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11화 (111/892)

111화. 향을 올릴 때가 있을 것입니다

연회 셋째 날의 정오(正午).

수부 깊은 곳에 자리한 산호 화원에서는 계연과 늙은 용이 돌로 된 탁자를 가운데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이곳의 물은 여전히 맑고 투명했는데, 듣기로는 알록달록한 산호의 색채로 정원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 특별히 동해의 바닷물을 끌어온 것이라 하였다.

그들의 주변은 지난 생에서 계연이 텔레비전으로 보았던 바다 깊은 곳의 산호 군락처럼 아름다웠다. 심지어 가늘고 작은 아름다운 색깔의 물고기들이 주변을 유영하고 있었다. 게다가 깨끗하고 투명한 물에 햇살이 밝게 비춰, 물결이 일 때면 마치 공기가 울렁거리는 듯했다.

“하하하! 계 선생, 이 늙은이가 또 이겼군요. 다음 판에는 9집 반을 덤으로 드리지요!”

늙은 용은 활짝 웃으며 곁에 선 시녀가 바둑판을 정리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고서 그는 직접 계연의 술잔을 채워주었고, 계연은 눈썹을 찌푸린 채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번 판은 반 정도 두었을 때 사실상 이미 승패가 갈려 있었다. 그래서 계연은 바둑돌을 던지려 했으나, 응굉은 대국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로 중간에 끝내지 못하게 했다.

‘이 늙은 용이 거짓말을 했군. 윤 훈장님과 같은 단수가 절대 아니야!’

계연은 원래 자신이 가진 바둑돌이 늘어나며 바둑 실력도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늙은 용에게는 확실히 적수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연기(衍棋) 바둑은 두 돌이 서로 상생(相生)하는 형태이지만, 정통 방식의 바둑은 서로의 돌을 빼앗는 것이 규칙이라서, 계연이 몇 수 앞을 꿰뚫어 본다 해도 그를 상대하기에는 부족했다.

“한 판 더 두시지요!”

계연은 연기 바둑과 정통 바둑의 차이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공통점을 찾으려 했다. 새로운 각도에서 자신의 약점을 보충할 만한 점을 찾으면서, 계연의 의식 내에서 치러지는 연기 바둑이 눈앞에 놓인 수정(水晶)으로 만든 바둑판에 합쳐졌다.

‘다투는 것이든 공생이든 바둑판을 더 차지해야 하는 건 같아.’

새 대국이 시작되고, 응굉은 곧 계연의 돌을 놓는 방식이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 책에서 읽은 대로 돌 하나씩 신중히 놓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을 바짝 뒤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의 흑돌을 봉쇄하려는 것이 아니라, 차례가 되어 어쩔 수 없이 돌을 내려놓는 모습이었다. 마치 아이가 처음 바둑을 배워 아무렇게나 돌을 놓는 것처럼 말이다.

돌을 하나씩 내려놓던 늙은 용은 자신의 앞길이 점차 막히는 것을 발견했다. 불쑥 들어오는 계연의 공격에 그는 자신의 돌을 더는 바둑판에 ‘붙여’ 놓기도 힘들 지경이 되었다.

“아버지, 춘목강의 백제가 아직도 떠나려 하지 않고 한 번 더 뵙기를 청했어요!”

응약리가 급히 화원 안으로 걸어 들어와 말했다. 용은 이를 듣고 즉시 몸을 일으켰다.

“백제 저자가 그래도 강을 다스리는 신일진데, 내가 나이가 더 들었다고 이리 그를 무시하는 건 아무래도 좋지 않겠지. 계 선생, 내 저자를 좀 만나고 오겠소이다!”

“…….”

겨우 승기를 잡았는데 늙은 용이 이를 눈치채고 자리를 뜨려 했다. 그래서 계연도 미련을 버리고 수부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응 선생님, 제가 이곳에서 너무 오래 폐를 끼쳤네요. 더 머무르면 배를 빌려준 어부가 관아에 신고할지도 몰라요. 게다가 백제라는 교룡의 의도는 저를 만나는 데에 있으니,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전에 지금 떠나는 게 낫겠어요.”

응굉은 가던 걸음을 멈추며 고개를 돌려 계연을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곧 웃는 얼굴로 말했다.

