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맛만 보는 거야
“자, 이제 다 됐습니다. 저희와 함께 운산관으로 가서 식사나 드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래요, 계 선생님. 저희 사부님께서 요리를 무척 잘하세요.”
“제가 두 분께 방해가 되지만 않는다면 저야 좋지요.”
계연은 미소를 띠며 대답한 후 두 사람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방해라니요. 계 선생님께서 저희 누추한 도관에 와주시다니 그저 영광일 따름입니다. 오늘 제가 솜씨를 발휘해서, 저와 같은 범인이 만든 요리와 선인(仙人)들이 먹는 음식이 어떻게 다른지 한번 보여드리겠습니다.”
그의 허풍이 좀 심하다고 생각한 계연은 조금 전에 운산관의 주방을 둘러봤을 때 쌀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기름이며 소금, 장, 식초 등이 그리 충분치 않았던 것을 떠올렸다.
“그럼 도장의 솜씨를 기대해 볼게요. 노을을 먹고 이슬을 마시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그래도 용궁에서 열린 연회에서 먹은 요리가 정말 맛있었어요.”
청송 도인은 그의 말을 듣고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자신은 그저 예의상 한 말인데 계 선생님께서 진짜로 받아들이다니!
계연은 그들을 데리고 함께 시장으로 가서 필요한 것들을 모두 산 후, 생선과 고기를 조금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동락현을 떠나기 전, 계연은 다시 고개를 돌려 바라봤다. 그는 청송 도인 제선에게 용연향을 몇 잔이나 마시게 할 예정이었다. 그 후로 제선은 며칠 동안은 잠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 돗자리를 펴러 나가지 않겠지만, 계연은 조금 전의 그 참배객이 다시 점을 봐 달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 * *
운산은 산중에 낀 운무(雲霧) 때문에 얻은 이름으로, 햇볕이 적당히 내리쬐는 시기에는 운산에 안개가 넓게 깔렸다. 그래서 운산의 높은 봉우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안개가 마치 바다처럼 깔린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절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했다.
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운산 관무봉(觀霧峰)으로, 사실 운산관이 있는 연하봉(烟霞峰)도 괜찮은 곳이었다. 다만 위치가 살짝 떨어져 있어서, 해무(海霧)를 보려는 사람들은 관무봉에 오르지 연하봉까지는 오지 않았다.
게다가 운산에는 호랑이가 있다는 소문은 없었지만, 늑대나 이리와 같은 다른 위험한 야생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병주처럼 농사짓기 좋고 쾌적한 곳에서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산 가까이에 사는 사람은 없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계주에서라면 그다지 깊다고 할 수도 없는 운산은 인적이 드물었다.
청송 도인과 제문이 계연을 데리고 현성을 나왔을 때만 해도 아직 이른 시각이었다. 계연과 두 사람은 어떤 술법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산자락에 도착해서도 20여 리 정도를 더 걸어 올라야 했다.
제선과 제문 두 사람은 정통 무공을 배우진 않았지만, 다행히 계연이 전생에 알던 팔단금(*八段錦: 중국 고유의 건강 증진을 위한 운동법)과 비슷한 도가의 단련법을 익힌 상태였기 때문에 신체가 튼튼했다. 다리 힘이 좋은 두 사람과 함께 걸으니, 그들은 오래 걸리지 않아 산길로 들어설 수 있었다.
산길을 걸으며 세 사람은 그동안 못다 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은 계주의 신의(神醫)인 진자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청송 도인이 얼마나 오래 앓았으며 어떻게 요양했는지, 또 어쩌다가 병주로 돌아왔는지를 계연에게 말해주었다.
산에 들어섰을 때는 해가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고깃덩이와 생선 한 마리를 들고 산길을 걷던 계연은 농담을 던지듯 그들에게 물었다.
“두 분은 보통 몇 시쯤 도관으로 돌아가세요? 동락현에서 여기까지 거리가 꽤 돼서, 도착할 때쯤이면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지겠는데요.”
