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55화 (155/892)

155화. 말하는 여우와 어린이가 된 원생

“호…… 호운…….”

맑은 목소리가 붉은 여우의 입에서 나왔다. 윤청은 한순간 너무 놀라 손가락으로 여우를 가리키기만 할 뿐, 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놀라워하는 윤청의 얼굴에는 약간의 두려움도 담겨 있었다.

여우는 자신의 이름을 뱉고서, 자신도 모르게 앞발 두 개를 들어 입을 막았다. 약간의 놀라움과 그보다 더 큰 흥분을 담은 두 눈이 윤청의 시선과 마주쳤다.

“너 말할 줄 알아?”

윤청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뒤, 믿기지 않는 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붉은 여우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말을 따라 했다.

“너 말, 할 줄 알아……?”

“나는 원래 말할 줄 알아, 내가 묻는 건 너야!”

“나, 원래 말할 줄 알아, 내가 묻는 건 너야…….”

더는 붉은 여우의 눈에 차오르는 기쁨이 가려지지 않았다. 앵무새가 말을 배우는 것처럼 그는 윤청의 어조를 따라 하며 말했다. 비록 발음이 그다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는 맑고 영롱했다.

윤청도 무언가 깨달은 듯 기뻐하며 저 자신을 가리켰다.

“너 지금 내가 하는 말 배우는 거야?”

“말, 배우는 거야!”

붉은 여우는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앞발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호운……!”

윤청은 한순간 멍해졌다가,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고는 얼굴에 화색이 번졌다.

“그래, 맞아! 네 이름은 호운이야. 계 선생님께서 네게 지어주신 이름이지. 너는 호운이야!”

“호운. 호운. 너는 호운이야!”

붉은 여우도 기뻐하며 앞발을 서로 두드렸다.

“아니, 아니야. 나는 윤청이야. 네가 호운이고! 됐다, 됐어. 내가 말하는 법 가르쳐 줄게!”

“말, 하는 법 가르쳐! 말하는 법 가르쳐 줄게!”

붉은 여우는 이미 사람의 말을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는데, 최소한 너, 나, 다른 사람을 구별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듣는 것과 실제로 말을 내뱉는 것은 달라서 자신도 모르게 계속 윤청의 말을 반복하게 되었다. 윤청이 그를 가르쳐주겠다 했으니, 자신도 곧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안소각의 사람 하나와 여우 한 마리는 모두 기뻐했다. 그들은 마치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것처럼, 너 한 마디 나 한 마디 주고받기 시작했다.

후원의 대추나무는 가을철의 따가운 햇빛을 막아내며 바람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그 광경은 종전보다 더욱 평화로워 보였다.

* * *

덕승부 위씨 집안 저택에서는 하얗고 포동포동한 아이가 빨간 두두(*肚兜: 가슴과 배만 가린 마름모 모양의 중국 전통 속옷)를 입고 다리를 드러낸 채 뒤뚱뒤뚱 복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

아이는 면으로 만들어진 큰 머리의 호랑이 인형을 끌어안고서, 짧은 다리를 힘껏 뻗으며 질주했다.

“도련님……! 도련님, 어디 계세요? 제발 저 좀 놀라게 하지 마세요!”

여종의 당황한 목소리가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여종은 내원의 복도를 지나쳤다가 다시 뛰어 되돌아왔다. 마침 두두를 입은 통통한 아이가 앞쪽에서 달려가고 있었다. 이를 본 여종은 조금 안심하고서 급히 뒤쫓았다.

“도련님, 뛰지 마세요! 넘어진단 말이에요!”

두두를 입은 이 아이는 바로 위무외가 애지중지하는 위원생이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위씨 집안 어른들 모두가 애지중지한다고 봐야 했다. 그를 쫓아가고 있는 여자는 위원생을 곁에서 보살피며 같이 놀아주는 일을 맡은 17살의 여종이었다.

“책 읽는 거 재미없어, 하나도 재미없어! 난 엄마 찾으러 갈 거야, 아빠도 찾으러 갈 거야!”

어린 여종은 재빨리 아이를 따라잡고서 덥석 안아 들었다.

“도련님, 소란 피우시면 안 돼요. 오늘은 스승님께서 수업하러 오시는 첫날인데, 나쁜 인상을 남기면 안 되잖아요!”

