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49화 (149/892)

149화. 대정국의 숨겨진 신선 (2)

“초 선생께서 오해하셨군요. 저는 원래 대정국의 땅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그때는 대정이라고 불리지 않았지만요. 그러나 확실한 건 저는 다른 곳에서 온 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네?”

초명재는 이제야 고개를 돌려 계연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대정국에는 이미 진룡(眞龍)이 한 마리 있는데, 귀하와 같은 진선도 있었군요. 그 늙은 용은 귀하의 존재를 모르고 있습니까?”

계연은 아주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 진지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응 선생께서 저를 안다고 해서, 여기저기 모든 이에게 떠벌려야 하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저와 통천강 일족은 이미 서로 아는 사이입니다. 응 선생의 아들딸 모두 저를 숙부라고 부르지요!”

이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계연은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이를 들은 초명재의 신체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킬 뻔했다. 이는 그가 뒤집어쓴 신체의 생리적인 반응으로 다행히 때맞춰 억누를 수 있었다.

신선과 요괴는 대부분 서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초명재는 그들이 서로 아는 사이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저자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계연은 한마디 덧붙이기까지 했다.

“며칠 전에 통천강에 서신을 보내 제가 동락현에 잠시 머물 거라고 알려주었지요. 그 늙은 용의 성격으로 볼 때, 가까운 시일 내에 저를 찾아올 것 같습니다. 하하!”

계연은 사실대로 말한 것이긴 했으나, 그 말속에는 위협의 뜻이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계연은 마침내 옆에 앉은 이의 몸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초명재 몸 안의 마기가 불안한 듯 동요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동요를 억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를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계연은 눈이 쓰라린 것을 참고 최대한 크게 뜨고 있었다. 조금의 허점도 계연의 법안을 피해 숨길 수 없었다.

하지만 계연은 지금 저 진마가 말한 ‘소동을 구경하러 왔다’는 것이 무슨 소리인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든 간에, 대정국에 곧 무언가 특이한 일이 생길 것 같았다.

하늘은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나, 아직 완전히 어두컴컴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곳으로 어두운 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콰르릉… 으르르…….

천둥소리에는 용이 울부짖는 소리가 미약하게 섞여 있었다. 일반 백성들은 듣지 못하겠지만, 계연과 초명재는 이를 듣고 안색이 변했다. 계연은 눈썹을 크게 치켜뜨고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했고, 초명재의 안색은 극도로 나빠져 더는 동요를 숨기지 못할 지경이었다.

‘응 형님의 등장이 절묘하군!’

계연은 속으로 박수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적절할 때 등장하다니!

계연은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초명재’를 바라보며 차를 한 입 마셨다.

“정말 공교롭군요. 안 그래도 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당사자가 도착하다니요.”

초명재의 안색이 나쁜 데다 음울한 기운까지 느껴지자, 계연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상쾌해졌다.

“저 늙은 용이 천 살이나 먹었지만 실은 꽤 옹졸한 면이 있습니다. 만약 제가 여기서 귀하와 차를 마시고 있는데 부르지 않았다는 걸 알면, 반드시 기억해둘 거예요. 이전에 그의 생일 연회에서도 같은 이유로 저를 곤란하게 했지요. 아무래도 그를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

계연이 한 말은 전부 사실이었다. 이를 듣던 초명재는 찻잔을 움켜쥐었다가 깨뜨릴 뻔했다. 한참을 뭐라고 말하려던 그는 결국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계연을 말릴 수 있는 적당한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초명재는 저 혼자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계연은 어떻게 늙은 용에게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할지 몰랐다. 그때, 계연은 습기를 머금은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는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뻗었다.

긴 머리카락 하나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자연스럽게 그의 손안으로 들어왔다.

계연은 겉으로 어떤 표정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의아하게 여기고 있었다. 이 머리카락이 이 저택의 안으로 날아 들어왔을 때, 계연은 이미 이를 미세하게 느꼈다. 게다가 계연은 응굉이 술법을 써서 머리카락을 보낸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 스스로 돌아온 것이라는 점도 느낄 수 있었다.

