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53화 (153/892)

153화. 너 지금 편애하는 거야?

“아함! 흐음……. 슬슬 졸리네요……. 계 선생님, 여러분은 계속 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이만 가서 자야겠습니다.”

“음, 저도요…….”

두 도인의 하품 소리에 마침내 이야기가 잠시 멈췄다.

제선과 제문은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아주 조금밖에 알아듣지 못했다. 초반에는 그래도 호기심에 같이 앉아 있었는데, 이제는 더는 졸음을 이기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어어, 가지 마세요. 들으면 분명 좋은 점이 있을 거예요. 뭐가 좋고 나쁜 줄도 모르다니! 오늘 이 대화는 세간에서 난다 긴다 하는 이들이 다시 한번 말해 달라 빌어도 못 들을 내용이에요!”

응풍은 청송 도인과 제문을 잡고서 놓아주지 않았다. 두 도인은 연이어 하품하며 도움을 청하듯 계연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도 계연과 응굉의 대화 내용이 기이하며 쉽게 들을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가 어지러워 이제는 더는 버틸 수도 없었다.

“두 분은 이만 가서 자도록 놔두세요. 저분들은 전하만큼 체력이나 정신력이 강하지 않으니까요.”

계연이 이렇게 말하니 응풍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제선과 제문을 바라보는 응풍의 눈길에는 아쉬움이 담겼다.

두 도인이 떠나고 응풍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고자 기대했지만, 부친과 계 숙부는 입을 다물었다.

늙은 용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계연을 향해 공수했다.

“계 선생과 함께 이렇게 통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내가 깨달은 바가 아주 많습니다!”

계연도 몸을 일으켜 정중하게 인사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선생과의 대화에서 얻은 것이 많습니다.”

응풍은 잠시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 서 있다가,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비록 아직 하늘이 어두웠지만, 여명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하룻밤이 지난 것이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응굉과 계연은 이미 자리를 뜨고 있었다.

“시간이 늦었으니 이만 가보겠소. 다음에 용연향을 또 만들게 되면, 가장 먼저 계 선생께 가져다드리리다.”

“네, 다음에 저도 원자포에 가서 오래 묵은 천일춘을 사다가 꼭 응 선생께 맛보여 드릴게요.”

“좋지요. 약속 꼭 지키시오!”

“선생님도요!”

늙은 용은 활짝 웃으며 아직 탁자 앞에 서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거기서 멍하니 뭐 하느냐? 가자!”

“에, 예? 아버지, 왜 이리 서두르세요? 통천강은 어차피 약리가 알아서 잘할 텐데요. 아버지가 강신도 아니시고…….”

이 자리에 아들을 계속 남겨두었다간, 또 계 선생에게 무슨 뻔뻔한 부탁을 할지도 몰랐다. 응굉은 고개를 젓고는 제 아들을 끌어당겨 공중으로 날아올랐고, 이들은 곧 흐릿한 형체가 되어 사라졌다.

계연은 그들의 형체가 사라질 때까지 기분 좋게 배웅했다. 하룻밤 내내 이야기를 나누며 응굉도 얻은 바가 적지 않다고 했지만, 계연은 그보다 더했다.

계연은 이제 일출을 보러 갈 생각이었으나, 그 전에 할 일이 있었다.

계연은 공중으로 뛰어올라 연기처럼 운산관을 빠져나간 후, 주방과 가까운 곳의 관목 앞에 내려섰다. 계연이 허리를 굽혀 관목 아래를 뒤적여보니, 회색 털에 흰색이 섞인 작은 동물 두 마리가 만져졌다.

바로 일전에 상처를 입고 아직 다 낫지 않은 담비 두 마리였는데, 그들은 혼곤하게 잠이 들어있었다.

“쯧쯧, 너희 둘은 운이 좋구나. 산속에서 이렇게 곤히 자다가 맹수한테 먹히면 너무 처참하겠지. 다른 데로 가서 자자.”

다시 한번 몸을 일으켜 운산관으로 넘어 들어온 계연은 담비 두 마리를 도관 주방으로 휙 던졌다. 장작을 모아 놓은 곳에 그들을 보내고서 그 자신은 다시 구름을 타고 일출을 보러 갔다.

