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회시
그때, 무언가 떠오른 듯 초 공자가 그 나이 든 하인에게 물었다.
“허(許) 백부, 이전에 부친께서 진왕부에서 베껴온 <군조론>이 어디에 있나요? 세형(*世兄: 대대로 교분이 있는 집안의 같은 세대 아랫사람에 대한 경칭)에게 좀 보여주려고요.”
“아, 2층에 있습니다. 제가 공자께 가져다드리지요.”
허 백부라고 불리는 남자는 이렇게 대답하고 빠른 걸음으로 2층에 올라왔다. 그는 한 책장 앞으로 익숙하게 다가가더니, 상자 하나를 꺼내서 그 안에 두꺼운 종이로 엮은 <군조론>을 찾아냈다.
그가 막 아래로 내려가려 할 때, 그는 얼핏 무슨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음?”
의혹에 찬 혼잣말은 아주 작았지만, 3층에 있던 계연은 순간 동작을 멈추고 손안에 쥔 채소 만두를 바라보았다.
‘이런, 실수다!’
과연 남자는 민첩하게 발소리를 죽이고서 순식간에 3층으로 올라왔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3층에 올라온 남자는 좌우를 살피다가 다시 냄새를 맡아 보았다. 눈썹을 찌푸리던 그는 서각의 문을 열고 복도를 돌아다녀 보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원숭이가 나무에 매달리듯 누각의 지붕으로 몸을 뒤집어 올라온 남자는 쌓인 눈 위에 가볍게 착지했다.
자세히 살펴보았지만, 지붕 위의 흰 눈에는 자신의 발자국 외에는 어떤 흔적도 없었다. 고개를 뻗어 아래층의 처마를 바라보았지만, 그 위에 쌓인 눈에도 누군가 밟은 흔적은 없었다.
‘내가 착각했나?’
남자가 의혹에 차 있을 때, 아래층에서 초 공자가 재촉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 백부, 아직 못 찾으셨나요?”
남자는 급히 누각 안으로 들어가 아래를 향해 대답했다.
“찾았습니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남자가 떠나자 계연은 한쪽에 놓인 탁자의 그림자 뒤편에서 걸어 나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저 늙은이가 보통이 아니네! 그나저나 윤 훈장님의 명성이 이미 퍼지기 시작했나 봐.’
* * *
초(楚)씨 가문에서 관직에 몸담은 이는 없지만, 그래도 도성에서 그들의 수완을 얕잡아 볼 순 없었다. 하지만 계연은 별 흥미가 일지 않아 누각에서 책을 보며 만두를 먹었다.
그가 책을 읽으며 식사를 하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일반적인 성인 남자가 일고여덟 번 베어 물면 끝날 만두 다섯 개였지만, 그는 책에 집중하면 할수록 먹는 속도가 더욱 느려졌다.
해가 어느새 서쪽으로 저물어가고, 계연은 <백부통감>을 거의 다 읽은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만두의 마지막 한 입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책을 다 읽으면 그때 먹을 예정인 것 같았다.
마지막 한 줄을 읽고 <백부통감>의 표지를 덮은 계연은 왼손으로 쥐고 있던 만두를 드디어 입에 넣었다. 그의 얼굴은 만두의 맛을 음미하는지 책의 내용을 되짚어 보는 중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계연의 현재 생활은 지난 생과 비교했을 때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좀 더 평화롭고 더욱 능력을 갖춘 상태였다. 그렇다 해도 가끔 휴대전화나 인터넷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각지의 풍습 같은 것은 인터넷에 검색만 하면 모두 나올 테니 말이다.
아래층으로 내려가 <백부통감>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고, 계연은 다시 3층으로 돌아와 잘 준비를 했다. 진짜로 잠을 잔다기보다는, 수면 시간을 빌려 늙은 용에게서 빌려온 특이한 술법들을 배우고 이해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응굉에게서 얻은 것들은 선문에서 전해지는 정통의 술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진룡으로서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연구할 시간은 충분했기 때문에, 선문에서 만든 것과 비슷한 술법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선수(仙獸)들이 수련하는 법결과 비슷한 것을 만들어내 백약에게 주었듯이 말이다. 게다가 그 법결은 계연이 조금 손을 보자 더욱 쓸 만해졌다.
빌려온 옥 서표와 옥간(玉簡) 중에 계연의 흥미를 끈 것은 ‘이물전신’과 ‘등운가무(*騰雲駕霧: 구름과 안개를 타고 하늘을 나는 술법)’라 불리는 술법이었다. 전자는 비교적 연습하기 쉬웠고, 후자는 유명한 비거술(*飛擧術: 하늘을 나는 술법) 중 하나로, 반복적으로 의식 세계와 꿈속에서 연습해야 했다.
