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17화 (117/892)

117화. 흔치 않은 인간과 요괴의 사랑

두 명의 주간 순시관들은 경기부 저승의 좌우(左右) 부사(副使)들이었다. 저승에서 백 년간 일을 해왔지만, 이들도 이렇게 괴이한 일은 처음이었다. 요괴가 그들을 대면하고도 도망치거나 숨지 않다니!

곧 정신을 다잡은 우부사가 여인을 엄하게 질책했다.

“요사스러운 것! 감히 경기부 백성의 집에 숨어들다니!”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요기는 아주 옅어서, 주간 순시관이 보기에 여인은 사람의 형상을 한 요괴가 아니라 모습을 바꾸는 데 능한 이매(*魑魅: 사람을 홀리는 숲속의 도깨비)로 보였다. 둘의 실력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두 주간 순시관은 칼손잡이에 손을 얹었고, 두 저승사자도 여인을 주시하며 허리에 차고 있던 구혼삭을 잡았다.

“주염생의 혼은 급하지 않으니 저 요사한 것부터 잡아들여라!”

순시관이 명령하며 칼을 검집에서 뽑아 들자, 저승사자들은 허리춤에서 구혼삭을 끌렀다. 순간 이들이 뿜어내는 음기가 사방에 짙게 깔렸다.

여인은 구슬픈 얼굴로 침상 곁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느릿한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저승에서 온 관리들에게 만복례(*萬福禮: 여자들이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머리와 무릎을 숙이는 인사)를 올렸다.

“저승의 나리들께서 저를 용서해주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제 낭군의 수명이 다하는 날이고, 저와 낭군님은 오랫동안 서로를 연모해 왔습니다. 부디 저를 낭군과 함께 데려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 주시면 반항하지 않고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방 안에 있던 다른 주 노인의 식솔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다. 그저 노인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것만 볼 수 있었고, 방 안에 음기가 가득 차 음산한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여인의 말을 듣고 그들은 모두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들은 연신 좌우를 둘러보더니 두려움에 한곳으로 모였다.

“저승이라니?”

“저승사자가 온 건가 봐.”

“어르신을 데리러 온 거야?”

“아이고, 어쩐지 방 안이 음산하여 소름이 돋더라니!”

“쉬, 조용히들 하세요!”

주간 순시관들은 여인의 말을 듣고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아래위로 그녀를 샅샅이 훑어보았다.

“감히 하찮은 이매 주제에 저승의 관리와 흥정하려 하다니! 지금 네게서 포악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가 너를 믿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요괴가 인간을 해칠 때는 널린 게 방법이니까.”

또 다른 주간 순시관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만약 네가 반항하지 않고 우리가 네 혼백을 묶을 수 있게 해준다면, 저 노인을 바래다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저승으로 갈 수 있게 해주마!”

여인은 결연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시작하시지요!”

그녀의 말을 들은 네 명의 저승 관리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스스로 묶여 가겠다는 요괴는 생전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한번 저승을 밟은 요괴들은 다시 나올 가망이 없는데, 무슨 속셈이라도 있는 건가?

“시작해라!”

주간 순시관이 고함치자 음기가 진동했고, 그들은 곧 하얀 연기로 변해 여인의 옆에 나타나 전광석화처럼 칼을 휘둘러 베었다.

두 저승사자도 구혼삭을 채찍처럼 던져 여인을 향해 날렸다.

두 순시관의 신형이 교차하여 지나가며 칼 두 자루가 차례로 여인의 혼을 베었다. 그 후 저승사자의 사슬이 혼을 때리고 지나가자, 혼백은 잠시 휘청하더니 덜덜 떨었다.

땀방울이 여인의 얼굴에서 치솟아 턱을 따라 흐르며 땅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녀는 읍하는 자세 그대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서 모든 공격을 받아냈다.

“이년…….”

두 주간 순시관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칼자루를 쥐기만 할 뿐 다시 휘두르지 않았다.

이 시각 계연은 건물 바깥에 서서 회백색의 두 눈으로 실내에서 벌어지는 일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 사이의 방문이나 벽은 마치 허상처럼 흐릿해져 그의 시야를 가리지 못했다.