하늘이 환하게 밝아 오며 운해 위로 해가 떠올랐다. 태양이 가진 힘이 마음의 불길을 왕성하게 하여, 흙(土)인 비장(脾臟)을 따뜻하게 하고, 금(金)에 속하는 폐(肺)를 원활히 했다. 이로부터 신수(*腎水: 중의학에서 이르는 골수(骨髓) 등의 신체 내 중요한 액체)가 생기고, 신수가 나무(木)인 간(肝)을 윤택하게 하며 오행(五行)이 순환하여 생기가 솟아났다.

* * *

계연은 운산에서 술법의 신묘함을 깨닫고, 때로는 연하봉이나 관일봉(觀日峰), 또는 다른 봉우리에 올라 막힘없이 수행에 정진했다.

이따금 운해 중에 안개를 뚫고 떠오르는 해를 보기도 했고, 때로는 해가 지는 때에 변화하는 음양의 기운을 느끼기도 했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잡념도 일지 않는 곳에서 그는 종종 바람을 빌려 말을 전하는 술법을 시도해보느라 며칠을 쓰기도 하고, 아이처럼 구름을 밟고 바람을 쫓아다니기도 했다.

삼매진화의 불을 끌어내려는 시도도 계속했지만, 이것이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었다.

계연은 운산관에서 잠을 자는 시간을 빼고 대부분의 시간을 산속에 앉아 있었다. 침상에서 자기 싫은 것이 아니라, 먹고 자는 걸 잊는다는 말이 있듯이 술법의 현묘함을 체득해가다 보면 종종 시간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훌쩍 흘러 어느새 1년 반이 지나갔다. 계연은 이에 탄식을 감추지 못하며 ‘산에서는 세월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다(山中無歲月)’는 말을 절감했다.

그동안 황흥업이 다시 한번 운산관을 방문하기도 했으나, 계연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진마에 당할 뻔했던 황흥업에게는 여전히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그가 겪은 신령이나 마귀에 관한 일은 토지신의 당부가 없어도 그 스스로 떠벌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초명재가 자신의 집 안에서 죽었기 때문에 황흥업은 장천부 관아에 적당한 답을 내놓아야 했고, 동시에 관아가 얽힌 다른 여러 일도 처리해야 했다.

비록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있었지만, 더는 목숨의 위협을 받지 않았으므로 황흥업은 완전히 평온함을 되찾은 상태였다.

모든 일이 끝나고 황흥업은 다시 한번 사람들을 이끌고 운산에 감사 인사를 올리러 갔다. 비록 자신과 하산한 사람이 청송 도인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쨌든 운산관에서 도움을 얻은 것이므로 예를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그는 새해와 명절마다 운산에 방문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 * *

어느덧 봄이 지나가 매미가 우는 하지(夏至)에 이르렀고, 금세 금빛 기운이 넘실거리는 가을이 되었다.

계연이 운산에서 수행한 지 2년째 되는 가을이었다. 그로부터 멀리 떨어진 계주 덕승부의 영안현에 있는 거안소각에서는 대추나무에 또 꽃이 피었으나 열매는 맺히지 않았다.

작년에 거안소각의 대추나무에 꽃이 무성하게 피었지만, 달린 열매는 아주 적었었다. 윤청은 일이 없을 때마다 나무에 올라 몇 번이고 세어 보았으나, 열린 대추는 백 개가 넘지 않았다.

대추는 크고 탐스럽게 빨간색이 돌아,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 특히 2년 전 따서 보관해 놓은 대추는 불길처럼 선명한 빨간색이었다. 가끔 윤청은 밤에 이 대추들에서 희미한 빛이 나는 듯한 환영을 보기도 했다.

어느 날, 윤청은 거안소각의 돌 탁자에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대추나무 아래에서 책을 보아 그런 건지 몰라도, 더욱 집중이 잘 되고 공기도 상쾌한 것 같았다. 특히 이런 계절에는 대추나무 아래에 항상 맑은 바람이 불어와서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유창하게 줄줄 욀 수 있는 <예학(禮學)>을 내려놓고, 윤청은 사람을 유혹하는 듯 나무에 달린 빨간 대추를 바라보았다.