일반적인 수선자(修仙子)들이 하늘을 나는 술법을 연습할 때는, 선배들이 함께 움직이며 떨어져 죽지 않도록 보호해 주었다.
그러나 계연은 떨어져 죽을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만약 그것이 걱정이었다면 체면이 깎이는 것을 무릅쓰고 응굉에게 지켜봐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었다. 그는 이에 몹시 놀라서 심지어 농담을 던질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계연을 도와줄 것이다. 애초에 응굉이 자신을 벗으로 삼았을 때도 자신의 능력만을 보고 연을 맺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연은 자신의 사람(또는 용)을 보는 눈이 꽤 정확하다고 자부했다.
응굉의 술법은 아주 특별했다. 그의 묘사는 자세하기 그지없어서, 순수하게 구름을 탄다기보다는 어수(御水)나 어풍(御風)같은 특수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다. <통명책>에 서술된 구름을 타는 술법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옛말에 바람은 호랑이를 따르고, 구름은 용을 따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용들은 하늘을 나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진룡인 응굉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본래 그는 날기 위해 따로 연습할 필요가 없었는데, 이왕 자신만의 이술(*異術: 일반적인 술법과 다른 것)을 연구하며 심심하던 차에 만들어본 것 같았다. 이렇게 만든 그의 술법은 하늘을 나는 다른 술법과 확연히 달랐다.
계연이 잠에 드는 것은 비교적 간단했다. 그는 실내에 달린 휘장 위에 숨겨놓았던 회색 보따리를 꺼내 머리에 베고 누웠다. 그 후 백옥 서표 하나를 머리 밑에 받치고 옆으로 누웠다. 그는 순식간에 꿈으로 빠져들더니 응굉의 이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계연이 쓰는 이런 부드러운 방법은 일반적인 수선자들이 입정(入靜)하여 수행을 닦는 것과 달리, 계연처럼 의식 속에 세상이 있고 그것을 때때로 현실 세계와 겹쳐볼 수도 있는 기인(奇人)들만이 쓸 수 있었다.
* * *
계연이 꿈에 빠져들 때, 영안가(永安街)에서 뻗어 나온 연회(燕回) 골목에서는 어떤 이가 긴 꿈에서 깨어났다.
왕립은 막 잠에서 깨 정신이 없는 상태로 눈을 비볐다. 그러자 그가 세 들어 사는 방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멍하니 몸을 일으킨 그는 기지개를 켜며 크게 하품했다.
“흐암!”
하품을 하자 그의 눈에 눈물이 고이며 정신이 좀 더 또렷해졌다.
실내가 어두운 것을 보자 아직 늦은 시간인 듯했다.
침상 곁의 탁자에는 그릇이며 젓가락이 이미 치워져 있었는데, 아마 주인집 사람이 와서 정리한 것 같았다.
왕립은 아직도 조금 흐리멍덩한 상태였다.
“내가 왜 갑자기 잠이 들었지?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은데…….”
탁자를 살피던 그의 시선에 종이의 상단에 적힌 ‘백록연’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순간 머리가 전기에 감전된 듯 낮에 꾼 길고 긴 꿈이 전부 떠올랐다.
왕립은 멍하니 있다가 몸을 한 번 부르르 떨더니 천천히 흥분에 차올랐다. 이불을 젖힌 그는 탁자에 철퍼덕 엎드렸다.
“백록연…… 백록연……! 적어놔야 해, 이건 신선이 내게 이야기를 전해준 거야. 어서 기록해야지!”
떨리는 마음을 누르고 왕립은 서둘러 깨끗한 물을 벼루에 넣고 다시 먹을 갈기 시작했다. 써 내려가야 하는 이야기가 짧지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꾼은 이미 본능적으로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더욱 재미있게 수정하고 있었다.
“이 책은 5권은 돼야…… 아니다, 여섯 권은 돼야겠어. 여섯 권 정도는 되어야 이야기를 다 써 내려갈 수 있겠어.”
천천히 혼잣말을 하던 그는 격해지는 감정을 참지 못했고, 먹을 가는 그의 손은 학질에 걸린 이처럼 덜덜 떨렸다.
방금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순간 오한을 느껴 서둘러 이불을 끌어와 몸을 덮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고서 그는 화절자로 유등(油燈)을 밝히려 하였으나, 화절자 안의 불씨는 이미 완전히 꺼져 있었다.
“소동! 소동아 거기 있느냐?”
왕립은 이불을 젖히고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문가에 서서 아이를 불렀다. 밖은 이보다 더 추울 것이기 때문에 차마 문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에고, 아버지, 어머니. 왕 선생님께서 깨셨나 봐요. 절 부르고 계시네요.”
