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운산에 머무르기로 하다
그녀는 이 사실을 믿기 힘들었지만, 어쨌든 사당 안으로 들어온 것은 작은 종이학 한 마리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응약리는 계연의 머리카락을 다시 종이학의 몸에 칭칭 감았다.
응약리가 사당 안의 주전을 떠나자 그녀의 뒤로 대문이 스르르 닫혔다. 강신을 모시는 사당의 묘지기나 일꾼들 중 누구도 그녀가 왔다 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응약리는 사당에서 나와 곧바로 강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용의 몸으로 변신하지 않고 인간의 모습 그대로 강바닥을 빠른 속도로 헤엄쳐 나갔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만든 기포로 감싼 종이학을 다시 한번 자세히 관찰했다.
물론 그녀는 이것이 학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고, 그저 예쁜 종이 새라고만 생각했다. 그녀는 심지어 이 종이 새가 물에 닿으면 젖을지 안 젖을지 확인하고픈 충동도 들었지만, 그녀는 꾹 참아 눌렀다.
통천강 강신인 응약리가 헤엄치는 속도는 무척 빨라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용궁 안에 들어왔다.
종이학을 소매 안에 넣고 응약리는 용궁 뒤편으로 향했다. 그녀는 수많은 문을 지나 약간 어두컴컴한 석굴의 문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퍼런 얼굴의 야차 두 명이 미늘로 된 창을 들고 서 있었다. 응약리가 오는 것을 본 그들은 허리를 굽히고 읍한 뒤 그녀에게 인사를 올렸다.
“강신님!”
“음, 그래. 부친을 뵈러 왔다.”
“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응약리는 두 야차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석굴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석굴에 들어서자 잠시 후 땅이 내리막길로 변했고, 그녀가 길을 따라 8에서 9리 정도를 걸어 내려가자 드디어 그녀의 눈앞이 환해졌다.
이곳은 넓고 쾌적한 동굴 안의 모래 언덕이었다. 주위에는 몸에서 빛을 내는 해파리들이 유유히 떠다녔다. 그 중간에는 거대한 몸체의 용이 모래 언덕 위에 드러누워 있었는데, 용의 호흡에 따라 그의 수염이 이리저리 흐느적거렸다.
“아버지, 계 숙부님께서 서신을 보내셨어요.”
응굉이 눈을 뜨자 용의 머리 부분에서 호박(琥珀)색의 빛이 번졌다. 곧이어 늙은 용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리 가져오너라.”
“네!”
응약리는 소매 안에서 종이학을 꺼냈다. 종이학은 고요히 기포 안에 떠 있는 채로 응굉을 향해 날아갔다.
“음?”
보통 서신인 줄로만 알았지, 이런 모양일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한 응굉은 순식간에 흥미를 느꼈다. 거대한 용의 본체가 움직이며 몸을 일으켰고, 호박색의 두 눈은 어두운 동굴 안에 빛을 흩뿌렸다.
용의 시선을 느낀 듯 모래 언덕 위의 조개껍데기들이 스르르 열리며 그 안의 진주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래 언덕에 등을 켠 듯 주위가 순식간에 환히 밝아졌다.
늙은 용의 거대한 두 눈이 작은 종이학에 시선을 멈췄다. 용은 종이학을 관찰하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딸에게 물었다.
“이것이 계 선생의 서신이라고? 그가 서신으로 종이 새를 접었단 말이냐? 이것 외에 다른 것도 있느냐?”
“아버지께 아룁니다. 이 종이 새가 사당 안 제 신상의 손 위에 날아왔습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없었어요. 게다가 이 새는 진짜로 날 줄 알더라고요.”
응약리는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두 손으로 날개가 퍼덕이는 모양을 흉내 냈다. 이 새가 법력에 의해 공중에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제 날개를 이용해 날아올랐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 두 가지에는 본질적인 차이점이 있었다.
“재미있구나. 계연 이 사람은 항상 상대를 놀라게 하지!”
응약리도 이를 듣고 웃으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종이 새의 목에 걸린 머리카락에 닿으면 발동되는 어떤 술법이 걸려있는 것 같아요. 머리카락을 떼어 냈더니 바로 술법이 발동되어서, 어쩌다 보니 제가 먼저 내용을 읽어버렸어요. 부디 저를 꾸짖지 말아 주세요.”