“계 선생의 말이 옳습니다. 곧 도성으로 향할 윤 훈장을 만나야 하니 더 머물기는 어렵겠군요. 다만 백제 저자가 앞으로 선생을 만나기는 어렵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말은 늙은 용이 계연을 찾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다. 백제는 아마 계연이 통천강 위에서 계속 낚시를 이어가도 그를 찾지 못할 것이다.

계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응 선생님께서 저 대신 춘목강 강신에게 이 말을 전해주세요. 힘들게 구해야 한다면 인연이 아니요, 정직한 수행만이 정도(正道)입니다. 용으로서 도를 행하고 신으로서 다른 이들을 보호하며 신념에 부족함이 없다면, 향을 올릴 때가 곧 올 거라고요.”

이를 들은 응굉은 슬며시 눈썹을 찌푸리긴 했으나, 더 묻지는 않고 고개를 끄덕인 뒤 떠났다. 계연도 응약리를 따라 자신의 작은 배를 타고 수부를 떠났다.

* * *

편전 안에는 춘목강 강신 백제가 하얀 조약돌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백제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에 그는 끈질기게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차를 한 잔 마셨을 때, 얼굴에 아가미가 달리고 하반신은 물고기 형태인 수부의 시종이 헤엄쳐 들어왔다.

“춘목강의 신이시여, 용군께서 곧 도착하실 겁니다!”

백제는 정신이 번쩍 들어, 김이 오르는 찻잔을 뚜껑으로 덮고 내려놓은 뒤 시종을 바라보았다.

“정말이냐? 계 선생님께서는? 용군과 같이 오신다고 하더냐?”

비록 오늘 밤에도 연회가 열리지만, 각지에서 온 수중 요괴들은 거의 모두 돌아간 후였다. 백제는 이틀이 지나서야 이 ‘귀빈’의 이름이 계연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분을 숨긴 신묘한 고인(高人)임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용군과 친우인 사이니, 다른 요괴들에게도 편견이 없을 터였다.

백제가 자신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자, 요괴는 그가 순간적으로 흘려보낸 용의 기운에 압도당했다. 그래서 그는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분에 대해서는 소인도 잘 모르겠습니다!”

백제도 자신이 흥분하여 실수한 것을 깨닫고 서둘러 기운을 거둬들였다.

“알겠다. 여기서 용군을 기다리겠다.”

요괴 시종은 급히 물러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늙은 용이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편전에 들어왔다. 백제는 서둘러 몸을 일으킨 뒤 그를 향해 공수했다.

“용군을 뵙습니다!”

예를 올릴 때, 백제는 용군의 뒤에 누군가 같이 왔는지 확인하고는 곧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강신께서는 예를 거두시게. 이 늙은이를 찾은 연유가 무엇인가?”

늙은 용의 느긋한 모습을 보고 백제는 더는 돌려 말하지 않기로 했다.

“감히 용군을 속이지 않겠습니다. 저는 춘목강에서 오랜 세월 고달프게 지내며 용이 될 욕심을 버리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 통목강의 신을 보고……. 본론을 말하자면, 부탁드리건대 용군께서 제가 계 선생님을 한 번 뵐 수 있게 해주십시오!”

당시 춘혜부의 백제는 반백이 넘어 보이기는 했으나, 지금 그는 전보다 더욱 중년의 모습에 가까워져 있었다.

늙은 용은 상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백제,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도 알고 있네. 자네에게는 알려줘도 무방하겠지. 얼마 전 내 딸이 확실히 선생과 연이 닿아 도를 깨우친 적이 있네. 계 선생의 도움으로 큰 진전이 있었지. 용이 되지는 못했지만, 용의 마음은 얻었다네.”

이를 들은 백제는 빨라진 호흡을 누르지 못하고 숨을 들이마셨다.

“다만, 계 선생께서 말씀하기로는 마침 시기가 맞아 내 딸의 의지와 그분의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닿을 수 있었다고 했었네. 그 후 도음(道音)을 이용해 그 아이의 마음을 두드려 험난한 고비를 넘겼다고 하더군…….”

“수선자들이 말하는 고심(*叩心: 마음을 두드리는 것)을 썼단 말입니까?”