“온종일 주무시더니, 배가 고프신 게지!”
옆 건물에서는 웃음소리와 대화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남자아이는 왕립이 머무르는 곳으로 뛰어가 문을 열었다.
휘잉-!
차디찬 밤바람이 불어 들어오자, 왕립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왕 선생님 깨셨어요? 미리 준비해놓고 있었어요. 오늘 새해 첫날이라 구육(*扣肉: 양념하여 찐 돼지고기 요리)와 백참압(*百斬鴨: 여러 채소와 함께 푹 고아 먹는 오리고기 요리)을 만들었거든요. 헤헤, 엄청 맛있어요!”
“오오, 잘됐구나. 마침 배가 고팠거든. 참, 새 화절자 좀 가져다주렴. 방에 있는 것은 불씨가 죽었단다.”
남자아이는 실내가 온통 어두운 것을 보고, 해맑게 대답한 뒤 얼른 뛰어나갔다.
잠시 후, 왕립은 실내의 유등에 불을 붙이고 그 위에 등갓을 덮었다. 탁자의 한쪽에는 문방사우를 놓고 다른 한쪽에는 새해에 먹는 음식을 놓고서, 그 중간에 흰 종이를 펼쳐 놓았다.
종이의 맨 위에는 세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계연이 쓴 ‘백록연’으로, 왕립은 이를 책 표지로 삼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선이 남긴 신묘한 서법 뒤에 자신의 글이 자리하게 되자, 왕립은 평소보다 주의를 기울여 글을 썼다. 여전히 잘 쓴 서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깔끔하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신인(神人)의 서법이 오염된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바로 이 시각, 꿈속에서 운무(雲霧)를 타고 날아가던 계연은 무언가를 느꼈다. 서각에 누워있는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올랐다.
《탁자 앞에 앉아 종이부채를 휘두르고, 병풍 뒤에서 성목(*醒木: 이야기꾼들이 중요한 대목에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나무 막대)을 두드리며 이야기를 전하는구나…….》
* * *
대정국의 과거 시험 체계에는 몇 번 변화가 있었는데, 현재 회시와 전시는 3년마다 한 번씩 치러지고 있었다.
각 주에서 거행하는 해시 이하의 시험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서, 시제나 시험 시간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몇 시간 안에 시험이 끝나는 곳도 있고 온종일 시험을 치는 곳도 있었다. 그러나 회시는 이와 달랐다.
기본 능력을 시험하기 위한 고전(古典)은 모든 서생이 암송할 수 있었고, 시사가부(詩詞歌賦)를 요구하는 주제에 대해서도 미리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시에서는 미리 대비할 수 없는 책론이나 고전 해석 등의 문제가 비교적 많이 출제되었다. 이때는 진정한 관리의 자질이 있는 이들을 뽑아야 하는 단계였기 때문이었고, 그런 이유로 시험 시간도 다른 시험들보다 길었다.
회시는 일반적으로 예부(禮部)가 주관하며 그 외 각 부에서도 문제를 낸다. 2월 9일, 12일, 15일 총 세 번 시험을 치르고, 한 번 칠 때마다 3일이 걸린다.
회시의 성적이 통지되는 시기가 살구꽃(杏花)이 피는 시기였기 때문에 이를 행방(杏榜)이라고 부른다. 이 단계에서는 행방에 이름이 오르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인재라고 할 수 있었다.
행방이 걸리면 5일의 휴식일을 가진 뒤 최종 시험인 전시가 시작된다. 전시는 대정국 모든 서생의 우열을 가리는 각축전이나 다름없다. 전시에서 장원한다고 해서 꼭 가장 높은 관직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는 분명 조상과 집안을 자랑스럽게 하는 대단한 영예였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날씨는 여전히 추웠지만, 회시에 참가한 서생들의 마음은 불길처럼 뜨거웠다.
오늘은 2월 30일로, 행방이 걸리는 날이었다. 대정 각 주에서 온 서생들은 과거 시험장 밖의 담장 앞에 모여 온갖 복잡한 생각을 하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계연은 원래 과거 시험장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는데, 초씨 가문의 서각에서 멀리 밖을 바라보니 어디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문기(文氣)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있어 못 보고 지나치기가 더 어려울 정도였다.
‘윤 훈장님은 원래도 재능이 뛰어난 데다가, 새해에 맑은 기운을 얻어 지금은 호연정기가 가장 왕성할 때야. 훈장님의 영혼과 품은 이상이 모두 깨끗하기 이를 데 없으니, 성적이 원래보다 더 잘 나왔을 거야!”
계연은 벗에 대한 깊은 믿음 때문에 과거시험장 근처에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