응굉은 자신의 딸을 한 번 바라보았다. 이어 응굉의 거대한 몸이 하얀빛에 휩싸이며 빛나더니, 그의 인간 형태인 노인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보면 본 거지.”
이렇게 말하며 응굉이 가볍게 손끝을 구부리자, 종이학의 목에 걸쳐져 있던 머리카락이 저절로 한쪽으로 날아갔다.
바로 이때, 종이학이 날개를 퍼덕이며 기포에 둘러싸인 채로 응굉에게 다가왔다.
“오! 정말로 스스로 날 수 있구나.”
늙은 용은 웃으며 손을 뻗어 물결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종이학을 손에 잡았다. 종이학에 남아있는 법력이 이물전신의 술법을 펼쳤고, 종이에 쓰인 내용이 응굉의 머릿속으로 저절로 들어왔다.
응약리는 응굉의 표정을 주의 깊게 살폈고, 곧이어 자신이 품었던 의문을 그도 깨달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늙은 용의 왼쪽 수염이 위쪽으로 삐죽 솟더니, 그가 곧 의아하다는 혼잣말을 했다.
“병주의 장천부? 이 조그마한 게 그렇게 멀리서 날아왔단 말이야?”
다른 용이나 교룡들이 어떤지는 몰라도, 응씨 집안 용들은 자주 밖으로 나가 구름을 부려 비를 뿌렸다. 그래서 다른 이들보다 대정국의 산천과 지리에 대해 더욱 깊게 알고 있었고, 병주 장천부와 이곳 통천강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혼잣말을 뱉은 응굉은 딸에게 웃으며 말했다.
“서신은 내 잘 받았으니, 이만 물러가도 좋다.”
“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응약리는 가볍게 무릎을 굽혀 인사한 뒤, 자신의 부친이 잠을 잘 때 애용하는 모래 언덕을 떠났다.
응약리가 떠난 후, 늙은 용은 고개를 숙여 손안의 종이학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몇 번 콕콕 찌르다가 아래위로 뒤집어 보기도 하고, 안에 무언가 숨겨진 보물이라도 있는 것처럼 두어 번 흔들어 보기도 했다.
“정말 알 수가 없군. 이 머리카락 때문인가?”
늙은 용은 실마리를 찾으려는 듯 계연의 머리카락을 자세히 살폈으나, 어떤 특별한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손에서 내려놓자 머리카락은 흐르는 물결을 따라 스스로 동굴 밖으로 흘러갔다. 머리카락은 겉으로 보기에는 어떤 특별한 작용도 없이 흘러가는 듯했으나, 동시에 마치 스스로 헤엄쳐가는 듯한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머리카락은 캄캄한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응굉은 눈썹을 찌푸리며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머리카락을 그대로 흘려보냈다. 뒤이어 그는 손안의 종이학을 계속해서 관찰했다.
부녀가 두 차례에 걸쳐 서신을 ‘읽어’서 그 힘이 소진된 것인지, 종이학에 있던 이물전신의 술법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늙은 용은 이 종이학이 그리 쉽게 보통의 종이로 돌아갈 거라 여기지 않았다.
그가 조심스럽게 법력을 불어넣으니, 과연 종이학이 다시 날개를 퍼덕이기 시작했다. 응굉의 법력이 종이학과 연결되자, 날개에 숨겨져 있던 두 글자가 드러났고 응굉은 계연이 이것을 어떻게 접은 것인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늙은 용은 마치 이 사실을 발견한 것이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었다.
* * *
운산의 연하봉 정상에 있던 계연은 일출을 감상하며 겸사겸사 수련을 마친 후 운산관으로 돌아왔다.
제문은 몸을 씻고 옷을 갖춰 입은 후, 주방 입구에서 물통과 멜대를 정리하며 물을 길으러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가 막 몸을 돌렸을 때 계연이 마당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계 선생님, 좋은 아침이에요! 벌써 일어나셨군요? 저는 선생님께서 문 여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요.”
“그래, 제문아. 좋은 아침이구나. 나는 일찍 일어나서 한 바퀴 돌고 내려오는 길이란다.”
제문은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깨달은 듯했다.
“참, 계 선생님. 주방 냄비에 죽을 끓여 두었어요. 제가 돌아올 때쯤이면 아마 드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럼 이만 물을 길으러 내려가 볼게요.”
“내가 도와줄까?”
