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화. 하루아침에 이름을 알리다
윤재성과 사옥생은 인파를 뚫고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길을 열어줄 가복(家僕)도 없으니, 그들은 구석에 끼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이고, 윤 형, 어찌 그리 침착하십니까? 저는 꼭 고양이가 심장을 할퀴는 것 같습니다!”
결과가 나올 시간에 가까워질수록 사옥생은 더욱 긴장하여 이 날씨에 땀마저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곁에 선 윤재성은 그보다 더 담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윤재성은 사옥생의 말을 듣고 참지 못해 한마디 말을 던졌다.
“저라고 어찌 초조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떨려 죽겠습니다! 그런데 이 인파를 뚫고 앞줄에 간다고 해서 안 좋은 성적이 좋게 변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윤 형 말이 맞소. 그러나 이리 뒤쪽에 있으니 방이 붙어도 보이지도 않을 겁니다!”
윤재성은 씁쓸하게 웃으며 이는 불가항력이라고 생각했다. 막 입을 열려던 때에 조정의 하급 관리가 큰 목청을 열고 소리쳤다.
“정숙!”
과거 시험장 담장 밖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단번에 조용해졌다.
“방을 붙이시오!”
관리의 말이 떨어지자, 은테를 두른 모자를 쓴 네 명의 관리가 과거 시험장 안에서 나왔다. 그중 한 사람이 품에 안고 있는 돌돌 말린 노란 천은 그자의 키보다 컸다.
다른 관리들은 곤봉을 들고 사람들을 막아섰다. 딱 봐도 범상치 않은 무공 실력을 갖춘 관리들 앞에서 서생들은 아무리 급해도 선을 넘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관리 하나가 담장에 풀을 바르자, 네 명의 관리는 방을 잘 편 뒤에 몸을 굽혔다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네 귀퉁이를 각각 잡은 이들은 경공을 사용해 노란 천을 들어 담장 쪽으로 날아갔다.
쾅, 쾅, 쾅, 쾅-!
연달아 벽을 내리치는 소리가 났다.
관리들이 땅을 딛고 서자, 거대한 행방이 벽에 붙은 것이 보였다.
잠시 후 윤재성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계주 춘혜부에서의 그 순간 같았다.
인파 사이에서 서생들이 분분히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윤재성이 어떤 자인가?”
“이자는 지금 어디에 있지?”
“붙었다! 하하하, 붙었어!”
“나도 붙었다네! 하하하!”
“축하드립니다…….”
“에잇!”
“윤재성이라는 자를 아는 이가 있소?”
“모르겠소만……?”
“내가 안다네, 문곡가에서 들어본 적이 있어. 계주의 해원이라더군.”
“와, 대단한 재능이군!”
어느새 그들이 서 있는 곳까지 ‘윤재성’이라는 이름이 계속해서 들려왔다. 이에 사옥생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고, 윤재성은 점점 더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경기부에 도착한 후, 윤재성도 대정국의 다른 학자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황자소사인 이목서 같은 자와도 이야기를 나누며, 몇 개월 사이에 자신의 학식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윤재성은 오만하고 분별없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계연과 성격이 비슷하여, 그저 자신의 실력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것일 뿐, 기껏해야 낙방은 하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였다.
경기부에는 현재 전국의 재능 있는 이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마치 호랑이와 용이 곳곳에 도사린 모양이었다. 대단한 재능을 가진 이가 윤재성 한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닌 데다, 권세와 인맥에 학식까지 전부 갖춘 이들도 꽤 많았다.
그래서 비록 윤재성도 다른 서생들처럼 장원의 꿈을 꿔본 적은 있었지만, 생각으로 그칠 뿐이었다.
그러나 인파 사이에서 울려 퍼지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신이 ‘회원(*會元: 회시의 장원)’임이 확실했다.
“윤 회원, 여기 계십니까?”
