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43화 (143/892)

143화. 청송 도인은 고인(高人)

제문은 산 아래에서 물을 길어온 후 청송 도인이 깬 것을 보고 크게 기뻐했다. 제문은 그가 거의 5일 동안 잠들어 있었고, 계속 눈을 뜨지 않는다면 계 선생님이 말리더라도 사부님을 등에 업고 하산하여 의원을 찾아갈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제문의 말을 들은 청송 도인은 경악했고, 계연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제문이 그래도 자신을 믿어서 다행이었다. 그가 생각하던 최대 기한은 아마 자신이 말했던 3일에서 5일이었을 것이다.

청송 도인과 제문이 가장 의아하게 여겼던 것은, 아무리 그날 밥을 든든히 먹었어도 며칠 동안 잠이 들었었는데, 청송은 목이 마른 것 빼고는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 * *

십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청송 도인은 도관에서 양생공(*養生功: 건강한 체력을 기르기 위한 수련 체조)을 연습하고 있었고 계연은 방석을 하나 가져와 주전(主殿) 앞에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어론>을 읽고 있었다.

제문은 수십 문(文)의 동전을 들고 소쿠리를 등에 지고 산에서 내려간 상태였다. 도관에 더는 먹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산에서 가까운 마을로 내려가 고기를 조금 사 오려는 생각이었다.

신선한 고기를 사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주된 목적은 도관에서 보관하기 좋은, 소금에 절여 말린 고기와 장아찌를 사려는 것이었다. 채소는 도관에서 기르는 것만으로 충분했고, 쌀이나 곡식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계연은 책을 읽으며 때때로 청송 도인을 관찰했다. 그는 양생공 연습을 끝낸 제선을 보고는 건물 바깥의 향로를 쳐다보며 그에게 물었다.

“청송 도장, 운산관 향불이 미미하네요. 여기 온 지 며칠이나 되었는데, 제문이 아침에 일어나 향 세 개를 꽂는 것 외에는 향불을 올리러 오는 이들을 보지 못했어요.”

청송 도인은 자세를 바로잡은 후 계연에게 대답했다.

“당연한 말씀을요. 저희 도관에는 신상을 모시지도 않는데, 산 아래 백성들이 뭐 하러 오겠습니까? 가끔 대갓집 사람들이 자손의 이름을 부탁하러 하늘과 땅에 기도드리는 정도인데, 그렇게 보면 향불이 왕성한 편이지요.”

제선은 말을 마치고 한마디 더했다.

“제가 주기적으로 하산하여 점을 봐주는 건 복채라도 좀 벌어와서 도관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 정말로 도장께서는 이 도관을 위해 마음을 쓰시는군요.”

계연의 의미심장한 감탄사에 청송 도인은 조금 어색해졌다.

“어쩔 수 없으니까요…….”

계연은 더는 이 문제를 깊이 파고들지 않고, 진지하게 제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장, 도관에 모시는 신상도 없는데 매일 향을 올리지 않아도 괜찮지 않나요? 누구에게 향불을 올리는 건가요? 단향도 돈 주고 사야 하는 거잖아요.”

“누구에게 올리냐고요? 당연히 하늘에 있는 별들과 천지(天地)를 향해 올리는 것이지요.”

청송 도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제문처럼 사부를 따라 이리저리 유람했기 때문에, 사당이나 절에서 신령에게 향을 올리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신상을 모시는 도관도 몇 번 본적이 있었다. 신상이 없는 운산관에서 향불을 누구에게 올리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하늘과 땅을 향해 향불을 올린다고 답할 뿐이다.

“그런데 하늘과 땅은 이 도관의 향불을 받고 있지 않은데요.”

계연은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제선과 같은 범인(凡人)의 육안과 달리 그는 진정한 ‘향불’을 볼 수 있었다.

“네? 하늘과 땅이 저희의 향불을 받지 않는다고요?”

청송 도인은 이를 듣고 멍해졌다.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으나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었다. 건물 앞에 앉아 있는 이는 분명 계 선생님인데, 짧은 순간 그는 의아함을 느꼈다.

“안 받는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늘과 땅이 저희 도관의 향불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공경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요!”

“도장께서 하신 말씀에도 일리가 있네요!”

계연은 책을 품에 안고 청송 도인에게 공수했다. 제선도 허허 웃으며 같은 예를 취했다.

* * *

제문은 소쿠리를 지고 스승과 자주 걷던 산길을 통해 하산했다. 제문은 계곡을 건너 산등성이를 내려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운산을 빠져나왔다.

