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마치 예전처럼
“계 선생님, 돌아오신 겁니까? 잘되었습니다, 정말 잘됐어요! 아아, 참, 국수랑 내장 주문하셨지요. 있습니다, 있고 말고요. 오늘은 양 내장뿐인데, 내일 제가 주변 마을에 가서 소 내장을 구해오겠습니다!”
“아니에요, 양 내장도 괜찮습니다. 예전 그대로 주세요. 국수랑 내장 한 그릇요. 영감님, 아직도 정정해 보이셔서 다행이네요!”
계연은 웃으며 노인을 향해 공수했다.
손기도 앞치마에 손을 닦고는 계연을 향해 공수했다. 오랜만에 계연을 보니 기분이 더 좋아진 것 같았다.
“계 선생님도 좋아 보이십니다, 하나도 안 변하셨어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바로 준비해 오겠습니다!”
손기는 서둘러 계연을 위해 음식을 조리하여, 조심스럽게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계연은 젓가락을 들어 음식을 한 입 먹었다.
“예전처럼 맛있군요!”
계연의 감탄에 손기는 흡족해하며 수레로 돌아가 씻어놓은 그릇을 정리했다.
그는 계연과 때때로 요 몇 년간 일어났던 일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손기는 자기 집 손자가 서당에 다니게 된 이야기를 마치고 계연에게 그동안 타향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았다.
대화 도중 가끔씩 정말 잘됐다며 노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계연은, 자신의 근황에 관한 질문에는 그저 잘 지냈다는 말만 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동안, 노점을 지나가는 이들이나 식사하러 온 손님 중에는 계연을 알던 이들이 몇몇 있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계연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오늘 불어온 꽃향기 이야기만을 나누었다.
이전에 계연은 비록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야기하는 ‘기인’이었지만, 그때도 진짜로 계연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6년이란 시간은 아이가 성인이 되고, 나이 든 이는 세상을 떠나기도 하는 등, 많은 것이 변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더라도 영안현이 계연에게 주는 이 평온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손기의 국수와 내장은 아직도 예전처럼 맛있었는데, 이는 계연에게 있어 고향의 맛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이 세계에 넘어온 후, 영안현은 의심할 여지 없이 계연의 고향이었다.
몇 년이 흘렀지만, 손기의 국수 가게는 장소도 맛도, 양도, 가격도 변하지 않았다. 그 주인이 조금 더 나이 든 것 말고는 전부 예전과 그대로였다.
계연은 식사를 마치고, 돈을 낸 뒤 손기와 몇 마디 더 나눈 후 묘사방으로 향했다.
묘외루의 점원은 두 명이 바뀌었으나, 주인은 이런 종류의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답게 재빨리 계연을 알아보았다. 심지어 예전에 계연이 가장 좋아하던 간식거리와 화조주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기억력은 계연조차도 놀라게 했다. 손기 할아범처럼 단골이 대부분인 노점을 운영하는 것과 달리, 묘외루는 매일 많은 손님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계연은 다과 두 접시와 화조주 두 병을 포장해 묘외루 밖으로 나왔다. 비록 도술을 닦으며 보통 사람과 다르게 살아가기로 했다지만, 누군가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묘외루 주인과 같은 이들은 특별한 고객들에게 언제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영안현과 같은 작은 고을에서 계연은 주인장의 눈에 특별히 신경 써야 할 인물이었다. 계연 그 자신도 보통 사람이 아니지만, 그런 점을 다 빼놓고 보아도 그는 삼원급제를 한 윤재성의 벗이었기 때문이다.
계연이 묘외루에서 나와 성황당이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던 때에, 묘외루에 새로 들어온 점원은 의혹에 차서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 어르신, 방금 그 계 선생님이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이렇게 친히 나와 접대하세요?”
주인장이 고개를 돌려 점원에게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한쪽에서 식사하던 손님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방금 계연과도 몇 마디 나누던 사람이었다.
“저분이 바로 예전에 거안소각에 살던 계연이라는 성함의 선생이시라네. 자네 그 이야기 못 들어봤는가? 대추나무가 하룻밤 사이에 열매를 맺어 선생을 환송했다는 이야기 말이야.”
“예? 정말 그런 일이 있다고요?”
“하하하……!”
계산대 안쪽에 있던 주인장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식사하던 손님은 이를 보고 더욱 흥이 올랐다.
“어라, 그동안 내 말을 안 믿고 있었던 건가? 예전에 4월에 맺은 대추 열매를 내가 먹었다고 말했을 때, 그럼 속이는 줄 알았던 거야?”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하하하……!”
점원은 이렇게 얼버무리며 행주를 들고 다른 식탁으로 가서 정리를 시작했다.
그러자 오히려 주인장이 감개무량한 듯 한마디 했다.