“윤재성이라는 자를 아시는 분이 계시오?”
“이름만 들어봤지 본 적은 없소이다!”
“비키시오, 비키시오! 좀 지나갑시다!”
“밀지 마시오! 아이고!”
사옥생과 윤재성은 감격에 차 흥분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윤재성조차 젖 먹던 힘을 다해 인파를 밀며 앞으로 나아갔다. 더는 앞으로 갈 필요도 없이 인파의 중간에만 들어왔는데도 행방을 훤히 볼 수 있었다.
과연, 행방의 가장 높은 곳에 큰 글씨로 쓰인 것은 자신의 이름이었다.
《회원: 계주의 윤재성》
자신의 이름을 확인한 그 순간, 윤재성은 희미한 현기증이 들 정도였다.
* * *
진왕부 안에서는 진왕 조연(趙延)이 자신의 스승과 함께 난로 곁에서 차를 마시며 회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승님, 행방이 걸리는 곳에 가보지 않으십니까?”
“이번에는 제가 가르친 이 중에 시험을 친 사람이 없으니 가도 볼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진왕 전하께서 가보실 줄 알았는데, 놀랍군요.”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가르친 이 학생을 그는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진왕은 사실 구경하는 것이나 시끌벅적한 곳을 좋아했다. 이렇게 묻는 것은 정말로 그 이유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그를 놀리기 위한 것이었다.
“아뇨, 안 갈 겁니다. 지난번 길조가 나타난 일로 큰형님은 저를 볼 때마다 눈에 거슬려하시거든요. 게다가 회시 결과는 조정과 관련 있는 일이니, 그게 아니어도 가지 않았을 겁니다.”
이목서는 찻잔을 들어 한 입 마신 후 웃으며 말했다.
“길조가 나타난 것이 진왕 전하께 있어서 그다지 좋은 일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오왕 전하께 있어서는 확실히 좋지 않은 일이니까요.”
약이 바짝 오른 이들은 사고를 치기 쉽다.
현재 오왕의 상태가 마치 그와 같았다. 그는 황자 중에 나이가 가장 많고 따르는 이들도 가장 많은 데다가, 적자(嫡子)이자 장자(長子)이기 때문에 누가 봐도 차기 주군이 될 자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조정의 분위기는 미묘했다. 특히 대신들이 태자를 세우는 일을 꺼내 들 때마다 황제의 안색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오왕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이런 상황에 하늘이 내린 길조가 진왕부에 떨어지다니, 정말이지 눈에 거슬렸다.
다행히 그 자리에 황제가 있어, 황제의 강림이 길조의 출현을 이끌었다고 사람들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 해도, 그는 셋째 동생인 진왕을 눈엣가시로 여기게 되어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조정에 몸담은 이들과 황제가 이를 모를 리 없었다.
오왕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그가 만약 모른다고 해도 그의 많은 수하가 대신 일깨워줄 터였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오왕이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때, 하인 하나가 이목서와 진왕이 있는 편청(偏廳)으로 급히 뛰어 들어왔다.
“진왕 전하, 이 소사! 행방이 걸렸습니다! 회원은 계주에서 온 윤재성이라 합니다!”
그들은 모두 윤재성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막상 소식을 듣게 되자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목서는 찻잔을 내려놓고 감탄했다.
“윤재성이란 자가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었군요!”
진왕도 뿌듯한 얼굴로 웃었다.
“어디서 시작된 소문인지 몰라도, 윤재성이 호연정기를 가져 장차 현명한 신하가 될 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부인할 수 없겠네요. 재능도 출중한 데다가 장원을 두 번이나 했으니 말입니다!”
이목서는 진왕의 말을 듣고 진지한 눈으로 자신의 학생을 바라보았다.
“후에 불미스러운 일을 겪지 않고, 진왕께서 이끌어 주신다면 10년에서 20년 후에는 조정의 중신 중에 분명 그자의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번에 대정이 개국한 이래 두 번째 삼원급제(*三元及第: 전시까지 연달아 세 번 장원하는 것) 하는 이가 나오겠군요.”
