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52화 (152/892)

152화. 일을 마무리 짓고 운산에 머무르다

장천부 성황신은 황씨 집안의 저택 쪽을 잠시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상선, 통천강의 용군과 그 삿된 것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계연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용군께서는 비를 내리느라 바빠 먼저 떠나셨고, 초명재의 육신을 차지했던 진마는 대정국에 다시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저와 용군의 일격을 받아 다친 채로 대정을 떠났습니다.”

진마라니!

그것의 정체를 들은 이들은 모두 놀라워하는 동시에 안도감을 느꼈다. 이들 중 누구도 그런 위험한 것과 마주치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일은 이미 끝났으니, 토지신께서는 이 집안사람들을 모두 데려와 주세요. 초명재의 시신은 아직 이 저택에 있는데, 뒤처리는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당연히 그런 잡다한 일을 진선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상선께서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장천부 저승에는 초씨 집안의 조상이 아직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자를 시켜 꿈을 통해 초명재의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후손이 사악한 것에게 해를 입었다는 것을 알면, 황씨 집안에 화풀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천부 성황신의 대답을 듣고 계연은 걱정을 많이 덜어낼 수 있었다. 만약 황씨 집안과 초씨 집안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 해도, 그것은 이제 집안끼리의 사사로운 일이었다.

“성황신께서 수고가 많으시네요. 여러분 모두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계연은 다시 한번 공수하여 인사한 뒤, 토지신을 향해 두어 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 후 계연의 발밑에서 구름이 솟아오르더니, 계연의 모습이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은 검은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

잠시 후, 큰비가 내리지도 않았는데 상공의 검은 구름이 모두 흩어졌다.

이날 하루 동안 황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불안에 떨었다. 이날은 저승의 귀신들과 토지신에게도 혼이 빠져나갈 만큼 두렵고도 놀라운 날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요괴가 위험하다는 것은 알지만, 정확히 왜 그들이 두려운 존재인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저승의 귀신들은 이런 존재들의 무서움을 알고 있을뿐더러, 이들에게 있어 진선, 진룡, 진마는 모두 전설 속에 나오는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오늘 이런 존재들을 전부 한꺼번에 맞닥뜨린 데다, 이들은 하마터면 동락현을 잿더미로 만들 뻔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지진이 일어날 정도의 파괴력이었을 테니, 오늘 이렇게 무사히 마무리된 건 그야말로 천만다행이었다.

* * *

운산 연하봉의 운산관에는 계연과 응굉, 응풍이 모두 돌아와 있었다.

막 도관 입구에 도착했을 때, 마침 장작을 주우러 나온 제문이 세 사람을 발견하고는 흥분하여 큰 소리로 인사했다.

“계 선생님! 사부님, 오셨어요! 계 선생님이 돌아오셨어요!”

“뭐? 계 선생님이 오셨다고!”

청송 도인도 이를 듣고 밖으로 뛰쳐나왔고, 반가워하며 계연을 바라보았다.

도포를 입은 계연은 이전과 다를 바 없이 그대로였고, 곁에 있는 노인과 청년은 모두 비단옷을 입고 번듯한 모습을 하고 있어 요물로 보이지는 않았다.

“오, 이분이 바로 자신의 요리 실력이 선문의 요리와 비견된다고 자화자찬한 청송 도인이군요.”

응풍은 청송 도인을 보자마자 이렇게 농을 던졌다. 그리고서 마치 요술을 부리듯이 사람 키의 반 정도 오는 커다란 대두어를 공중에서 꺼내 들었다.

“이건 통천강에서 잡아 온 대두어입니다. 이걸로 얼마나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기대하겠습니다!”

“이렇게 큰 생선이라니! 한 번 들어봐도 될까요?”

제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기심에 차 다가오자, 응풍은 그에게 생선을 넘겨줬다.

방금까지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던 대두어는 제문의 손에 들어오자 힘껏 퍼덕이며 몸부림쳤다. 커다란 생선이 온 힘을 다해 버둥대자 제문은 하마터면 생선을 떨어트릴 뻔했고, 이에 그는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대두어를 품 안에 꽉 껴안았다.

“살아있는 생선이었네요! 어떻게 이걸 가지고 산을 오르셨어요? 엄청 무겁네요, 사부님, 이거 40근(斤)도 넘을 것 같아요!”

