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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145화 (145/892)

145화. 수수방관하지 않겠소

계연의 목소리를 듣고 마음이 조금 안정된 황흥업은 청송 도인에게 물었다.

“청송 도장, 이 분은 누구십니까?”

“이분은 계 선생님이세요. 저와 사부님께서 큰 은혜…….”

제문이 재빨리 대답하던 순간 계연은 그의 말을 끊었다. 다른 이들 앞에서 자신의 활약을 굳이 알릴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저는 청송 도장의 친우로, 몇 년 전 도장께서 유람 중이실 때 만나 알게 되었어요. 지금은 운산관에 잠시 머무르고 있어요.”

“그렇소, 계 선생님은 우리 도관의 손님이시오. 방금 이분이 물어본 것이 마침 내가 물으려던 것이었지요. 그래서 황 선생께서는 동락현의 성황당에 찾아가 보셨소?”

이 시대의 백성들은 귀신을 본 적이 없더라도, 신령과 온갖 미신, 부정하고 삿된 것들의 존재를 믿었다. 그러니 황흥업도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손 놓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황흥업은 이제 얼마간 마음의 안정을 찾았으므로, 호흡을 가다듬은 후 정신을 차리고서 대답했다.

“당연히 동락현의 성황당에도 갔었지요. 바로 그곳에서 청송 도장과 운산관에 관해 알게 된 것입니다. 고향 마을의 토지신상을 수리하기 위해 기부를 한 뒤, 풍성한 공물을 들고 가 성황신께 바쳤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곳 운산관까지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계연은 이 황흥업이라는 자가 꽤 주도면밀하며,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계연은 청송 도인에게 자연스럽게 말했다.

“청송 도장께서 이전에 저에게 사당이 다 지어지지 않은 신령은 도력이 그리 높지 않다고 말씀하셨던 적이 있어요. 아직 향불의 힘을 얻지 않아 진정한 신령이 아니라고요.”

계연은 이미 황흡업을 도와주었던 그 토지신이, 수련을 거듭해 지맥(支脈)과 연결된, ‘도력이 높아 신이 된’ 신령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게 아니라면 황흥업이 사당에 크게 기부했다고 해서 점을 몇 번이나 봐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토지신도 그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는 몰랐던 게 분명했다.

청송 도장 제선은 잠시 멍하니 있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던가?’

그러나 계연이 저리 진지하게 자신에게 말하는 것을 보고, 제선은 곧바로 대답했다.

“어…… 확실히 그렇지요. 계 선생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계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제가 잘 기억하고 있었네요. 제 생각에는 토지신의 신상이 인위적으로 파괴되었다면 더욱더 그 범인을 찾는 데에 힘써야 하겠지요. 그러나 만약 어떤 사악한 것이 개입되었다면, 무전진도 동락현의 관할이니 황 선생께서 공물을 바치지 않았더라도, 동락현의 성황신께서 일단 이 일을 알게 되시면 좌시하지는 않을 거예요. 도장님, 제 말이 맞지요?”

청송 도인은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 계 선생님의 말씀대로요!”

“휴,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황흥업은 계연의 말을 듣고 크게 안심했다. 일반 백성들이 비록 성황신이나 토지신을 믿는다지만, 누구도 실제로 본 적이 없는 데다가 영험하다는 소문도 입으로만 전해지는 것뿐이라, 막상 일이 닥치면 그리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청송 도인과 같은 실체가 있는 고인을 찾아가는 이들이 더 많았다.

“참, 황 선생님. 방금 선생의 말을 들어보니, 토지신당의 사건 이전에 벌어진 일들은 인위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증거를 찾아 관아에 신고한 뒤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는 말씀이시죠? 토지신의 점괘를 보고 나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고요?”

황흥업은 계연을 향해 공수하며 대답했다.

“계 선생님 말씀대로입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는 저도 이 고난이 지나간 줄로 알고, 공물을 챙겨 토지신께 감사 인사를 드리러 간 것입니다.”

청송 도장 같은 고인과 친우라고 하면 이 계 선생도 보통 사람은 아닐 터였다. 황흥업은 계 선생이란 자의 침착한 모습과 남다른 기운만 봐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계연은 청송 도인을 보았고, 청송 도인도 그 시선을 느끼고 계연과 눈을 마주쳤다.

“도장께서도 이 일이 괴이쩍다고 느끼시죠?”

“맞소, 계 선생님 말씀대로 마침 나도 그리 생각하고 있었소. 게다가 황 선생께서 이렇게 건강히 살아서 여기까지 오신 것을 보니, 운이 매우 좋은 듯하오.”

