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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122화 (122/892)

122화. 득남(得男)한 위(魏)씨 집안

성황당의 위세가 드높긴 하지만, 묘사방에 위치한 사당이다 보니 아무래도 차지하는 땅 면적에 제한이 있었다. 그러나 성황당이 담당하는 저승 세계는 그보다 훨씬 컸다.

저승 세계에는 24개 기관의 행정소들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목적의 감옥들과 죽은 자들이 머무는 저택들이 있었다.

아름다운 인연이 얽힌 이번 사건은 저승에서도 흔히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성황신이 판결을 내린 후에, 토지신과 계연은 백약을 주염생이 잠시 머무는 곳에 데려다주었다. 두 판관의 동행하에 말이다.

죽은 이들이 머무는 곳은 저승의 관리들이 안배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무덤과 그 가족들이 바치는 제물에 따라 정해진다. 가족들이 태우는 종이돈, 무덤의 크기와 완성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저승에서 그들이 머무는 저택은 곧 그들의 무덤과 가족 안에서의 지위를 뜻하게 된다.

주염생의 시신은 아직 땅에 묻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아직 상선사의 한 건물 내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부부가 다시 만나는 감동적인 순간에는 적지 않은 저승의 관리들이 모여 이를 함께 지켜보았다. 판관이 이들 앞에서 성황신이 내린 판결문을 읽었을 때는 모두 얼싸안고 기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얻게 된 원만한 결과에 함께 안도했다.

계연과 토지신이 함께 저승을 떠나려 할 때, 그들 곁에는 혼수상태에 든 것처럼 보이는 흰 사슴이 공중에 떠 있었다.

이 시각 동쪽 하늘에는 흰빛이 번지며 여명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승에서 보낸 짧은 시간이 계연에게는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죽어서 신령이 되려면, 어쨌든 생전에 품행과 덕이 높은 자여야 하지. 나와 경기부 성황신이 함께 일을 한 지 이백 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의 이런 면은 나도 오늘 처음 보는군!”

토지신과 계연은 여명 전 가장 어두운 경기부 거리를 함께 걸으며 서로의 감상을 나누었다.

계연도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으면 귀신은 덕이 있는 자를 존경한다는 말이 왜 있겠습니까? 귀신들이 덕을 중히 여기고, 저 자신도 덕이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계 선생 말이 일리가 있군.”

이번 일을 함께 겪으며 계연과 토지신은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특히 저승에서 말없이 눈빛으로만 대화를 나누면서 둘은 아주 가까워졌고, 이제는 서로 대화하며 어떤 거리감도 느끼지 않았다.

토지신당 앞에 도착하자 안쪽에서 가벼운 소리가 들려왔다. 사당 내에 머무르는 묘지기와 일꾼이 슬슬 일할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성안 곳곳에서도 닭이 홰치는 소리가 들렸다.

계연은 다시 한번 토지신을 향해 공수하며 감사를 표했다.

“오늘 토지신께서 주신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게다가 사슴의 육신도 토지공께서 대신 돌봐 주신다고 하셨으니, 백약이 후에 돌아올 때가 되어도 육신이 상하지 않겠지요.”

토지신이 넝쿨 지팡이로 지면을 한 번 쿵 내리치자, 사슴이 지면 아래로 가라앉으며 사라졌다. 그 후 그도 계연을 향해 공수하여 인사했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 제자가 닦은 도는 끊기지 않을 거야. 백약 같은 여인이라면 나중에 득도하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지. 그녀를 잠시 돌봐 주는 것도 재밌는 일이 될 것이네!”

이는 저승에서 이미 합의한 일이었다. 계연이 계속 경기부에 머물며 이리 큰 사슴의 육신을 가지고 다닐 수 없었던 데다, 그렇다고 저승에 백약의 육신을 두기도 적절치 못했다. 그리하여 백약의 육신은 토지신의 저택에 놔두기로 했다. 백약도 후에 토지신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으니 잘된 일이었다.

토지신이 보기에, 선록은 계연이 타고 다니는 동물 겸 그의 제자였다. 게다가 계연이 이번에 사슴을 위해 스승의 책임을 다했으니, 그도 계연에게 사슴을 ‘제자’라고 칭했던 것이다.

“그럼, 저는 여기서 이만 인사 올리겠습니다!”

“잘 가시게, 계 선생. 언제든 찾아와서 다시 이야기 나누도록 하세.”

