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01화 (101/892)

101화. 초엽산의 비 오는 밤

찻집 안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변했다. 방금은 자세히 주변을 보지 않았던 계연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한번 주위를 살폈다. 흐르는 기운으로 보건대, 자신처럼 무고한 이는 찻집 주인 둘을 포함해 예닐곱뿐이었다.

이들을 뺀 다른 사람들은 처음엔 모두 평범했었지만, 지금은 기운에 변화가 생겼다. 그중 가장 혈기가 왕성한 이는 눈앞의 사내였고, 다음으로는 옆 탁자에 앉은 두 여인이었다.

그들은 모두 계연 한 사람을 조심스럽게 관찰하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서로 같은 무리인 듯했다.

계연은 비록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그래 봤자 이들은 평범한 무인에 불과했고, 자신에게는 어떤 위협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계연이 마음먹고 도망친다면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계연은 찻잔 안의 차를 다 마신 후,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눈앞의 남자에게 대답했다.

“흠, 말이나 나귀 모두 손이 많이 가고 값도 비싸서요. 차라리 걷는 게 낫지요. 피곤하긴 하지만 그쪽이 편하니까요.”

말을 마친 후 계연은 고개를 돌려 찻잔을 내리치고 있는 일고여덟 살 먹은 남자아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비록 한눈에 알아보긴 힘들었지만, 보면 볼수록 특이한 느낌이 있었다. 눈이 아려왔지만 이를 참고 계속 살펴보니, 뜻밖에도 계연은 남자아이의 몸에서 한 층의 회색 안개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이 안개가 계연이 이 아이를 보았을 때 받은 이상한 느낌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계연의 시선이 안개를 뚫자 남자아이의 모습이 그보다 더 명확할 수 없었고, 심지어 기민함마저 느껴졌다.

계연이 아이를 쳐다보는 것을 눈치챈 두 여자 중 하나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선생이 낯이 익어 생각해보니 균천부에서 만났던 것 같네요. 성 밖에서 또 뵙다니 정말 우연이군요.”

다른 여자가 말을 이어받았다.

“혹 선생께서 그날 저희 자매를 보고 마음에 두셨던 것이 아닌지……? 호호호…….”

계연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두 여자의 얼굴조차 제대로 본 적이 없었지만, 목소리를 들으니 그때 만났던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비록 저 남자아이에게 호기심을 느꼈지만, 곧 충돌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그는 이보다 더 신기한 것을 수없이 봤으니 별로 미련도 없었다.

계연은 탄식하며 웃었다.

“그렇네요. 세상에 이렇게 공교로운 일도 있군요. 두 분께서 믿지 않으실 수도 있지만, 저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습니다. 어차피 서로 껄끄러운 자리니, 늦게 온 제가 떠나겠습니다.”

사소한 오해 때문에 이 사람들과 검을 겨누고 싶지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계연은 손안에 있던 찻잔의 차를 다 마신 후, 자신을 주시하는 맞은편 사내의 시선 속에서 몸을 일으켜 주문을 받으러 오던 찻집의 소년에게 미안함을 담아 말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차를 마시지 못하게 되었네요.”

말을 마친 계연은 어깨에 배낭을 걸고, 우산을 들고는 마지막으로 남자아이를 다시 한번 살핀 뒤 찻집을 나섰다. 서쪽을 향해 관도에 올라 떠나는 모습에는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찻집 안에서는 남자와 두 여자가 몸을 긴장한 채 계연이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상대가 갑자기 방향을 바꿔 공격할 경우를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계연의 뒷모습이 벌써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뒤를 돌아볼 낌새는 여전히 없었다.

사실 저렇게 먼 거리까지 갔으면 이제는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설마 저 사람, 정말로 지나가는 길이었던 건가?”

남자가 의혹에 찬 얼굴로 두 여인을 향해 말했다. 그중 한 여인이 눈썹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그런데 우리 정말로 저 사람 본 적 있어. 잘못 봤을 리가 없어. 그날 균천부 의류점에서도 저랬었어. 소탈하고 자유로운 태도였지.”