청송 도인도 계연의 말에 동의했다. 황흥업에게 벌어진 일을 되새겨보며 그의 관상과 안색을 자세히 살펴보니 괴이한 점이 있었다.

“황 선생, 내가 점을 쳐볼 테니 생년월일을 알려 주시오.”

계연이 곁에 있으니 청송 도인도 믿는 구석이 있어 담이 조금 커졌다.

청송 도장이 자신의 사주를 봐준다고 하자 황흥업도 더는 사양하지 않고 그에게 자신의 생년월일을 말해주었다.

청송 도장은 이를 듣고 마음속으로 세세하게 헤아리기 시작했다. 때때로 손가락을 접어 가며 마음속으로 천간(*天干: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등 열 가지 글자)이나 지지(*地支: 자(子), 축(丑), 인(寅), 묘(卯) 등 열두 가지 글자), 별의 움직임과 배합해 보았다.

계연은 호기심에 차서 그를 바라보았고, 황흥업과 그의 일행은 긴장한 채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황흥업은 큰 집안의 부잣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많은 사주를 봤었다. 결과는 전부 대동소이(大同小異)했는데, 명이 좋고 복이 있다는 정도였다.

잠시 뒤, 청송 도인은 사주팔자의 풀이에 현재 황흥업의 관상을 참고해 대답했다.

“황 선생의 운명에는 복이 많고 연이 좋군요. 거기에다 조상의 비호도 있으니 스스로 노력하고 나태해지지만 않는다면, 전반부에는 순풍에 돛 단 듯 흘러가겠소. 후반에도 깊이 근심할 것은 없었는데, 다만…… 선생은 현재 계도성(*計都星: 중국 구요성(九曜星) 중 하나로 흉성(凶星)임)의 영향을 받고 있소. 본래는 무슨 큰일이 없어야 하지만, 이번 일을 맞닥뜨리고 인간에게서 입을 화가 요괴에게서 입을 화로 바뀌었으니 이는 곧 생사가 걸린 위기를 만났다는 뜻이오!”

황흥업의 안색은 다시 안 좋아지기 시작했고, 청송 도인은 계속해서 말했다.

“……타고난 명이 비록 좋지만, 인간의 수명은 한 번 정해진 후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오. 학식과 쌓은 경험, 선악(善惡)의 행동과 외부 요인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지. 현재 선생의 명격에 이질적인 기운이 숨겨져 있지만, 활력이 넘치는 듯 보이는구려. 지난번과는 선생의 관상이 또 달라졌으니 이에 사주팔자를 합쳐 보면…….”

청송 도인의 말을 다른 이들은 긴장하여 잘 알아듣지 못했다. 계연은 그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며 법안으로 황흥업을 자세히 관찰했다.

황흥업이 청송 도인의 말을 들은 후의 감정 변화로 그의 기운도 변하기 시작했다. 계연은 마치 미꾸라지가 헤엄치는 듯한 특이한 기운이 그에게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청송 도인은 사주 풀이를 하고 있었으므로, 할 말은 다 끝내야 했다.

“……황 선생이 만약 올해 이 고비를 잘 넘기면, 내년에는 태양성(太陽星)이 비추고 올해의 억눌린 기운이 반동하여 돌아올 것이오. 이렇게 향상심을 유지한다는 전제 아래 내년에는 대길(大吉) 하는 운이 들어오고, 하는 일마다 잘 풀릴 것이오.”

황흥업의 얼굴에는 마침내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이번 고난을 넘기는 것이 먼저겠지요!”

계연은 일부러 잘 모르는 것을 물어보듯이 청송 도인에게 질문했다.

“청송 도장, 이전에 저와 요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떤 요괴들은 운이 왕성한 사람들이 가진 특별한 기운을 탐낸다고 하셨지요. 또한, 그 기운이 흩어질까 봐 본인 스스로 덫에 빠지도록 유도한다고요. 이번 일이 그와 비슷하지 않나요?”

계연이 이렇게 묻자, 청송 도인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계 선생님의 말씀이 맞소, 바로 그런 상황처럼 보이는군.”

계연도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말했다.

“이전에 선생을 해치려던 자도 정말로 선생을 불태워 죽일 생각은 아니었을 거예요. 그저 반죽음이 될 정도의 해를 끼치려고 했겠지요. 다시 와서 일을 꾸민다 해도, 선생의 목숨을 해치거나 기운이 흩어지도록 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렇죠, 도장님?”

