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화. 하산한 계연
위원생은 총명한 데다 마침 모든 것에 호기심이 넘칠 나이였다. 또한, 모든 아름답고 좋은 것에 동경심을 품을 때였다.
그러나 위원생은 이전까지는 맛있거나 재미있는 것만 동경해왔었다. 즉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사물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만월 때의 이야기도 사실 위원생은 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억지로 상서로운 조짐 같은 걸 끼워 넣는 이야기는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떤 대갓집에서는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 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나던 날 오색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고 사방에 말하고 다녔다. 그러나 원생은 그날이 아주 흐렸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친인 위무외가 그에게 알려준 것은 누구도 모르는 비밀인 데다가 신비롭기 그지없는 이야기였다.
“당시 나는 가주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문중 사람들의 신임을 얻느라 바쁘던 시기였지. 이 아비는 영안현 근처를 지나던 때에, 협객들이 희귀한 백호 가죽을 사냥했다는 걸 듣게 되었단다. 그래서 영안현에서 백호 가죽을 사서 다시 돌아가는 길에 매복하고 있던 자들에게 습격을 받았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단다.”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한편 기억을 되새기던 위무외는, 돌연 아들을 보고 엄숙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원생아, 우리 위씨 집안에는 갚아야 할 은혜를 입은 두 귀인이 있다. 첫 번째 분은 네 아비의 목숨을 구한 신비한 무공 고수란다. 그분이 없었다면 지금의 이 모든 것도 없었을 것이다. 그분은 얼굴에 큰 모반이 있고, 신묘한 철형공(鐵刑功)을 구사하는 분이시다. 낮고 갈라진 목소리를 지니고 계시는데, 오랜 세월 철형공을 수련하시다가 그렇게 된 게 분명하다. 그 정도 경지에 다다른 철형공을 익히신 분이니, 분명 공정하고 엄격한 분이실것이다. 일할 때는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불 듯 신속하고, 결단을 내려야 할 때는 과감하고 인정사정없으신 분이다. 동시에 재물이나 세속적인 것에는 일절 관심이 없으시지. 아직도 그분이 누구인지 찾지 못하고 있단다. 만약 언젠가 그분을 만날 기회가 있다면, 이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
이렇게 말한 위무외는 근엄한 목소리로 아들에게 물었다.
“기억했느냐?”
위원생도 잔뜩 긴장한 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했어요! 아버지, 다른 한 분은 그럼 누구예요?”
위무외는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고 다 큰 성인과 대화하듯이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음, 두 번째 귀인은 사실 범인(凡人)이 아니고, 우리 위씨 집안이 나아갈 방향을 일러준 선인(仙人)이시다. 그 선장(仙長) 덕분에 우리 위씨 집안이 한 걸음 더 나아갈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단다.”
위무외는 품 안에서 옥패 하나를 꺼냈다. 그의 아들과 부인은 단번에 옥패에 시선을 뺏겼다.
“이 옥패는 너도 이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옥패의 진정한 모습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단다. 그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뒤 내게 벌어진 예사롭지 않은 일에 마음이 어지럽던 중, 영안현에 떠도는 기이한 소문을 듣게 되었지. 그래서 현의 관리에게 부탁하여 그 기인을 한 번 뵙고자 청했단다. 그때가 네 아비가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계 선생님을 만났던 날이다…….”
그 뒤로 위무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선생님이 현에 있는 흉가에 머무른 이후로 그곳의 음산한 기운이 사라졌고, 붉은 여우가 선생을 뵙고 절을 올린 후 목숨을 구했단다…. 선생님은 옥패에 새겨진 옥회(玉懷)라는 글자를 드러나게 했는데, 이에 그분에 대한 우리 위씨 집안의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으며…… 그분 댁의 대추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열매를 맺어 선생을 배웅했다…….”
그가 늘어놓는 이야기들은 과장이 많이 섞이지 않은 것들이었다. 마을 사람들과 직접 사건을 보고 겪은 이들이 한담을 나누며 퍼져 나간 이야기이기도 했거니와 평온한 생활 속에서 언뜻 드러나게 된 비범하며 신기한 일들이었기 때문이다.
