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오랜 벗을 다시 만나다
‘저렇게나 거대한 물고기라니?’
윤재성과 사씨 성의 서생은 순간 그 크기에 놀라 멍하니 낚싯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20근은 족히 넘어 보이는 대두어는 사람 다리 반 정도의 길이였기 때문에, 시각적 충격이 상당했다.
철퍽, 철퍽-!
계연은 단번에 대두어의 힘을 빼려 하지 않고 천천히 계속해서 대두어와 힘을 겨루었다. 배 주변의 수면이 거칠게 일렁였고, 푸른 대나무로 만든 낚싯대는 반달 모양으로 한껏 구부러졌다.
“하하하! 마침 큰 고기가 걸린 데다 먼 곳에서 친우가 왔으니, 기쁘기 한량없구나!”
대두어는 물을 세차게 때리며 몸부림쳤으나, 한껏 구부려진 낚싯대는 계연의 손에서 무리 없이 그 무게를 버텼다. 계연은 왼손으로 휙 낚싯대를 들어 올려 대두어를 뱃머리에 있던 바구니에 넣었다.
대두어 한 마리를 작고 거칠게 짜인 바구니에 넣자 이제 공간이 남지 않았다. 머리가 바구니의 입구에 걸린 대두어가 남은 몸통 반을 바구니밖에 드러낸 채로 몸부림쳤다.
낚시꾼의 무게 있고 시원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강기슭에 있던 윤재성은 눈썹을 한껏 끌어 올리며 웃었다.
“계 선생님 아닙니까! 선생님! 저 윤재성이 여기 있습니다!”
윤재성은 감격해서 강변에서 수 장(丈) 떨어진 작은 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그의 옆에 있던 사씨 서생은 그의 이런 반응에 놀란 모양이었다.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윤재성이 이토록 감정을 드러내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계연은 대두어의 입에서 쉽게 고리를 빼냈다. 곧이어 낚싯대를 내려놓고 두립을 벗은 그는 몸을 돌려 기슭의 윤재성을 향해 공수하며 예를 올렸다.
“윤 훈장님, 마지막으로 만난 때로부터 벌써 몇 년이나 지났네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하나도 변하지 않은 계연의 얼굴을 보자 윤재성의 감정은 더욱 격해졌다. 그는 급히 계연을 향해 예를 올리자, 곁에 서 있던 사씨 서생도 그를 따라 공수했다.
“저와 제 가족 모두 평안합니다. 선생님의 거처도 저희가 쓸고 닦으며 관리하고 있습니다. 계 선생님, 어서 여기로 오세요!”
계연도 사씨 서생을 향해 짧게 공수한 후, 웃으며 대답했다.
“곧 가겠습니다!”
바구니에 있던 물고기는 아직도 펄떡거리고 있었다. 계연은 뱃머리에 앉아서 노를 저어 방향을 바꾼 뒤, 강기슭을 향해 다가왔다.
윤재성의 감격한 모습을 보고 사씨 서생은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윤 형, 저 낚시꾼과 아는 사입니까?”
“알기만 할 뿐이겠소? 계 선생님과는 제 고향에서 가까운 이웃이었고 막역한 벗이기도 합니다. 떠나신 후로 몇 년간 만나지 못했는데, 여기에서 마주칠 줄이야!”
작은 배는 곧 기슭에 닿았고 계연은 한걸음에 배에서 내려왔다.
만약 현대라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를 만났으니 서로 껴안으며 인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시대의 인간관계는 좀 더 절제되어 있어서, 윤재성과 계연은 서로의 손을 잡고 악수만 했다. 그래도 두 사람의 감격을 대변하듯이 악수하는 이들의 두 손에는 잔뜩 힘이 들어갔다.
잡았던 손을 놓고 윤재성은 손을 뻗어 옆 사람을 끌어당긴 뒤 계연에게 말했다.
“계 선생님, 이쪽은 저와 함께 도성으로 향하는 제 일행입니다. 계주에서 온 동향(同鄕)입니다.”
사씨 성의 서생은 다시 한번 계연을 향해 공수한 뒤 이름을 말했다.
“제 이름은 사옥생(史玉生)이라 하고, 춘혜부에서 왔습니다!”
계연도 다시 한번 공수한 뒤 정중히 대답했다.
“저는 계연이라 합니다. 윤 훈장님과는 동향이며 오랜 친우 사이입니다.”
소개를 마친 그들은 이제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으니, 계연도 웃으며 뱃머리의 바구니를 가리켰다.
