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18화 (118/892)

118화. 조금 더 강한 실력

‘경기부 성황신은 쉽게 건드릴 수 없어.’

자조하듯 웃은 계연이 한 발 내딛음과 동시에 그의 신형이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가 계속해서 걸음을 내딛자 땅이 수축하듯 줄어들었고, 그는 금옥방 방향으로 향했다.

알고 있는 술법을 모두 써서 계연은 얼마 후 다시 주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주부 내에서는 한바탕 곡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주씨 집안의 모든 이가 주염생의 침대 곁에 둘러앉아 슬피 울고 있었으며, 두 하인이 아직 시체가 굳지 않은 틈을 타서 주염생을 수의로 갈아 입히고 있었다.

여인의 육신은 잠시 바닥의 돗자리 위에 놓여있었는데, 그래도 너무 지나친 대접은 받지 않은 것 같았다.

‘내 지금까지 일평생 명예롭게 살아왔는데, 시체를 훔치는 일을 하게 될 줄이야!’

이런 생각을 하던 계연은 곧 잡념을 떨쳐내고, 장안법을 이용해 모습을 숨긴 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여인의 육신에서 조금 떨어져서 소매를 한번 휘둘렀다.

육신이 공중에 떠오르던 순간 계연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느껴지는 무게가 여인 한 명의 무게이긴 했지만, 동시에 괴이하게 비어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법안을 열어 다시 살펴보자, 여인의 육신이 하얀 꼬리로 변했다. 즉 방금 꽁꽁 묶여 저승에 끌려간 것이 여인의 혼백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비록 계연이 눈을 반밖에 열고 있지 않았고, 요괴가 남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더라도 어쨌든 계연은 이 수법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계연이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게 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실력이었다. 이는 일반적인 장안법과 비교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몹시 놀랐지만, 계연은 곧 이 ‘육신’을 데리고 떠났다.

여인의 육신은 공중에 뜬 채로 계연을 따라가더니 어느새 방 안에서 사라졌다.

주씨 집안 사람들은 여전히 울고 있었는데, 이때 하인 하나가 여인의 시신이 보이지 않는 것을 알아챘다. 이를 듣고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백약(白若) 부인의 시신이 사라졌다니!”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원래 요괴였으니 스스로 도망간 게 아닐까?”

“쉬이……!”

“오늘은 정말 소름 끼치는 날이야!”

“날 따라오거라, 어서 찾아보자!”

주 씨 집안의 맏아들과 하인 둘이 건물의 안팎을 샅샅이 뒤졌으나 당연하게도 여인은 발견되지 않았다.

주씨 집안 사람들은 한바탕 소동이 지난 뒤에야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계연은 여인이 백약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아내고 서둘러 그녀의 육신을 데리고 떠났다. 계연은 성안을 푸른 연기처럼 휙휙 지나가면서 묘사방에서 멀리 떨어져 황성이 있는 방향을 향해 갔다.

저승의 귀신들에게 발각될까 걱정된 계연은 눈에 띄는 술법을 부리지 않고 사람이 많거나 소란스러운 곳을 피해 갔다.

계연이 여인의 육신을 데리고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저승에서 온 관리들이 주부에 도착했다. 도망친 요괴가 다시 돌아올 일은 아마 없을 테지만, 그래도 예방하는 차원에서 육신을 가지러 온 것이었다.

그들은 주부에 도착하고서 곧 그 요물의 육신이 사라진 것을 알아차렸다.

이때 계연의 마음은 여러 생각으로 복잡했다.

‘남의 육신을 가지고 도망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람!’

그래도 방법이 없었다. 그에게는 선검이 있고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하면 경기부 성황신을 딱히 두려워할 이유도 없는 데다, 통천강이 멀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은 명분도 없고 당당한 위치가 아니었다. 그는 정말로 성황신과 충돌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술법을 좀 부리고 체면을 세우면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그렇게 하자니 너무 번거로웠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으면 그편이 좋으니, 어쨌든 남는 것은 이 방법뿐이었다.

일각 정도 후에 계연은 성에 있는 어떤 지체 높은 집안의 후원으로 들어갔다. 그곳 누각의 3층에 올라간 그는 다시 소매를 휘둘러 여인의 육신을 내려놓았다.

