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60화 (160/892)

160화. 옥회산에서 벌어진 일

위씨 집안 사람들이 모두 잠들지 못할 것 같은 이 밤에, 계연은 이미 영안현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몇 년간 가보지 않았더니 그 조용하고 작은 후원이 그리웠다.

‘윤 훈장님께서 다른 주로 가서 지부직을 맡고 계시다고 들었으니, 윤씨 집안 사람들 모두 따라갔겠지. 거안소각이 지금쯤 어떤 상태일지 모르겠네. 먼지가 잔뜩 쌓여 있을 것 같은데……. 대추나무는 꽃이 폈으려나?’

* * *

덕승부에서 8에서 9백 리(*약 350k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옥취산(玉翠山)이 자리하고 있었다. 험한 곳과 완만한 곳이 뒤섞인 산세는 5백 리(*약 196km) 정도 이어져 있었다. 그중 한 산맥은 한 해 내내 운무가 잔뜩 끼어 있었다. 산길에 익숙한 이들도 길을 잃기 마련인 이곳이 바로 대정국의 유명한 선문인 옥회산이 있는 곳이었다.

다만 지금의 취운산맥은 이전처럼 고요하지 않았다. 마침 선학 두 마리가 날개를 다친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날개의 털이 엉망이었고 위에는 얼룩덜룩한 핏물이 들어 있었다.

그중 한 선학의 위에는 수선자 한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매우 피폐해 보였다.

까악, 까악!

선학 두 마리는 운무가 잔뜩 낀 곳으로 날아갔고, 그들이 내는 울음소리가 공중에 울려 퍼지며 운무가 저절로 길을 내주었다.

선학이 안개를 헤치고 날아가다 보니 어느새 안개는 모두 사라지고 밤하늘 아래 더욱 빛나고 있는 장소가 보였다. 험준하게 솟은 봉우리와 절벽 사이에서 드문드문 건물들이 드러났다. 밑으로 물이 흐르는 다리도 깊은 골짜기 안에 고요히 숨겨져 있었다.

깍! 깍!

빠른 속도로 날던 선학 두 마리는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거대한 충격을 감내하며 작은 산의 평평한 꼭대기에 미끄러져 떨어졌다. 날개를 퍼덕여봤지만 낙하할 때의 힘을 두 다리로 지탱할 수 없었던 선학들은 땅에 털썩 뻗어 누웠다. 그 바람에 등에 탄 수사(修士)도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끼룩!

이에 산을 지키던 선학이 날개를 퍼덕이며 바람처럼 날아왔다. 사람 하나와 선학 두 마리가 있는 곳에 떨어지던 선학은 날개옷을 입은 여자로 변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는 경악한 얼굴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영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들 모두가 법력을 소진한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이들이 봉우리에 착륙하자마자, 선학이 우는 소리를 듣고 놀라있던 선인 중 넷이 바람을 타고 와서 땅을 밟았다.

“조(趙) 사제(師弟)!”

“학 낭자께서는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아십니까?”

“아니요,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조 선장과 학 도우(*道友: 도교의 신자) 두 분은 아직 혼미한 상태입니다.”

“법력을 모두 소진했군요.”

“배(裴) 사숙(師叔)은요? 함께 천기각에 간 게 아닙니까?”

“모두 진정하세요. 조 사제와 선학들을 서운루(舒雲樓)로 데려가 상처를 치료해야 합니다.”

수사 몇 명과 선학은 함께 술법을 펼쳐 구름을 타고 전방의 높은 봉우리에 있는 건물로 날아갔다. 그들이 소매를 휘두르자 서운루에서 흘러나온 빛이 번쩍이며 갈라졌고 이들은 모두 서운루 안으로 날아갔다.

옥회산에서 일어난 일은 잠시간 다른 이들에게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심지어 옥회산의 수선자들 중에는 이 상황을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니 계연에게도 이 일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하늘을 날아가면 이리저리 장애물을 피해 돌아갈 필요가 없었으므로, 덕승부 부성에서 영안현 사이까지 150리(*약 58km) 정도를 직선거리로 날아갈 수 있었다. 이는 구름을 타고 날 수 있는 계연에게는 별로 먼 거리가 아니었다.

아무리 천천히 날아가는 게 습관이 된 계연이라지만, 구름을 밟고 바람을 옆에 끼고 날다 보니 이 각(*30분)이 못 되어 영안현 상공에 다다랐다.

상공에 떠 있던 계연은 멀찍이 영안현 천우방 한곳에 은은한 영기가 모여 있는 곳을 볼 수 있었다. 계연이 법안을 뜨고 그곳을 관찰했더니,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초록빛이 영기 안에 숨겨져 있었다.