저 요물과 주염생 사이의 사랑은 저승의 관리들마저 잠시 당황했을 정도로 꽤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들이 여인을 놓아줄 거라는 뜻은 아니다. 만약 여인이 저승의 입구에 들어선다면, 각 기관에서 나온 관리들이 즉시 그녀를 잡아넣을 터였다.

‘바래다주는 일에 요괴가 목숨을 건다고? 분명 다른 수가 있는 거로구나!’

계연이 이렇게 생각하던 찰나, 방 안에서는 저승사자가 쇠사슬로 여인의 혼백을 속박하고 있었다. 그녀의 협조하에 그들은 조금도 힘을 들이지 않고 혼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응?’

계연은 얼핏 요괴가 부린 수작을 목격한 것 같았다.

여인의 혼백은 끌어내고 나서도 인간의 형상이었는데 입고 있던 옷은 하얀 모피 옷으로 변해 있었다. 요괴나 정괴들은 혼백으로도 인간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들이 입고 있던 옷이 변화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었다.

잠시 후, 방 안에서는 진실하거나 과하게 힘을 들인 울음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어르신!”

“아버지!”

“어르신, 이리 가시면 어찌합니까!”

“저는 불효자식입니다!”

주염생이 방금 세상을 뜬 것이 확실했다.

과연, 잠시 후 저승사자들이 좌우로 서서 두 혼백을 꽉 잡은 상태로 방 안에서 나왔다. 주간 순시관들은 그들의 앞뒤로 서서 칼을 쥐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관리들은 그들의 편의를 조금 봐준 듯했다. 사슬에 묶인 두 영혼은 서로를 의지하며 걸었고 두 저승사자는 그들의 양쪽에 서서 걸었다.

계연은 집 밖에 자란 한 나무 그늘에 서 있었는데, 장안법을 썼기 때문에 그림자와 한 몸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귀신 넷과 혼백 둘은 어떤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계연의 옆을 지나쳐갔다.

꽁꽁 묶인 두 혼백을 보니, 나이 든 모습의 주염생과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서로 기대어 걷고 있었다. 이 둘을 지켜보는 계연은 이들이 부녀 사이로는 보이지는 않았다. 이들에게서 서로에게 가진 연모하는 마음과 애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음피산을 든 저승사자들은 혼백을 데리고 경기부의 대로를 가로질렀다. 두 혼백의 눈에는 자신들이 걷는 길이 점점 무거운 안개에 뒤덮이는 듯이 보였다. 길을 지나는 행인들의 모습도 흐릿한 인영으로만 보이게 되었다.

안개가 점점 짙게 내려앉는 것은 저승에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주염생과 여인은 상대의 손을 꼭 쥐고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걸었다. 주염생은 우울한 기색으로 무언가를 걱정하는 모습이었고, 그에 반해 여인은 담담한 태도였다.

“이리 오래 일했는데도 인간과 요괴 간의 사랑은 처음 보는군!”

“흥, 요괴들은 결국 인간을 해쳐. 주염생 저자가 요괴와 얼마나 오랜 세월 함께했는지는 모르지만, 저 요괴가 아무리 자제했어도 그의 원기는 그동안 조금씩 상했을 거야!”

“하하하, 주염생 자네는 복이 있군. 생전에 깊은 사랑을 나누고 이제는 저승길까지 따라오다니! 하지만 저 요괴는 자네처럼 운이 좋진 않을 거야!”

특이한 상황을 맞닥뜨린 관리들은 참지 못하고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눴다. 이를 들은 주염생은 여인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최근 몇 년간, 주염생은 와병하며 점점 몸이 허약해져 갔다. 하지만 이제 이승을 떠난 그는 오랜만에 기력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며, 여인의 손을 힘주어 잡을 수 있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에게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여인은 고개를 돌려 주염생을 향해 웃었다.

“낭군께서는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괜찮을 거예요. 다만…… 저는 홀로 수련하여 요괴가 되어서 사람을 해칠 줄만 알지, 어찌 살리는지는 모릅니다. 선도(仙道)를 닦은 것도 아니고, 진기한 묘약도 없었지요. 온갖 곳을 뒤져서 겨우 20년의 수명을 연장했을 뿐…….”