그들은 비록 서로를 벗이라고 칭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계연이 공중에 뜬 검과 함께 시원스레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배웅하던 토지신은, 계연의 선검이 때때로 자신을 돌아보는 듯 검체를 움직이자 크게 웃었다.

“계 선생은 탈것을 찾고도 결국 두 발로 떠나게 되었으니, 저 사슴에게는 주인이나 스승보다도 아버지에 더욱 가깝겠군. 정말로 재미있게 되었구나. 너는 운도 좋은 데다 좋은 인연을 두었구나.”

그는 마지막 말을 사슴이 사라진 지면에 대고 속삭였다. 곧 그의 신형(身形)도 토지신당 앞에서 사라졌다.

* * *

백약의 일이 이렇게 어떤 충돌도 없이 잘 풀리게 되자, 계연도 이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경기부 토지신과 벗이 된 것도 의외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계연이 얻은 진정한 수확은 백약을 상징하는 흰 바둑돌이었다. 저승과 같이 음기가 강한 곳에서 얻었는데도, 부부의 인연을 이어주어서인지 아니면 백약으로 인해서인지 흰 바둑돌이 되었다.

영녕가(永寧街)라는 이름의 대로를 걸으며 계연은 바둑돌을 얻던 때를 다시 떠올렸다.

당시 계연은 백약에게 따로 당부의 말을 남기지 않은 채로, 그녀와 주염생이 서로 끌어안는 것을 보고는 곧 토지신과 함께 떠나려 했다.

계연과 토지신이 저승을 떠난 뒤, 손안의 백돌이 돌연 형태를 바꾸었다. 돌을 통해서 그는 백약이 저승에 꿇어앉은 채로 글자가 새겨진 옥패에 대고 맹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백약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주인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 옥패는 계연이 그녀에게 빌려준 것으로, 일전에 늙은 용에게서 받아온 것이었다. 그것은 요괴가 수련하는 방법에 대해 적힌 특수한 물건이었는데, 계연은 그저 참고할 목적으로 빌려온 것이라서 그도 이렇게 쓸모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응굉은 혼자서 고찰하고 추측한 깨달음을 통해 선부(仙府)의 선수(仙獸)들이 수련할 때 사용하는 법결을 비슷하게 모방해낼 수 있었다. 정통 법결이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그에 매우 근접했기 때문에, 계연은 응굉의 깨달음을 새로 터득한 ‘이물전신(*以物傳神: 물건에 진수를 담아 전하는 것)’의 술법으로 옥패에 옮겼다.

계연은 두 눈을 모두 열면 매우 정확하게 기를 관찰해낼 수 있었고, 삼 년간 바둑돌을 늘려오며 쌓은 경험도 있었다. 만약 그에게 아무것도 없이 요괴를 수련시키라고 한다면 무척 어렵겠지만, 늙은 용의 풍부한 기초 지식에 약간의 수정만 더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미 사람의 형상으로 변신할 수 있는 사슴이니, 법결을 깨우치기는 어렵지 않을 터였다. 게다가 이전에 응약리에게 쓴 고심법(叩心法)에 <정덕보공록> 에서 읽은 내용을 더하자, 더욱 쉽게 옥패를 완성할 수 있었다.

선부에서 정식으로 선수를 가르치는 방법보다 선기(仙氣)가 더 흘러넘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도를 정진할 때 큰 도움이 될 터였다. 백약이 스스로 술법을 연습하다가 선록의 신분이 가짜임이 들통나면 곤란해지기 때문에, 백약의 수행을 도울 목적으로 빌려준 것이다.

물론 옥패를 통해 술법을 전달하는 것에 따로 기대하는 바가 있었지만, 백약이 진정 득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저승에 있던 백약은 그와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었다.

계 선생께서 옥패를 통해 술법을 전하셨으니, 이건 자신이 만난 기연(機緣)이자 하나의 시험이기도 했다. 그녀는 부디 자신이 이 시험을 통과해, 선생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는 없더라도 계 선생을 주인으로 모실 수 있기를 원했다.

대부분의 요괴는 선수들이 쉽게 도연(道緣)을 얻을 수 있음을 부러워했지만, 동시에 선수들이 자유를 상실한 채로 종이나 노비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이는 먹지 못하는 포도가 다른 포도는 신 포도일 거라고 저 자신을 위로하는 꼴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이는 선수들을 바라보는 요괴들의 일반적인 관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계연에게 인정받겠다고 굳게 다짐하는 백약은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 * *

이 시각 계주의 덕승부(德勝府)에 있는 지체 높은 위부(魏府) 저택에서는 아래부터 윗사람까지 모두 초조해하고 있었다.