여종의 걱정 어린 충고를 무시하고 아이는 그녀의 품에서 팔과 다리를 뻗대며 몸부림쳤다. 그러는 사이에 여종은 아이에게 얼굴을 몇 대 얻어맞았다.

“소취(小翠), 날 놓아줘! 아빠한테 따지러 가야겠어. 세 살짜리 아이한테 공부를 시키는 법이 어디 있어? 안 가, 안 가! 스승님 수염도 못 잡아당기게 하고!”

복도 뒤쪽에서 나이 든 스승이 책을 한 권 든 모습으로 헐떡대며 뛰어왔다.

“후우…… 후……. 소취 낭자, 찾았습니까?”

“찾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위씨 가문에는 안팎으로 몸을 숨기고 호위를 서는 이들이 많아서, 도련님께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못해요. 어엇……! 도련님, 잡아당기지 마세요.”

나이 든 스승은 서둘러 눈을 가리며 고개를 돌리고서 외쳤다.

“예가 아닌 것은 보지 않겠소이다(*非禮勿視: <논어>에 나오는 구절)!”

몇 분 뒤, 어느새 서재의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는 소취가 깔아 놓은 두꺼운 방석 위에 위원생이 앉아있었다.

“이번에는 제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두 분만 수업하게 남겨 두면 안 되겠어요.”

늙은 스승은 방금 그 난리를 겪고서 속으로 몹시 놀랐기 때문에, 당연히 소취의 말에 반대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 그렇게 합시다.”

3살이라고 했지만 사실 만으로 두 살도 되지 않은 위원생은 조금 전 높은 의자에서 스스로 뛰어내렸고, 이는 지켜보던 스승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고 나서도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도망치기까지 했다.

“댁의 공자께서는 이 늙은이가 평생 본 것 중에 가장 총명한 아이요. 열심히 공부만 한다면 우리 덕승부에서 두 번째 윤 공(公)이 나올지도 모르겠군.”

윤재성은 현재 덕승부의 모든 서생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 늙은 스승처럼 6, 70세에 가까운 학자들조차 사적인 자리에서도 그를 ‘윤 공’이라고 정중하게 불렀다. 삼원급제란 이렇게나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것이다.

스승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온몸으로 하기 싫다는 태도를 내보이는 눈앞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전체적으로 통통했는데, 하얗고 통통한 아이의 입술은 발그스레하고 치아는 깨끗했다. 위원생은 더위를 싫어해서 두두만 하나 입고 있었는데, 그게 아이를 더욱 귀엽게 보이게 했다.

덕승부 사람 대부분은 모두 위씨 집안의 작은 도련님이 토끼해의 11월생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태어나고서 한 살을 먹고, 2년이 지났으니 지금 세 살이 된 것이다. 하지만 실제 나이는 한 살 반을 넘긴 정도였다.

다른 집안의 아이였으면 이 나이에 가장 걱정하는 것이 용변을 가리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위씨 집안에서는 벌써 자신을 불러 아이에게 글을 가르치게 했다.

원래는 보수가 좋아서 온 것이지만, 이 작은 도련님을 본 순간 늙은 스승은 놀라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이 아이가 정말 3살이라고?’

비록 말하는 목소리는 아직도 아기 같았지만, 그 총명함은 또래와 비할 데가 아니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영성(*靈性: 천부적인 지혜나 능력)을 가진 듯했다.

“소취, 너 저리 가. 너 안 가면 나 공부 안 할 거야!”

위원생은 아직도 분이 안 풀렸기 때문에, 여종을 곁에 있지 못하게 했다.

소취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스승을 바라보더니, 망설이며 말했다.

“그럼 저는 도련님께서 또 뛰지 못하게 문밖에 서 있을게요. 가주께서 분명 제게 오늘 있었던 일을 물으실 텐데, 만약 또 도망가신다면 도련님을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예요!”

“너어! 너!”

위원생은 살이 통통히 오른 작은 손가락으로 소취를 가리켰다. 그녀에게 나쁜 말을 하고 싶었지만 쓸 만한 말이 알지 못했다.

“너 나빠!”

“그럼, 수고하세요!”

소취는 스승을 향해 예를 취했고, 스승도 공수하며 인사했다.

“최선을 다하지요!”