제문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생선은 그의 품 안에서 펄떡댔다. 만약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미 생선을 놓쳤을 것이다.

“모두 여기 밖에 서 계시지 말고 어서 들어오세요. 이렇게 큰 생선이 있으니 오늘 저녁은 제가 솜씨 한번 부려보겠습니다!”

제선이 이렇게 말하자, 계연도 응굉에게 안으로 들어가라며 손짓했고 모두는 도관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간단히 서로 인사를 나누고 차를 내온 다음, 청송 도인은 잠깐의 틈을 노려 계연을 주방 안으로 데리고 갔다. 청송 도인이 밖에 앉은 두 비단옷 차림의 남자들을 살펴보자, 노인은 눈을 감고 잠시 쉬고 있었고 젊은이는 제문과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선은 작은 소리로 계연에게 물었다.

“계 선생님, 저 두 분 관상이 흐릿해 잘 보이지 않는 걸 보니 범인(凡人)이 아니군요?”

“아이고, 고질병이 또 도지셨나 봐요. 그저 예의 있게 평소처럼만 대하시면 돼요.”

계연은 별일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고, 그의 물음에 어떤 답도 하지 않은 채 나갔다. 이런 일까지 겪었으니 계연은 응씨 집안사람들과는 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다.

주방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거대한 생선을 조리 중이었고, 도관의 주전(主殿) 앞에 옮겨 놓은 작은 탁자에서는 계연과 응굉이 오늘 벌어진 일과 천기각에 대한 소문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천기각의 일은 그저 재미난 풍문 정도로만 여겼는데, 진마도 이 소문을 듣고 올 줄은 몰랐군. 다만 그자는 좀 재수가 없었나 보오, 하필 계 선생을 만났으니…….”

“이제 그저 소문으로만 치부하면 안 되겠어요. 그 소문을 듣고 다른 삿된 것들이 또 올까 봐 걱정이에요. 응 선생님께서도 좀 도와주세요, 대정 땅은 우리가 사는 터전이잖아요.”

응굉은 도관에서 내온 차를 맛보고서 약간 눈썹을 찌푸렸다.

“당연하지요. 그건 그렇고 옥회산 그 무리가 아무리 조무래기들만 모아 놨다고 해도, 이번 일은 반응이 너무 굼뜬 것 같소.”

응굉의 말을 들은 계연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대정국이 비록 동방의 운주 남쪽 끝 구석진 곳에 자리 잡고 있다지만, 진룡이 단 한 마리만 있는 것은 아닐 테니 옥회산도 한번 확인해 봐야 했다.

‘구풍이 옥회산에서 어느 정도 위치일까? 위씨 집안 사람들은 옥회산에 들어갔으려나?’

계연이 본 많은 잡서(雜書)들의 저자 대부분은 선도(仙道)를 닦는 이들이었다. 책에는 선문이 있는 명산이나 유명한 장소에 대한 설명은 있었으나, 선문 내부의 일에 대해서는 깊이 서술하지 않았기 때문에 계연도 구체적인 정황은 알지 못했다.

계연은 최근 시간이 날 때마다 빌려본 청송 도인의 책 중에서 점을 치는 법이 자세히 적힌 내용을 떠올렸다. 그리고 위씨 집안의 옥패에서 느껴지던 기운을 떠올리며 손가락을 접어 점괘를 헤아려 봤다.

계연이 이전에 익힌 다른 술법들처럼 첫 시도는 비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결과가 꽤 괜찮았다. 점괘의 결과로 그는 어렴풋이 위씨 집안의 일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으며, 대략 3년의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계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도, 바보가 아닌 이상 청송 도인과 제문은 이 두 사람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시대는 계연의 지난 생과 달랐기 때문에, 이렇게 40근이 넘어가는 통천강의 생선을 살아있는 채로 산꼭대기에 가지고 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에 더해, 응씨 부자의 관상을 제대로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청송 도인과 제문은 당연히 이들이 신선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큰 생선을 신선들에게 바치기 위해, 운산관 주방에서는 생선을 죽이고 찌고, 끓이는 등 한바탕 난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다행히 화덕과 솥이 모두 충분히 컸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생선 머리조차 요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채소과 과일, 절인 고기와 함께 주요리인 생선이 올라왔다.

