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15화 (115/892)

115화. 밝은 자미(紫微)의 기운

이튿날.

윤재성과 사옥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마친 뒤에 진씨에게서 계연이 남긴 말을 전해 들었다. 배를 몰고 장원 나루터에서 기다리겠다고 말이다.

장원 나루터로 이들을 싣고 갔다가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는 것보다는, 장원 나루터에서 만나 맞은편으로 배를 타고 건너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진씨의 집에서 아침 식사를 마치고서 진씨의 아들인 진정홍(陳井洪)을 따라 장원 나루터로 향했다. 원래는 소달구지를 타고 가려 했으나 속도가 너무 느려, 직접 걸어가기로 했다.

진정홍은 촌락에서 나고 자란 젊은이였고, 두 서생은 과거 시험을 보느라 먼 길을 걷는데 단련이 되었으므로, 세 사람의 걸음은 그리 느리지 않았다. 2시간 정도 만에 십수 리를 걸어서 그들은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장원 나루터에 가까워질수록 인파가 바글거렸는데, 사방에서 모두 이곳을 향해 모여드는 것 같았다. 그들 모두가 과거 시험을 치러 온 공사(貢士)들은 아니었고, 대부분은 지나는 길에 강신을 모시는 사당에 들려 향을 올리려는 참배객들이었다.

장원 나루터에 도착하기 직전에 진정홍은 발걸음을 멈추고 전방의 두 곳을 가리키며 그들에게 설명했다.

“저 흰색 담장에 검은 기와를 덮은 건물이 통천강의 강신을 모시는 사당입니다. 강을 따라 세워진 사당들 중에 가장 큰 것은 아니지만, 향불로는 유명합니다. 특히 많은 문인이 저곳에 글씨와 시를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저쪽이 바로 장원 나루터로, 계 선생님께서는 북쪽의 작은 부두에서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진정홍은 설명을 마치고 이곳에 볼일이 없기에 곧 자리를 떠나려 했다.

“이곳까지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진 형!”

“감사드립니다, 진 형. 장래에 이 사옥생이 관직을 얻거든 꼭 보답하겠습니다!”

“하하, 좋습니다. 두 분 모두 높은 등수로 합격하길 바랍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몸조심하세요!”

두 사람이 공수하자 그도 웃으며 같은 예로 화답한 뒤 몸을 돌려 떠나갔다. 이들과 같은 서생을 그는 많이 만나봤는데, 서생들은 모두 장원 나루터를 건너며 자신들도 장원에 오를 수 있기를 바라곤 했다.

윤재성과 사옥생은 진정홍이 떠난 뒤, 배낭을 고쳐 매고는 매서운 바람을 뚫고 장원 나루터를 향해 걸어갔다. 두 사람 모두 강신을 모시는 사당에 한번 가보고 싶었으나, 계연을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들은 춘혜부의 부두를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장원 나루터는 그에 비하면 많이 작게 느껴졌다. 그러나 맞은편 강가의 부두를 바라보니 두 사람의 생각이 바뀌었다. 부두는 경기부의 수상 운송의 거점으로, 춘혜부의 외항(外港)보다 훨씬 더 크고 북적였다.

* * *

춘혜부에는 유람선들이 대부분이지만, 이곳은 화물이 모이는 중심지이기 때문에 유람선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엄동설한에는 운송되는 화물이 많지 않아서, 어쩌다 보이는 강가에 정박한 배들이 대부분이었다.

검은 천으로 지붕을 덮은 배는 북쪽의 작은 부두 옆에 떠 있었다. 주변에 정박한 배들은 다른 부두에 있는 배들보다는 작았으나, 그래도 계연의 배에 비하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계연은 뱃머리에 앉아 <어론>을 읽으며 귀로는 항구의 나루터에서 들려오는 갖가지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의 이름이 장원 나루터이기 때문에 문기(文氣)가 강해서인지, 주변에는 문방사우와 글과 그림을 파는 가게들이 많았다. 계연이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다양한 이들의 기운이 혼잡하게 섞인 와중에 유난히 돋보이는 옅은 자미(*紫微: 천제(天帝)가 산다는 전설 속의 궁궐을 비유. 세계의 중심을 뜻함)의 기운을 발견했다.

‘어느 총애받는 황자가 장원 나루터에 온 것인가?’