이렇게 같은 길을 오래 걷다 보니, 어느새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이 계연을 대하는 태도가 몹시 편해져 있었다. 그래서 계연의 말을 들은 제문은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계 선생님께서 마침 물어봐 주시니 잘됐네요! 어떤 때는 산에 아직 오르지도 않았는데 해가 져 있을 때도 있어요. 제가 맨 바구니 안에 땔나무를 벨 때 쓰는 칼 두 자루가 있는데, 밤에 야생 동물을 마주칠까 봐 넣어둔 거예요!”
계연은 두 사람 앞에서 어떤 신묘한 술법도 보인 적이 없어서 제문은 계 선생님을 무공이 높고 마음씨가 착한 고상한 선생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청송 도인은 처음부터 계연이 범인(凡人)이 아님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자가 계 선생님 앞에서 자신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가끔 있는 일입니다, 아주 가끔요. 대부분은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며칠에 한 번씩만 돗자리를 펴러 나가고, 어떨 때는 근방의 작은 마을로도 갑니다. 저희는 산에서 수행을 하는 시간이 제일 깁니다.”
“오, 수행이요? 저도 궁금하네요. 도인들은 어떻게 수행을 하시나요?”
계연은 정말로 호기심이 들어 물었다. 그가 들은 강호의 풍문에 의하면, 어떤 도관들은 무림의 문파에서 비롯되기도 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수행은 대부분 무공을 닦는 과정인데, 운산관처럼 자그마한 도관에서 두 도사는 무슨 수행을 하는 걸까? 점치는 공부만 하는 건 아니겠지?’
“도를 닦는 거지요, 득도하여 신선(神仙)이 되는 것이 목표니까요. 에헴……!”
청송 도인은 말을 더는 이어 나가기 어려웠다. 그는 함께 산을 오르는 계연을 보며,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계 선생님께서 어떤 신선 같은 능력을 보인 적은 없었지만, 계 선생님은 신선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선 앞에서 도 닦는 얘기를 하다니, 그야말로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격이 아니던가?
“하하! 득도하여 신선이 되다니 훌륭한 목표네요. 계속 말씀하세요.”
계연은 상관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는 자신을 신선이라고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일개 수선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부(仙府)며 선문(仙門), 선산(仙山)이나 선도(仙島) 모두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것들이었다.
청송 도인은 겸손하고 진지한 태도로,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도인들의 수행이란 깨끗한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도관에 신령을 모시거나 재물을 탐내지 않고, 하늘의 별과 천지만물이야말로 도인들이 경외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심신이 맑아져 자연에 녹아들면, 천지만물과 균형을 이루게 됩니다. 그 고요하고 편안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저와 같은 도인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계연은 발걸음을 늦추고 청송 도인의 말을 다시 한번 음미했다. 이에 두 도사도 그를 따라 걸음을 늦췄는데, 청송 도인은 자신이 말한 것 중에 틀린 것이 있지 않았는지 약간 불안해졌다.
“방금은 제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네요. 자세히 생각해보면, 선도를 닦는 많은 이들이 원하는 것도 결국 그와 비슷한 것 같아요. 심지어 그들 중에는 도인만큼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자들도 별로 없어요. 정말 옳은 말씀입니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은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고 하지요.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구절)”
계연은 이렇게 말하고 다시 서둘러 걷기 시작했고, 청송 도인과 제문도 서둘러 그의 뒤를 따랐다.
청송 도인은 입으로 쉬지 않고 중얼거렸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은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
* * *
운산관에서 청송 도인은 온 힘을 기울여 저녁 요리를 준비했다. 고기는 현에서 사 왔고, 채소는 후원에서 자신이 기른 것을 사용했다. 청송 도인은 산에서 주운 나뭇가지로 불을 지핀 뒤, 오랜 시간 거듭해 쌓인 실력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곧이어 다섯 가지 요리와 생선탕 하나가 준비되었는데, 모든 요리가 보기도 좋고 냄새도 좋았다. 맛은 용왕의 연회보다 못했지만, 대신 재료가 신선했다.
계연은 그다지 사양하지 않고 식사를 시작했고, 두 도사도 식탁 앞에서는 진중한 태도를 버렸다. 도관 주방 안의 팔선상에 앉아 세 사람은 마음껏 먹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늘이 아직 밝을 때 먹기 시작해서 유등에 불을 붙이는 시각이 되어서야 식사를 마쳤다.