“약(若) 낭자가 오랜 세월 내 곁에서 함께해 주었으니, 이 주염생은 천하의 모든 사내 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오!”

두 혼백은 서로 의지하며 정답게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는 와중에도 저승의 관리들은 나는 듯이 이동해 곧 성황당이 위치한 묘사방에 이르렀다. 성황당 안에서는 은은한 금빛이 번지는 향불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성황당 아래 안개가 자욱한 곳에서는 저승의 풍경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곧이어 음기가 점점 강해지더니 관리들이 이리저리 바삐 움직이는 저승의 풍경이 보였다. 주염생은 여인이 자신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는 것을 느꼈다.

저승의 입구에 다다랐을 때, 주염생은 자신의 옆에서 울음이 섞인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낭군님 잘 지내셔야 해요! 저는…… 여기까지만 배웅할게요!”

말을 마친 여인의 혼이 꿈틀대며 구혼삭에서 빠져나갔다. 그녀가 입었던 흰 모피옷만이 사슬에 남았고, 그사이 요괴의 혼은 재빨리 먼 곳으로 날아갔다.

네 명의 저승 관리들은 일이 잘못된 것을 느꼈다.

챙! 챙!

두 주간 순시관이 즉시 칼을 뽑아 들었고, 곧이어 이들은 하얀 허상으로 변하며 요괴를 뒤쫓았다.

“무엄하구나! 저승의 입구에 다다랐는데도 도망갈 생각을 하다니!”

저승사자가 흰 모피옷이 남아있던 사슬을 풀어 여인의 몸을 향해 던졌다. 그러나 사슬이 닿은 혼은 하얀 안개처럼 사라졌다.

두 야간 순시관의 검광이 지나간 자리에도 형체 없는 흰 안개가 남아있을 뿐이었다.

“이런……! 당했어!”

그때 바닥에 있던 하얀 모피옷이 돌연 먼 곳을 향해 날아올랐다. 공중에서 옷은 다시 여인의 형태로 변했다.

“낭군, 부디 잘 있어요!”

아름답고 깨끗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아직 어찌 된 일인지 파악하지 못한 관리들은 노여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간 순시관은 허리춤에서 초혼종을 떼어내 공중에서 빠르게 흔들었고, 그 자신은 다시 하얀 연기로 변해 요괴를 뒤쫓아갔다.

댕댕, 댕댕-!

초혼종이 울려 퍼지자 저승 전체가 그 신호를 받았다. 음양사 기관장은 한걸음에 저승을 나서서 두 눈을 반짝이며 주간 순시관이 뒤쫓아간 방향을 바라보았다.

“한낱 요괴가 감히 경기부 성황당 앞에서 관리들을 속여 희롱하다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

이어서 공과사, 상선사, 벌악사 등 몇 개 기관의 기관장들이 모두 나와서 법광을 내뿜으며 요괴가 도망친 방향으로 뒤쫓아갔다.

두 저승사자가 엄히 지켜보고 있는 주염생은 여인을 걱정하는 것 같기도, 넋이 나간 것 같기도 했다.

* * *

경기부 성황신 아래에 있는 각 기관의 기관장들은 도망친 요괴를 뒤쫓고 있었다. 특히 음양사 기관장은 눈으로 음양의 기운을 읽어 뒤쫓을 수 있었기 때문에, 요괴들이 형체를 감추어도 소용이 없었다.

계연은 성황당의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주루 옆에 서 있었다. 계연은 넋이 나간 듯한 주염생이 저승사자들에 의해 성황당 안으로 사라진 후에 흰 모피옷을 입은 여자가 도망친 방향을 바라보았다.

평범한 사람들은 사악한 요괴들에게 아주 쉽게 매혹당한다. 그들에게 현혹당해도 쉽게 알아채기 힘들뿐더러, 자신의 원기에 커다란 손상을 입는다.

계연은 처음에는 사실 주염생과 ‘약 낭자’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쉽게 단정할 수는 없었다. 인간과 요괴 사이에 진실한 감정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주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 읽은 백사전(白蛇傳)에서도 제일 처음에는 백 낭자도 허선(許仙)을 속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저승의 문턱에서 여인이 울며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을 본 계연은 마음이 움직였고, 그들의 사랑을 믿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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