“그렇소, 계 선생님의 말씀대로요. 그러나 반죽음 상태로 만드는 것이 더욱 잔인한데…….”

청송 도인은 계연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계연은 계속해서 말했다.

“인간 세상에는 정체를 숨긴 채 사는 사악한 요괴며 마귀가 꽤 있으나, 이 일은 정말 괴이쩍네요. 도력이 높거나 교활한 것들이 신령의 빈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에요. 보아하니 그들이 황 선생을 이대로 놓아줄 것 같지는 않네요.”

목을 움츠린 황흥업의 안색이 더욱 나빠지는 것을 본 계연은, 위로하듯 한마디 했다.

“그러나 황 선생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성황신께서 도움을 주지 못하시더라도, 청송 도인께서는 이 일은 좌시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죠, 도장님?”

“그렇소, 계 선…… 어……?”

청송 도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연 멍하니 계연을 바라보았다. 계연이 안심시키듯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그제야 청송 도인은 억지로 대답을 이어 나갔다.

“그, 그렇소. 내 도력이 비록 얕지만, 황 선생께서 이왕 여기까지 찾아와 도움을 청했으니, 수수방관하지 않겠소!”

황흥업은 그의 말을 듣고 놀라며 크게 기뻐했다. 그가 산에 올라 도인에게서 간절히 얻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한마디였다. 그는 급히 다시 한번 몸을 일으켜 읍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의 뒤에 선 하인들과 친우인 여면도 함께 인사를 올렸다.

“청송 도인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만약 제가 이 고난을 무사히 지나가게 된다면 반드시 이 은혜에 후하게 보답하겠습니다!”

* * *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황흥업과 그의 일행이 하산하기는 이미 늦은 것 같았다.

청송 도인은 다시 주방으로 가서 제문이 사온 것과 황흥업이 가져온 것을 이용해 넉넉한 저녁 식사를 마련했다.

청송 도인을 찾은 덕분인지 황흥업은 운산관에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안전함을 느꼈다. 특히 오후에 모든 일을 털어놓은 후에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요즈음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던 황흥업은 오늘 저녁에는 배불리 식사하고 술도 몇 잔 곁들일 수 있었다.

그들 일행이 묵을 곳도 쉽게 해결되었다. 계연이 자신이 머물던 곳을 양보한 것이다. 방안에 깔린 푹신한 볏짚과 요는 여섯 사람이 누워도 충분한 크기였다. 황흥업은 하인이나 기거할 곳에서 자기 싫어하는 꽉 막힌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계연은 자연스레 두 도인이 머무는 곳에서 같이 눕게 되었다.

모두 잠이 들고 어느새 제문도 고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 모든 이들 중 가장 불안에 떨던 청송 도인이 마침내 참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계연에게 물었다.

“계 선생님, 아직 안 주무시는 것 압니다. 분명 저 황흥업이라는 자를 도와줄 대책이 있으신 거죠?”

당연히 계연은 자고 있지 않았고, 청송 도인이 쉽게 잠들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았다. 제선이 약간 불안한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오자, 계연은 농담하듯 말했다.

“당연히 대책이 있지요. 바로 청송 도인께서 황흥업 일행을 따라 하산하는 거예요. 만약 변고가 있으면 바로 그를 도와 삿된 것들을 물리칠 수 있으니까요.”

청송 도인은 이 말을 듣고 간이 다 떨려왔다.

“아이고……! 계 선생님, 제가 어느 정도 능력인지 뻔히 아시면서 왜 그러십니까? 사주를 봐주는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요괴를 물리친다니요? 저는 귀신조차 본 적이 없는데 어찌 그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제 수명도 이제야 막 원래대로 돌아왔고, 만약 제가 요괴에 당하면 그대로 목숨을 잃을 텐데요.”

계연도 더는 그를 놀리지 않기로 했다. 그가 청송 도인의 입으로 대답하게 한 것은 자신이 따로 생각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하하……! 청송 도장께서는 반드시 황흥업 일행을 따라 하산하셔야 해요. 그러나 그게 진짜 청송 도장일 필요는 없지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 계연이 법력을 약간 운용하자 그의 몸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코가 약간 납작하니 넓어지고, 눈썹이 길어지며 각도도 달라졌다. 이마와 눈가에도 주름이 생겼고, 피부색이 변하며 점도 생겼다.

다음 순간, 두 명의 청송 도인이 서로 얼굴을 마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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