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위세를 떨치는 자, 시름에 잠긴 자
아이에 관한 모든 것은 당분간 유모에게 맡기고, 위무외의 부인은 의원과 하인들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게 되었다.
하늘이 완전히 밝아오자, 혼란에 휩싸였던 위씨 가문의 저택은 기쁨과 흥분의 소용돌이에 휩싸였고 심지어 조택(*祖宅: 집안의 어른들이 머무는 곳)에서도 폭죽을 쏘아 올렸다.
가주가 사내아이를 얻은 것은 남아선호사상이 극심하던 이때에는 큰 경사였다. 특히 가족 내에서 지위가 높거나 가주와 가까운 자들에게는 그보다 깊은 의미가 있었다.
* * *
날이 밝자마자, 위무외는 노태야(老太爺)를 뵈러 위씨 집안의 조택으로 향했다.
위무외가 머무는 저택보다는 작았지만, 노태야가 조용하고 깨끗한 곳을 좋아하기 때문에 안에는 각종 화초와 나무, 물고기들로 가득 찬 연못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노태야는 방 안의 창문을 모두 열고서, 안락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는 발밑에는 난로를 두고 몸에는 호피(虎皮)를 덮고서 밖에서 들리는 폭죽 소리를 들었다.
한쪽에 있던 하인이 그를 위해 차와 각종 다과를 함께 내왔다.
잠시 후, 바깥에서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났다. 이를 듣고 그는 위무외가 온 것을 알았다.
“어르신! 어르신! 무외가 왔습니다!”
위무외의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노태야의 방 안에 들어섰다.
“하하, 드디어 아들을 얻었구나?”
“헤헤, 어르신께서는 전부 아시는군요!”
위무외는 방 안으로 들어서자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 하인들을 물러가게 하고는 자신이 직접 노태야의 차 시중을 들었다.
“어이쿠, 가주님이 직접 이 늙은이의 시중을 들다니 황송하군요!”
노태야가 농담을 던지자, 위무외는 못 들은 척했다. 어쨌든 그도 정말로 일이 있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어르신, 제가 어르신께 뭐라고 하는 건 아닙니다만, 이곳은 꼭 야산(野山)의 숲처럼 꾸며져 있어서 모기가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어릴 때는 여기서 그리도 기세 좋게 뛰어다니더니, 이제는 모기가 많아서 싫다?”
위무외는 멋쩍은 듯 웃고서 찻잔을 조심스럽게 노태야에게 건넸다. 노태야는 한 손으로 그가 건넨 찻잔을 받았는데, 그동안 찻잔의 물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노태야는 큰 병도 없고 수십 년간 무공을 연마해서인지, 고령에도 건강했다.
노태야는 차를 한 입 마시고서 주름진 얼굴을 펴며 활짝 웃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1주도 안 되었는데, 벌써 선부(仙府)에 가려는 건 아니겠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만약 정말로 급하면 딸아이들 중에서 데려가면 됩니다. 오늘은 아들의 이름을 지어 달라고 어르신께 부탁하러 온 것입니다.”
위무외는 웃으며 탁자 위에 있던 다과 하나를 집어 입으로 밀어 넣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스스로 걸을 수 있을 때까지는 아명(兒名)을 지어 불렀다. 그러나 위씨 집안에서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식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는 보통 일이 아니기에, 노태야는 차를 마시며 깊게 생각에 잠겼다.
“안타깝네요. 영안현의 계 선생님께서 아직 계셨다면, 아이의 이름을 지어 달라 부탁해볼 수 있었을 텐데요.”
계연에 대한 일은 위씨 집안의 노태야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신선 같은 이들의 거취는 자신들과 같은 범인(凡人)들이 쉽게 알아낼 수 없었다.
“이리하자. 저 아이의 운명이 우리 위씨 집안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으니, 이름을 원생(元生)이라 하면 어떻겠느냐?”
위무외는 입으로 몇 번 소리 내어 발음해 본 다음, 그것이 괜찮은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결정을 내리자마자 곧 노태야에게 아부를 떨었다.
“어르신께서는 정말 대단하십니다. 제 이름도 어르신께서 지어주시지 않았습니까? 제 이름처럼, 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어떤 것도 두려워해 본 적이 없지요. 제 아들의 이름은 이보다 더 좋으니, 그 아이의 선연(仙緣)도 필시 대단할 것입니다!”
노태야는 그의 아부에 웃음을 참지 못했다.