‘대추나무인가?’

계연은 놀라 의아하게 여겼다. 바람이 불어와 계연의 옷과 머리카락을 흩날리자, 계연은 천천히 구름을 몰아 거안소각의 후원으로 내려왔다.

솨아아…… 솨아아….

후원의 바람이 거세진 것처럼 대추나무의 모든 가지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 위의 붉은 대추알은 윤기가 흐르고 빨간빛이 돌아 아주 영롱해 보였다.

톡…… 톡…… 톡….

순식간에 대추 몇 알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만!”

계연이 손을 뻗자 땅에 떨어진 대추 다섯 알이 그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는 왼손을 들어 아직도 대추를 떨어뜨리려 하는 나무의 충동을 제지했다.

“맛만 보면 돼, 전부 떨어뜨리면 너무 많아.”

대추나무의 흔들림이 그제야 가라앉기 시작했다.

계연은 어깨에 멘 보따리와 대추 네 알을 돌탁자 위에 올려놓고, 남은 한 알을 들어 코에 대고 냄새를 맡더니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콰득.

계연이 과육을 베어 물자 과즙이 계연의 입안으로 퍼졌다. 신선하고 달콤한 향내가 입안을 가득 채웠다.

“맛있군, 맛있어. 예전보다 더 맛있어진 것 같네! 하하하…….”

계연은 만족한 듯이 웃으며 돌로 된 탁자 앞에 앉았다. 계연은 편한 자세로 계속 과일을 맛보았다. 그러는 사이 그의 등 뒤에 떠 있던 넝쿨검은 때때로 각도를 바꾸고 있었는데 마치 거안소각을 관찰하는 듯했다.

대추를 전부 먹어치운 계연은 고개를 들어 후원의 대추나무를 바라보았다. 더는 대추나무의 초록빛 기운이 희미하게 보이지 않았다. 계연은 감개무량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계연은 나무의 맥을 타고 흐르는 활력을 볼 수 있었고, 그렇기에 대추나무가 저 스스로 영기를 모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아주 잘했다. 욕심부리지 않고 평안한 태도로 정진하여, 어떤 사악한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구나. 수행을 잘하고 있구나!”

계연의 한마디 칭찬을 던지자 대추나무의 모든 가지가 같은 모습으로 흔들렸다. 마치 칭찬을 들은 기쁨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말하는 중에 계연은 자세히 대추나무 가지와 잎 사이를 살펴보았으나 어떤 조짐도 없었다.

‘올해는 꽃이 피지 않았구나, 아깝네.’

계연은 후원에 잠시 앉아있다가 정방(正房)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위에 자물쇠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잠깐 멍하니 있던 계연은 곧 소매 안에서 돈주머니를 꺼낸 뒤, 그 안에서 열쇠를 찾아냈다.

“열쇠를 계속 이 안에 넣어두고 있길 잘했네. 아니면 보따리와 함께 예전에 잃어버렸을 거야. 이제 좀 집에 온 느낌이 나네, 하하!”

계연이 열쇠를 구멍에 넣자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끼익-.

나무문의 경첩 소리도 예전 그대로였고, 실내에서는 어떤 눅눅한 냄새도 나지 않았다.

계연은 실내로 들어와 탁자 위를 손가락으로 한 번 쓸어보았다. 손가락 사이로 떨어지는 먼지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최근에 청소한 것 같았다.

침상에는 나무판자만 보일 뿐 요와 이불은 없었는데, 궤짝 안에 있는 이불을 비롯한 침구에서는 침구를 햇볕에 바짝 말린 덕분인지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보아하니 윤청이는 함께 완주로 떠나지 않은 듯하군!”

그는 소매를 이용해 침상 위에 앉은, 본래도 그리 많지 않던 먼지를 털어내고 요와 이불을 가져와 깔았다. 넝쿨검은 침상 곁에 잘 놓고서 오래 누워 보지 않은 자기 집의 침상에 몸을 뉘었다.

“역시 집이 편하군!”

이렇게 감탄한 후, 눈을 감은 계연은 순식간에 꿈에 빠져들었다.

넝쿨검은 침상 머리맡에 조용히 있다가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정방의 문 앞까지 날아간 검은, 계연이 꽉 닫지 않은 방문을 밀어 완전히 닫은 뒤 다시 침상 곁으로 돌아왔다.

* * *

거안소각의 대추나무 가지가 미친 듯이 흔들리던 조금 전.

