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위(魏)씨 가문의 귀빈 (2)
“참, 이 안의 응접실로 드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곳이 더 넓고 따뜻하거든요. 그리고 이미 가주를 모셔 오라고 말해 두었습니다. 선생께서 온 것을 알면 가주도 서둘러 돌아올 겁니다!”
“아, 괜찮아요. 여기도 참 좋네요. 위행 어르신께서는 그리 예를 차리지 마세요. 이곳은 위씨 가문이고 저는 손님인 데다, 이왕 왔으니 가주님을 뵙지 않고는 떠나지 않을 거예요.”
“아, 하하……. 그렇군요, 잘 되었습니다. 참, 이것은 선생께 다시 돌려드리겠습니다!”
위행은 몇 걸음 다가가 몸을 굽힌 뒤, 두 손으로 옥패를 공손하게 바쳤고 계연은 이를 돌려받았다.
곁에서 계연을 위해 차를 우리던 하인 두 명이 이 장면을 보고 놀라 얼어붙었다.
“위행 어르신, 부디 서 계시지 말고 앉으세요.”
“아, 네네! 선생께서도 앉으십시오!”
위행은 그제야 계연의 탁자 옆에 앉았고, 고개를 돌려 하인에게 명했다.
“너는 가서 과일과 간식거리 등을 준비해 오너라. 너는 주방에 가서 연회를 준비하라고 이르고, 급한 일이 아니라면 이 응접실로 아무도 들이지 말아라!”
“네!”
두 하인은 공손하게 대답한 후, 서둘러 응접실을 나갔다.
위행은 정신을 바짝 차린 뒤, 조심스럽게 계연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행히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그는 계 선생이 정말로 온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긴장감도 서서히 사라졌다. 계 선생은 가주가 아들을 얻은 소식에 흥미를 보였는데 위행이 위원생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 * *
계주에서 제일 부족하지 않은 것이 바로 산이었다. 덕승부 부성에서 30리(*약 12km)떨어진 곳에는 그리 크다고는 할 수 없는 낙하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계주의 무림은 물론 대정의 강호에서도 이름을 날리는 곳이었다. 바로 이 산에 낙하산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아하며 민첩하기로 소문난 낙하산장의 무공은 주로 장법(掌法), 지법(指法), 검법(劍法) 세 종류였다. 그러나 낙하산장의 명성이 커지게 된 계기는 십수 년 전에 그 장주인 낙릉(洛凌)이, 이름을 날렸던 고수 조무생(趙無生)을 꺾은 데서 비롯되었다. 낙하산장에 절대 고수가 한 명 등장했다는 것이 강호에 널리 퍼지며 낙하산장의 명성은 하늘로 치솟았다.
게다가 최근 몇 년간 셋째 장주인 낙풍의 ‘초면낭군(*俏面郎君: 수려한 얼굴의 낭군)’이라는 칭호가 강호에서 점점 더 유명해지고 있었다.
육승풍의 별명인 ‘운각 소군자(雲閣小君子)’와 같은 칭호는 대부분 띄워주려는 목적으로 붙인 것이고, 초면낭군의 또 다른 별명인 ‘냉면낭군(*冷面郎君: 차가운 표정의 낭군)’같은 경우는 위무외의 별명인 ‘소면호(*笑面虎: 웃는 얼굴의 호랑이)’처럼 듣기에도 좋을뿐더러 경외심마저 담겨 있었다.
이 시각 ‘소면호’와 ‘초면낭군’은 함께 앉아있었다. 위씨 집안의 가주가 친히 방문했으니, 산장의 장주인 낙릉도 자연히 주인으로서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 이들은 낙하산장의 한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이들은 조금 전 이미 오찬을 함께하고, 낙풍이 위무외를 접대하며 낙하산의 풍경을 한차례 구경시켜 준 후였다. 이들은 응접실에 들어와서야 본래 자신들이 만난 목적에 대해 입을 열었다.