계연은 그가 지고 있는 물통 두 개가 자신이 천우방의 집에서 살 때 쓰던 물통보다도 큰 것을 알아차렸다. 운산관 아래를 잇는 산길에는 계단도 없어서 물을 채워 들고 산을 오르면 꽤 힘이 들 것이다.
“아뇨, 아뇨. 선생님께서는 앉아 계세요. 저는 산에서 뛰어다니는 게 익숙해서 금방 갔다 올 수 있어요.”
제문은 이렇게 사양한 후, 빈 물통을 들고 서둘러 밖을 나섰다.
계연은 도관의 문을 가볍게 닫은 후 주방으로 돌아왔다. 화덕 안의 땔감이 약하게 타오르고 있어 불길은 거세지 않았다. 바깥으로 이어지는 주방 문을 열어 어젯밤 걸어 놓은 생선 꼬리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자, 물어간 것인지 생선은 사라지고 끈만 남아있었다.
운산관은 안개가 끼는 높이보다 위에 있어서, 바깥을 내려다보니 바다처럼 널리 깔린 구름이 온통 하얗게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하늘 위의 선경(仙境)을 보는 기분이었다. 계연은 운산관을 지은 도인들이 정말 위치를 잘 골랐다고 생각했다.
* * *
이 세계에서 보통 백성들의 생활은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청송 도인이 술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진 며칠 동안은 계연과 제문도 산을 내려가 돗자리를 펴지도 않았다.
그동안 제문은 자기 스승의 건강에 대해 퍽 걱정스러워했다. 3일째 되는 날에는 계연에게 제 스승이 언제쯤 일어날지 틈만 나면 묻기 시작했다.
다행히 5일째 새벽, 제선은 스스로 잠에서 깼다.
이때 제문은 마침 물을 길으러 산에서 내려간 상태였고, 계연은 도관 안의 주전에서 별자리 그림 아래의 방석에 앉아 <어론>을 읽고 있었다. 산속 영기는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희미한 안개처럼 운산관 전체를 감싼 상태였다. 그래서 계연은 청송 도인이 정신을 차린 것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청송 도인은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용은 엉망이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았고, 그가 눈을 뜨자마자 침실의 천장이 보였다.
“해가 다 떴네! 내가 정말 취했던 건가?”
제선은 거의 5일 동안 잤지만 어떤 혼곤한 느낌도 없이 오히려 정신이 맑아진 느낌이었다.
이불을 젖히며 침상에서 내려와 기지개를 켜자, 몸의 온갖 근육에서 두둑 소리가 났다. 온몸이 편안했지만 입을 움직이자 목이 마른 것이 느껴졌다.
그가 탁자 위에 놓인 찻주전자를 들어 가늠해보니 안에 물이 가득했다.
제선은 물을 한 잔 따라 단번에 잔을 비웠다. 그렇게 한 잔 더 마신 후에도 갈증이 가시지 않아, 주전자 입구에 입을 대고 꿀떡꿀떡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후우……. 이제 좀 낫군! 계 선생님께서 주신 게 대체 무슨 술이지?”
이렇게 혼잣말하던 청송 도인은 돌연 무언가 떠오른 듯, 자신의 왼쪽 손바닥을 펴고 자세히 살폈다. 그의 표정은 잔뜩 경색되어 있다가 무언가 해괴한 것을 본 듯 놀라워했다.
“설마…… 선인(仙人)들에게는 정말로 불로장생의 약이 있는 것인가?”
제선이 기이하게 여긴 것은 자신이 더는 요절할 명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읽을 수 없었는데, 그래도 안개 속에서 꽃을 보듯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하하, 제가 알기로 이 세상에 불로장생하는 약은 없어요! 좋은 아침이네요, 청송 도장!”
문가에서 계연의 맑고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넋을 놓고 있던 청송 도인은 계연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
“계 선생님, 제가 어젯밤 취기를 이기지 못하고 추태를 보였습니다. 간밤에는 잘 주무셨습니까?”
“네, 잘 잤어요!”
계연은 헤헤 소리를 내며 웃었다.
“제가 이곳에서 잠시 수행을 하고 싶은데, 도장께서 괜찮으실지 모르겠군요.”
“그게 뭐가 어렵겠습니까? 오히려 제가 바라던 일이지요. 얼마든지 머무르십시오, 하하하……!”
자신이 일찍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누구든 기분이 좋을 것이다. 청송 도인은 오늘따라 산속 공기가 무척 깨끗하여 숨쉬기가 편안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뱉는 호흡마다 오장육부가 정화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