청송 도인이 식사를 마친 듯하자, 계연은 비밀스럽게 자신의 보따리를 풀어 안에서 술병을 하나 꺼냈다.
“자자, 도장께서는 잠시 젓가락을 내려놓으시고 이게 뭔지 좀 보세요! 제문아, 너는 마저 먹으렴.”
“아, 네…….”
스승님과 계 선생님이 젓가락을 내려놓는 것을 보고 제문도 그들을 따라 젓가락을 내려놓으려다가, 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식사를 시작했다. 제문은 생선탕 국물을 밥에 끼얹으며, 눈으로는 계연이 손에 든 물건을 바라보았다.
청송 도인은 아래는 굵고 위는 좁은 도자기 병의 입구가 빨간 천으로 틀어 막혀 있는 것을 보았다.
“계 선생님, 이건 술병이 아닙니까?”
“하하하! 중요한 건 이 술병이 아니라, 이 안에 들어있는 술입니다.”
제문은 젓가락으로 생선탕 국물을 머금은 밥을 긁어먹으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비싼 술이에요?”
계연은 잠시 그를 보았다가 궁금한 얼굴로 생각에 잠긴 제선을 바라보았다.
“비싸냐고? 이 술은 유명하지도 않고 팔지도 않는 술이야. 세상에 오직 한 사람만 이 술을 만들 수 있지. 인연이 닿지 않으면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이 술을 마실 수 없어.”
계연은 속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세상에 오직 용 한 마리만 이것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
“이 술은 만들기 쉽지 않아. 도수도 높아서 마시면 쉽게 취하지. 내가 들고 있는 것도 겨우 몇 잔 정도의 양이야. 제문 너는 설거지를 해야 하니 마시지 마. 제선 도장, 두어 잔 마셔보시겠어요?”
제문은 그 말을 덥석 믿었지만, 청송 도인은 계연이 한 말을 다시 한번 되짚어봤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서 그는 계연을 떠보려고 질문을 던졌다.
“계 선생님께서도 저와 같이 마실 겁니까?”
과연 계연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안 마시려고요. 이건 도장께 드리려고 일부러 가져온 술이거든요. 사양치 말고 드세요!”
운산관에서 계연은 장안법을 유지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그의 두 눈은 흐릿한 회백색이었다. 이를 본 청송 도인은 차마 거절의 말을 내놓지 못했다. 또 자신도 짐작되는 바가 있기도 했다.
이때 계연은 이미 부뚜막 근처에서 빈 그릇을 가져와 다시 식탁에 앉았다. 이것은 청송 도인의 명을 잇기 위한 술이니, 풍류를 즐긴답시고 작은 잔으로 마시기보단 한입에 털어 넣는 편이 나을 듯했다.
계연은 손가락으로 술병의 입구 부분을 두어 번 어루만지다가 단번에 마개를 뽑아냈다.
술병을 기울여 그릇에 술을 따르자 뜻밖에도 청록빛이 드러났다. 술에서는 아주 맑고 은은한 향이 났다.
“하하하……. 자자, 청송 도장께서는 어서 맛보세요. 이 술을 담근 그 친우가 나이가 좀 있는데, 술 담그는 솜씨가 도장의 요리 솜씨보다 훨씬 좋습니다!”
청송 도인은 계연과 그릇 안의 술을 번갈아 보았다. 술은 아직 그릇 안에서 흔들렸는데, 때때로 식탁 위 유등의 빛이 표면에서 반사되고 있었다. 그러자 그의 눈앞이 가물가물해지더니 순간 술의 표면에 깔린 옅은 연기가 그의 눈에 보였다.
“그럼…… 계 선생님 말씀대로, 맛만 보겠습니다.”
그때 제문이 곁에서 한마디 끼어들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술을 안 드시잖아요?”
“제문아, 나는 네 사부님을 술에 취하게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맛만 보게 해드리는 거야. 맛만 보는 건데 뭐가 문제냐? 나도 정도를 아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도장께서는 어서 드셔 보세요!”
“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