여종이 나가자, 늙은 스승은 자상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아이를 보았다.

“도련님께서는 올해가 무슨 해인지 아십니까?”

“당연히 뱀의 해지!”

“음, 그럼 도련님께서 올해 세 살이시니 무슨 띠이겠습니까?”

“토끼띠!”

“좋습니다, 그럼 만약…….”

“잠깐, 잠깐!”

위원생은 작은 손을 휘휘 저었다.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르고, 온통 묻기만 하고 아는 것도 없는데 어찌 나를 가르치려 하지?”

늙은 스승은 말문이 막혔다.

“도련님께서는 제가 본 가르친 이들 중에 제일 총명하십니다. 몇 년간 우리 덕승부에는 문곡성(*文曲星: 학문과 재물을 관장하는 별)이 두루 비추는군요.”

“나는 만월 때 젖과 섞은 선과(仙果) 즙을 마셨으니 당연히 대단할 수밖에.”

이를 들은 늙은 스승은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웃었다.

“하하, 도련님께서 농을 하시는군요.”

“이것 봐, 아이의 말이라도 귀담아들으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세 살 아이라서 안 믿잖아.”

그러나 아버지는 무서웠으므로, 아이는 무료하고 건조한 시간을 참아내며 공부했다.

늙은 스승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책상에서 <군조론-학동의 대답>을 집어 들었다. 윤재성이 집필한 책은 이미 덕승부에 널리 퍼졌는데 그중 1권은 재미도 있고 통속성이 짙었다. 게다가 새로 편집해 출간한 내용은 전보다 더욱 입에 딱 붙게 만들어져, 아이들의 계몽에 적합했다.

방금 어린 공자의 이해력을 시험해 보았으니, 스승은 자신이 이것을 읽어주면 아이가 반드시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다.

* * *

그날 밤, 위무외는 집에 돌아온 후에 이(李)씨 성을 가진 스승에게 수업이 어땠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스승이 아이가 총명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게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그 후, 위무외는 위원생에게 따로 오늘 일에 관해 묻기로 했다.

침실에 놓인 유등(油燈) 앞에서, 위원생은 침상에 걸터앉은 제 어미의 품 안에 앉아있었다. 위무외는 그 옆의 태사의(*太師椅: 등받이와 팔걸이가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있었다. 위무외는 처음으로 제 아들에게 내막을 털어놓기로 했다.

“원생아, 오늘 아주 잘했더구나. 내가 왜 이리 일찍부터 너를 교육하는지 아느냐?”

위원생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호랑이 인형을 안고서 대답했다.

“내가 총명하니까요!”

“이놈아, 네가 총명한 건 나도 이미 안다. 네가 다섯 살이 되기 전에 내가 너를 데리고 갈 곳이 있단다. 그 전에 네가 글을 알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게 가장 좋기 때문이다.”

“다섯 살이요?”

위원생은 손가락을 접으며 계산했다. 그럼 내년 연말이잖아?

“나리, 원생이는 아직 어려요…….”

위무외의 부인이 아쉬워하며 말하자,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위무외가 대답했다.

“부인의 마음은 나도 알고 있소. 하지만 이 일에 원생이의 미래와 우리 위씨 집안의 미래가 달려 있소. 천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라오.”

여기까지 말하고서, 위무외는 몸을 일으켜 침상으로 다가갔다. 둔중한 몸으로 바닥에 꿇어앉고서 그는 아들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 아비가 오늘 밤 네게 우리 집안의 비밀을 알려 주마. 비록 네 나이가 아직 어리나, 아버지는 네가 분수를 지킬 줄 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일은 아무 데서도 발설하면 안 되는 일이야. 최소한 1, 2년은 절대 안 된다. 이 일이 새어 나가면 우리 위씨 집안의 화복(禍福)은 점치기 어렵다. 알겠느냐?”

위원생은 약간 두려웠으나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고서 대답했다.

“알겠어요.”

위무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눈을 가늘게 뜨며 기억을 회상했다.

“우리 위씨 집안에는 보옥(寶玉)이 하나 있다. 그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너무 오래되어 이제 가족 중에는 믿는 사람이 없단다. 그런데 그 옥에 얽힌 변고가 있었지. 이 일은 영안현에서부터 이야기해야 하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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