“휴우…….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하나도 못 따게 하다니, 정말 쪼잔해. 아버지는 삼원급제를 하시더니 완주(婉州)에서 지부(知府)직을 맡으러 가셨고, 어머니도 아버지를 따라가셔서 집에는 나 혼자 남았잖아. 내가 가면 우리 집과 여기는 누가 와서 청소하겠어? 나 말고 또 누가 와서 대추나무를 돌봐 주겠냐고?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데, 너는 어떻게 나한테 대추 한 알도 안 줄 수 있어?”

윤청이 한바탕 불만을 늘어놓았지만, 대추나무는 미풍에 흔들거리며 보통 나무인 것처럼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에휴……. 이제 나는 곧 서원으로 가야 해. 앞으로는 매일 보러 올 수 없고 2주나 한 달에 한 번씩 올게, 휴우…….”

이렇게 탄식하며 윤청은 살짝 고개를 들었다. 대추나무는 여전히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리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너도 참 대단하다, 심장이 돌로 만들어졌나 보지! 아니지, 머리통이 나무로 만들어졌나 보네!”

불평을 마치고 다시 고개를 내린 윤청은, 반쯤 열린 후원의 문을 통해 뛰어 들어온 붉은색 덩어리를 발견했다.

“여우야!”

놀라고 기쁜 마음에 크게 소리친 윤청이 미처 말을 하기도 전에, 불길처럼 빨간 커다란 대추 하나가 여우의 머리로 떨어졌다.

통!

붉은 여우는 놀란 듯 잠시 튀어 올랐다가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들었다. 그때 커다란 대추 한 알이 또다시 여우의 눈앞으로 떨어졌다.

통!

“우우…….”

여우가 앞발로 코를 문질러 댔고, 아직 한숨을 돌리기도 전에 머리 위에서 또다시 ‘통통통’ 하는 소리가 났다.

윤청은 어안이 벙벙한 채로 이 모습을 지켜보았다. 곧이어 윤청이 떨리는 손가락을 뻗어 대추나무를 향해 가리키며 말했다.

“너……!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 쟤만 편애하는 거야?”

요즘 대추나무는 열매를 숨기는 법을 터득해서, 대추들은 모두 무성한 나뭇잎 아래에 숨겨져 있었다. 아무리 자세히 살펴도 극히 일부분밖에 볼 수 없었다. 게다가 윤청이 매번 나무에 올라 세어본 바로는 열린 대추의 수가 많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한 번에 다섯 알이 떨어지다니. 이는 열린 대추의 수를 생각하면 적지 않은 양이었다. 게다가 그중 대추 두 알의 표면에는 은은한 붉은색이 감돌고 있었는데, 이 대추들은 대추나무에서 가장 처음 열렸던 화조(*火棗: 전설 속의 선과(仙果)로 특별한 효능이 있다고 함)였기 때문이었다.

화를 내던 윤청의 기분은 곧 다시 좋아졌다. 윤청은 저쪽에서 앞발로 코를 문지르다가 다시 머리를 문지르는 붉은 여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여우야, 그동안 왜 나 보러 안 왔어? 난 네가 보고 싶었는데!”

윤청은 이렇게 말을 하는 동시에 땅에 떨어져 있는 대추를 줍기 시작했다. 만약 이 근처를 지나는 쥐나 고양이들이 대추를 물고 가버린다면 너무 아까울 것 같았다.

붉은 여우는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머리 위의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한쪽에 몸을 웅크린 채 비켜서서 윤청을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곧이어 여우는 그가 예전에 만났던 그 남자아이라는 것을 알아보고서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이리 와. 여우야, 이쪽으로 와. 너 예전에 이 탁자 위에 누워있는 걸 좋아했잖아!”

윤청은 붉은 여우를 향해 손짓하며 대추 다섯 알을 탁자 위에 놓았다. 여우는 잠시 망설이다가 돌 탁자 근처로 다가가 폴짝 뛰어올랐다.

탁자 위의 대추들은 크기가 모두 비슷했다. 대추들은 작은 사과 정도의 크기였고, 빨갛게 윤기가 나는 것이 아주 먹음직스러웠다. 윤청은 대추를 바라보며 몇 차례나 꿀꺽 침을 삼켰다.

작은 여우도 대추에 코를 들이밀고 자세히 냄새를 맡았다. 그중 두 개는 나머지보다 좀 더 특별했는데, 다른 대추와 비슷한 냄새가 났지만, 보고 있자니 입에 밀어 넣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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