“추켜세우기는……. 이름조차 무외(無畏)이니, 내가 네 이름을 지어주고 나서 얼마나 많이 후회했는지 너는 모르겠지!”
* * *
위씨 집안은 대륙 곳곳에 상단을 보낼 정도로 대단한 재력을 갖추었다. 덕성부에서 돈으로는 이들 가문에 필적할 수 있는 가문이 몇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강호의 세력이나 조정 관원들과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위씨 가문에서 만월주(*滿月酒: 아기가 출생한 지 만으로 한 달이 된 것을 축하하며 마시는 술)를 나눠 마시는 연회를 연다면 초대할 인맥이 많은 것은 당연했다. 초대장을 든 하인들이 바삐 움직여 저택을 나섰다.
위씨 집안에서는 작은 도련님이 태어난 후로 매일매일 저택을 떠나는 말과 하인들로 분주했다. 그들은 모두 며칠 후에 먼지를 가득 뒤집어쓰고 돌아왔다.
위씨 집안과 교분이 있는 권세 높은 집안이나 무림 세력들은 연이어 금박으로 장식된 초대장을 받아 들게 되었다. 일 년 중 가장 중요한 춘절(春節)과 겹치지 않으려고, 위씨 집안에서는 일부러 작은 도련님의 만월 연회를 음력 12월 26일로 정했다.
그렇다 해도, 덕승부와 그 부근에 사는 이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새해 전날 밤까지는 돌아오지 못하게 되므로, 자신들을 대리할 이들을 각자 두어 명 정도 연회에 참가하도록 보냈다.
시간이 흘러 만월 연회에 가까워지면서, 신년을 맞이하는 분위기가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덕승부에서는 연이어 큰 눈이 두 번 내리면서 그 일대가 모두 하얗게 변했고, 위씨 가문의 저택 안팎도 등을 내걸고 화려하게 장식해 더욱 휘황찬란해 보였다.
낙하산장(落霞山庄)은 강호에서도 꽤 유명했고 덕승부에서는 손꼽히는 세력이었으므로, 위씨 집안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위씨 가문이 있는 곳과는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급히 출발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12월 26일 이른 아침에 덕승부로 들어갔다.
방문한 이들은 모두 낮지 않은 신분으로, 강호에서는 초면낭군(俏面郎君)이라고 불리는 셋째 장주(庄主)와 그의 두 후배들이었다. 한 명은 19살의 낙천성(洛天成)이며 다른 한 명은 작년에 그와 혼약을 맺은 낙응상(洛凝霜)이었다.
두 대의 마차가 부성(府城) 내로 진입하였는데 셋째 장주는 홀로 앞쪽 마차에 탔고, 낙천성과 낙응상은 뒤쪽 마차에 타고 있었다.
낙응상은 마차 한쪽의 발을 걷고서 하얀 눈으로 뒤덮인 처마들을 바라보며 웃음 지었다.
“둘째 누님, 그때 누님과 함께 호랑이를 잡으러 갔던 이들 중에 벌써 몇 명이 강호에서 이름을 날린다더군요. 그중에 연비(燕飛)라는 검객이 꽤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육승풍(陸乘風)이라는 자는 심지어 운각 소군자(雲閣小君子)라는 칭호도 얻었더군요. 이 두 사람 모두 덕승부 사람이니, 이번에 오겠지요? 위씨 집안에서도 분명 그들에게 초대장을 보냈을 테니 말입니다.”
그 아홉 명의 일행 중에는 덕승부 사람이 아닌 이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올 확률은 별로 높지 않았다. 하지만 덕승부에 있는 강호 세력 중에 위씨 집안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들은 없었고, 많든 적든 왕래는 하고 있었다.
낙천성이 호기심에 묻자, 낙응상은 그저 고개를 저으며 웃을 뿐이었다.
“그건 확실하게 말할 수 없어. 이틀만 지나면 새해니까, 기껏해야 제자나 관사를 보내 축사를 전하겠지. 네가 만나고 싶어 하는 몇몇은 아마 오지 않을걸.”
두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마차는 점점 더 위씨 가문의 저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시각은 아직 일러서, 저택 바깥에 세워진 마차는 많지 않았다. 셋째 장주는 손님들을 마중하러 나온 위가의 관사와 의례적인 인사를 나누었고, 낙씨 성의 오누이도 자신들의 마차에서 뛰어내렸다.
“천월부 두(杜)씨 가문에서 위씨 집안 작은 도련님의 만월을 축하하러 왔습니다!”