“때를 맞춰 잘 오셨네요. 마침 제가 대두어를 낚았으니 오늘 이것으로 윤 훈장님과 사(史) 공자를 접대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어서 배에 오르세요. 함께 진가촌(陳家村)으로 갑시다.”
계연이 정답게 청하자 윤재성과 사옥생 모두 배에 올랐다. 이들을 따라 계연도 배에 올라탔다.
노를 들어 올린 계연은 배에 앉은 두 사람을 향해 웃으며 일깨웠다.
“잘 잡으셔야 해요!”
기슭에 노를 대고 힘껏 밀자, 작은 배가 강으로 풍덩 미끄러지며 물결이 일었다. 방금 막 배에 앉은 두 서생은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바람에 선체를 꽉 쥐고는 몸을 일으킬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검은 천으로 덮인 이 배는 계연이 진씨에게서 빌린 것이었고, 진씨가 사는 ‘진가촌’은 강가 근처에 있었다. 북쪽으로 2리 정도 가면 나오는 작은 수로로 꺾어 들어간 뒤, 반 리 정도만 더 가면 바로 진가촌이었다. 강기슭에 서서 멀리 바라보면 마을의 윤곽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작은 배가 강을 따라 나아가자, 윤재성과 사옥생도 곧 적응하여 더는 배의 흔들림으로 인해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계 선생님, 몇 년간 어디로 유람을 떠나셨습니까? 제 아들 청이가 선생님 얘기를 많이 했습니다. 다음에 만나 뵙게 되면 그동안 선생님께서 보고 겪은 얘기들을 듣고 싶다면서요. 후원의 대추나무는 삼 년간 딱 한 번 대추가 열렸었어요. 그때 아주 대단한 어르신이 왔었는데, 대추를 먹는 모습이 정말 호탕하셨지요…….”
계연은 노를 저으며 윤재성이 늘어놓는 이야기들을 들었다. 그의 말이 끝나자 계연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청이는 아마 그 작은 여우를 더 그리워할 거예요, 하하하……!”
사옥생도 옆에서 웃으며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는 이렇게 쉬지도 않고 말을 하는 윤재성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은 먼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몸이 피로해 있었다. 그런데 이제 배에 올라 강변의 풍경을 감상하니 피곤함이 가시며 기분도 상쾌해졌다.
“참, 계 선생님. 그동안 어느 곳을 다녀오셨는지 아직 말씀을 안 해주셨어요. 기이한 절경을 보셨다거나 재미있는 일이 있으셨다면 저에게 이야기 좀 해주세요.”
배는 어느새 수로에 다다라 입구로 들어갔다. 계연은 노를 이용해 작은 배의 방향을 꺾은 뒤, 계속해서 노를 저으며 윤재성에게 농을 던지듯 말했다.
“그동안 요괴를 베었고, 마귀도 없앴고, 저승의 판관들과 여러 지방의 토지신을 뵈었으며, 명문 도파(道派)의 사람들을 만났고 용왕의 생신 연회에도 갔었어요. 정말 다채로운 경험이었네요, 하하하……!”
계연은 기분이 유쾌해져서 호탕하게 말했다.
윤재성은 계연이 겪은 일들이 모두 진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슴에 벅차올랐다. 옆에서 듣고 있던 사옥생은 하하 웃어넘기며 그의 말이 모두 농담이라고 여겼다.
이미 진가촌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에 작은 배는 아주 빨리 마을의 강변에 배를 대었다. 밧줄로 배를 잘 고정한 뒤, 계연은 그를 알아보는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윤재성과 사옥생을 진씨의 집으로 데려갔다.
계연이 오는 것을 보고 진씨 일가는 모두 기뻐하며 맞이했다. 특히 바구니 안에 엄청나게 큰 대두어가 있는 것을 보고 진씨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 * *
시각이 정오에 가까워질 때쯤이었다. 사옥생, 윤재성과 계연 세 사람은 식탁 앞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이미 접시와 그릇이 놓여있었고, 주방에서는 생선 요리의 냄새가 풍겨왔다.
며칠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던 윤재성과 사옥생은 자신들도 모르게 계속 침이 넘어갔다. 한쪽에서 이를 지켜본 계연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윤재성은 어느 순간 계연의 두 눈이 더는 회백색이 아닌 것을 알아차리고서 놀라워하며 물었다.
“계 선생님, 눈이 다 나은 것입니까?”
계연은 뜨끔했다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이건 그저 장안법(*障眼法: 사물의 진상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 술법)일 뿐입니다.”