위무외는 이야기를 마치고 드물게도 후회하는 표정을 보였다.
“……당시 내가 계 선생님을 만났을 때도 그분이 신묘한 분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진정으로 그것을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그것을 깨달은 때는 춘혜부 밖 춘목강 기슭에서 그 범상치 않은 늙은 거북이 별것도 아닌 여우 한 마리를 부러워했을 때였다. 그의 말에서는 안타까움과 심지어 질투까지도 느껴졌었지, 휴…….”
춘목강 기슭에서 위씨 집안 사람들은 잔뜩 긴장하여 초조하게 다음에 나올 이야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늙은 거북을 만났을 때의 그 두렵고도 흥분된 감정이란…….
위무외는 찬찬히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이 이야기를 처음 듣는 원생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모친마저도 그날의 위험했던 진상을 알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품속의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아무리 신묘한 거북이라 해도 어쨌든 물요괴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위무외는 그 당시 거북이 감정을 제대로 절제하지 못했기에, 만약 자신들이 대응을 좀 더 감정적으로 했다면 목숨이 위험했을 수도 있었다고도 말했다.
“우리 집안이 그 늙은 거북에게 은혜를 입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 거북이든 우리든 각자 필요한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이는 게 아니겠느냐? 하지만 그래도 우리 집안에서는 매년 춘목강에 술을 바치고 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위무외는 거북의 이야기를 마치고, 옥패에 대한 비밀을 이야기했다. 옥회산에 인연이 닿아 선도를 걸을 기회는 이 20년뿐으로, 위원생이 위씨 집안의 희망이라는 것이었다.
위무외가 옥패에 관한 비밀스러운 얘기를 대강 마치자, 위원생의 얼굴에는 걱정과 두려움보다는 흥분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아버지, 그럼 저는 때가 되면 그 옥회산이라는 곳에 가서 수행해야 하나요?”
“그래, 아비가 너와 함께 갈 것이다. 만약 나도 그곳에 함께 머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면 너는 혼자서라도 가야 한다.”
위무외는 제 아들을 믿고 있었다. 원생과 같은 아이는 분명 옥회산에 들어가고도 남을 것이다. 그는 심지어 원생에게 집안에 전해져 내려오는 옥패조차 만지게 하지 않았다. 그가 옥패를 만지면 즉시 옥회산의 선인이 나타나 이대로 아들을 데려갈까 봐 걱정스러웠던 탓이었다. 아무래도 집안 어른들의 보호 아래 2년 정도는 공부하고 가는 게 원생에게 나을 것 같았다.
“맞다, 아버지가 전에 이야기해 주셨던 만월 때의 그 선과(仙果)는 어떻게 얻으신 거예요?”
위무외는 자기도 모르게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그건 당연히 계 선생님 댁 후원의 대추나무에서 가져왔지. 그 나무는 보통 나무가 아니어서, 몇 년간 아주 적은 수의 열매만 맺혔단다. 색이 불꽃처럼 빨개서 ‘화조’라고 불리는데, 신묘한 기운을 가지고 있지. 네가 먹은 그 한 알은 내가 수를 써서 그 외팔의 두 대협에게서 얻어온 거란다.”
“이왕 영안현에 있다는 걸 아는데 왜 더 가져오지 않아요?”
위무외는 제 아들을 바라보며 웃었다.
“원생아, 세상의 아주 많은 것들은 돈이나 무력으로도 얻을 수 없단다. 그 대추나무는 한 소년이 지키고 서 있는데, 그 소년의 신분도 참 대단하지. 대정국이 개국한 이래 두 번째로 삼원급제를 한 사람의 아들이거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소년이 어렸을 때부터 계 선생님 곁에서 뛰어놀며 자란 아이라는 거야. 그러니 절대 일반적인 아이가 아니지.
그래서 그 소년에게 밉보일 수 있는 자는 없지만, 그래 봤자 서생에 불과하지. 하지만 그 대추나무는 보통 나무가 아니란다. 누군가 대추를 훔쳐가려고 하면 반드시 쓴맛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무는 계 선생님의 것이니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대추를 얻게 되면 분명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아……!”