또 다른 여자도 말했다.

“확실히 평범한 사람은 아니야. 막동(莫同)이 말했다시피 균천부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얼만데, 겨우 이틀 전에 성안에서 본 사람이 혼자 걸어서 오늘 여기까지 왔다고? 도중에 마차를 타거나 한 게 아니면 길에서 쓰러졌어야 정상이야.”

“응, 나도 방금 그걸 알아내려 했는데. 저 사람이 아마 눈치챈 모양이야. 그런데 말하는 걸 보면 그래도 상관없어 보였어.”

막동은 말을 하는 동시에 먼 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계연의 모습은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찻잔 아래를 두드리고 있던 아이도 시끄러운 소리를 멈추더니, 계연이 떠나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작은 소리로 옆의 여인에게 말했다.

“나 육전 먹고 싶어.”

“전병이랑 육포밖에 없는데, 이거라도 드시겠어요?”

“싫어! 굶어 죽는대도 안 먹어!”

아이는 고집스럽게 대답한 후 다시 ‘탕! 탕! ’하며 찻잔을 때리기 시작했다. 여자는 아이를 잠시 노려보다가, 어차피 배고프면 이거라도 먹겠지 싶어 그냥 놔두었다.

* * *

그로부터 3일 후.

계연은 비 내리는 밤에 균천부와 서녕부(西寧府)가 만나는 위치에 있는 초엽산(蕉葉山)에서 우산을 들고 산길을 걷고 있었다.

초엽산은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산세가 마치 파초잎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크기는 그리 크다 할 수 없어, 과거 계연이 옥회산의 어린 두 제자를 만났던 노화산보다 못했다. 산은 두 부의 중간에서 30리(*약 12km) 길이로 늘어서 있고, 차지하는 면적은 십수 리에 불과했다.

계 선생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비가 오는 날에는 천천히 걷는 것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계연은 비가 오는 날에 주변의 풍경을 더욱 또렷하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빗방울과 같이 지상의 만물을 ‘느낄’ 수도 있었다.

비는 전날 밤부터 내리기 시작해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었다. 계연은 그의 습관대로 아주 오랫동안 느린 속도로 걸어왔는데, 곧 전방에 건물 하나가 서 있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희미한 단향(檀香) 냄새가 났고, 내부의 구조를 살피니 예상대로 산신당이었다.

그는 처마 아래로 들어가 우산을 접고 물기를 털었다. 산신당의 문을 열고 계연은 그리 크지 않은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 산신당의 내부는 겨우 몇 장(丈) 깊이로, 꽤 낡았으며 따로 돌보는 이도 머무르지 않았다. 그러나 황폐하다고 할 수는 없었는데, 제사상이 정리되어 있고 공물을 올린 흔적이 조금 남아있었다. 아마 주변 백성들이 명절 때문이나 개인적인 일로 찾아와 제사를 올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외 평소에는 산신당이 쭉 비어 있었던 것 같았다.

계연이 산신상을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보니, 일반적인 산신상과 다른 점이 있었다. 장포(長袍)를 입고 있긴 하지만 얼굴의 골격이 비교적 돌출되어 있고, 이마에는 두 개의 불룩한 혹 같은 것이 있었다. 조각한 장인은 그 위에 회오리치는 구름 문양을 그려 놓았는데, 계연으로서는 그것이 뿔인지 종양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산신상에는 신령한 빛의 흔적은 없었으나 향불의 힘이 남아 맴돌았다. 다만 이상하게도 그 힘이 미약하고 인간의 것 같지 않았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제대로 된 신은 아니었다. 이는 분명 수양하여 영지를 얻은 요괴가 향불과 원력(*愿力: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마음의 힘)을 빌려, 지맥(地脈)과 산맥(山脈)과 결합해 산신의 지위를 얻으려 하는 것이었다.

