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화. 진룡의 생일 연회 (2)
이들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보며, 응풍은 그들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 알아차렸다.
“하하하……. 설마 저분께 선인지로(仙人指路)를 구하려는 것은 아니겠지?”
‘선인지로’란 요괴, 귀신, 인간과 신령 등 모든 수행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신묘한 선인을 만났을 때 질문을 하여 답을 얻는 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만약 그런 기회가 온다면, 앞으로의 수행에 엄청난 진전이 있을 터였다.
게다가 저런 고인들은 ‘말하기 쉬운’ 상대의 범위에 속했다. 그들은 기분이 좋을 때 가르침을 담은 말 한마디 정도는 어렵지 않게 해주었는데, 다만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 자체는 요괴들의 목표가 아니었다. 이는 시작일 뿐, 수행에 있어 단단한 기초를 다졌다고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인간으로 둔갑할 수 있다고 해서 앞으로의 길이 탄탄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래서 도력이 높은 요괴들은 기회가 있다면 모두 가르침을 얻고 싶어 했다. 다만 요괴들의 도력은 제각각이어서, 그들이 생각하는 ‘선인’의 기준도 천차만별이었다. 아직 인간의 모습을 하지 못한 요괴들이 일컫는 ‘선인’은 대단한 요괴들에게는 눈에도 차지 않는 수준이었다.
응풍은 이들이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약간의 위엄을 담아 말했다.
“그 생각은 접는 것이 좋을 거요. 다음에 여러분들이 인연이 있어 저분을 만나게 된다면 모를까, 내 아버지의 생신을 축하하는 자리니 그리 적절한 생각이 아니야.”
“하하,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네. 전하께서 옳은 말을 하셨습니다!”
“저희가 어찌 그리 당돌한 일을 하겠습니까!”
“자, 술이나 마십시다!”
“저 춤을 좀 보십시오. 무희가 참으로 아름답지 않습니까?”
* * *
연회가 계속됨에 따라 계연도 긴장이 풀렸다. ‘저 인간은 무슨 자격으로 저곳에 앉아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을 하는 눈치 없는 이들도 없었다. 진룡의 위엄은 농담이 아니었다.
계연은 아직 응굉의 부인을 만나지 못한 것이 조금 의아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은 저들이 직접 말하지 않는 이상 자신이 먼저 물을 수 없는 주제였다.
계연은 춤을 감상하고 요리를 음미하다가, 어느새 주전의 구석에 혼자 앉아 있는 이에게 주목했다. 그자는 성미가 괴팍해 보였는데, 혼자서 술을 따라 마시며 요리에도 손대지 않고 옆 사람과도 말을 섞지 않았다.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어도 큰 반응 없이 한마디 응대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계연은 그가 특이해서 쳐다본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을 알고 있기에 쳐다보았다. 그는 바로 춘목강의 강신(江神)인 백제(白齊)였다.
저 나이 든 교룡은 도력으로 볼 때 주전 안에서 진룡을 제외하고는 그를 능가할 자가 없을 정도였다. 용이 되는 데에 두 번이나 실패한 후 진룡의 생신 연회에 참석하게 되었으니, 극도의 우울함에 접근하는 이들에게 문을 닫아버린 것 같았다.
<외도전>에서 읽은 내용과 이전에 춘혜부에서 만난 일을 근거로, 계연은 그에 대한 자신의 소견이 있었다.
응약리가 오늘 맡은 임무는 계연을 살피는 것이었으므로, 그녀는 계 숙부에게 계속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래서 계연의 시선을 따라가 그가 저 교룡을 바라보는 것을 알아차렸다.
“계 선생님은 저기에 앉아계신 춘목강의 신을 아시나요?”
그녀가 이렇게 묻자 계연은 춘목강도 큰 강에 속하고, 강의 신의 동상이 있는 사당이 꽤 된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래서 그를 안다고 말해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용으로 승천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저 교룡은 저와 같은 다른 교룡들에게는 교훈을 남기신 거예요. 저분과 같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만도 저에게는 죽기보다 어려운 일일 겁니다.”