“우리 위씨 가문에서 낙하산장의 화물 일체를 대신 운송해 드리겠습니다. 게다가 낙하산장이 소유한 양조장이나 포목점에서 생산한 화물을 다른 부나 주로 운송할 때, 저희가 들이는 본전만 빼고 남은 이익에서 아주 적은 이윤만 가져가겠습니다. 이 정도면 저희 집안에서도 성의를 보인 셈이지요.”
위무외는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곁에 선 하인의 손에서 금테를 두른 장부를 받아 직접 낙릉에게 전달했다.
“자세한 사항은 장부에 모두 적어 놓았고, 오기 전에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장주께서도 직접 보십시오.”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산장의 앞으로의 금전적 이익과 관련된 큰일은 신중히 처리해야 했다. 낙릉은 장부를 받아 들고 옆에 앉은 낙풍과 함께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위씨 집안에는 뛰어난 장방 선생(*帳房先生: 집안이나 점포에서 회계를 맡아 보던 사람)들이 많았고, 장부에 적힌 조항들은 세세하고 명료했다. 게다가 각지(各地)에 따른 운송 비용과 예상되는 이익도 계산해 놓았다.
낙릉은 잠시 살펴보다가 그에게는 이 조항들이 너무 세세하고 많았기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위 가주께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이 장부를 산장의 관사(官事)에게 잠시 살펴보게 해도 되겠습니까?”
“당연하지요. 사업상의 일은 명확히 계산해 두는 것이 좋으니까요!”
위무외는 이에 대해 이견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낙하산장에서 더욱 자세히 살펴보길 원했다. 그래야 위씨 집안이 이 거래에 엄청난 성의를 보인다는 것을 상대방도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낙하산장이 소유한 곳들의 생산량은 사실 위씨 집안에는 별것 아니었다. 이보다 더 좋은 거래처를 찾을 수도 있겠지만, 위무외가 눈여겨본 것은 낙하산장 그 자체였다.
최근 들어 위씨 집안에서는 이런 비슷한 거래를 많이 하고 있었다. 만약 위무외도 아들을 따라 옥회산에 들어가게 된다면, 거래를 트고 결정을 내리는 가주의 자리가 비게 될 테니 이런 호의를 많이 베풀어 놓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계산속이었다.
낙하산장의 장주가 장부를 관사에게 가져다주라고 명하자, 기다리는 동안 응접실에는 온갖 사소한 한담이 이어졌다. 화제는 대부분 강호에서 일어난 일이나 소문들이었다.
마침 요즘 가장 화제가 되는 무림의 신예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자, 낙풍은 흥미가 일어 위무외에게 물었다.
“마침 무림의 한 신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가 알고 있습니다. 위 가주께서는 혹시 외팔의 두형이라는 자를 아십니까?”
위무외는 당연히 알고 있고 두형에게 꽤 주의를 기울이고도 있었지만,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두형? 기억은 나는 것 같습니다. 천월부 두씨 집안의 외팔을 가진 그 한량 말입니까?”
“하하, 그건 전부 예전 일입니다!”
낙풍의 옆에 앉은 낙릉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에 낙풍이 감회가 남다른 듯이 두형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큰형님의 말이 맞습니다. 예전에는 저도 두형 그자가 이번 생은 그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그자가 타고난 의지가 그렇게 강할 줄은 정말 몰랐지요. 팔을 하나 잃고도 무도(武道)에 정진하여 결국 장애를 극복해 내다니……. 지난번에 두씨 집안의 친우를 만났는데, 그가 두형에 대해 말하기를 광도(狂刀)라고 일컬어지는 두씨 가문의 젊은 세대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라고 하더군요. 왼손 도법(刀法)으로는 누구도 상대가 안 된다고요.”
위무외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두씨 가문에서 광도의 정수(精髓)라고 일컬어지는 두걸천(杜杰天)이라는 자가 있다던데, 그조차 두형을 뛰어넘지 못한 답니까?”
낙풍은 웃으며 말했다.
“작년에 두형에게 도전했다가 크게 좌절을 맛본 후로, 지금까지 두형을 꺾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대답한 후, 낙풍은 기억을 되살려 계속해서 말했다.