‘이곳은 아무래도 서각(書閣)인 듯하니, 분명 오가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과연 이곳에는 남아있는 사람의 기운이 얼마 없었고, 문발 바깥으로 이어진 회랑에는 이미 먼지가 한 겹 내려앉아 있었다. 보아하니 저택의 하인들도 아주 가끔 청소하러 드나드는 것 같았다.

“네 낭군을 성황당 문 앞까지 배웅하고도 도망칠 실력이 있었으니, 분명 아직 안 잡혔겠지?”

혼잣말을 한 계연은 무릎을 굽혀 여인의 옆에 꿇어앉았다. 계연은 왼손으로는 여인의 이마를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검지로 허공에 원을 그리며 목 깊은 곳에서부터 칙령을 내뱉었다.

“백약에게 명하니 속히 모습을 드러내라, 백약에게 명하니 속히 모습을 드러내라!”

검지를 접고 방금까지 허공에 그리던 원에 손바닥을 가볍게 대자, 난해한 형태의 빛깔이 공기 중에서 파도처럼 일렁거렸다.

그가 사용한 것은 구신술이었다.

‘이렇게도 쓸 수 있었구나!’

여인의 혼은 성안에서 저승의 몇몇 기관장에게 쫓기고 있었다. 그녀는 놀랍도록 빠른 데다 기운이 괴이하여, 때때로 매미가 허물을 벗듯 도술을 부렸다. 음양사 기관장이 계속해서 추격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미 완전히 도망칠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 상황은 아주 위급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녀의 뒤를 쫓는 판관이 판관붓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여인의 외형을 그려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판관의 책자에 기록이 적히면, 성황신의 관할 범위에서 달아나지 않는 한 더는 형체를 숨길 수 없었다.

그러나 경기부 성황신이 직접 그녀를 잡으러 오지 않는 이상, 백약은 도망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물론 바쳐야 할 대가는 작지 않을 것이다. 혼과 신체의 원기가 상할 뿐만 아니라 꼬리도 아마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꼬리가 변신한 육신은 주염생과 함께 묻히게 될 테니, 그 정도면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주씨 집안의 맏아들은 성격이 좋지 못했지만, 그의 효심은 진짜였기 때문에 자신과 주염생이 같은 곳에 묻히도록 해줄 것이다.

경기부에 더는 머무를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곧 전방의 성벽을 볼 수 있었다. 요기가 솟구치는 동시에 백약은 법력을 펼치며 성벽에 돌진하듯 달려들었다.

솨앗-.

성벽을 그대로 통과해 나오자 그녀는 즉시 긴장이 풀렸다. 일단 경기부를 둘러싼 성벽을 나오면 성황신을 거리낄 필요가 없이 부적을 써서 도망칠 수 있었다.

그러나 너무 빨리 마음을 놓은 것 같았다. 분명 방금 벽을 통과해 나왔는데, 눈앞에는 빽빽한 금빛이 펼쳐져 있었다. 바로 넝쿨로 만들어진 금빛의 그물망이었다.

‘경기부 토지신이야!’

경기부에는 성황신뿐만 아니라 경기부 전체를 장관하고 있는 진정한 토지신이 있었다.

“요괴가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토지신의 노한 음성이 들려오자 백약은 사그라진 재처럼 희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빨리 토지신이 등장하다니, 이제는 정말 살아날 기회라고는 한 가닥도 없었다. 기운을 숨기고 도망치게 해주는 부적이 있다더라도, 토지신의 관할 구역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낭군과 함께하는 것도 괜찮겠지!’

그러나 넝쿨 모양으로 된 토지신의 황금 그물망이 공중을 덮는 동시에, 백약이 토지신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음?”

경기부 토지신은 비록 노인의 몸이었지만, 구척장신에 법포(法袍)를 입고 손에는 굵고 커다란 넝쿨 모양의 지팡이를 쥐고 있었다. 그는 의혹에 찬 얼굴로 요괴가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도성 내부와 바깥을 다시 한번 훑었지만, 요괴가 간 곳을 알아낼 수 없었다.

성황신 밑의 여러 기관장은 요괴를 쫓아 성벽을 넘어오다가 그곳에서 토지신을 발견했다. 그들은 모두 토지신을 향해 공수한 후 공손하게 물었다.

“토지신을 뵙습니다!”

“토지신께서는 혹시 여기로 도망쳐 나온 요괴 하나를 보셨습니까?”