곧이어 한 쪽에서 낙응상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위씨 가문의 관사는 얼른 그를 맞이하러 갔다.
낙응상은 그자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는데, 하마터면 그가 누구인지 거의 알아보지 못할 뻔했다. 한쪽 소매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서야, 그는 관사에게 초대장을 건네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두형? 팔이…….”
당시 두형의 오른팔에 난 상처가 깊긴 했으나 팔은 남아있었는데, 지금 그의 소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두형의 얼굴은 반 정도 수염에 뒤덮였고 그는 등에 긴 칼을 비스듬히 꽂고 있었다. 남색의 무명 적삼을 입은 그는 낙응상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쪽은…… 낙 사매(師妹)?”
두형의 얼굴에는 곧 미소가 떠올랐지만, 인사를 나눌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함께 온 두 사람과 함께 하인을 따라 위부(魏府) 안으로 들어갔다.
“두씨 가문의 아들이 아직도 무도(武道)를 포기하지 않았군요!”
셋째 장주 낙풍(洛楓)이 언제 왔는지 모르게 낙응상의 곁에 서 있었다. 그는 두형이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이렇게 말했고, 그 옆에 있던 위씨 가문의 나이 든 집사도 개탄하며 대답했다.
“두형 저자는 이제 앞길이 끊긴 것이나 다름없지요. 방금도 그에게서는 어떤 두드러진 예기(銳氣)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낙풍은 곁에 있던 낙응상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물었다.
“가서 그와 옛이야기나 나누지 그러냐?”
낙응상은 잠시 망설였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보니까 저와 그다지 이야기할 마음이 없어 보였어요.”
점점 더 많은 마차가 저택 앞에 모여들었다. 낙씨 일가도 저택 안으로 들어갔고 그들이 타고 온 마차는 위부의 하인들이 끌고 갔다.
정오에 가까워진 시각에 위씨 가문의 내원과 외원에는 백 개에 가까운 연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성안의 유명한 음식점에서 일하는 요리사들이 연회에 고용되어, 주방에서부터 향긋한 냄새가 멀리 퍼져 나갔다.
위무외는 처세에 능하여 손님들에게 다가가 한 명 한 명 세심히 챙겼다. 심지어 두형에게도 친히 다가가 인사하며 근황을 나누기도 했다.
운각 소군자라고 불리는 육승풍도 축하연에 참석했고, 강호에 새로 이름을 떨치는 협객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술자리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는 많은 사람을 소개받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그는 잊지 않고 낙풍에게 술을 올리면서 낙응상과도 옛이야기를 나눴다.
낙씨 가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두형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손님 중에 두형을 찾던 중, 그는 연회용 식탁에서 멀리 떨어진 화원의 회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두형을 찾아낼 수 있었다.
“드디어 찾았군.”
육승풍은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그는 반가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약간 어색해 보이는 두형과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느낀 약간의 거리감이 옅어지자, 두 사람은 그 당시 서로 의기투합했던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화원의 복도에서 한 사람은 술잔에, 한 사람은 술 주전자의 뚜껑에 술을 따라 마시며 즐거워했다.
“너무 낙심하지 말게. 당시 계 선생님께서도 이 고비를 잘 넘기면 앞날이 무궁무진하다고 하셨으니……. 만약 무공을 닦는 길을 더는 걸을 수 없다 해도, 다른 길을 찾는다면 자네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어디서든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도 있지 않나!”
두형은 자신은 이제 삼류일 뿐이라고 입을 떼려다가, 후반부의 말을 듣고는 이를 꽉 깨물고 하려던 말을 삼켰다.
“육 형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두형은 왼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힘주어 꼬집고서야 추태를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몇 년간 그는 이미 세상의 냉담함을 절실히 느껴왔다. 그런데 어찌 예전의 동료 앞에서 고작 이 정도도 참지 못하겠는가?
두형이 처한 상황이나 상태를 묻다가 곧 화제는 육승풍 자신의 근황으로 넘어갔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강호에서 명성을 얻었는지, 어떻게 무예를 닦는 데 있어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갔는지에 대해서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두형은 힘겹게 버텼고, 육승풍은 곧 자리를 떴다. 두형의 바지 안 왼쪽 다리는 온통 꼬집은 자국으로 가득했다.
“하하하……. ‘뭐든지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
두형이 쓴웃음을 짓고는 눈을 감자, 그가 등 뒤에 맨 칼의 손잡이가 그의 뒤통수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