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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147화 (147/892)

147화. 귀한 손님

토지신의 확신에 찬 모습을 보니 무언가 아는 것이 있는 듯했다. 이를 보는 계연의 의혹이 더욱 짙어졌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것이길래 그러세요?”

토지신은 소리 죽여 말했다.

“인간과 결합한 그자에게는 요괴와 같은 삿된 기운이 없었고, 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체는 인간이 아닌 무언가였습니다. 그자의 동공에는 끝없는 어둠이 숨겨져 있었고, 그자의 혀는 아주 길었습니다. 귀신도 사람도 신령도 아니었는데, 저조차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말을 하는 동안 토지신은 자신도 모르게 왼쪽 팔을 만졌다. 신상의 팔이 뜯겨 나갈 때 토지신은 진짜 팔이 뜯겨 나가는 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황흥업이 사당에 와서 점을 칠 때, 사실 저는 어떤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황흥업 그자가 제 사당을 세우는 데에 큰 기부를 했기 때문에, 제 영기를 그의 몸에 조금 흘려 넣어 점괘가 좀 더 정확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죽간을 던져 점괘가 나오는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첫째, 성황신과 같은 신령들은 답을 구하는 이들이 누구이며 어떤 상황인지 대략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령들이 이런 상황을 보고 직접 점괘를 내리는 것이다.

둘째는 사람 자체가 가진 영험함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외지인이 성황당에 왔을 때나, 속세의 일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신령들이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모든 사람은 본래 영험함을 타고난다.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나 수선자를 위한 서적에도 이에 관한 기록이 있다. 그것은 몸 안의 오장육부 등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치지만, 대부분 인간의 의식 저편에 깔려 있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토지신이 황흥업에게 점괘를 내렸을 때도 사실은 황흥업 자신이 지니고 있던 영험함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의 깊은 의식 속에 있던 영험함이 바깥 상황에 감응하여 점괘를 내리는 것이다. 특히나 이렇게 생사가 달렸을 정도의 중대한 상황에서는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황흥업처럼 명격이 특이한 사람의 경우에는 더욱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즉, 그 점괘 결과는 토지신께서 황흥업에게 내린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내린 결과라는 거죠?”

“상선의 말씀대로 입니다. 저 같은 보잘것없는 신령에게 그 정도의 법력이 있겠습니까? 그자가 아홉 번 연속 흉하다는 결과를 받아 들었을 때는 저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심지어 그자에게서 불안정하며 특이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열 번째에는 죽간을 부수기까지 했습니다.”

토지신은 이렇게 탄식하며 계속 말했다.

“황흥업이 떠난 후, 저는 계속 불안함을 느꼈습니다. 분명 어떤 이상한 것도 감지하지 못했는데, 점괘 결과와 그자의 기운이 그토록 괴이했으니까요. 어쩌면 제가 큰일을 불러일으켰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과연 그날 밤 자시(*子時: 23시~01시 사이)에 그 일이 발생했지요.”

계연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물었다.

“신상의 팔이 잘린 것 말씀이시죠?”

토지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당이 아직 다 지어지지 않아 밤에는 문을 닫아 놓지 않았는데, 두립을 쓴 이상한 자가 들어왔습니다. 그저 사당에서 잠시 유숙(留宿)하고 가려는 사람이겠거니 했는데, 그자가 사당 안에 들어와 제 신상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원래는 보통 사람 같았던 그자의 두 눈이 더욱더 깊고 어둡게 변했습니다.”

토지신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게다가 그것의 몸속에서 괴이한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제가 악한 기운의 한 가운데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더니 그자가 쓸데없이 참견하지 말라며 제 신상을 향해 돌진해 왔습니다. 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즉시 몸을 숨겼는데, 만약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뜯겨 나간 것이 제 신상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참, 목소리도 이상했습니다. 말할 때 혀가 가로막는 소리가 나고, 뱃속에서부터 그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예전에 한 번 장설귀(*長舌鬼: 중국 민간 설화에 나오는 혀가 긴 귀신)를 마주친 적이 있어서, 그 소리가 길고 긴 혀가 뱃속까지 숨겨져 있을 때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자는 절대로 귀신이 아니었습니다!”