음양사 기관장은 질문을 던지며 토지신이 손에 쥔 안이 텅 빈 넝쿨 그물망을 바라보았다.

토지신도 현재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한 상태였다.

“조금 전 어떤 이가 사당에서 제를 올려서, 공물을 맛보던 중 성안이 소란스러운 것을 보았네. 게다가 희미한 요기가 느껴지고 법광이 번쩍이길래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그것을 쫓아왔지. 그 요괴를 막 사로잡으려던 때에, 놀랍게도…… 그 요괴가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네!”

“사라졌다니요?”

저승의 각 기관장과 관리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해했다. 토지공께서 계시는데 도망칠 수 있는 요괴라면, 보통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약 그런 법력과 신통함이 있다면 왜 그렇게 힘들게 도망쳤단 말인가?

* * *

한 저택 안에 있는 서각의 3층.

백약은 강력한 자석에 끌린 철가루처럼 이곳으로 끌려왔다. 곧이어 그녀는 공기 중에 생긴 파문에서부터 아래로 확 당겨지며 바닥에 누워있던 ‘육신’ 안으로 떨어졌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자신의 ‘육신’을 멍하니 쳐다보던 그녀는 ‘닉(*匿: 감추다, 숨기다)’이라는 글자 세 개가 자신을 삼각형 모양으로 둘러싼 것을 발견했다.

글자들은 모두 바닥에 있던 먼지가 모여 이루어진 것으로, 바닥의 세 위치에 가만히 달라붙어 있었다. 알 수 없는 은닉의 기운이 글자에서 느껴졌다.

사방을 둘러보던 그녀는 한쪽에 앉아 묘사방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는 사내를 발견했다. 그는 단순한 형태의 넓은 소매가 달린 흰 장삼을 입고서 검은 비녀로 머리를 제멋대로 틀어 올린 모습이었다.

백약은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저자가 일개 ‘범인’이라는 결론밖에 낼 수 없었지만, 사실 그가 절대로 범인일 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잇, 귀찮게 됐군! 그래도 토지신보다 실력이 좀 더 나아서 다행이야!”

남자는 자조하며 탄식하더니, 고개를 돌려 백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비로소 그의 두 눈이 침침히 가라앉은 회백색인 것을 볼 수 있었다.

계연의 한 말에는 당연히 조금 과장된 부분이 있었다. 그는 대정국 수도의 토지신에게 또 어떤 능력이 있는지 잘 알지 못했고, 그가 한 것도 그저 토지신의 손아귀에서 사람을 빼 오는 정도에 불과했다.

이는 계연이 여인을 일깨우려고 고의로 한 말이었다. 즉, 자신이 그녀를 구했고 토지신에게서 사람을 뺏어 올 정도의 능력이 있으니, 자신과 불필요한 충돌을 일으키지 말라는 뜻이었다.

어쨌든 이 여인은 요괴인 데다, 저승의 관리들에게 계속해서 쫓겨온 몸이었다. 만약 그녀가 한순간 이성을 잃고 온 힘을 다해 계연을 상대한다면, 그 즉시 성황신과 토지신에게 발견될 것이고, 계연은 이 일에 휘말려 들 수도 있었다.

계연은 백약이라는 이름을 가진 요괴를 바라보았다. 바닥에 있던 백약의 모습을 한 그녀의 꼬리는 이제 본체와 완전히 합쳐져 있었다.

백약은 곧 정신을 차린 듯이 즉시 계연을 향해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렸다.

“선장(仙長)께서 저를 구해주신 은혜는 백약이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만약 저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으시다면, 선장의 말이나 소가 되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대정국에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리는 예를 취하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였다. 관리를 만나더라도 죄가 확정된 범인이 아니고서야 무릎을 꿇지는 않았다. 사당의 신상 앞에 방석이 놓여있긴 하지만, 향을 올릴 때도 보통 서서 했다. 정말로 큰일이 있어 절박하게 비는 경우에나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는 예를 반드시 해야 할 때는 혼례 도중 하늘, 땅, 부모님께 절을 올릴 때뿐이었다.

지금은 계연이 백약의 목숨을 구하여 그녀가 큰 은혜를 입은 셈이니, 이에 무릎을 꿇고 감사 인사를 올린 것이다. 백약의 태도는 공손했고 말에서는 진실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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