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산신당에서 다시 만난 신선
계연은 이들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일고여덟 살 정도 되는 아이를 살펴보았다.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아이는 혼미한 정신으로 여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계연이 보기에 아이는 단순히 정신을 잃은 게 아니고 혼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눈꺼풀이 떨리고 눈썹을 찌푸리는 것으로 보아, 혼에는 손상을 입지 않았고 육체와의 연결도 아직 끊기지 않은 것 같았다.
계연은 딱 한 번 혼을 잃은 사람을 본 적이 있었는데, 세원현의 상하구촌에서 아름다운 뱀 요괴를 상대할 때였다. 한 상인이 요괴를 보고 너무 놀라 그의 혼백이 신체를 잠깐 떠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아이처럼 혼이 나간 상태는 조금 특수한 경우였다.
‘정말 재미있군. 아무래도 스스로 나간 것 같은데!’
계연이 법안을 열어 살펴보자, 아이의 몸에는 경기를 일으킨 흔적이나 사악한 술법의 기운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혼이 스스로 몸 밖으로 빠져나갔을 거라는 추측만이 남았다. 어쨌든 이 아이는 전부터 확실히 특이했으니까.
일행의 수는 반 넘게 줄어 있었고, 그들의 상태를 보아하니 습격을 당한 것 같았다.
만약 도적이나 흉악한 악인들이 추격해오는 거라면 계연도 그들을 도와 관여할 수 있지만, 강호 세력 간의 은원이나 복수가 얽혀 있다면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러나 계연은 그들이 누구에게 습격을 당했는지보다는 저 아이의 어떤 부분이 특이한지에 대해 더욱 호기심이 들었다. 또한 이들이 자신을 먼저 발견하여 또 한 번 의심을 사게 되느니, 차라리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커흠, 크흠……!”
가볍게 기침을 했더니 안 그래도 신경이 곤두서 있던 사람들 몇이 조건반사처럼 즉시 반응했다.
챙!
세 사람이 즉각 칼을 뽑아 들었다.
“어떤 놈이냐?”
“그쪽에 있는 게 누구냐?”
계연은 몸을 움직이고 손을 흔들며 그들이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도왔다. 안 그래도 경계심을 바짝 세우고 있는 그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몸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저는 어디에서든 조용하게 있을 수가 없는 운명인가 봅니다. 이번에는 당신들이 먼저 나를 방해한 것이고, 검에는 눈이 없으니 이만 거두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니, 당신은……!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입니까?”
막동이라고 불리던 남자가 계연을 보고는 놀라 경계하며 물었다.
계연의 목소리는 무겁고 힘이 있어, 판별하기 쉬웠기 때문에 그들은 금세 알아보았다.
상대가 이렇게 물을 것을 이미 예상했기에, 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미소 지어 대답했다.
“하하……. 저는 지나가는 과객일 뿐으로, 오해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일부러 큰소리를 내었습니다. 만약 제가 정말로 다른 마음을 품었다면, 몸을 숨기고 있다가 손을 쓰는 편이 더 쉽지 않겠습니까?”
말을 마치고 계연은 한쪽엔 놓인 화로와 구석의 장작을 가리켰다.
“일단 불을 피워 몸을 좀 녹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가을비가 차니 풍한에 걸리기 쉽습니다.”
계연의 태도는 평온하고 시종일관 예를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그의 대답은 근거도 타당하고 논리적이었으므로, 사람들은 경계를 조금 늦추었다.
막동이라는 사내도 잠시 망설이다가, 사과의 뜻으로 계연을 향해 공수했다.
“저와 제 일행이 선생을 오해하였으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 불을 피우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습니다. 저희는 아마 곧 떠나야 할지도 모릅니다.”
일행은 무기를 수습한 후 산신상 뒤편의 계연과 마주 보는 위치에 남은 방석 두 개를 끌고 와서는 남자아이를 눕혔다.
가벼운 옷차림을 한 두 여자가 아이를 돌보고, 다른 이들은 각자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소주께서는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니고 어디에 부딪히거나 맞은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정신을 잃으실 수 있지? 설마 매우 놀라서 이리되신 건가?”
