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의외의 손님
계연과 늙은 용도 이미 그들을 따라 들어와, 구석에 서서 실내의 구조를 관찰하고 있었다.
“응 선생님, 수부가 화려하고 찬란하게 꾸며져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강바닥에 있는 궁전이니 이렇게 추운 날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보다는 여기가 더 낫지 않나요?”
계연이 헤헤 웃으며 농담하자 늙은 용은 입을 삐죽였다.
“수부는 사계절 내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네. 산호며 진주가 별처럼 빛나고 무희들이 춤을 추며 음악이 울려 퍼지지. 그에 비하면 여기는…… 흥, 한참 멀었군!”
‘이 늙은 용은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을 무엇인지 모르는 게 분명하군.’
응굉이 한 번 손짓하자, 술 주전자와 잔 두 개가 그와 계연이 서 있는 구석으로 날아왔다. 그러나 실내에 자리한 이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술잔에 술을 따르자 밝은 노란색을 띤 액체에서 향기가 흠씬 났다.
“이게 경기부의 금옥주(金玉酒)라고?”
계연은 응굉이 건네는 잔을 받아서 그와 동시에 술을 마신 후, 맛을 음미해보았다.
“쯧, 천일춘만 못하네요. 용연향에는 비교도 안 되겠군요.”
“그래도 일반적인 술 중에서는 꽤 좋은 술이군.”
응굉은 맛을 본 술 주전자를 한쪽에 놓았다. 마침내 어떤 하인 하나가 술이 모자란 것을 발견했다.
“에고, 여기 술 주전자 하나가 모자라!”
“얼른 내와라!”
나누는 이야기가 전부 자신들의 견문이나 시사(詩詞)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에, 윤재성은 더는 전처럼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황상께서 드십니다!”
바깥에서 돌연 황궁 태감의 높은 목청이 들려오자, 떠들썩하던 연회장이 순간적으로 고요해졌다. 몹시 놀란 윤재성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 닭살이 올라왔다.
“황상?”
“황상께서 여기 진왕부에 오셨단 말인가?”
“성상(聖上)께서는 오늘 밤 오왕부에 가시는 것이 아니었나?”
“이게 도대체……?”
“경거망동하지 말고 진정하게!”
이목서는 사람들을 진정시킨 다음, 곁에 서 있던 윤재성에게 당부했다.
“황상을 뵙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와 다르다네. 그러니 집안에서 여는 연회라고 해도 예의에서 벗어 나선 안 되네. 인사를 올린 뒤에 윤 해원은 최대한 조용히 있게.”
“말씀대로 따르겠습니다!”
윤재성은 차라리 투명 인간이 되고 싶은 지경이었다.
계연과 늙은 용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군. 황제가 갑자기 3황자의 왕부에 오다니?’
“가세, 얼른 나가서 성상을 영접해야지!”
연회장의 대문을 열자 찬 바람이 휘몰아쳐 들어왔다. 손님들과 왕부의 하인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 양쪽으로 늘어서서 황제를 맞이했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자리한 모든 이들이 확연히 긴장하며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다.
계연은 처음으로 당금의 대정국 황제를 보는 자리였다. 그는 대략 50살 정도로 보였고, 약간 살집이 있는 몸에 황색 장포를 걸치고 통천관(通天冠)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곁에는 두 여인이 따르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은 당금의 황후였고 다른 한 명은 진왕의 생모인 임(任)귀비였다. 진왕은 그들과 약간 떨어진 채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계연이 볼 때, 진왕의 안색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는데 다만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성상을 뵙습니다!”
자리한 모든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예를 올렸다. 대정국에서 황제가 화가 났을 때를 제외한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천자’를 뵈어도 무릎 꿇을 필요가 없었다.
“되었다, 모두 들어가자. 그저 밥 한 끼 먹으러 온 것일 뿐이니…….”
황제는 손을 휘둘러 주변에 선 시종들을 물리쳤다. 초대받은 이들은 황제 일행을 따라 실내로 들어섰다. 사람이 많은 데다 난로도 있었기 때문에 연회장은 금세 따뜻해졌다.
대정국의 황제는 주인 자리에 앉아 추운지 손을 비비고 있다가 얼마 있지 않아 곧 외투를 벗었다.
“역시 셋째 네 왕부가 가장 편안하구나. 자리를 보니 일반 백성들의 연회처럼 꾸며놨구나.”