초명재의 주의력은 온통 계연에게 향해 있었다. 심지어 잠시간은 진룡이 하늘에 있다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그래서 초명재는 두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머리카락이 스스로 돌아왔다는 것이 그중 하나였는데, 머리카락 위에 법력의 흔적은 전혀 없었으나 초명재 자신은 그 사실을 계연만큼은 빨리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나 초명재가 더욱 관심을 기울인 것은 계연조차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두 번째 일이었다.

습기를 머금은 바람이 실내로 들어오자, 먼지가 공기 중으로 피어올랐다. 그러나 먼지는 계연에게 닿기 전에 알아서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진마는 먼지가 묻은 회색 물방울이 계연의 옷에 닿자, 물기만 남고 때는 스스로 사라지는 현상을 목격했다. 이것은 절대로 피진술(*避塵術: 먼지를 조종하는 술법) 같은 게 아니었다.

초명재는 계연의 표정을 자세히 관찰했는데, 계연은 아직도 그 머리카락을 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에 벌어지는 다른 일은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또는 알고 있지만,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술법을 쓰기는커녕, 어떤 것도 하지 않는 자연스러운 모습 그 자체였다.

작은 부분에서 무언가의 진가를 볼 수 있다고들 하였는데, 이런 상황은 진마도 이번 생에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문득 진마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은 이 상황에 꼭 들어맞는 ‘무구진신(*無垢眞身: 마음이 청정하고 깨끗한 신선의 본체)’이라는 말이었다.

‘저자는…… 어쩌면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인 듯하군. 대정국에 저렇게 무서운 진선(眞仙)이 숨어있었는데, 누구도 이를 모르고 있었다니…….’

계연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세히 살피다가 무언가를 시험해 보려는 생각으로, 도관(道冠)을 벗고서 들고 있던 머리카락을 자신의 머리로 보냈다.

그러자 두피가 약간 간질거리더니, 머리카락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계연조차 마음속으로 신기해할 정도였다.

휘이…… 휘잉…….

빗방울을 머금은 바람은 점점 거세지기 시작했다. 이제 이것은 누가 봐도 일반적이지 않은 바람이었다. 계연과 조마조마한 모습의 초명재 모두 응접실 바깥을 쳐다보았다.

쿵, 쿵, 쿵, 쿵-!

열어놓은 덧문이 쉬지 않고 덜컹거리자, 풍향을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거칠게 불고 있다는 것을 소리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공기 중의 비 냄새가 점점 짙어지며, 검은 구름이 동락현을 온통 뒤덮었다. 무전진의 하늘도 구름으로 까맣게 덮였고, 사위가 어두컴컴하게 변했다.

콰르릉-!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뒤이어 번개가 번쩍이며 주변이 한순간 창백할 정도로 밝아졌다.

번개가 천지를 밝게 비추던 짧은 순간, 황씨 가문의 응접실에는 비단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났다. 한 명은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바로 통천강 응씨 부자였다. 먼지와 가는 빗방울이 섞인 바람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꿀꺽…….

초명재는 찻잔을 들어 차를 크게 한 입 마셨다.

“하하하! 그 머리카락을 따라가면 계 선생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내 진작 알고 있었지! 그러나 놀랄 거리가 하나 더 있을 거라는 건 몰랐군, 하하하……!”

늙은 용의 목소리는 명쾌했는데, 뒤로 갈수록 거칠어졌다. 그가 내뿜는 용의 기운이 쉬지 않고 입을 통해 넘쳐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응풍은 자신의 부친보다 좀 더 현실적인 성격이었기 때문에, 초명재를 한 번 보고는 계연에게 시선을 돌리고서 정중한 태도로 읍했다.

“조카가 계 숙부님께 인사 올립니다!”

“음, 그때 그 대두어가 참 맛이 좋더군요.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응풍의 ‘계 숙부님’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계연은 참 듣기 좋았다. 평소에는 그가 너무 들러붙어서 피곤했지만, 지금은 마음에 쏙 들었다.