산 아래 가장 가까운 마을은 운구촌(雲口村)이라고 불렸는데, 운산관 도인들이 자주 가는 마을이었다. 가끔 마을에 혼인이나 장례를 치를 일이 생기거나 점을 쳐야 하는 일이나 법사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 마을 사람들은 운산관에 도움을 청했다. 그래서 제문은 마을 사람들과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누군가 제문을 알아보고 인사했다.

“작은 도장께서 하산하셨군요? 오늘 청송 도장께서는 안 오셨나요?”

“네, 사부님은 도관에 계세요. 저는 먹을 것을 좀 사러 내려왔어요.”

“아……. 곧 제 아내가 아이를 낳을 예정인데, 청송 도장께서 사주를 좀 봐주셨으면 합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문은 그자와 몇 마디 한담을 나눈 뒤, 닭과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마을로 들어갔다. 몇몇 노인들은 제문을 보고 인사했고, 그가 어렸을 때 함께 어울려 놀던 젊은이들도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예법에 따라 제문은 마을 촌장의 집과 잘 아는 몇몇 마을 사람들의 집에도 들렀다. 그가 가진 수십 문의 동전으로는 꽤 많은 것을 살 수 있었다.

그가 한 농가에 방문했을 때, 한창 꽃다운 나이의 마을 아가씨가 다가와 제문에게 달걀 몇 개를 주었다. 이를 받은 제문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하하하……! 작은 도장님, 듣자 하니 도인들도 혼인을 할 수 있다지요?”

막 제문을 위해 닭을 잡은 나이 든 농부가 물었다.

어느덧 청년이 된 제문은 꽤 준수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양생공을 수련하며 스승을 따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맞기도 많이 맞았다. 덕분에 제문은 건장한 체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는 농촌 아가씨들이 제문에게 호감을 보이는 주된 이유이기도 했다.

“그, 그렇습니다…….”

“허허허, 작은 도장께서 만약 환속하여 데릴사위가 되기로 마음먹는다면, 그 외모와 체격으로 이 마을 아가씨 중 아무나 골라잡을 수도 있을 겁니다!”

마침 마을 아가씨 몇 명이 농가의 울타리 밖에서 제문을 몰래 훔쳐보며 웃고 있었으므로, 그는 왠지 열이 올라 얼굴이 다시 빨개지는 것 같았다.

“다 됐습니다!”

닭 털을 뽑고 내장을 제거한 뒤, 농부는 제문이 가져온 소쿠리에 손질한 닭을 넣었다.

“감사합니다, 심(沈) 백부님. 여기 동전이에요!”

제문은 10문을 내밀었다. 이 마을에서 닭고기를 사면 현성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었다. 게다가 닭과 오리 같은 가금류는 소, 양, 돼지와는 달리 대정국의 많은 지방에서 흔하게 키우는 고기였다. 소는 논을 가는 용도로 기르다가 늙어 죽거나 특별한 상황에만 잡았기 때문에 구하기 힘든 고기였다.

노인이 동전을 받은 뒤 제문과 몇 마디를 더 나누고 있을 때, 바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제문의 귀에 들려왔다.

“저어기…… 저기에 있네요, 운산관의 제문 도장이세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뭘요, 아닙니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제문의 주의가 단번에 흩어졌다. 두 남자가 하인으로 보이는 네 사람을 이끌고 제문이 있는 농가의 울타리 안으로 걸어왔다.

그중 한 남자는 제문이 아는 사람이었는데, 바로 얼마 전 사부님께 점괘 풀이를 부탁했다가 화를 내며 떠나버린 사람이었다.

‘싸움을 걸러 온 건가?’

제문은 약간 긴장했다. 이곳은 운구촌이니, 자신이 얻어맞으면 마을 사람들이 나서서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그자는 오자마자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

“작은 도장님, 제 이름은 황흥업(黃興業)이고 이쪽은 제 친우인 여면(厲勉)입니다. 며칠 동안 현에서 도장님들을 뵐 수 없어 운산관의 위치를 알아보려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뵙게 되니 정말 다행입니다. 도장님의 사부님께서는 산에 머물고 계십니까? 그날 그분의 말씀 덕분에 무사히 고비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성황당 앞의 노점주들에게 물어보니, 모두가 도장님들이 운산에 머무르는 도사라고 하더군요. 정확히 운산 어디에 머무시는지는 아무도 모르길래, 운에 맡기고 산 근처의 이 마을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자는 입을 열자마자 우르르 할 말을 쏟아냈다. 제문은 그의 말을 듣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시비를 걸러 온 게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었다.

“사부님께서는 당연히 운산관에 계시지요. 제가 사부님을 모시고 하산하여 뵙게 해드리면 될까요?”

“아닙니다, 제가 귀관(貴觀)에 가서 인사를 올리는 게 맞지요. 어찌 이런 일로 도장께서 하산하도록 하겠습니까? 마침 제가 변변치 못한 선물을 준비해 온 것이 있으니, 저희가 작은 도장님을 따라 함께 산에 오르면 되겠습니다!”

