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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150화 (150/892)

150화. 가장 위험한 순간

늙은 용이 손가락을 한 번 구부리자, 찻주전자가 날아와 그의 찻잔에 차를 따랐다.

“소문으로는 천현(天玄) 동천(*洞天: 신선이 산다는 동굴)에 있는 천기각에는 도화석(道化石)을 얻어 다룰 수 있는 긴 수염을 가진 노인 셋이 있다 하오. 몇 년 전 그들은 느끼는 바가 있어 점을 치기 시작했는데, 일 년이 걸려서 그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군. 그 점괘에 따르면, 운주(雲洲) 남쪽, 즉 대정국의 국경이 자리한 곳에서 대성(大盛)의 기운이 어렴풋이 드러났는데, 무궁한 도연(道緣)을 얻을 기회가 그곳에 숨겨져 있다고 하오.”

“그리고요?”

“그게 전부라네. 천현 동천은 이미 완전히 폐쇄했고, 천기각으로 오겠다는 방문자들도 모두 사절하고 있다더군. 그 세 노인도 중상을 입었다고 하고 말이오. 다만 이 소식이 도대체 어떻게 퍼져 나갔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초명재는 드디어 말을 할 기회를 얻었다. 분위기를 풀어보려는 듯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런 일이 밖으로 알려진 것 자체가 이미 수상쩍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이도 있고,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천기각에 증거를 보여 달라 요청할 수도 없으니……. 대정국에 벌어진 소동이란 바로 이 일을 뜻하는 것입니다. 저도 소문을 직접 확인하려고 대정국에 왔으나, 황흥업의 몸속에 신령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이 들어 그만 이곳에 머무르게 된 것입니다.”

늙은 용이 차디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음? 그럼 지금 차지한 그 육신은? 이전에 벌인 일들은 뭔가? 내 오랜 친우가 비록 요괴며 마귀들에 대한 편견이 없다지만, 가장 혐오하는 것이 삿된 것들이 악한 짓을 벌이는 것일세. 이 친구가 웃으며 자네와 차를 마신다고 해서 얕보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넝쿨검의 만 장에 이르는 검의를 언제까지 제어할 수 있을지 나도 알 수 없거든.”

“후후후…….”

응풍은 점잖지 못하게도 그만 얘기를 듣다가 웃고 말았다. 자신의 부친과 계 숙부가 곁에 있으니, 그는 어떤 부담감도 없이 흥미진진한 얼굴로 사태를 구경하고 있었다.

늙은 용의 말을 들은 초명재는 식은땀을 흘렸다. 슬며시 그가 계연의 뒤에 있는 선검을 살펴보니, 검에서는 검의도 흘러나오지 않고 그 어떤 낌새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조용히 움직이지 않고 있을 뿐, 일단 검집에서 검이 나오면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현재 초명재의 왼쪽에는 진룡이, 오른쪽에는 진선이 앉아 있었다. 진룡은 천 살이 넘은 늙은 용이었고, 진선의 나이는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그는 곧 순간적인 깨달음을 얻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 삶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이겠구나.’

늙은 용의 위협을 듣고 초명재는 속으로 몹시 놀랐다. 그러나 계연은 이 진마가 조금이라도 평화롭게 빠져나갈 여지가 남아있다면, 절대로 먼저 공격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초명재는 저 늙은 용이 이미 위험한 신호를 내뿜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심지어 용은 저 진선(眞仙)에게 ‘이놈을 슬슬 공격할까?’라고 일부러 묻는 것 같기도 했다.

“마음에 삿된 생각이 가득하지 않으면, 아무리 저라고 해도 남의 몸을 쉽게 차지할 수 없습니다. 일전에 황흥업의 가업을 노렸던 황세하(黃世賀)라는 자도 이 초명재와 똑같은 놈으로, 절대 좋은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초명재는 한껏 비꼬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당연한 사실을 말한다는 듯 아주 편안해 보였다.