스승의 평가를 들은 진왕 조연은 웃음을 거두었다. 이는 저번보다 더욱 후한 평가였다.
진왕은 본래 서생이 글을 아무리 잘 써도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그와 다르다고 한마디 하려고 했으나, 윤재성이 쓴 <군조론>과 <위지의>을 떠올리자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수 없어 다른 것을 물었다.
“삼원급제? 스승님께서는 윤재성이라는 자가 가능하다 보십니까?”
“하하하……. 회시는 이미 통과했으니 윤 해원…… 아니, 이제는 윤 회원이지요. 회시에서도 윤재성을 이길 수 있는 자가 없었는데 전시는 성상의 개입이 있으니 더욱 붙지 않겠습니까? 하하……!”
자신의 말을 들은 진왕이 잠시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이목서는 이어 말했다.
“당금의 성상께서는 생각이 깊으신 분입니다. 만약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분명 한미한 집안의 서생을 장원에 올릴 것입니다. 그러니 재주로 보나 집안으로 보나, 윤재성이 가장 좋은 선택이지요.”
이목서는 비록 소사의 관직에 머물러 있지만, 그의 이런 면을 알고 있던 진왕은 어릴 때부터 그를 존경해왔다. 때로 그는 자신의 스승이 이목서인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왕은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후에 누군가가 윤재성이 왕부의 연회에 참석했었다는 것을 밝혀낸다 해도, 회시 전에 만난 것이므로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다음부터는 윤재성과의 접촉을 피해, 그가 가진 뒷배 없는 빈한한 서생이라는 배경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행방이 걸리자 기뻐하는 이도 근심하는 이도 있었다. 남은 5일 동안은 각자의 생각을 잘 갈무리해 다가오는 전시를 준비해야 했다.
대정국의 전시는 몇 차례 변화가 있었다. 3월 1일이었다가 3월 15일로 바뀌고, 현재에 와서는 3월 5일로 고정되었다. 시험 주제는 각 부에서 여러 개를 내고, 황제가 그중에서 친히 골랐다. 이렇게 되니 이론상으로는 황제가 직접 주관하는 시험이 되었다.
시험을 치는 장소는 이제 과거 시험장이 아닌 황궁의 대전이었고, 그런 연유로 전시(殿試)라고 불렸다.
한미한 집안의 서생에게는 입궁하는 것 자체가 심적으로 큰 부담일 터였다.
위엄 넘치는 황궁에서 삼엄한 시위의 검문을 여러 번 통과하고 나면, 관원들의 검사와 여러 번의 몸수색을 거쳐 드디어 시험이 열리는 궁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전까지의 시험에서는 시험 치는 이들 사이에 간단하게 가림막이 세워져 있었지만, 하루 만에 끝나는 전시에서는 드넓은 궁전 안에 책상을 여러 개 늘어놨을 뿐이었다. 그래서 수험생들 사이의 간격은 옆 사람의 목과 얼굴에 흐르는 땀방울마저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주위는 모두 감독관뿐으로, 시험을 주관한다는 명목으로 가끔 황제가 와서 지켜보고 가기도 했다.
이 하루간 모든 수험생은 거대한 부담을 느끼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들이 겨루는 것은 재능과 기억력뿐만이 아니었기에, 답안지에 작성하는 서법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공포에 가까웠던 전시가 끝나고 모든 수험생은 시험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정에서 준비한 역관(驛館)이나 객잔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동안 각 부의 관리들은 긴장한 상태로 수험생들의 답안을 검토하고 하고 있었다.
시험을 치르는 이들의 수는 이전 시험보다 크게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실력이 있는 자들만 남았기 때문에, 더욱 심혈을 기울여 답안을 검토해야 했다. 황제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