그제야 제문은 상대의 뒤를 따르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짐짝 두 개를 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에는 적지 않은 물건이 들어있는 듯했는데, 방금은 자신이 긴장하여 미처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럼, 저와 함께 산으로 오르시지요!”

이렇게 되자 제문은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후 황흥업의 일행을 데리고 운산관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참배객들이 선물을 들고 운산관에 방문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 남자는 제문에게 여기까지 오게 된 구체적인 연유를 알려 주었다.

황흥업은 동락현에서 손꼽히는 부호였는데, 최근 우여곡절을 겪고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뻔했다. 그러나 다행히 그날 동락현 성황당 앞에서 청송 도인의 점괘 풀이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때는 비록 화가 머리끝까지 났었지만, 청송 도인이 한 말 때문에 남자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훨씬 위험하다는 것을 깨닫고 경계하게 되었다. 특히 청송 도인의 ‘마음에 이미 정한 방향이 있다’는 말과 산가지 위에 적힌 점괘가 합쳐져 그는 자신이 의심하던 방향이 맞다는 확신을 얻었다.

게다가 선행을 쌓으면 고난을 넘길 수 있다는, 얼핏 들으면 무성의한 청송 도인의 말 때문에 남자는 정말로 좋은 일을 한 번 하게 되었다. 토지신당을 짓는데 부족한 금액을 그가 대신 냈고, 사당에 놓을 향로 하나도 그가 직접 사서 보낸 것이다.

향로의 대부분은 동(銅)으로 만들고 동은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의 기부는 토지신당의 건축 속도를 크게 높였다.

그러는 동안 남자는 모든 일에 전보다 신중을 기하고 조심했는데, 그렇게 했어도 닥쳐오는 목숨의 위기를 하마터면 넘기지 못할 뻔했다.

황흥업은 상대가 이렇게까지 모진 수단을 쓸 줄은 몰랐다. 그가 친우의 집에 머물던 때 그의 목숨을 끊을 요량으로 누군가 불을 지른 것이다.

그날 밤, 친우의 장원(莊園)에서 황흥업은 무공을 좀 할 줄 아는 그 친우와 같은 방에 묵게 되었다. 방 밖은 하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괴이쩍게도 한밤중에 갑자기 탁자 위에 있던 찻주전자가 바닥으로 떨어져 부서졌고, 이 소리에 황흥업과 그의 친우는 놀라 잠에서 깼다.

그때, 밖에서는 이미 뭔가가 불타는 듯한 매캐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밖으로 뛰쳐나갔을 때 불길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번진 상태였다. 황씨 집안의 두 하인 중 하나는 정신을 잃었고, 다른 하나는 종적을 찾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장원에 머물던 가족들을 깨운 다음, 쓰러진 집안 하인을 업고 안전하게 옮겼다. 그 뒤에야 불을 끄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결국, 불길은 잡지 못했지만 다친 사람은 없었다.

그 후 황흥업과 그의 친우는 같이 이 일을 관아에 신고했다. 그는 마음에 이미 짚이는 바가 있었던 데다, 집안의 재산을 좀 써서 사건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일로 동락현부터 무전진(茂前鎭)까지 한동안 크게 들썩였다.

화재가 일어난 후 황흥업은 얼마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다가, 나중에야 그 찻주전자가 떨어지며 자신의 목숨을 살렸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이는 생각할수록 기이한 일이었다. 친우의 집안은 빈한한 곳이 아니었고 실내의 바닥과 탁자 모두 평평하게 잘 마감되어 있었다. 그런 곳에서 찻주전자가 혼자 떨어질 리가 없으니, 이는 분명 귀신의 도움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토지 신당에 기부금을 낸 것을 떠올렸다.

그리하여 오늘 황흥업은 감사 인사를 올리러 온 것이었다. 아직 일이 다 해결된 것도 아니고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았지만, 그래서 더더욱 자신의 점괘를 풀어준 그때의 도인이 생각난 것이다.

황흥업은 동락현에서 청송 도인에 관해 사람들에게 묻고 다녔다. 그 후 이 도인이 점을 쳐주는 일 때문에 때때로 시비에 걸리고 심지어 얻어맞기도 한다는 것, 그렇지만 점은 꽤 잘 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도인을 때린 사람들 또한 결국 도인의 점괘가 꽤 정확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청송 도인은 그렇게 몇 차례나 얻어맞고도 계속 돗자리를 펴러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황흥업 같은 총명한 이들이 보기에 이는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점을 잘 치는 산속 도인이 하는 행동도 괴이하니, 이는 그야말로 은거하는 고인(高人)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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