勾魂索: 저승사자가 들고 다니는 영혼을 끄집어내는 밧줄)이 하나씩 날아와 하늘을 뒤덮었다. 양 부에 속한 여러 성황신의 협력 아래 저승사자들이 힘을 합쳐 순식간에 와풍산에는 음산한 바람이 몰아쳤다.

“오랫동안 둔갑한 요괴들을 보지 못했는데, 한 번에 세 놈하고 반이나 보게 되었구나. 오늘이야말로 너희들의 혼백을 거둬들이겠다!”

춘혜부 성황신은 어제 끓어오른 노기를 이곳에 풀듯이, 법력과 향불의 힘을 아끼지 않고 운용했다. 그 신령한 빛에서 뿜어 나오는 위세가 대단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