“언니, 괜한 걱정하지 마. 따로 다치신 곳은 없으니 곧 깨어나실 거야!”
“내가 어찌 걱정을 안 할 수 있겠어? 무슨 수를 써도 깨어나질 않으시잖아. 인중을 꼬집고 진기를 주입해봐도 소용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침착하겠어!”
“휴, 너무 조급해하지 마. 이제는 의원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어.”
막동도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한쪽에 있던 다른 무인은 옷에서 뜯어낸 천 조각으로 막동의 가슴에 난 칼에 베인 상처를 감쌌고, 다른 이는 계연이 있는 곳을 보다가 산신당 문 쪽을 바라보다가 했다.
“오늘 밤 이 비가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다만 그 와중에 십 수 명의 형제들을 잃었으니…….”
막동은 말을 하며 일부러 계연을 쳐다보았다. 상대의 반응을 살피려는 의도였으나, 그림자 때문에 어두운 탓인지 죽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에 당혹스러워하는 낌새를 계연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한편, 계연의 모든 신경은 남자아이의 몸에 쏠려 있었다. 아이의 눈꺼풀이 아직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보니 혼백이 이리저리 날뛰고 있으며, 육신과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듯했다.
‘이상하네. 혼백이 움직일 수 있는 데다 육신과의 거리도 멀지 않은데, 왜 돌아오지 않지?’
계연은 조금 답답해졌다. 혼백이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상태였다. 돌아오지 않는 시간이 오래되면 육신과의 연결이 끊기기 때문에, 정말로 죽거나 넋이 나간 백치가 되었다.
‘설마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여기까지 생각한 계연은 일단 이들에게 말을 걸어서 아이에 관해 물어볼 기회를 만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여러분은 강호의 무인들이시죠? 우리가 오늘로써 두 번이나 마주쳤으니, 이도 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혹시 제게 어떤 도적이나 악인들을 만났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방금 대화를 들어보니, 저 아이가 고향 마을 노인분들이 말하던 실혼증(失魂症)인 것 같아서요.”
“실혼증?”
두 여자 중 나이가 좀 더 많은 쪽이 의혹에 차 물었다. 글자만 들어도 이게 무슨 병인지 이해는 할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믿기 힘든 듯했다.
“그렇습니다. 실혼증에 걸린 사람도 이처럼 어떤 방법을 써도 깨어나지 않고, 약도 듣질 않으며 온종일 정신을 놓은 채로 지내지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들 모두 아이를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동도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제 고향에서는 실혼증에 걸린 환자가 자주 가던 곳에 가서 혼이 돌아오도록 크게 소리치거나, 토지신이나 성황신에게 가서 향을 올리며 환자의 혼백을 찾아오는 데에 도움을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계연은 백성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게다가 이는 효과가 있기도 했는데, 이 방법이 먹히려면 혼이 나간 데에 다른 특수한 원인이 없어야 했다.
몇몇 이들은 이를 듣고 서로 얼굴을 쳐다본 뒤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물론, 산신에게 빌어도 효과는 있습니다. 토지신이나 산신들은 자신들이 담당하는 지역에서 제일 힘이 세거든요.”
계연이 이렇게 말을 할 때는 고아한 문인보다는 옛날얘기를 해주는 마을 노인들 같은 어조였는데, 저 무인들은 이를 알아채지 못했다.
이들은 계연의 말을 듣더니 무의식적으로 산신상을 바라보았다. 이런 밤에 신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음산한 느낌이 늘면서 약간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바깥의 비는 여전히 쏴아아 쏟아졌고, 산신당 내부는 침묵에 휩싸였다.
막동이 막 입을 열려 할 때, 구석에 앉아 있던 계연이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 후 계연은 마치 그가 입을 열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손을 뻗어 그를 제지했다.
계연은 숨을 들이쉬며 냄새를 맡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혼수상태에 빠진 남자아이를 바라보았다.
“보아하니 확실히 일반적인 강호의 일은 아니군, 그럼 내가 좀 관여해도 되겠지!”