토지신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계연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는 느낌이 굉장히 괴이하고 위험했기 때문에, 그는 본능적으로 동락현 성황신도 이를 당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느꼈었다. 이미 그것에게 노려지고 있는 상태인 데다, 토지신인 자신이 땅에 숨어들면 찾기가 어려웠으므로 그는 차라리 숨어 버리기로 했던 것이었다.

‘동공에 깊은 어둠이 숨겨져 있고, 혀가 길어 뱃속까지 이어져 있다. 신상에 깃들어 있던 토지신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라…….’

토지신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상황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까다로웠다. 이렇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고 그다지 무섭지 않은 귀신처럼 보일수록 오히려 더욱 괴이하고 위험했다.

계연은 이제야 많은 신령과 요괴들이 자신을 보고 느끼는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토지신, 방금 말씀하신 그것이 아직 무전진 안에 있습니까? 그자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을 듣고 토지신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아마 무전진에 있지 않을 겁니다. 숨어있던 동안 저도 그간의 일들을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는데, 그중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있습니다. 그 사악한 것은 황흥업의 목숨을 앗아가거나 산 채로 잡아먹으려는 것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황흥업의 정신 상태만을 완전히 무너뜨리려고 했다는 겁니다.”

계연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하! 황흥업의 정신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집어삼키려고 한 것이겠지요. 즉 귀찮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는 목적에서 그랬던 것이 아니라, 황흥업의 기운에 숨겨진 특이한 무언가가 눈치채고 도망치길 바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토지신의 의문을 들은 계연은 황흥업에게서 은은하게 느껴지던 특이한 기운과 이 문제를 연결할 수 있었다. 이전에 그의 기운을 관찰할 때는 이런 식으로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이제 와 보니 그 기운은 황흥업이 가지고 태어난 신령함인 것 같았다. 즉, <외도전>에서 추측 정도로만 언급되고 실제로 증명되지는 않았던 ‘몸속의 신령(人身神)’이었다.

그것은 하늘과 땅 사이에 태어나는 기이한 신령 중 하나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몸속에서만 나타난다고 한다. 실제로 발견된 사례는 극히 적고, 모든 인간이 타고난 영험함과는 달리 영험함의 정수(精髓)라고 할 수 있었다.

비유하자면, 그다지 적합한 예시는 아니나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속의 인삼정(*人蔘精: 오래된 인삼이 정괴(精怪)로 변신한 것)과 인삼의 차이와 비슷했다.

몸 안에 있는 신령은 자연스레 향불로 힘을 얻는 천지신령과는 달랐다. 매우 드물지만, 하늘과 땅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신령과 비슷했다. 몸 바깥에는 커다란 천지가 있고 몸 안에는 작은 천지가 있다고들 하듯이, 이 몸속의 신령은 사람 몸속의 작은 천지에서 태어난 신령이었다.

그들은 몸속 정기의 영향으로 오행(*五行: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 화(火)수(水)목(木)금(金)토(土))과 음양(陰陽)으로 나며, 산천(山川)과 하류(河流)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 몸속의 신령은 아주 드물지만, 매우 특이했다. <외도전>에는 이들이 아주 민감하며, 조금만 위험을 느껴도 스스로 형체를 소멸하거나, 사람 몸 밖의 거대한 자연으로 나가 사라진다고 서술했다.

동시에 이 신령은 사람이 가지고 태어난 영험한 기운과도 연관되어 있어, 일단 사람이 위기를 겪거나 충격을 받으면 이 신령도 그 감정의 영향을 받았다.

“황흥업이라는 자가 그저 지주 겸 상인인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신기한 것을 가지고 있다니…….”