“오늘 아침 일찍 향을 올리러 갔던 참배객이 왔었는데, 천우방 쪽이 전부 향기로 뒤덮였다고 하더군요. 대추꽃 향기가 주변 다른 방에도 퍼졌다더니, 알고 보니 계 선생님이 돌아오셔서 그랬나 봅니다!”
점원을 놀리던 손님이 이를 듣고 깜짝 놀랐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오?”
“네, 확실합니다!”
* * *
묘외루에서 계연에 관한 토론이 이어지는 사이, 계연은 묘외루에서 산 것을 들고 성황당을 방문해 송(宋) 성황신에게 인사를 올리고 있었다. 영안현에 돌아왔으니, 이 정도 예의는 지켜야 했다.
간식거리와 술을 공헌하고 성황당을 떠나려던 때에 성황신이 현신한 덕에, 계연은 그와 함께 마을로 돌아오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 뒤에 서로 공수하며 작별했다.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치고, 계연은 거안소각으로 돌아왔다.
* * *
저녁에 가까워진 시각, 영안현의 서당이 수업을 마쳤다. 윤청은 훈장님께 인사를 올린 후, 학생들과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윤청과 작은 여우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윤청은 세는 나이로만 치자면 이미 18살이었다. 어느새 아이에서 성인이 다 된 나이의 윤청은, 그의 학식과 총명함으로 사실 큰 서원(書院)에 가서 공부할 수도 있었다.
윤청은 사람들 앞에서는 서생처럼 차분하고 온화한 모습을 보였으므로, 사람이 적은 골목에 들어서서야 나는 듯이 뛰어 천우방으로 갔다.
천우방에 들어서자마자 윤청은 꽃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아, 아직도 향기가 나네. 진짜였나 봐. 여우야, 우리 대추나무 보러 가자.”
“호운이라고 불러!”
“그래, 그래. 호운!”
여우는 이를 드러내며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천우방에 도착하자 붉은 여우도 윤청의 등에서 내려온 상태였다. 사람과 여우는 거안소각으로 향했고, 골목을 꺾어 돌자마자 거안소각의 문의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잉? 문이 왜 열려 있지?”
윤청이 놀란 듯 말하자, 여우는 윤청의 어깨 위로 올라가 자세히 살펴본 뒤 의혹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도둑이 들었나?”
“바보야, 도둑이면 담을 넘어가지, 뭐 하러 저렇게 대문을 열어 놓겠어? 게다가 안에는 대추나무도 있는걸.”
이들은 발걸음을 서둘렀는데, 이들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차올랐다.
윤청과 여우가 거안소각의 후원 문 바깥에 다다르자, 둘은 안쪽에서 돌 탁자 앞에 앉아 책을 읽는 계연을 볼 수 있었다. 탁자 위에는 묘외루의 간식이 차려져 있었다.
“계 선생님!”
“우우……!”
윤청과 호운은 모두 놀라며 기뻐했다. 호운은 너무 기뻐 자기도 모르게 여우의 울음소리를 낼 정도였다.
계연은 서책을 내려놓고 윤청을 향해 웃어 보인 다음, 탁자 위의 간식을 가리켰다. 그는 조마조마해 보이는 붉은 여우에게도 마찬가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둘 다 어서 들어오렴. 묘외루의 간식은 한 사람이 먹기엔 좀 많거든.”
윤청은 환호하며 여우와 함께 후원으로 들어갔다. 윤청은 탁자 앞에 앉더니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윤청은 간식을 먹으며 계연에게 재잘재잘 떠들었다.
붉은 여우는 처음에는 차마 입을 열어 사람 말을 할 수 없어 점잖게 앉아있었다. 그러나 계연이 먼저 그에게 말을 걸자, 사람 말로 대답했다. 그 후 윤청과 함께 한마디씩 거들어 가며 사람 말을 배우던 때의 재미있는 일들을 이야기했다.
그날 밤.
윤청이 잠이 든 후 붉은 여우는 거안소각에 홀로 도착하여 담을 뛰어넘어 후원으로 들어갔다.
계연은 아직 쉬러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는데, 후원의 돌 탁자 앞에 앉아 옥으로 된 서표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다. 늙은 용의 건곤납물법을 조금 고치고 있는 것이었다.
“계 선생님!”
“음.”
계연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여전히 서표 위에 손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다.
“계 선생님, 저는 우규산으로 돌아가 산군에게 선생께서 돌아오셨다고 알리러 가겠습니다.”
“으음.”
붉은 여우는 고개를 들어 여전히 아무 변화가 없는 계연의 얼굴을 조심스레 관찰했다.
“동의하시는 거예요?”
계연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 가거라.”
붉은 여우는 사람처럼 앞발을 모아 계연을 향해 읍했다. 그 후 담장을 뛰어넘어 천우방 바깥으로 향했다.
별이 뜬 밤하늘 아래, 붉은 여우 한 마리가 풍성한 꼬리를 흔들며 영안현 밖의 대로를 질주했다. 일각이 조금 더 지난 후, 여우는 우규산 자락에 도착하여 민첩하게 산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뒤로 대략 두 시진이 흘렀다.