천성 때문에 이러한 요괴들의 몸을 한 보잘것없는 신들은 신당 안에 머무르지 못했다. 이들은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때만 돌아와서 향불의 힘을 흡수하고 공물을 맛보았다.

계연은 법안(法眼)을 열어 소위 ‘산신’이라는 신상을 낱낱이 살폈다. 닦은 도력이 미미하고 초엽산이 작다고는 하나 그래도 면적이 십수 리에 달하는 산이기 때문에, 작은 마을이나 장원(莊園)이 자리한 토지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작은 산신당의 미약한 향불로 보았을 때, 오랜 세월 이를 모으고 유지하며 부단히 수련한다면 백 년 정도 후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무슨 일이 생겨 도중에 실패한다면, 그 ‘어느 정도의 성과’ 또한 전부 없던 일이 될 것이다.

“수행의 길은 험난하구나!”

계연은 한마디 탄식하고는 산신당의 문을 닫고 신상에 죄를 먼저 빈 후, 방석을 하나 구석으로 끌어와 휴식을 취했다.

그 후 그는 품 안에서 <외도전>을 더듬어 꺼냈다. 비가 오는 밤에 이런 ‘사실적인 소설’을 읽으니 또 다른 흥취가 있었다.

산신당 안에는 종이를 태우는 용도로 만들어진 쇠로 만든 화로가 있었다. 옆에는 마른 장작과 숯불이 놓여 있었는데, 아마도 잠시 쉬어가는 근처의 백성들과 향불을 피우러 오는 이들을 위해 마련해 둔 것 같았다. 그러나 계연은 불빛이 필요하지도 춥지도 않았기 때문에, 불을 피우지 않았다.

계연은 책을 한 시간 정도 읽다가 <통명책>으로 바꿔 읽었다. 구신술에 대한 저자의 추측과 이해를 서술한 부분에서, 어쩌면 진정으로 귀신을 속박하는 데에는 고인(高人)이 외는 법령(法令)과 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는 대목을 보니 저자는 구신술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계연은 무의식적으로 산신상을 바라보며, 이전에 옥회산의 구풍이 자신에게 주어 이미 연구를 끝낸 구신서를 떠올렸다.

구신서에는 구풍이 십수 년에 걸쳐 깨달은 것들과 생각이 기록되어 있었고, 이미 완성도가 꽤 높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정수(精髓)가 부족해 자신의 수행에 도움이 되는 작용만 할 뿐 큰 의의가 없었다.

그러나 계연은 좋은 인연 덕택에 ‘칙령’이라는 기이하고 만능인 신통력을 얻었다. 그 후로, 어느 정도는 이미 구신술의 능력을 갖추었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진정한 ‘칙령(勅令)’은 고인이 외는 ‘법령’보다 한 단계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론은 이론일 뿐으로, 아무리 실재적이라도 이 이론은 아직 사실로 증명되지 않았다.

당연히 계연도 알고만 있을 뿐 이를 시도해 보려는 계획은 없었다. 요괴를 받드는 사당의 작은 신이라도 일단 신이고, 아무 일도 없이 도력만 믿고 신을 괴롭히면 안 되니까 말이다.

계연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무언가가 느껴지며 동시에 밖에서 이상한 기척이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산신당의 문이 바깥에서부터 ‘쾅’ 하고 열리더니, 일곱 명의 홀딱 젖은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재빨리 내부를 한 번 훑어보더니 구석에 앉아 그림자에 가려진 계연을 보지 못하고 지나갔다.

“헉…… 헉……! 이제 쫓아오지 못하겠지?”

“아마도. 소주(少主)께서는 어때?”

“아직 정신을 잃은 상태셔!”

“막동, 네 상처는 좀 어때?”

“별일 아냐!”

계연은 비에 온몸이 젖은 낭패한 꼴의 남녀를 바라보았다. 이어서 피비린내가 공기 중에 떠돌았다. 사람들의 수도 그들의 상태도 이전보다 못했다. 그들은 바로 찻집에서 만났던 일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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