연회장은 털가죽으로 바닥을 깔고 벽을 가렸기 때문에, 안에 있는 것은 물론이고 보기만 해도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모두 서서 무엇 하느냐? 앉아라, 앉아. 식사해야 하지 않겠느냐? 셋째야, 연회는 언제 시작이냐?”
“부황께서 오셨으니 당연히 바로 시작해야지요.”
“그럼 어서 서두르지 않고 뭘 하느냐? 네 아버지와 두 어머니 모두 배가 고프구나!”
귀비도 진왕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진왕은 손님들에게 손짓하며 당부했다.
“모두 자리에 앉으시지요. 이는 가족 연회일 뿐이니 부황께서는 지금 가장(家長)의 신분으로 자리한 것입니다. 다들 예를 차릴 필요 없습니다. 주방에 분부해 요리를 내오라 해라.”
진왕의 몇 마디를 듣고 황제는 웃는 얼굴을 드러냈다.
“참, 부황. 제가 따로 준비해 놓은 가무가 없는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떠십니까? 제가 경기부에서 유명한 설서 선생(*說書先生: 이야기를 들려주는 중국 전통 곡예인 설서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초대했습니다. 그자가 알고 있는 이야기가 끝도 없이 많고 입담도 좋다고 합니다. 분명 재미있을 것입니다!”
“오? 그거 괜찮구나. 내 셋째 집에 오면 분명 재미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소. 하하하……!”
이를 들은 두 비빈도 웃어 보였고, 자리한 손님들은 긴장을 풀었다.
곧 연회가 시작되고 김이 솟아오르는 요리들이 옆문을 통해 줄지어 들어왔다. 연회장과 바깥 사이에는 완충 구역이 있고, 그 사이의 문마다 두꺼운 천을 달아 놓아 찬 바람이 연회장으로 직접 들이치지 못했다.
식탁 위에는 갖가지 음식과 술이 올랐고, 앞쪽의 그리 크지 않은 공간으로 시녀들이 금과 비파를 들고 들어왔다. 또 다른 하인은 병풍과 탁자, 의자를 들고 들어왔다.
시녀가 연주를 시작했고 병풍 뒤쪽의 탁자 앞에는 설서 선생이 이미 앉아 있었다.
일반적인 설서와 달리 병풍으로 그의 모습을 가리자, 그자는 더욱 자유롭게 신들린 듯 입담을 쏟아냈다.
황제는 다행히 윤재성과 같은 한낱 서생에게는 별 흥미가 없었다. 아니면 단순히 연회에 자리한 모르는 이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요리는 신선하고 술도 좋은 데다 설서 선생의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식탁의 분위기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다만 다른 연회보다 이곳은 덜 시끄럽고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사람이 좀 더 많을 뿐이었다.
설서라는 예술은 계연이 두 번의 인생을 사는 동안 이제야 처음 접하게 된 것이었다. 병풍 뒤에 앉은 이는 분명 한 사람인데, 그가 내는 수백 가지 소리는 모두 천차만별이었다. 아이에서 늙은이의 소리부터 닭과 개, 늑대와 독수리 등 각종 소리를 모두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이런 소리들은 이야기를 더욱더 현실적으로 느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계연은 심지어 늙은 용과 함께 병풍 뒤로 가서 확실히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해보기도 했다.
설서 선생이 표현하는 감정과 시녀가 연주하는 곡이 잘 어우러져서, 병풍 바깥쪽에서는 위로는 황제부터 아래로는 시중드는 이들까지 모두 넋을 잃고 이야기를 들었다.
섣달그믐에 때리고 죽이는 이야기나, 은원이 얽히고 복수에 관한 이야기는 적합하지 않았으므로, 설서 선생이 준비한 이야기는 <신선전(神仙傳) 속 용궁 이야기>였다. 이 아름답고 기이한 이야기는 듣는 이들을 황홀하게 했다.
이야기가 어느 부분에 이르자 그는 돌연 탁자를 ‘탁!’하고 때렸다.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일으켜 측간에 가는 척을 하며 용궁의 보주(寶珠)를 훔치고 만 것입니다. 용왕은 자연히 이를 알게 되었고, 굳이 입을 열어 꾸짖지는 않았지만 그를 얕잡아 보았지요. 용왕은 더는 이전처럼 태도가 친절하지 않았고, 날이 밝자 바로 그를 그가 살던 현(縣)으로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이후 다시는 이 천박한 서생을 초대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 서생은 비록 보주를 팔아 일시적인 부귀를 얻게 되었지만, 흥청망청하다가 곧 재산을 탕진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그간 학문에 소홀해 뛰어난 재주를 썩히게 되었지요. 늘그막에는 결국 궁상맞게 살다가…….”