야생에서 자란 생강과 아랫마을에서 사 온 절인 배추, 산초나무 열매와 라조간(辣子干)이라는 조미료를 더하자 신선하고 매콤한 생선탕이 준비되었다.

도관의 앞뜰에는 펼친 팔선상 위에는, 여러 채소 요리가 눈길을 잡아끄는 커다란 솥 주변을 둘러싸고 놓였다.

생선을 담을 만한 크기의 그릇이 없는 데다가 생선탕의 모양을 망가뜨리기도 싫었기 때문에, 청송 도인과 제문은 빈 솥에 생선탕을 담아 네 귀퉁이를 돌로 받치고 탁자 위에 올렸다.

신기한 차림새에 맛도 좋은 데다 유쾌한 기분이 더해져, 별 감흥이 없던 응굉과는 달리 응풍은 아주 흡족한 식사를 했다. 그는 청송 도인의 솜씨가 확실히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두 용에게 있어 이것은 맛만 보는 정도일 뿐, 이 정도 양의 요리로는 용들을 배부르게 할 수는 없었다.

준비된 요리는 모두 가정식이고, 술은 황흥업이 가져온 것으로 귀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전에 용궁에서 열렸던 연회보다 더욱 분위기가 좋았다. 청송 도인이 점을 치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이야기가 식사 자리에 올라오자, 분위기가 순식간에 유쾌해졌다.

배불리 먹고 술도 적당히 마시자, 하늘은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졌다.

응씨 부자와 계연은 아주 늦게까지 주제가 하늘과 땅에 이르는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말하는 이들은 계연과 응굉이었다. 계연은 지난 생 자신이 알던 온갖 신기한 것들에 더해 이번 생의 경험으로 어떤 주제가 나와도 몇 마디 보탤 수 있었다. 응굉은 오랜 세월을 살아왔고 도력도 깊으니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자신만의 견해가 있었다.

계연은 자신이 잘 알지 못하지만, 흥미를 느끼는 것들을 물어봤다. 예를 들면 현재 이 세계 곳곳에 대한 사정이라던가, 늙은 용의 어떤 사물이나 일에 대한 견해 같은 것들이었다.

응굉도 그동안 자신이 알고 싶었던 것에 관해 물었다. 그 김에 계주 춘혜부에 남겨진 검흔(劍痕)에 대해서 계연에게 물어보자, 계연은 의주에서 수천 리 떨어진 곳으로 넝쿨검을 보내 요괴를 벤 일에 대해 알려주었다. 비록 간단하게 묘사했지만, 이야기를 듣던 응풍과 두 도인은 모두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주제는 가끔 엉뚱한 데로 튀기도 했다. 계연이 오늘 저녁 먹은 생선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자, 은규자와 같은 특수한 생선은 어떻게 조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주제가 바뀌기도 했다.

계연은 이야기를 나누며 점점 흥이 돋았다. 자신이 가진 호기심이나 의문점, 또는 토론할 만한 주제에 대해 응굉은 그 모든 것에 대답해 줄 수 있었다. 그가 이 세계에 온 뒤로 이렇게까지 후련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고, 응굉 또한 자신과 비슷한 기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둘은 거리끼는 주제가 없었기 때문에, 나누는 대화에 더욱 진정성이 있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모두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선인이나 용들에 대한 불만과 언짢은 감정까지도 전부 나누었다.

대화는 하늘에 뜬 별에서부터 해와 달, 만물의 생장에까지 이르렀다. 그 뒤로는 요괴와 마귀들이 닦는 사도(邪道)부터 정통 수행자들이 닦는 정도(正道)를 지나, 왕조의 개혁과 나라의 흥망성쇠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마음 가는 대로 거리낌 없이 이야기했다.

어떤 도리를 토론할 때에는 약간의 막힘이 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계연은 종종 지난 생의 기억을 떠올려 황정경(*黃庭經: 도가의 경서로 양생과 수련의 원리를 담고 있다.) 같은 곳에서 읽어본 구절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자신의 의견인 것처럼 고전을 인용하다 보니, 대화는 점점 현학적이고 어려워졌다.

응풍조차 감히 이야기에 끼어들 수 없게 되자, 그는 가만히 그들의 대화를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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