그 기운은 비록 아주 옅은 자색(紫色)이었지만, 대신 아주 순수해서 다른 잡색들이 섞여 있지 않았다. 이는 그 사람의 심성이 조정의 부패하고 사치스러운 기운에 침범당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이런 기운을 가진 자는 ‘밝다(明)’라는 글자로 표현할 수 있었다.

계연은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한번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재미있는 일이 생기겠구나.’

윤재성의 호연한 정기가 곧 눈에 띄더니 두 기운이 솟구치며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보아하니 <외도전>의 말 대로 자미의 기운이 밝은 자는 현명한 신하를 끌어당기는구나!’

계연은 곧 뱃머리에서 부두로 올라와 재미있는 만남을 지켜보려고 두 기운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장원 나루터의 문방사우를 파는 한 노점 옆에서는 서른 몇 살의 준수하고 풍채가 남다른 한 남자가 여러 시종을 거느리고 사방을 관찰하며 걷고 있었다.

그중 한 이가 남자가 손을 비비며 열기를 불어넣는 것을 보고는 즉시 다가와 입을 열었다.

“삼 공자, 만약 추우시다면 그만 배에 오르시지요. 안에 난로와 따뜻한 모피…….”

“어휴! 또 너로구나. 흥이 깨지니 그만 입 다물어라.”

남자는 손을 휘둘러 아랫사람의 입을 다물게 하고는 계속해서 앞을 향해 걸었다. 오늘 그는 원래 강신을 모시는 사당에 새롭고 뛰어난 글이 있는지 살피러 온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런 수확이 없어서 사당을 나온 김에 장원 나루터를 둘러보는 중이었다.

도성에 들어와 시험을 치르는 서생들은 대부분 이 시기에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각 주(州)에서 학식을 검증받아 올라온 이들이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장원 나루터를 신성하게 보는 얼굴이 제법 웃겼다. 만약 이들 중에서 흥미로운 이들을 한두 사람 발견할 수 있다면 더 재미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남자는 등에 서책을 지고 부두에 들어선 윤재성과 사옥생을 발견했다. 손과 얼굴이 모두 새빨간 것을 보니, 이들은 놀랍게도 걸어온 것 같았다.

장원 나루터에서 가장 가까운 시장은 30리(*약 11km) 정도 떨어져 있었고, 부근에 가장 가까운 마을도 20리(*약 8km)가 떨어져 있었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매서운 바람을 뚫고 먼 길을 걸어온 서생들은, 오늘 이곳에 모인 사람 중에는 이들이 처음일 것이다.

남자는 두 서생을 가리키며 옆에 있던 이에게 물었다.

“저 두 사람이 걸어서 온 것 같으냐, 아니면 마차를 타고 앉아 온 것 같으냐?”

곁에 서 있던 시종이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두 서생을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더니 잠시 후에 대답했다.

“공자께 아룁니다. 저 두 사람의 걸음이 평온하게 보이지만 딛는 힘이 약한 데다 피곤한 표정을 보아하니,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온 것이 분명합니다.”

남자는 대답을 듣고서, 두 사람이 이쪽을 향해 오며 좌판에 놓인 글자와 그림들을 살피는 것을 보았다.

그들이 남자의 옆을 막 지나치려 할 때, 윤재성은 돌연 멈춰 서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 후 윤재성이 귀신에 홀린 듯 그를 향해 다가가자, 남자의 근처에 있던 아랫사람들이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흉악한 얼굴을 한 이들의 시선이 이쪽에 모이자, 사옥생은 당황하여 서둘러 윤재성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선생, 실례지만 내 얼굴에 뭐가 묻었습니까?”

남자가 이렇게 묻자, 윤재성은 그제야 사옥생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을 느꼈다. 윤재성은 마치 꿈에서 깬 듯한 기분으로 연이어 사과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방금 제가 잠깐 정신을 놓았나 봅니다. 공자의 얼굴이 무척 낯익긴 하나, 확실히 전에 본 기억이 없기에 기이하게 느껴져서…….”

윤재성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상대의 시종 둘이 어느새 자신과 사옥생의 뒤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두 사람이 다가와 자신들의 어깨를 잡더니, 남은 이들이 자신들의 배낭을 열어 서책을 헤집어 보았다.

“지금 대체 뭐 하는 겁니까? 멈추시오! 멈추란 말이오!”

