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구신술과 정신법(定身法)
속세에서 살아가는 무인이 내기 힘든 속도로, 바깥의 세 사람은 각자 다른 세 방향을 향해 도망쳤다. 그중 한 사람은 수십 장(丈)이 넘는 거리를 뛰어넘어 땅을 향해 몸을 굴렸다. 그의 신체가 땅에 닿자마자 마기(魔氣)를 내뿜는 마념(魔念)이 그 몸에서 빠져나왔다.
‘저렇게 쉽게 몸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니?’
계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구신술에 대한 마귀들의 두려움을 얕본 것을 후회했다. 계연이 그들 중 한 사람을 쫓기 위해 발을 들어 올리자, 다음 순간 곧바로 땅이 수축하듯 줄어들며 그와 계연 사이의 거리가 좁혀졌다.
비록 계연은 자신에게 마귀 셋을 사로잡을 수단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했다.
무인의 신체를 뒤집어쓴 마념(魔念)은 계연만큼 빠르지는 못해 곧바로 따라잡혔다.
마귀들은 온몸을 부딪쳐 비의 장막을 뚫고 나가며 도망쳤다. 이에 반해 계연의 앞에서 날아오는 빗방울들은 알아서 계연을 스쳐 지나갔다.
계연의 곁에 가까이 날아든 빗방울들은, 계연의 몸과 닿기 직전에 모여 수십 개의 선을 이루더니 빙빙 돌며 커다란 나선형을 이루었다.
계연이 소매를 휘두르자, 지시를 따르듯이 거대한 나선형의 빗물이 비를 뚫고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그 후 마기가 솟아오르는 무인의 머리 위쪽에서 빗물이 그를 집어삼키듯이 쏟아져 내렸다.
쏟아지는 물줄기가 곧 쇠줄처럼 조여들었다.
쿵!
무인은 미처 대비하지 못한 새에 물줄기에 의해 중심을 잃고는 산길로 고꾸라졌다. 관성으로 인해 몇 바퀴나 굴러떨어진 그의 몸에서 물방울들이 튕겨 나왔다. 그 후 물줄기는 마치 밧줄처럼 무인을 옭아매어 그가 조금도 몸을 움직일 수 없게 했다.
더는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그의 신체에서 마기가 솟구치더니, 마귀는 몸을 버리고 도망치려 했다.
쏟아지는 비를 뚫고 따라온 계연은 이 광경을 보고 급한 마음에 아직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술법을 사용하려 했다.
계연은 손을 뻗어 땅에 엎어진 무인을 가리키며, 세상의 기운을 담은 주문을 읊었다.
“가만히 있거라!”
그러자 무인의 신체가 모든 기능을 잃은 것처럼 뻣뻣하게 굳었다. 솟구치던 마기까지 육신에 단단히 갇히자, 무인은 두려움을 담은 눈빛으로 천천히 다가오는 계연을 바라보았다.
‘이게 정말 먹혔어?’
계연은 약간 어지러웠으나, 이와 상관없이 지금 그의 마음은 흥분으로 가득 찼다. 어떻게 보아도 이 마귀는 조무래기에 불과했지만, 그게 뭐가 대수겠는가?
자신은 무려 정신법(*定身法: 상대방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술법)을 쓴 것이었다!
이 기술은 계연이 현대에서 서유기(西遊記)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것이기 때문에, <통명책>과 <외도전>에도 이 술법에 대한 기록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계연은 이도 저도 아닌 수준의 이 술법이 지난 생에 드라마에서 보았던 정신법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저 주문으로 육체에 영향을 끼치는 마기를 잘라내어 마귀를 몸에 봉인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계연은 여기서 희망을 보았다.
남은 두 마귀는 이미 멀리 도망쳤는데, 특히 마기를 뿜어내며 도망친 마귀는 하늘로 날아가 계연도 더는 이들을 따라잡을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잡을 방법이 없을 뿐, 마귀를 제거하는 것은 오히려 간단했다.
지금 상황으로 봤을 때, 저 셋은 마귀라고 하기보다 특수하고 짙은 마념이라고 하는 것이 맞았다. 게다가 저들의 마기의 근원이 같으니 셋을 전부 잡든지 하나만 잡든지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계연은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돌려 넝쿨검을 향해 말했다.