그러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저었다. 윤재성은 장안법이 무엇인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글자의 뜻으로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생선 올라갑니다!”
진씨는 행주를 대고 김이 솟아오르는 접시를 들어 가져왔다. 계연은 얼른 앞으로 나가 그를 도와 생선탕을 식탁 위에 올렸다. 커다란 탕 접시는 식탁 공간 대부분을 차지했다.
“허허, 계 선생님께서 맛을 좀 아시는군요. 우리 통천강의 대두어가 맛있기로 유명한데 특히 이 생선 머리가 일품이지요. 게다가 이렇게 30근에 가깝게 큰 대두어는 보기 힘듭니다. 생선 머리가 너무 커서 일반적인 그릇에는 담지도 못했을 정도입니다. 이런 생선은 경기부에 있는 비싼 식당에서도 쉽게 먹을 수 없어요!”
진씨는 웃으며 설명한 뒤 주방에서부터 다시 온갖 반찬을 날라왔다. 절인 채소, 양념을 묻힌 고기 요리 등과 함께 직접 담근 술도 한 주전자 내왔다.
“계 선생님, 그리고 두 분 서생분들 모두 맛있게 드세요. 저는 제 가족과 주방에서 먹고 있겠습니다.”
“네. 준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저씨.”
“감사합니다, 어르신!”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연과 나머지는 감사 인사를 한 뒤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진씨와 그의 가족들은 주방으로 돌아가 기쁘게 식사를 들었다. 이렇게나 큰 대두어였지만 계연은 생선 머리만 원했으므로, 남은 것은 모두 진씨와 그의 가족들이 먹게 되었기 때문이다.
향긋한 냄새가 사방으로 퍼지며 그들은 그릇을 아주 호쾌하게 비웠다. 이 생선 머리는 고기가 아주 실했고 뼈가 많지 않은 데다가 국물에서는 깊은 맛이 났다. 그래서 평소 밥을 많이 먹지 않는 두 서생도 젓가락질을 쉬이 멈추지 못했다.
식탁에서 계연은 자신이 보았던 풍경과 만났던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윤재성과 그의 일행은 배와 마차를 바꿔 타며 급히 왔지만, 계연은 이들보다 더 많은 일을 겪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정을 나누었다.
길에서 만난 이의 혼인 축하연에 초대받아, 붓을 들어 축하하는 말을 써주고 그들과 함께 나눈 기쁨. 그리고 겪었던 화합하는 분위기. 한배를 타고 같은 음식을 나눠 먹던 먹는 호젓함……. 이름도 알리지 않았지만 오래 사귄 이들처럼 상대가 어려울 때 몇 번이고 베풀어주던 그 은의(恩義)…….
계연이 묘사하는 모든 사건이 너무나 생생해서 이야기를 듣던 윤재성과 사옥생은 때로는 감탄하고 때로는 기뻐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가 끝에 다다랐을 때, 계연은 두 서생에게 자신의 배를 타고 맞은편 경기부로 가는 것이 어떠냐 제안했다. 만약 그들이 장원 나루터에 들러 좋은 기운을 받고 싶다면, 거기에 들렀다 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들은 물론 기뻐하며 찬성했다.
남은 오후 내내 식사를 했기 때문에, 식탁 위의 음식 대부분은 두 서생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먹은 양을 가늠해보니 저녁밥은 준비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그날 밤 두 서생은 진씨의 집에서 하루 묵기로 했다. 계연은 다음 날 일찍 일어나 장원 나루터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로 했으므로, 그들과 다른 방에서 묵었다.
밤이 되어 등을 끄고 나서 윤재성과 베개를 나눠 벤 사옥생은, 아직도 낮의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윤 형, 계 선생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저리 많은 일을 겪었단 말입니까?”
윤재성은 웃음을 터뜨렸다.
“선생의 이야기는 들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는 곧 있을 과거 시험에 대해서나 생각합시다. 계 선생님과 같이 속세를 떠나신 분과 우리 같은 범인들은 아주 다르니까요.”
“그렇지요. 그분은 확실히 속세를 벗어난 분입니다. 저도 그분을 만난 지 하루가 되었을 뿐이지만, 신선과 같은 그분의 소탈함을 느꼈습니다. 윤 형께서도 이에 끌려 친우가 된 것이군요.”
“하하하……. 그만 잠자리에 듭시다!”
윤재성은 이불을 다시 한번 잘 덮은 뒤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