“제 친우의 말에 따르면, 두형에게는 그 젊은 세대는 물론 집안의 연장자들에게도 없는 어떤 특별한 기세가 느껴진다더군요. 칼을 쥐고 천하를 내려다보는 듯하여, 이기지 못하더라도 기세에서는 절대 뒤지지 않는다 합니다. 일찍이 재작년에 홀로 칼 하나를 쥐고 관아를 도와 비적 무리를 소탕했다지요. 그 후 몸에 수많은 치명상을 입었고, 상처가 나은 뒤 집으로 되돌아가 그 두걸천을 꺾은 것이라 합니다.”
“아……. 장래에 분명 걸출한 협객이 되겠군요!”
위무외는 감탄하며 한마디 했다.
* * *
이 시각 낙하산장의 회랑에서는 부른 배를 한 낙응상이 낙씨 집안에서 데릴사위로 들인 자신의 남편과 함께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때 마침 산장의 한 하인이 초조해 보이는 노인 한 명을 이끌고 응접실 방향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했다.
“저 사람 위씨 집안의 집사 같은데……. 이상하네, 저자가 저렇게 초조해하는 건 처음 보는데…….”
“위씨 가문에 무슨 일이 생겼나 보군.”
잠시 후 위씨 가문의 나이 든 집사가 낙하산장의 한 응접실에 들어서자, 위무외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집사는 다른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직접 낙씨 가문의 높은 사람들에게 공수하여 사죄했다. 그 후 그는 위무외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가주, 계 선생님께서 오셨습니다. 셋째 어르신께서 제게 어서 가서 가주를 모셔 오라 하셨습니다!”
이를 들은 위무외는 온몸이 굳은 듯 놀란 얼굴로 집사를 바라보았다. 집사는 천천히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더 앉아있을 수가 없어진 위무외는 즉시 몸을 일으켜 낙릉과 낙풍에게 다시 한번 공수하며 말했다.
“장주, 셋째 장주,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저택에서 급한 일이 생겨 지금 곧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미처 끝맺지 못한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지요. 장부는 산장에 놓고 갈 테니, 천천히 고려해 주십시오.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겨, 저는 이만 먼저 물러가 보겠습니다!”
“음, 위 가주께서 편한 대로 하십시오. 우리 낙하산장에서 혹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거나 어떤 소인배가 찾아와 귀찮게 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장주인 낙릉은 그 자신도 무공의 고수였기에 그가 뱉는 모든 말에는 큰 힘이 있었다. 게다가 먼저 입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도 자신의 성의를 보인 것이었다.
“장주님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나쁜 일은 아닙니다만 자세히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무외는 예의 바르게 몇 마디를 더하고, 빠른 걸음으로 집사를 따라 나갔다.
산장의 마구간에 도착한 후, 그는 자신이 타고 온 화려한 마차에 타지 않고 좋은 말 하나를 골라서 집사와 함께 말을 달려 떠났다.
잠시 후, 낙하산장의 하인이 낙릉과 낙풍에게 이 일을 고했다.
낙릉의 얼굴에 의혹 어린 기색이 더욱 짙어졌다.
“이상하구나, 위 가주가 말을 타고 돌아갈 정도라니?”
낙풍도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겼다.
“계 선생? 이름이 왜 이렇게 낯익지?”
“음? 무언가 아는 게 있느냐?”
낙릉은 이를 듣고 즉시 물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계(季)’인지 ‘계(計)’인지도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흔한 성은 아닌데, 만약 후자라면…….”
낙풍은 돌연 기억을 하나 떠올렸다.
“생각이 났습니다! 예전에 응상을 데리러 영안현에 갔을 때, 그들이 몇 번이고 ‘계 선생’을 거론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자는 산에서 구해서 내려온 거지라고 들었으니, 위 가주가 만나는 이는 분명 같은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음…….”
두 사람은 무엇도 알아내지 못하고 그만 생각을 접었다. 만약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면, 위무외의 성격에 진작 말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