그녀는 느낀 대로 말했다. 도력이 깊어짐에 따라 용으로 승천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계연이 법안(法眼)을 열어 살펴보니, 그녀의 기운이 변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기분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데다 친우의 자녀이기도 하니, 계연은 그녀를 격려해주기로 했다.
“하하, 용이 되는 것이 어렵다는 건 모두가 알지요. 그런데도 모두가 진룡의 자유로움을 탐냅니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속세의 범인들도 수행하는 자들도 모두 그렇습니다. 만약 어려움이 없다면 어찌 파부침주(*破釜沉舟: 밥솥을 부수고 배를 침몰시킨다는 의미로 결사의 각오를 뜻함)의 용기를 낼 것이며, 또 그런 용기도 없이 어찌 진룡의 몸을 얻는 것을 논하겠습니까?”
계연은 말을 하는 도중 춘목강의 교룡을 바라보았다.
“저자는 의지는 강하나 잘못된 방법을 썼을 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금도 그리 늦은 것은 아니군요. 통천강의 신께서는 도전할 마음조차 먹지 않으시니, 그것이 어찌 진룡의 따님께 어울리는 자세라고 하겠습니까?”
응약리는 조금 의아한 얼굴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그가 말한 이치에 깨달음을 얻었다기보다는 이 ‘계 숙부’가 저 교룡에게 또 다른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고 하는 말 같았기 때문이다.
“계 숙부님, 저 춘목강의 교룡께 아직 승천할 기회가 있다는 말씀이세요?”
그녀는 큰 관심이 일어 다급하게 물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이는 백제에게 중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계연은 그녀를 보고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세계에 수행하는 이들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을 말을 내뱉었다.
“천도(天道)는 본래 완전하지 않으니, 모든 일에는 항상 기회가 있습니다.” (*‘大道五十, 天衍四九, 人遁其一.’, <주역(周易)>에 나오는 구절)
계연이 아무리 평온하게 말했다지만, 표면적인 뜻만으로도 이미 심오한 구절이었다. 그래서 응약리는 비록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했어도, 계 숙부가 그저 둘러대려 한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느낀 점이 있는 듯, 고개를 들어 계연의 회백색 눈을 바라보았다.
“계 숙부님, 제가 나중에 용이 될 수 있을까요?”
계연은 속으로 본인도 자신이 없는데 어찌 용이 되겠냐며 탄식했다.
방금 해준 말들이 어떤 감화도 불러일으키지 못한 듯하니, 이제 숙부의 위엄을 내세울 때였다.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을 바라보는 응약리를 향한 계연의 두 눈은 초점 없이 흐릿했다. 그런데도 그의 두 눈은 현재의 그녀가 아니라 용이 될 수 있는 미래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저 교룡의 도력이 깊다고 하나, 두 번의 실패로 비늘과 발톱이 떨어져 나갔지요. 만약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그가 다시 한번 시도를 할 것 같습니까?”
계연의 물음에 응약리는 생각에 잠겼다. 구석에 앉아 혼자 술을 마시는 백제를 바라보자, 괴팍한 태도에도 그가 느끼는 불만과 약간의 체념이 표정에 드러났다.
‘그는 분명 한 번 더 시도할 거야!’
응약리의 마음속에는 이미 이에 대한 답만 떠올랐을 뿐 아니라, 그녀는 그가 다시 한번 시도한 후 실패했을 시 그에게 죽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알아차렸다.
“하하! 강신님의 마음에 이미 답이 나왔군요. 용이 되기에 부족한 점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도력 외에는 오직 기개가 부족할 뿐입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갖춰지기만 해도 반은 성공한 셈이지요!”
그녀의 심장이 쿵쿵 빠르게 뛰었다.
“나머지 반은요?”
이를 들은 계연은 헛웃음이 날 뻔했다. 그녀는 진룡을 아버지로 둔 것만으로, 이미 다른 교룡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세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계연은 그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는 용이 되는 것에 실패할 때 겪게 될 죽음이나 도력의 손실이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위세가 대단한 아버지를 둔 부담감이 너무 큰 모양이었다.
계연은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부유하거나 성공한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그녀처럼 이미 충분히 뛰어난 자질을 갖추었어도,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발버둥질 쳤었다.