윤훈장 댁의 오래된 집에서는 윤청의 곁에 누워있던 붉은 여우는 귀를 뾰족하게 세우며 고개를 들어 소리를 경청했다. 잠시 소리를 듣던 여우는 바람이 많이 부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는, 다시 엎드려 잠을 청했다.

그리고 이날 밤, 계연이 생각한 것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거안소각 후원의 대추나무는 하룻밤 새에 꽃망울을 틔웠다. 황록색의 대추꽃은 나뭇가지 가득 피어, 해가 뜨기도 전에 천우방 전체에 향기를 퍼트렸다.

* * *

영안현에는 평범한 아침이 또다시 밝아왔다. 다만 이날 아침은 평소와 달랐다.

천우방과 그 주변 방에 사는 동네 사람들이 눈을 떴을 때, 그들은 모두 마음에 깊이 스며드는 듯한 어떤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천우방 쌍정포(雙井浦)는 이른 아침 이미 물을 길으러 온 사람이나 빨래하러 온 사람, 채소를 씻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빨랫감을 두들기는 소리와 아낙네들끼리 수다 떠는 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오늘 아침에 일어났는데 무슨 향기가 이리 좋은가 했네!”

“그러게 말이야, 정말 향기롭던데. 어디서 나는 향이지?”

“자네들, 잊은 거야? 분명 거안소각의 그 대추나무에 꽃이 핀 게지! 이전엔 밤에 그 향기를 맡으면 잠도 더 잘 왔는데!”

“맞아, 맞아! 이제 기억나네!”

“와, 그 대추나무 향기가 이렇게 짙었던 적은 아주 오래전인데!”

“정말 좋은 향이야, 하하……!”

“그럼 올해는 대추를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하하하…….”

“아이고, 자네는 그저 먹는 생각만 하지!”

쌍정포에서는 아낙네들이 내는 옥구슬 구르는 듯한 웃음소리와 떠들썩한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물을 길으러 온 사람들도 몇마다 더하기 시작하자, 천우방 거리 전체에는 아침부터 밝은 분위기가 퍼졌다.

윤청은 자리에서 일어나 호운을 데리고 서당이 있는 방향으로 갔다. 이제 공부를 하는 건 윤청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붉은 여우도 윤청의 곁에서 몰래 수업을 들었다. 서책을 가르치는 능력은 아무래도 훈장이 윤청보단 낫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침에 향기를 맡았기 때문에, 그 둘은 특별히 거안소각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과연 대추나무에 꽃이 무성히 핀 것이 보이자 그들은 모두 놀라 기뻐했다. 다만 그 이유를 생각하지는 않고, 수업에 서둘러 가야 해서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붉은 여우는 장안법을 사용해 윤청의 등에 엎드려 대로와 골목을 통과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성황신이 눈을 감아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이 주, 야간 순시관들을 속아 넘길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윤청과 여우 호운이 함께 서당에 간지 반 시진쯤 흘렀을 때, 계연은 몸을 풀며 밖으로 나왔다. 해가 높이 뜰 때까지 잠을 자던 것은 거안소각에서의 버릇으로, 돌아오자마자 계연은 예전의 생활을 되찾아갔다.

고개를 들어 가지에 빼곡하게 만개한 꽃을 보고, 계연은 수사(修士)에게 하듯 대추나무를 향해 공수했다. 그 후 그는 머리를 틀어 올려 묵옥 비녀를 꽂은 다음 대문을 나섰다.

천우방 밖의 거리에는 손기 할아범이 운영하는 국숫집이 여전히 영업하는 중이었다. 세월은 노인에게 특히 각박한 듯, 고작 6년 만에 손기는 더 나이가 든 모습이었다.

오늘 노점을 열려고 이곳에 수레를 끌고 온 손기는 정신이 번쩍 드는 듯한 청량한 향기를 맡았었다. 그 후로 손발이 전보다 더 민첩해져서 전보다 빠르게 국수를 만든 덕에, 손기와 손님들 모두 기분이 좋았다.

손기는 손님이 사용한 식기를 정리한 뒤, 노점 뒤편의 물 항아리에서 물을 길어 그릇과 젓가락을 닦았다. 그 후 화로 옆에서 두고 물기를 말렸다.

“손 영감님, 오늘 국수랑 내장 있나요?”

익숙하지만 누군지 떠오르지 않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기가 몸을 일으켜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바라보니, 원래 빈 자리였던 곳에 소매가 넓은 흰옷을 입은 고상하고 온화한 선생이 앉아있었다. 익숙한 인상이었다.

“당신은……? 계 선생님 아닙니까!”

의혹에 차 눈썹을 찌푸렸던 손기의 표정이 일시에 밝아지며 화색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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