이날 밤, 부자는 아주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야 할 이야기가 아주 많았기 때문이었다. 위무외가 할 말을 모두 끝내자, 위원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어미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 * *
이튿날, 위원생의 스승이 수업을 위해 방문했다. 사제는 후원의 서재에서 다시 만났다.
스승인 이 씨를 놀라게 한 것은, 이 작은 공자가 어제의 태도를 모두 고치고 힘써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록 아직도 때때로 다른 생각에 빠지긴 했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에게는 보기 드문 태도였다.
하얗고 포동포동한 아이가 붓조차 제대로 쥐지 못하는 작은 손으로 열심히 글을 써 내려갔다. 얼굴에 솟은 땀방울과 손가락에 묻은 먹물이, 보는 스승의 마음을 안타깝게 함과 동시에 기쁘게 했다.
* * *
또다시 해가 바뀌었다. 때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병주 장천부 동락현에 위치한 운산에는 또다시 운무가 덮여 있었다. 그러나 이제 태양이 떠올랐으니, 산에 낀 안개도 곧 흩어질 것이다.
계연은 운산관의 침상에서 잠이 들었다가, 방 안의 탁자 위에 쪽지를 한 장 남기고 산에서 내려갔다.
계연이 황씨 집안의 일을 해결한 후로, 처음으로 운산을 떠나는 것이었다.
무전진의 토지신당은 규모가 크지는 않았지만, 문을 연 후부터 향불이 끊이지 않았다. 아마도 황씨 집안의 든든한 지지가 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토지신당은 앞문과 뒷문이 있는 마당이 딸린 구조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신전(神殿)이 있고 건물 앞에는 향로가 있었다. 신당 내부는 3장(*약 10m) 깊이로 흙으로 빚은 신상과 공물을 놓는 탁자, 방석 등이 놓여있었다.
토지신당 근처에 사는 덕망이 높은 한 노인이 이 사당을 관리하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품삯으로 그에게 적당한 급료를 지급했다.
오늘은 제사를 지내러 오는 사람도 없고 무슨 특별한 날도 아닌 데다가, 아직 시간도 일렀기 때문에 사당 안이 서늘하니 고요했다.
노인은 일찍 일어나 으레 그러듯이 사당 안에서 대나무 의자를 옮겨와 햇빛을 쐴 준비를 했다. 이 일은 농사일이나 다른 곳에서 길게 고용되어 일하기보다 훨씬 쉬웠다.
그가 막 의자를 갖다 놓았을 때, 그는 신당 안에 사람이 하나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얀 옷을 입고 날씬한 체격을 가진 남자는 마치 학자처럼 보였지만, 머리 모양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신전 앞에 서서 토지신의 신상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향을 올리거나 절을 하지도 않았다.
“저…… 선생께서는 토지신께 향을 올리려고 오셨습니까, 아니면 제사를 올리고 점괘를 치러 오셨습니까?”
계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공수했다. 그리고는 실례했다는 한마디만을 남긴 후 몸을 돌려 떠나갔다.
“이상한 사람이네.”
신당의 관리인은 굽은 몸으로 입구까지 나가 보았다. 그러나 그 사람이 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신당 안에서 종이학 한 마리가 빙빙 돌아 신상의 머리 위에 앉은 것을 보지 못했다. 종이학이 가볍게 두어 번 쪼아 대자, 물결 같은 파문이 종이학과 신상이 맞닿은 위치에 생겨났다.
그러자 잠시 후, 토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신당 안의 상황을 살피던 그는 관리인이 입구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이 밖을 내다보는 것을 보았다.
토지신은 고개를 들어 종이학을 발견하고는, 의아하게 여기며 사당 안의 지부(地府)로 돌아왔다.
종이학이 토지신의 손에 닿자마자 신묘한 음성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만약 작은 무전진의 토지신에 머물고 싶지 않다면, 금(金) 신상을 탐내지 말고 향불의 힘을 받아 수행에 정진하라!”
이를 들은 토지신은 몸을 부르르 떨면서, 하마터면 종이학을 잔뜩 구길 뻔했다.
“상선!”
계연은 비록 토지신의 반응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대강 그의 반응이 지금 어떨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 사이 계연은 황흥업이 어찌 지내는지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