상황을 보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던 응풍은 계연의 말을 듣자 더는 표정을 유지하지 못했다. 응풍은 기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얼굴에 드러냈다. 응풍은 마음속으로 뛸 듯이 기뻐했다.

“하하하! 계 숙부님께서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그저 겸사겸사 보낸 것일 뿐인데…….”

그러나 곧 이 자리의 분위기를 읽은 응풍은 순순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계연은 몸을 일으켜 응굉에게 공수했다.

“응 선생님, 그간 잘 지내셨죠? 어서 와서 차 좀 드시지요!”

응굉도 그를 향해 공수하며 인사했다.

“당연히 잘 지냈지요. 만약 망종(*芒種: 24절기의 하나로, 모를 심는 시기)과 겹쳐 여러 곳에 비를 뿌리며 돌아다니느라 바쁘지 않았다면, 진작 병주에 와서 계 선생을 뵈었을 거요. 그러나 보아하니 오늘 오길 참 잘한 것 같군요, 허허허…….”

늙은 용은 웃는 얼굴로 말했지만, 용의 시선은 계속 초명재를 향해 있었다.

“정말이지 공교롭군요, 하하하…….”

계연도 그의 말에 동의하며 함께 웃었다.

두 사람이 근황을 물으며 인사를 하는 동안, 그들은 초명재가 있다는 것을 완전히 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은 거대한 중압감이 탁자를 둘러싸고 내려앉아, 오로지 그 한 사람만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이는 진마로 하여금 태산이 머리 위에서 내리누르는 동시에 가시방석에 앉은 듯한 느낌을 주었고, 그는 이제 이 자리가 불편하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잠시 후, 황씨 가문의 응접실에는 기묘한 변화가 있었다.

계연과 초명재는 원래 앉던 자리인 상석의 좌우에 앉아 있었고, 응굉과 응풍은 초명재의 아래쪽에 앉았는데 이로써 진마는 그들에게 둘러싸인 형세가 되었다. 초명재의 안색은 조금 전부터 계속 음울하고 어두운 상태였다.

“오, 황흥업이라는 자가 몸속의 신령을 지녔다고? 정말 희귀한 일이군!”

계연이 간략하게 일의 전후를 설명하자 응굉은 놀라서 이렇게 대답했다. 그 후 응씨 부자의 두 쌍의 용목(龍目)이 동시에 초명재를 쳐다보았다.

“그렇습니다, 확실히 희귀한 일이지요. 저도 정말 놀랐어요.”

이미 늙은 용에게 ‘계 선생’이라 불리며 신분이 들통나게 된 계연은, 더는 정체를 숨길 생각이 없었다.

그동안 벌어진 일을 전부 이야기했으니, 이제 본론으로 돌아갈 때였다.

계연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 찻주전자를 들어 초명재의 찻잔을 채워주며 미소 지은 얼굴로 말했다.

“이리 빨리 찻잔이 비는 것을 보아하니, 귀하께서는 차 마시는 것을 참 좋아하시나 봅니다. 자질구레한 일은 모두 설명이 끝났으니, 이제 앞으로의 일에 관해 이야기할 시간이군요.”

이렇게 말하며 계연은 늙은 용을 잠시 살피다가, 초명재에게 시선을 돌렸다.

“사실, 귀하께서 조금 전에 대정국에서 벌어진 소동을 구경하러 왔다고 하셨는데 대체 무슨 일을 말씀하신 겁니까? 저는 한가롭게 유람이나 할 뿐 소식을 들을 곳이 없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이…….”

초명재가 입을 열어 말하려던 순간, 늙은 용이 의아하다는 듯 끼어들었다.

“계 선생께서는 모르고 계셨단 말이오? 하하하! 하긴 그렇지, 나도 안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까 말일세. 게다가 계 선생은 묶인 데 없이 자유자재로 다니는 것을 좋아하니, 무슨 소식을 듣기가 힘들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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