해가 아직 뜨지 않은 시각인데도, 위부 후원의 하인들은 모두 서둘러 움직였다.

쿠르릉-!

어둡게 가라앉은 하늘에서 돌연 천둥이 울리자, 뜨거운 물이 들어있는 통을 들고 가던 하인들이 놀라서 넘어질 뻔했다.

“서둘러라! 산실에서 아직도 기다리고 있으니!”

관사(*管事: 일반 하인보다 높은 집안을 관리하는 직책)가 재촉하자, 하인들은 서둘러 물통을 들고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후원의 문을 지나자 처참한 비명이 들려왔다.

“아아악! 아아아악!”

“힘을 주세요, 부인! 조금만 더요!”

“흐윽, 안 되겠어……. 흑흑흑, 이제 정말 기운이 없어…….”

“부인! 제발 조금만 더 힘을 주세요!”

산파의 경황없는 목소리가 산실밖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산실 밖의 위씨 집안 남자들은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위무외는 주먹을 꼭 쥔 채로 이리저리 걸음을 옮겼다.

결국 참다못한 그가 후원의 나무를 세게 때리자, 나무의 몸통에는 깊은 손바닥 자국이 남았다. 다시 산실 바깥의 복도 앞으로 돌아간 그는 초조해하며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때, 산실 문이 열리더니 한 여자 노비가 안색이 창백한 채로 핏물이 든 대야를 들고 나와 후원에 바닥에 쏟아버렸다. 그 후 그녀는 새로 가져온 뜨거운 물을 들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핏물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위무외의 안색은 더욱 새파랗게 질렸다.

실내에서는 이미 여인의 비명이 들려오지 않은 지 꽤 되었다.

그때 산실 문이 다시 한번 열렸고, 대략 5, 60세 정도의 산파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와 초조한 눈빛의 위무외를 바라보았다.

“어르신, 부인께서 혼절하셨습니다. 부인과 아이 중 어느 쪽을 지키시겠습니까?”

산파가 전전긍긍하며 묻자, 위무외는 눈을 부릅떴다.

“지금 뭐라 했느냐?”

“어, 어르신……. 부디 쇤네를 난처하게 만들지 마세요. 결정을 늦추면 정말 되돌릴 수 없습니다.”

위무외의 퉁퉁한 손이 단번에 산파를 쥐고 들어 올렸다. 그의 얼굴은 마치 악귀처럼 보였고, 곧이어 내지른 그의 노성은 방금 울린 천둥소리를 덮을 정도였다.

“둘 다 살려야 한다! 둘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자네도 같이 땅에 묻어주지. 들었느냐? 둘 다 살려야 한다!”

산파는 너무 놀라 온몸이 굳어 대답하지 못했다.

“에잇! 쓸모없는 것! 나와 같이 들어가자!”

위무외는 더는 다른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어 산파를 끌고 산실 안으로 향했다.

“가주(家主)님! 산실에는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가주님!”

앞에서 그를 막는 두 호위를 무시하고 위무외는 안으로 곧장 쳐들어갈 기세였다.

“썩 꺼지거라! 때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법도 타령이야? 부인에게 진기(眞氣)를 불어넣어 주러 가야겠다!”

곁에 서 있던 위무외의 두 집안 어른도 차마 그를 말리지 못했고, 결국 그는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쏴아아아-!

일각 정도가 지나 하늘이 하얗게 번져오며 큰비가 내렸고, 이어 산실 안에서 “와아앙!” 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위무외는 자신의 부인 옆에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채 홀가분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아이를 받은 산파는 연이어 문밖을 향해 절을 올렸고, 그 곁에 선 하인들도 드디어 한시름 놓은 얼굴이었다.

“축하드립니다, 어르신! 부인께서 사내아이를 낳으셨습니다!”

“모두 무사하니 되었다…….”

위무외는 약간 탄식하듯 대답했다. 지난 삼 년간 그의 처첩 몇이 낳은 그의 소생들은 모두 딸만 여섯이었다. 이제 그의 정실부인이 드디어 사내아이를 낳았으나, 부인이 저승에 한 발을 들여놓을 뻔하던 것을 지켜보지 않았던가. 그에게 더는 아이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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