시녀의 연주가 이 부분에 이르러 처량한 느낌으로 변했다.
이야기가 끝나고 설서 선생의 입담이 너무 뛰어난 탓이었는지, 황제는 여운이 남아 술주전자를 들고는 병풍 앞으로 향했다. 이어서 병풍을 치우라 명하고는 의자를 가져다 그 옆에 놓고서 신선에 관한 것을 연이어 물었다.
설서 선생은 황제를 거스를 수 없어 최대한 황제의 호기심을 채워주려고 노력했다. 신선이 사는 산부터 강바닥의 용궁까지, 그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짜내어 대답했다. 민간에서 전해지는 신령에 관한 전설도 모두 아는 대로 늘어놓았다.
계연과 늙은 용은 가장 바깥의 연회석 곁에 서서, 때때로 젓가락을 들어 요리를 집어 먹었다. 황제가 계속해서 집요하게 이 재기 넘치는 설서 선생에게 캐묻는 것을 보고서, 계연은 근 몇 년간 황제에 대해 들은 소문을 생각하며 웃었다.
‘연회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한밤에 금과 비파(*琴瑟: 금슬. 부부 사이의 관계가 좋음을 뜻할 때 쓰임)가 울려 퍼지고, 금과 옥에는 미혹되지 않았으나 귀신에 빠졌네.’
다른 이들이 서로 잔을 주고받을 때, 진왕은 조용히 자신의 스승 곁으로 다가갔다.
“스승님, 아무래도 오늘 밤 큰형님의 왕부에서 부황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즉흥적으로 제 거처에 오신 듯합니다.”
“쉬이……! 진왕 전하께서는 더는 말하지 마십시오. 모르는 척하셔야 합니다.”
이목서는 황제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며 속삭이듯 말했다. 진왕은 그를 매우 신임하고 있었다.
“참, 윤 해원은 본 왕부의 음식이 입에 맞소?”
진왕은 이목서의 곁에 앉은 윤재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겉으로만 봤을 때 그는 그다지 긴장하지 않은 것 같았다.
윤재성은 급히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왕을 향해 공수했다.
“전하의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요리도 맛있고 술도 좋으나, 다만 가시방석에 앉은 듯하옵니다.”
윤재성이 농담도 던질 수 있는 것을 보고 진왕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 해원, 너무 조심스러워할 필요 없소. 조정 관원들이나 도성에 사는 이들은 모두 내 성격을 알고 있지. 내가 사귀는 이들은 모두 대단한 관직에 몸을 담은 이들이 아니니, 이를 두고 파벌을 만들기 위해 결탁했다고는 할 수 없소. 게다가 자네는 현재 어떤 관직도 없으니, 그런 걱정은 더더욱 하지 않아도 된다네.”
진왕이 이렇게 말하자 윤재성은 다시 등에서 열이 오르는 것 같았지만, 마음은 좀 더 편해졌다.
“하하! 가시방석이라니 하는 말인데, 저쪽의 설서 선생이 윤 해원보다 더 심할 걸세.”
윤재성이 이를 듣고 그리 멀어 떨어지지 않은 탁자를 바라보자, 설서 선생은 차를 마실 엄두조차 못 내고 있었다.
황제는 보통 사람들이 ‘신선’이라고 여길 만한 인물이 이 연회장에 둘이나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서, 설서 선생에게 사람이 죽은 후에 일어나는 일에 관해 묻고 있었다.
“왕(王) 선생, 사람이 죽은 후에 저승으로 간다는 것이 정말인가? 그럼 그 저승이라는 곳은 어디에 있는가?”
설서 선생의 이름은 왕립(王立)으로, 그에게는 황제를 이렇게 대면하는 것이 공연을 몇 번이나 하는 것보다 훨씬 피곤하게 느껴졌다. 황망한 가운데서도 감히 조금이라도 틀린 말을 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기 때문이다.
“황상께 아룁니다. 소인이 이전에 듣기로 저승은 혼백이 머무는 장소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저승의 관리가 찾아와 저승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고 합니다. 저승이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는 일개 범인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듣기로 각지의 성황신과 관련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민간에 떠도는 이야기에는, 성황당에 속한 각 기관장이 사람의 생전의 행적을 평가하여 죽은 후의 삶을 판결 내린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