사옥생은 놀라 고함을 쳤고, 윤재성은 침착한 태도였으나 안색만은 좋지 않았다.

‘사람을 조금 오래 쳐다봤다는 것으로 이렇게 큰 시비를 불러일으킬 줄이야.’

그는 눈으로 계속해서 부두 주변을 훑었다. 계 선생님이 이 부근에 있는 걸 알고 있는 그는 조금도 당황해하지 않았다.

주위의 노점 주인들과 지나는 이들은 아무도 이런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 했다. 그들은 저 두 서생이 어느 권세 있는 집안의 사람을 잘못 건드렸다고 여겼다. 장원 나루터에서 이런 일은 꽤 심심치 않게 일어났다.

두 사람의 배낭과 몸수색을 마친 남자들은 어떤 흉기도 찾지 못했다. 그중 한 시종이 관부에서 발행한 문서 두 장을 3공자라고 불린 남자에게 보였고, 그는 이를 살펴본 뒤 두 사람을 향해 물었다.

“윤재성이 누구인가?”

“접니다.”

윤재성의 대답을 듣고 3공자는 흥미가 인 듯 아래위로 그를 살펴보았다.

“계주의 해원이라? 재미있구나. 놓아주어라!”

하인들은 그의 말을 듣고 두 사람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풀려난 두 서생은 가장 먼저 어깨를 주무른 후, 방금 수색 중에 땅에 떨어진 서책들을 다시 보따리 안으로 주워 넣기 시작했다.

3공자의 시선이 땅에 떨어진 몇 권의 책을 향했다. 호기심이 인 그는 바닥에 무릎을 구부려 앉았다.

“이것은 또 어떤 유명한 이가 쓴 서책인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윤재성은 그가 가리키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대답했다.

“<군조론>과 <위지의> 모두 소생의 졸작(拙作)입니다. 어떤 유명한 이의 서적도 아닙니다.”

3공자는 땅에서 직접 책을 주워들고는 겉에 아름다운 서체로 적힌 <군조론-학동의 대답>을 살피다가, 다시 다른 책들을 살펴보았다. <군조론-순회야유(巡回夜游)>, <군조론-약관서대(弱冠書對)>, <군조론-봉명오동(鳳鳴梧桐)>이라는 제목을 보아하니 연작(連作)인 것 같았다.

손안의 책을 몇 쪽 아무렇게 넘겨보던 그는 필적이 깨끗하고 서체가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니 이 또한 아주 흥미롭고 신기했다.

“계주의 윤 해원, 이 책들을 내게 파는 게 어떠한가?”

3공자가 진지하게 윤재성을 향해 묻자, 이를 들은 윤재성과 사옥생은 모두 잠깐 할 말을 잃었다.

“음……. 책값으로 얼마나 내실 생각입니까?”

이 책들은 윤재성이 아무 때나 몇 권 다시 써낼 수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은 여비가 모자라니, 만약 책을 팔아 돈을 벌 수 있다면 잘된 일이었다.

3공자가 시종들을 향해 손짓하자 한 명이 즉시 품 안에서 돈주머니에서 은 두 덩어리를 꺼냈다. 크기를 보아하니 한 덩어리마다 최소 4, 5냥은 될 듯했다.

“이 정도면 되겠소?”

“이건 너무 과합니다.”

“됩니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윤재성이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사옥생이 말을 가로채 대답했다. 남자는 씨익 웃더니 하인의 손에서 은자를 집어서 윤재성의 배낭 위에 올려놓았다. 그가 손을 뻗자 윤재성은 그제야 정신이 든 듯, 급히 <군조론>의 나머지 세 권과 <위지의>를 상대방에게 건네주었다.

남자가 일행을 데리고 떠난 후에도 윤재성과 사옥생은 여전히 방금 벌어진 일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책 몇 권을 열 냥이 넘는 은자에 팔다니, 이제 그들은 도성에서 겨울을 나는 데에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계연은 먼 곳에 서서 소란을 지켜보는 이들 사이에 섞여 있었다. 다른 이들은 아무런 충돌이 일어나지 않자 곧 자리를 떴지만, 계연은 계속해서 황자가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저 ‘3공자’가 윤 훈장의 서책을 받아 들었을 때, 계연은 그자의 머리 위에서 자미의 기운이 미세하게 동요하는 것을 보았다.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었으나, 그 여운이 깊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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