“저는 계 선생님께서 저와 이리 오래 이야기를 나눈 이유가 동락현의 창생(蒼生)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모처럼 계 선생님처럼 요괴와 마물을 편견 없이 대하는 진선을 만났으니, 제가 두 분의 체면을 세워드리겠습니다. 다시는 대정국의 땅에서 아무에게나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며, 황흥업도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초명재는 은근히 굽히고 들어오는 동시에 약간의 위협을 담아 아주 고상하게 대답했다. 그의 말은 한마디로, ‘너희들이 두렵긴 하지만, 만약 날 놓아주지 않는다면 동락현은 물론 대정국의 모든 백성을 도탄에 빠트려 누구도 평안하지 못하게 해주겠다’라는 뜻이었다.

그의 말을 들은 늙은 용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계연도 두 눈을 가늘게 떴고, 응풍조차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분위기는 이전보다 더욱 팽팽한 긴장 상태가 되었다.

이윽고 저택 전체에 엷게 용의 기운이 덮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범위 안에 있던 뱀이나 쥐, 개미 같은 곤충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밖으로 도망쳤다.

동물과 곤충들의 동요는 어두운 실내에 더욱 긴장감을 더했다.

쿠르릉-.

하늘에서는 천둥이 치기 시작했고, 두 마리 용의 표정은 공포를 자아냈다.

콰직!

초명재가 쥐고 있던 찻잔에 한 줄기 금이 갔다.

‘아무래도 방금 한 말이 반작용을 일으킨 것 같군…….’

용족(龍族)들 대부분은 성격이 나쁘고, 계연이 이미 잘 알듯이 응굉도 그랬다. 응굉은 일단 자기 마음에 든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곱게 봐줬고, 한번 싫어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고깝게 여겼다. 비록 응굉이 이치와 도리를 좀 따지지만, 대체로 당나귀처럼 순한 용이라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초명재의 육신을 차지한 진마가 저렇게 도발하는 듯한 말투로 얘기하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응 선생님, 부디 화를 삭이세요!”

계연은 적당한 때에 그를 제지했다. 비록 응굉도 스스로 정도를 지킬 테지만, 이 분위기는 너무 압박감이 심했다.

“귀하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여기 있는 이들이 실력을 드러내면 너무 요란하겠지요. 그러나 초명재와 황세하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귀하의 말 한마디로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진마인 귀하가 원하기만 한다면, 귀하는 세상에서 가장 선한 이의 몸도 빼앗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동락현 저승의 관리를 불러서 저 두 사람의 품성을 조사하는 겁니다. 만약 귀하의 말씀대로라면 오늘 귀하가 이곳을 무사히 떠나도록 해드릴 것이고, 조금이라도 다른 점이 있다면 귀하께서 저희에게 어떤 식으로든 성의를 보이셔야 할 겁니다.”

계연의 말을 듣고 초명재는 속으로 크게 한시름 놓았다. 이것만으로 이미 양쪽은 팽팽한 긴장 상태에서 벗어난 것이다. 만에 하나 황세하와 초명재가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성의를 보이는 편이 방금 그 검광이 번쩍이는 듯한 살벌함보다는 대처하기 쉬울 것이다.

이렇게 열세인 상황에서 진룡과 진선을 동시에 상대한다면, 자신은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컸다. 그는 나머지 실낱같은 확률에 감히 도전할 용기가 없었다.

“계 선생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초명재는 서둘러 그의 말에 찬성했고, 응굉도 침음성을 흘리며 반대하지 않았다.

계연도 이에 한숨을 돌리고, 왼쪽 다리를 들어 가볍게 지면을 밟았다.

“토지신님.”

그가 한마디로 구신술을 펼치자, 토지신은 다시 한번 푸른 연기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늙은 용과 그의 아들의 용목 두 쌍이 계연과 토지신에게 온통 집중됐다. 응굉도 놀랐지만, 응풍은 얼굴에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할 정도였다.

구신술은 유명해서 이름을 아는 자는 많았지만, 직접 본 자는 몇 없었다. 그러나 신을 소환한다는 목적이 이름만 들어도 뚜렷하기 때문에, 일단 보기만 하면 이게 구신술이라는 것을 모두 알 수 있었다.