* * *
우규산 깊은 곳의 절벽. 그곳의 동굴에서 맹렬한 호랑이의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어흥-!
동굴 밖의 낙엽이며 고목이 동굴 안쪽에서 불어온 바람에 의해 쓸려 날아갔다. 붉은 여우는 전전긍긍하며 동굴 바깥에 붙어 서서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여우의 털은 방금 들은 포효 소리로 인해 꼿꼿이 일어선 상태였다.
동굴의 암흑 속에서 짙푸른 눈 한 쌍이 사람의 혼백을 쏙 빼놓을 듯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계 선생님이 돌아오셨다고?”
“응응!”
붉은 여우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타닥! 콰지직!
육 산군의 거대한 몸체가 동굴에서 움직이자, 그의 발밑에 깔린 마른 잎이며 가지들이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만으로 육 산군이 얼마나 흥분하고 조급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계 선생님이 오셨다고! 그분께서 날 보러 오실까? 내가 선생님을 뵈러 가야 하나?”
툭! 타닥!
맹호(猛虎)의 거대한 몸체가 동굴의 지면을 밟는 소리가 나자, 이를 듣던 호운은 마치 자신의 심장도 같이 밟히는 듯했다. 그러나 육 산군이 자신에게 묻는 게 아닌 것 같아 그저 조용히 동굴 바깥에 엎드려 있었다.
사실 호운은 지금 일종의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우규산에서 가장 두려운 존재인 육 산군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육 산군은 고개를 움직이고 꼬리를 흔들며, 입으로는 쉬지 않고 혼잣말을 했다.
“안 되지, 안 돼. 나는 호랑이 요괴이고 이렇게 몸집도 크니까, 산 밑으로 내려가면 사람들이 놀라 죽을 거야. 성황신이며 토지신 같은 자들이 날 가만히 둘 리도 없고…….”
돌연 그는 고개를 돌려 붉은 여우를 바라보았다. 은근히 고소해하며 몰래 웃고 있던 호운은 한순간 온몸의 털이 바짝 일어서는 것 같았다. 자기가 몰래 웃고 있던 걸 들킨 줄 알았기 때문이다.
“계 선생님은 오늘 오신 거야? 선생께서 내 얘기를 꺼내진 않았어? 나를 보러 온다는 말씀은 없으셨냐?”
“어…… 그건…….”
호운의 심장이 급격히 빨리 뛰기 시작했다.
‘계 선생님께서는 산군에 대한 말을 꺼내지도 않으셨고, 보러 온다고도 안 하셨는데……. 그러나 사실대로 말해서 육 산군이 실망하여 날 먹어버리면 어쩌지?’
“그…… 계 선생님께서는 아마 어젯밤이 돌아오셨을 거야. 대추나무가 어젯밤에 꽃을 피웠거든. 그리고 나는 오늘 밤에 선생의 거처에 방문한 거야. 계 선생님께서는 아마 내가 우규산에 갈 거라는 걸 알고 계셨던 것 같아. 내가 여기로 와서 육 산군에게 선생께서 돌아오셨다는 걸 알리는 것에도 동의하셨어…….”
“또?”
맹호의 커다란 얼굴이 여우와 2척(*약 60cm)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여우는 덜덜 떨며 침을 꿀꺽 삼켰다.
‘또 뭐 없는데…….’
“어어어……. 내, 내 탓이야. 사실 내가 막 횡골을 없앤 거라서 사람 말이 잘 나오지 않아. 계 선생님을 뵈니 긴장해서 말이 잘 안 나왔어. 산군에게 알리러 간다는 말에 동의하시는 것만 듣고, 바, 바로 후원을 뛰쳐나왔어. 이제 생각해보니 선생께서 어쩌면 더 할 말이 있으셨던 것 같아. 내가 너무 긴장해서……. 내 잘못이야…….”
“너……! 어흥……!”
맹호는 마음이 급해 자기도 모르게 포효했다. 그러나 뒤로 갈수록 그의 표호성에는 그리 많은 노기가 담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육산군은 흥분했던 감정을 추스르고 좀 더 차분해졌다.
“휴……. 보아하니 선생께서 내 얘기를 하지는 않으셨구나.”
약간 낙담한 목소리가 미처 끝을 맺기도 전에, 일찍이 동굴 밖에 몸을 기대고 있던 계연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예전에는 그를 보기만 해도 두려움을 들게 하던 육 산군에게 이런 면도 있었다니.
“오랜만이군, 육 산군. 그동안 별일 없었나?”
계연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안쪽에 있던 호운과 육 산군은 짧은 순간 멍해졌다. 그 후 그들은 강렬한 놀라움과 기쁨에 휩싸였다. 호운은 좀 더 놀란 쪽이었고, 육 산군은 기쁜 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