“가거라.”
챙!
칼집을 나온 검 끝에서 검광이 퍼졌다. 바로 넝쿨검이 마기를 쫓아가자, 곧 차가운 빛이 번쩍이며 으스러졌다. 검광은 또 다른 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경공법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도망치던 마귀는 쏟아지는 빗속에서 돌연 그 속도 그대로 엎어지더니 산에 솟은 암석과 부딪혀 멀리 미끄러졌다.
계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속에 온몸이 묶여 사로잡힌 마귀를 데리고 돌아왔다.
산신당 앞의 안개는 이미 흩어져, 산신의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시간 수행해 정괴(精怪)가 된 요괴는 꼴사나운 짧은 괘자(*褂子: 중국식 홑저고리)를 입은 채 손과 발에는 털이 숭숭 나고 이마가 툭 튀어나온 곱사등이의 모습이었다.
요괴는 전전긍긍한 채로 산신당 문 앞에 서서 숨조차 크게 내쉬지 못하고 있었다. 계연이 돌아와 자신을 바라보자 그는 순간 호흡을 멈추었다가, 곧이어 정신을 차리고 급히 입을 열었다.
“초, 초엽산 산신 공목화(龔木華)가 선장(仙長)을 뵙습니다. 선장께서는 분부를 내려 주십시오!”
요괴는 말을 하면서 사람들이 하는 모양을 흉내 내어 약간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공수하며 읍했다.
요괴의 매우 놀란 모습이 계연이 펼친 구신술의 효과를 증명해 주었다. 계연은 마귀를 배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자신에게 잡혀 있던 마귀가 씐 사람을 산신당 쪽으로 휙 던지고는 ‘산신’을 향해 공수했다.
“공 산신님, 그리 예를 차리지 마세요. 이번에 제가 도움을 청하고자 감히 어르신을 불러내었습니다.”
말을 하며 계연은 한쪽에 있는 의식이 혼미한 남자아이를 가리켰다.
“저 아이의 혼백은 분명 초엽산에서 신체를 가진 마념에 쫓겨 도망치고 있을 거예요. 아이의 혼백을 데려와 주세요. 뒤쫓는 마귀는 저 검이 해결해 줄 겁니다.”
계연이 말을 마치자 넝쿨검이 모습을 드러내며 날아왔다.
초엽산 ‘산신’은 비록 넝쿨검을 보지는 못했지만 조금 전 검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검광을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선검(仙劍)이 그 모습을 드러내니, 계연의 요청에 바짝 긴장하여 대답했다.
“선장의 지시를 받들겠습니다. 소신(小神)이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말을 마친 요괴의 모습이 안개처럼 변하더니 맞은편 절벽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넝쿨검 또한 산신의 기운을 따라서 공중으로 날아갔다.
산신당 안에 있던 막동을 비롯한 이들은 아무도 말을 꺼내지 못하고 멍하니 산신당 입구에서 벌어진 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계 선생님……. 저희는……그…….”
막동은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혀가 꼬이고야 말았다.
방금의 그 대화는 차치하고서라도 산신당 안에 있던 사람들을 가장 놀라게 한 것은 계연이 초엽산 산신을 불러온 장면이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들이 받은 느낌은 그 장면을 목격한 세 마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머리통이 나귀에 걷어차인 사람이라도 이 정도쯤 되면 자신이 신선을 만났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이들은 감격에 휩싸인 나머지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계연은 산신당 입구에 서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이들도 모두 보았을 테니, 이에 대해서는 따로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이들을 향해 위로를 건넬 뿐이었다.
“여러분들이 모시는 소주의 혼백은 산신이 찾아올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몇몇은 그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산신당 안의 신상을 바라보았다. 방금 나타난 ‘산신’은 저 신상의 모습과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무척 닮아 있었다.
막동과 그 일행들은 마침내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이를 안고 있어 몸을 일으키지 못하는 여자를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일어서서 계연을 향해 공수하며 감사를 표했다.
* * *
초엽산 한 곳에서는 일고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의 혼백이 산속을 누비며 달리고 있었다. 그의 뒤에서는 민첩한 몸짓의 무인이 아이를 끈질기게 뒤쫓았다.