응씨 부자(父子)는 태어나 처음으로 구신술을 목격한 것이다.

토지신은 소환되어 나타난 동시에 압박감을 견딜 준비를 했지만, 그렇다더라도 몸이 벌벌 떨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실내에 용의 기운이 너무 강해서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그는 막 사당을 짓기 시작한, 아직 향불도 받아보지 않은 토지신이었다. 비록 지맥과 연결되어 있긴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아직 정괴(精怪)에 가까웠으니, 이런 압력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한쪽에 앉은 용 두 마리를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저 자신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계연에게 인사를 올렸다.

“무, 무전진의 토지신이 상선을 뵙습니다!”

“이곳의 상황은 토지신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겠지요. 제 옆의 분이 누구인지는 아실 테고, 저쪽의 두 분은 제 친우이신 통천강의 진룡과 그분의 아드님이십니다. 부디 동락현 저승에 초명재와 황세하 두 사람에 대한 간략한 정보와 품성을 조사해달라고 저 대신 말씀해 주세요.”

계연은 토지신을 이곳에 오래 머물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간략히 설명했다.

“상선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토지신은 마치 도망치듯이 땅속으로 사라졌다.

토지신이 사라지자마자, 응풍은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계 숙부님, 구신술도 하실 수 있었습니까? 전에는 하시는 걸 본 적이 없어서…… 구신술은 배우기가 어렵습니까? 이 조카도 혹시……?”

“어험!”

늙은 용은 헛기침을 하여 흥분한 아들이 부끄러운 짓을 하기 전에 제지했다.

아들이 뱉은 말의 앞부분은 늙은 용이 생각하기에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계 선생이 구신술을 할 수 있다고 해서 그걸 네 녀석 앞에서 보여야 할 까닭이 있느냐? 구신술이 무슨 등급을 나누는 수단이라도 된단 말이더냐? 게다가 그 뒷말도 참……!’

응굉은 계연을 슬쩍 보고는 속으로 화를 참으며 아들을 다그쳤다.

“구신술은 신묘한 술법이다. 도력이 높고 수행을 쌓은 자가 아니면 부릴 수 없지. 너는 아직 수백 년은 멀었다!”

어째서인지 계연은 늙은 용의 말에 ‘내 도력은 충분히 높다’는 것 말고도 숨겨진 다른 뜻이 있는 것 같았다. 구신술은 구름에 올라타거나 물을 부리는 어수술과는 차원이 달라서, 그 자신도 궁금하지만 차마 입을 떼지 못하는 듯했다. 계연은 그의 마음을 눈치챘지만, 모른 체했다.

* * *

선인(仙人)의 말 한마디에 보잘것없는 신령은 다리가 끊어질 지경이었다.

토지신은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토지신당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무전진 범위 안에 있는 저승의 관리에게 계연의 말을 전할 생각이었다. 무전진 토지신인 그로서는 마을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토지신이 황씨 집안의 저택에서 일어난 일을 저승에 보고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성황신 밑의 관리들은 잔뜩 와서 삼엄한 기운을 내뿜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저승의 관리들뿐만 아니라, 각 기관의 기관장들도 모두 모여 있었다.

저승의 관리들은 자신들에게 상황 설명을 하던 토지신이 도중에 돌연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땅으로 사라지자,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마음을 졸이던 차였다. 황혼의 색을 닮은 빛이 번쩍이더니 토지신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후…… 후우…! 놀라 죽는 줄 알았네, 아이고! 토지신 노릇 하기도 쉽지 않구나…….”

토지신은 아직도 두려움이 가시지 않아 이렇게 혼잣말을 한 후, 저승의 관리들에게 다시 인사했다.

“여러분, 큰일이 났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던 잠깐 사이에 저쪽에 진룡이 와 있소! 상선께서 말씀하시기를…….”

토지신은 심각한 말투로 황씨 집안에서 벌어진 일을 남김없이 간략하게 설명했다.

귀신들은 그의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먹물이 쏟아진 듯 검은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용이 와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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