계연이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하자, 이를 제대로 듣지 못한 이들이 무슨 말인지 물어보려 할 때였다. 계연은 몇 걸음 앞의 제사상으로 걸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당신들의 소주를 지키고 계세요. 저는 나가서 밖에 있는 것들을 좀 만나보겠습니다.”
계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산신당의 대문이 ‘쾅!’ 하고 열렸다. 계연은 비바람이 불어 들어오도록 놔두었지만, 빗물만은 계연의 몸에 닿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계연 주변의 어둠 속에 있던 이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했지만, 바깥의 사람들은 이를 똑똑히 보았다.
빗속에는 강호인이 입는 가벼운 옷차림을 한 채 검을 손에 쥔 세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계연은 이들이 비록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지만, 순수한 ‘인간’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이 일은 선생과 무관합니다. 어서 뒤로 물러서시지요. 그들은 네 명 모두 무공이 뛰어나 저희도 많은 형제를 잃었습니다. 제 말을 믿고 지금이라도 이리 오세요!”
막동과 근처의 몇몇 무인들이 몸을 일으켜 무기를 꺼내 들고는 말했다.
다만 막동과 다른 이들이 기이하게 여긴 것은, 바깥의 세 사람이 당장 공격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어둠 속에서 잔뜩 경계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무공이 높다고요? 하하하……!”
계연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도 무공을 닦은 이로서 확실히 저들은…….”
계연은 그 말의 진위를 파악하려는 듯이 눈을 조금 더 크게 뜨고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내 그동안 인간과 온갖 요괴, 귀신이며 신을 수없이 만나봤지만, 마귀를 만나는 건 또 희귀한 일이구나. 속세 무인들의 육체를 뒤집어쓰고 와서 아이를 채 가다니, 정말 우스운 일이군!”
산신당 안의 무인들은 그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그들은 어쩐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하하하……. 이런 궁핍한 산골에서 선도를 닦는 인간을 맞닥뜨리다니, 확실히 드문 일이군. 충고 하나 하겠는데 이 일에 더는 끼어들지 마시지요. 아니면 우리 중 누군가가 당신 몸으로 껍데기를 뒤바꿔 쓸 수도 있거든!”
산신당 문 앞에 선 계연에게는 신령한 빛이 나거나 술법을 이용하는 듯한 낌새가 없었지만, 빗물이 알아서 그를 피해가고 있었다. 바깥의 세 마귀는 계연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마귀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마음에 자생하는 심마(心魔), 형태가 없는 외마(外魔), 재난을 품고 다니는 음마(陰魔), 수행을 쌓다가 근본에서 멀어진 인간이 빠지게 되는 사마(邪魔)가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귀가 들린 사람을 미쳤다는 말로 묘사하지만, 사실 마귀의 대부분은 미쳐 날뛴다기보다는 비할 데 없이 음험하고 사악한 편이었다.
“너희가 총 네 명이라면, 남은 하나는 저 아이의 혼백을 뒤쫓아 갔겠구나. 너희들은 육신을 빼앗으러 온 것이고?”
산신당 내의 무인들은 보지 못했지만, 계연의 눈에는 저 세 마귀가 이미 어두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를 보지 못했더라도 계연은 어차피 한번 상대해 볼 작정이었다.
“당신이 저 아이의 육신을 지켜낸다 하더라도, 그 혼백은 반드시 우리에게 잡힐 터이니 차라리…….”
“꼭 그렇게 되리란 법은 없지!”
계연은 맑은 웃음소리를 내며 마귀의 말을 끊었다.
‘이런 상황이라면 새 술법을 시도해 봐도 되겠지!’
그는 입으로 칙령을 외면서 법력을 마음대로 변화시켰다. 계연이 가볍게 오른발을 들어 땅을 밟자, 한줄기 기이한 물결이 나타나며 어렴풋이 출렁였다.
“초엽산 산신을 뵙기를 청합니다!”
그의 말에 응하듯이 한 줄기 바람이 안개를 휩쓸었고, 산신당의 지면이 회전하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바깥에 있던 세 마귀의 동공이 일순간 오그라들었다.
“신을 불러냈어! 어서 도망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