계연의 표정이 조금 풀어지더니 좀 더 자연스러워졌다. 그는 입가에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머금고 온화한 어조로 물었다.
“약리야, 진룡의 딸로 살기가 쉽지 않지?”
아주 오랫동안, 어쩌면 그녀 자신조차 이에 대해 의식하지 못한 것 같았다. 계연의 물음이 그녀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었다. 그녀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늙은 용도 마치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하하, 중압감이 너무 크면 마음이 조급해지지…….”
계연은 지난 생에서 어디서 봤는지 생각나지 않는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이는 도경(道經)이나 어떤 서적과도 관련이 없었다.
“이렇게 하자. 이왕 네가 나를 숙부라고 부르니, 나도 네게 한 가지쯤 가르쳐 주어도 되겠지!”
그녀의 문제는 모두 마음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달래고 충고해도 아마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응약리를 포함한 주변 요괴 누구도 이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으나, 계연은 문제점을 알아차렸다.
곁에는 선검이 있고, 진룡이 삼 년간 찾도록 만든 이가 무언가 가르쳐준다는데 시시한 것일 리가 없었다.
당연히 계연은 응굉이 자신을 삼 년간 찾아다닌 것을 몰랐고, 자신을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가 하려는 것은 그저 심리적인 도움이었다.
좀 더 수행하는 사람처럼 표현하자면, ‘도력을 이용해 마음을 두드리는 것’이었다. 계연의 도력은 사람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는 정도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칙령을 쓸 수 있으니 이론적으로는 효과가 더 강할 수도 있었다.
“마음을 열고 눈을 감아 입정(*入靜: 무념무상의 경지에 드는 것)한 뒤, 영혼을 깨끗이 하여라.”
계연은 목소리에 칙령의 힘을 담았다. 소란스러운 실내라 다른 이들은 들을 수 없었지만, 응약리는 무척이나 뚜렷한 목소리를 들었다. 응약리는 잡념을 지우고 눈을 감은 뒤, 그제야 밝은 빛이 떠오르는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었다.
계연이 ‘숙부’라는 신분이고 아버지 역시 곁에 있으니, 응약리도 이렇게까지 그를 믿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계연이 그녀의 마음에 결코 들어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제 앞을 바라보아라. 논밭, 못과 호수, 강과 하천, 산맥과 도시……. 종횡으로 흐르며 교차하는 물길…….”
* * *
계연은 수행하는 이들이 명상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신으로서 응약리도 충분한 도력을 지닌 데다가 계연이 칙령을 담은 목소리로 곁에서 도와주니, 곧이어 정말로 계연이 말한 세계가 응약리의 눈앞에 나타났다. 심지어 응약리 자신도 어느 연못에 동면하고 있는 교룡이 되어 있었다.
“수백 년의 수행은 모두 지금을 위한 것이었다. 네 도력이 충분하고 큰비가 내려 물이 넘치고 있으니, 약리야. 이제는 가야 할 때다. 어서 움직이지 않고 무엇 하느냐?”
응약리의 마음에서는 모든 것이 현실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를 감싼 물의 수위가 점차 오르고 있었고, 하늘에서는 폭우가 내리며 끊임없이 천둥 치는 소리가 났다.
“안 돼! 앞에는 도시가 있어, 저쪽으로는 가면 안 돼…….”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이를 들은 계연은 눈을 반짝이며 법안을 완전히 열었다. 계연이 ‘칙(敕)’ 자를 외며 입을 열자, 천지의 기운이 조금씩 그의 목소리에서 흘러나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미 안다면, 어서 움직이거라!”
그녀에게는 모든 풍경이 이미 완전한 현실이 되어, 심지어 떨어지는 빗물의 온도와 번개의 위력도 느낄 수 있었다. 쏟아지는 폭우가 만물에 끼치는 영향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어서 움직이라는 계연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교룡은 단호하게 도시 주변의 강이 아닌 우뚝 솟은 산으로 향했다.
계연은 그녀의 기운에 감응하여 현재 그녀가 보는 것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계연 자신도 제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명상이,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