백제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높여 물었다.

수선자들과 요괴들 사이의 교류는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에 대해 아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게다가 선계의 동물 같은 어떤 요괴들은 날 때부터 수행하기에 적합하기도 했다.

그러나 알고 있다는 것이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어서, ‘고심(叩心)’과 같은 대단한 능력은 아주 적은 수의 요괴들만이 할 수 있었다. 고심의 결과도 다양하여 응약리와 같이 운이 좋아 고인의 도움으로 고심에 도달하기도 하지만, 고심겁(叩心劫)을 겪기도 했다.

‘고심’을 겪을 때는 대부분 신체의 힘을 써야 했고, 고심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속세로 가서 해결해야 하기도 했다.

“그렇다네! 계 선생께서도 그 당시 위험하기가 이를 바 없다 했었지. 물론 성공한 후에는 바로 용심(龍心)을 얻었을 정도로 딸아이는 많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말일세.”

응굉은 약간 자랑스러워하며 백제를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백제 자네와 내 딸의 상황에는 큰 차이가 있네. 내 친우의 도력이 확실히 범상치 않긴 하지만,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지. 게다가 내가 자네를 만나러 오기 전에 그는 이미 이곳을 떠났다네.”

그의 마지막 말을 듣고 백제는 순간적으로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러다가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낙담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떠나셨군요…….”

백제는 조용히 혼잣말했다. 용군이 그자를 삼 년간 찾아다닌 일을 일찍이 들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마음먹고 떠났다면 자신은 그를 찾지 못하리란 것을 알았다.

이미 떠났다는 말을 듣고 백제는 실망한 기색으로 응굉을 향해 공수하며 말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용군.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가 떠나려는 것을 보고 응굉은 서둘러 그를 불러 세웠다.

“백제, 잠시만 기다리게. 계 선생이 떠나기 전에 대신 전해달라며 남긴 말이 있다네.”

백제는 더는 그분을 찾으려 하지 말라는 충고일 것이라 짐작하고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용군의 말을 기다렸다.

“힘들게 구해야 한다면 인연이 아니요, 정직한 수행만이 정도(正道)입니다. 용으로서 도를 행하고 신으로서 다른 이들을 보호하며 신념에 부족함이 없다면, 향을 올릴 때가 곧 올 거라고 계 선생이 말했다네.”

응굉은 말을 마치고 백제가 제자리에 멍하게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다 곧바로 그의 기세가 급격히 변하며 용의 기운이 솟구치려 했다. 한순간에 기분이 완전히 변한 것 같았다.

“신념에 부족함이 없다면, 향을 올릴 때가 곧 올 것이다……. 그자인가? 그 사람이야!”

백제는 신경질적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곧 고개를 들어 응굉을 바라보았다. 그는 생기 넘치는 눈빛으로 허리를 숙이며 그에게 읍했다.

“선생의 말씀을 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받들어 따르겠습니다!”

백제의 반응은 응굉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한쪽 손으로 자신이 입은 옷자락을 꼭 쥐고 있었다. 이는 그와 같은 신분의 요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없는 반응이었다.

‘설마 백제가 용이 되도록 선생이 도울 거라는 뜻이 선생의 말에 숨겨져 있는 것인가? 아니야, 분명 첫 마디에 힘들게 구해야 한다면 연이 아니라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선생의 말뜻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여 만민이 바치는 향을 받으며, 계속해서 강신 노릇을 하라는 뜻인가?’

응굉은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고 그에게 인사하며 부드럽게 물었다.

“백제, 계 선생께서 하신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이길래 이토록……?”

계연이 전한 말을 들은 백제의 얼굴에는 온통 웃음이 가득 서려 있었다. 응굉이 의혹에 찬 모습을 보자 그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하하하! 용군께서는 부디 절 꾸짖지 말아 주십시오. 계 선생님께서 설명해 드리지 않았다면 저도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시 한번 생신을 축하드리며 용신의 만수무강을 빕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하하!”

백제는 고개를 들고 쾌활한 걸음으로 떠났다. 그는 편전을 나서 순식간에 비늘 없는 하얀 교룡으로 변신해 강물을 헤엄치며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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