무인의 온몸은 어두운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의 눈알이 있어야 할 자리는 온통 새카매 보는 이를 겁에 질리게 했다.
“어린놈이 잘 달리는구나! 하지만 계속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네 육신은 곧 우리 손에 들어올 것이다. 만약 네가 육신을 버리고 떠도는 귀신이 된들, 우리는 네 혼백을 다시 끌어올 것이다!”
“오지 마, 오지 마! 떠도는 혼백이 되긴 싫어! 아악!”
아이의 혼백은 도망치는 와중에도 고래고래 울며 소리쳤다. 그러던 와중 돌연 옆의 산등성이에서 등이 굽은 요괴가 나타났다.
“으악! 요괴다!”
뒤에서 자신을 쫓아오던 인간도 귀신도 아닌 이가 무섭긴 했지만, 그래도 인간의 모양이기는 했다.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요괴였으므로 아이는 놀라 비명을 질렀다.
초엽산 ‘산신’은 다른 한쪽에서 검광이 번쩍하고 빛나는 것을 보았다. 곧이어 아이의 혼백을 뒤쫓으며 경공을 쓰던 무인이 그가 밟던 나뭇가지에서 추락했다. 요괴는 목소리를 높이며 아이의 혼백을 급히 뒤쫓아갔다.
“얘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초엽산 산신으로, 너를 돌려보내 주러 왔단다!”
“넌 요괴잖아!”
아이의 통곡은 그칠 줄을 몰랐다.
이 남자아이의 혼백이 나는 듯이 뛰어다니는 등 특이한 면이 있긴 하지만, 공목화는 어쨌거나 이곳 산세와 지맥과 연결된 ‘산신’이었다. 자신의 영역에서 아이의 혼백을 찾아오는 것은 특출난 기술이 없더라도 할 수 있는 쉬운 일이었다.
산신당 안에서 계연과 몇몇 무인들이 대략 차 한 잔 마실 시간을 기다리자, 바닥에서 연기가 소용돌이치며 초엽산 산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인들은 육안의 한계가 있어 다른 것은 보지 못했지만, 계연은 초엽산 산신이 손으로 붙잡고 있는 아이가 두려움에 질려 발버둥질 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연기가 흩어지며 나타난 ‘산신’의 안색은 확연히 좋지 않았지만, 계연을 마주 대하자 표정이 바로 변했다.
“헉, 허억……. 선장께 아룁니다. 명을 받들어 아이의 혼백을 데려왔습니다!”
이 요괴가 하얀 장포를 입고 묵옥(墨玉) 비녀를 꽂은 남자에게 복종하는 모습과 한쪽에 막동과 일행들이 있는 모습에 아이는 순식간에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는 더는 발버둥질 치지 않았다.
“공 산신님께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계연은 산신을 향해 공수한 후 아이의 혼백을 향해 말했다.
“가거라, 혼은 육신으로 돌아가야지. 바깥에 오래 머물면 좋지 않단다.”
산신은 계연의 말을 듣고 혼백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그러면서도 아이가 또 언제 도망칠지 몰라 준비하고 있었다.
아이는 자신의 육신을 향해 다가가다가 계연을 보더니 그가 누군지 생각이 난 듯 작은 소리로 물었다.
“선생께서는 노상 찻집에서 막동이에게 쫓겨난 분이시지요?”
계연은 이를 듣고 웃었다.
“그가 날 쫓아낸 게 아니야. 내가 스스로 간 거지. 어서 돌아가거라!”
계연은 말을 마치고 소매를 휘둘렀다. 아이의 혼백은 계연이 불러낸 바람의 힘을 빌려 순식간에 방석에 누워있는 육신을 향해 날아가더니 몸 안으로 돌진했다.
혼미한 와중에도 끊임없이 눈가를 떨거나 눈썹을 찌푸리던 아이는 이제 마음이 안정된 듯 곤히 자는 모습이었다.
막동과 두 여자를 비롯한 일행들은 비록 자신들이 모시는 소주의 혼백을 보지는 못했지만, 아이가 안정을 찾은 모습과 산신과 계연의 말을 듣고는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알게 되었다. 그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분분히 일어나 계연과 산신 공목화를 향해 수차례 감사를 표했다.
“선장께서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 막씨 가문의 소주님을 살려주신 산신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선장과 산신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