계연은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비록 그 ‘몸속의 신령’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는 없지만, 도관에서 두려움에 떨며 살려 달라 애원하던 황흥업을 떠올린다면, 신령을 그와 연관시키기는 아주 어려웠다.

비록 이전에 황흥업의 기운을 살필 때 약간 엿볼 수 있었지만, 그때 계연은 이 신령을 알아보지 못했었다. 실제로 본 적도 없고 책에도 모호하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에 와서 계연이 다시 생각해보니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상선께서는 무언가 알아내신 것입니까?”

계연의 혼잣말을 듣고 토지신은 호기심이 들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조금 짚이는 바가 있습니다. 토지신께서는 부디 무전진을 잘 지켜봐 주세요. 만약 그것이 다시 한번 나타난다면 즉시 제게 알려주시고요.”

“상선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인간의 몸에 가까워지려면 아직 한참 남은 듯한 토지신이 계연에게 공손하게 인사했다. 계연이 그를 향해 인사하자 토지신은 푸른 연기로 변하며 땅속으로 사라졌다. 이야기를 들은 계연이 약간 불안해진 반면에, 토지신은 이 현묘한 도인 덕분에 자신감이 차올랐다.

이것이 일반적인 요괴가 치는 장난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 계연은 조금 피곤함을 느꼈다. 상대는 황흥업의 정신을 무너뜨린 후에 기회를 노렸다가 그 ‘몸속의 신령’을 사로잡으려는 것이었다. 그 후에 신령을 삼켜 버리려는 것인지,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황흥업의 몸 안에 그런 신령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만으로 이미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어쩌면 상대는 무전진부터 동락현에 이르기까지, 자신에게 위협이 될 만한 모든 존재를 손바닥 보듯 훤히 알고 있을 수도 있었다. 단 한 명, 계연만 빼고 말이다.

* * *

황흥업의 영향으로 최근 황씨 집안은 위아래가 모두 긴장 상태였다.

그러나 청송 도장이 온 이후로 황흥업은 많이 안정된 상태였다. 주인의 기분이 하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기 때문에, 곧 모두가 평온함을 찾아갔다. 논밭을 순찰하고 세를 걷고, 물건을 사고파는 등 황씨 가문의 모든 일이 정상적으로 돌아갔다.

계연은 그의 저택에서 2주가량 머물렀으나,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고 황씨 집안 사람들 모두 점차 안정을 되찾았다.

그동안 동락현 저승에서는 판관과 음양사 기관장을 무전진으로 보내어 사건 조사를 시켰고, 토지신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이전에 있었던 일을 그들에게 모두 진술했다.

그 이후로는 무전진뿐만 아니라 동락현에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마치 모든 일이 이대로 지나간 것 같았다.

하지만 황흥업은 계연의 당부를 착실히 따라, 모든 일을 하인들에게 명하여 처리했고 그 자신은 저택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황씨 집안에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황흥업과 사업차 왕래하는 장천부 부호의 장자(長子)가 방문한 것이다.

손님을 맞이한 황씨 집안 사람들은 아래위로 모두 바빴고, 황흥업도 초명재(楚明才)라는 남자와 함께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만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계연이 응접실에 들어서자 뚝 끊겼다.

계연이 들어서던 그 순간, 이야기하던 초명재의 목소리가 돌연 끊기더니 그는 고개를 돌려 응접실에 들어서는 계연을 뚫어질 듯이 쳐다보았다.

“에헴, 내 소개해 주겠네. 초 현질(*賢姪: 친구의 아들 혹은 조카), 이분은 우리 저택의 귀한 손님이신 청송 도장이시네. 일전에 내가 삿된 것을 잘못 건드려, 도장께 그것을 물리쳐 달라 모셔왔다네. 청송 도장, 이쪽은…….”

계연은 손을 들어 황흥업의 말을 제지했다. 계연은 법안을 최대 크기로 뜨고 초명재를 바라보고 있었고, 초명재도 자리에서 일어나 계연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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