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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162화 (162/892)

162화. 공경

슈웅!

거대한 그림자가 동굴에서 뛰쳐나왔다. 달빛 아래, 보통 호랑이보다도 두 배는 더 크고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맹호가 서 있었다.

맹호는 동굴 밖으로 뛰어나오자마자 절벽에 기대선 계연을 발견했다. 그는 뒷다리로 체중을 지지한 뒤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발톱을 모두 숨긴 뒤 왼쪽 발바닥으로 오른쪽 발바닥을 덮었다. 긴 소매는 없었으나 털로 최대한 발을 가리고서, 두 발을 이마에 대고 굽혀 인사했다.

“육산군이 선생을 뵙습니다!”

평민 백성들이 일상에서 예를 차릴 때 읍을 하긴 하지만, 그것조차 모두 간소화된 것이었다. 그러나 육 산군은 호랑이의 몸인데도 몸을 굽히는 각도나 예를 올리는 자세가 모두 표준에 들어맞는 장읍례(長揖禮)를 올렸다. 이는 주로 서원에서 학생들이 훈장에게 하거나, 제자가 은사(恩師)를 만났을 때나 올리는 정중한 인사였다.

그러나 계연은 이 세계에 처음 와서 일상 예절에 대해 잘 모르던 때에, 산신당 앞에서 육 산군과 헤어지며 육 산군에게 이 정도의 예를 이미 받았었다. 그러므로 지금도 장읍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어서 일어나게, 나는 육 산군을 가르친 적이 없으니 이런 예를 받기가 부끄럽군.”

“선생께서는 제게 새 삶을 열어 주신 은인입니다. 어찌 가르친 것이 없다고 하십니까? 그 후로 수행에 큰 진전이 있었고, 마음도 더욱 맑고 깨끗해졌습니다. 선생께서 제가 호랑이 요괴이기 때문에 불편하신 게 아니라면, 제 인사를 받아 주셔야 합니다.”

맹호는 인사를 올린 뒤 잊지 않고 눈썹을 가지런히 하고 앞발을 내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예의를 차린 인사였다.

계연은 말로만 그를 말렸을 뿐, 서 있는 채로 그의 인사를 모두 받았다. 이는 육 산군을 매우 기쁘게 했다.

“좋다, 이렇게 된 김에 오늘 기분도 좋으니 요괴들이 수행을 쌓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점을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동굴 안에 있는 여우도 어서 나오너라!”

지난 2년간 응굉과 나눈 대화가 있어, 계연이 가진 지식은 충분했다.

이를 들은 육 산군은 미칠 듯한 기쁨을 느끼고 두 눈을 형형하게 빛냈다. 그는 계연의 가르침이 앞으로의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칠 아주 중요한 것임을 알아차렸다.

동굴에서 뛰어나오던 붉은 여우는 마음속으로 ‘내 이름은 호운인데.’라고 투덜거렸으나, 감히 그 말을 입 밖으로 낼 엄두는 내지 못했다.

호운은 동굴에서 뛰어나와 커다란 꼬리를 등 뒤에서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는 육 산군에게서 감출 수 없는 기쁨의 감정을 느꼈으나,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계연은 붉은 여우를 한번 쳐다본 뒤, 다시 거대한 몸체에 눈이 치켜 올라간 사나운 호랑이를 바라보았다.

“가자, 적당한 곳을 찾아야겠구나. 네 그 동굴은 너무 컴컴한 데다 동굴 밖은 수풀이 무성하니, 넓고 밝은 곳으로 가는 게 좋겠다.”

계연이 발을 살짝 들었다가 땅을 밟으니, 그의 모습이 순간 땅이 줄어든 것처럼 저 앞으로 사라졌다. 맹호와 붉은 여우는 서둘러 그의 뒤를 따라갔고, 그들의 뒤로 바람이 휙휙 불었다.

육 산군은 서둘러 계연의 뒤를 따라가면서, 고개를 돌려 자신이 머물던 동굴을 바라보았다. 수풀 속에 숨겨져 그림자가 진 어두운 동굴 위로 별빛과 달빛이 비쳤지만, 무성한 수풀에 의해 얼룩덜룩해 보였다.

‘선생께서는 동굴로 내 마음을 빗댄 것인가? 깊고 어두운 동굴을 벗어나, 드넓고 밝은 마음을 품으라는 거야!’

방금 계연의 간단한 몇 마디에 육 산군의 영이 더욱 깨끗해졌다. 몸을 뒤덮은 털에서 은은하게 빛이 나는 것도 같았다. 계 선생님께서 내 앞길을 이끌어주고 계신다는 믿음이 맹호의 마음에 싹텄다.

앞서가던 계연은 눈을 돌려 그들을 살폈다. 그는 육 산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몰랐으나, 맹호의 자질이 과연 비범하다고 느꼈다. 요괴 중에서는 분명 손꼽히는 자질을 지녔고, 뒤에 따르는 붉은 여우는 육 산군과 비교할 수도 없었다.

계연은 목적 없이 수련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육 산군의 동굴에서 일각 정도 가면 있는, 우규산으로 날아올 때 본 장소가 있었다.

그 장소는 바로 타원형으로 생긴 커다란 암석 위였는데, 대략 3장(*약 9㎡) 정도의 크기로 된 암석이 나무가 드문드문 자란 산등성이에 거대한 조약돌처럼 누워있었다.

장소를 발견하자 계연은 가볍게 날아올라 암석 위에 착지했고, 맹호와 붉은 여우도 그를 따라왔다.

밝은 달빛과 별빛이 그곳을 환히 비추었다. 인적 드문 우규산의 깊은 곳에서 그들이 서 있는 거대한 암석은 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였다.

곧이어 그들은 암석 위에 나란히 앉았다.

호운은 별 감상이 없었으나, 육 산군은 달빛으로 하얗게 빛나는 암석 위에서 스승과 함께 앉아 가르침을 듣는 이 순간이 마치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계연은 육 산군이 자신을 공경하는 마음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었다. 육 산군은 성심을 다해 계연을 스승 대하듯 했고, 계연과 만난 후에는 그가 가진 기운이 더욱 맑고 깨끗하게 변했다.

“너희는 모두 영지를 깨우치게 된 짐승이다. 호운은 선도를 닦은 지 얼마 안 되어 그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직 모르고 있고, 산군은 홀로 수련해 횡골을 녹였으나, 백 년이 넘은 뒤에도 여전히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 즉 호랑이로 태어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2백 년에 가까운 세월을 헛되이 보낸 셈이다. 그러므로 수행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

계연은 똑바로 앉지 않고 한 손으로 몸을 받치고 앉은 채였다. 그가 오른손으로 머리 위의 묵옥 비녀를 뽑아 들자, 계연의 긴 머리채가 폭포처럼 쏟아져 바람에 흩날렸다. 그의 머리카락에 달빛에 내리쬐며 마치 그의 머리카락 위로 광채가 한 겹 드리우는 듯했다.

손에 든 묵옥 비녀가 달빛 아래에서 빛을 받아, 그의 흐릿한 두 눈과 비녀와 달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 순간, 투박하기 짝이 없던 그의 비녀에서 은은하게 빛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이 있듯, 근도자영(近道者靈)도 마찬가지의 이치다. 요괴도 그렇고 사람도 마찬가지지. 그렇다면 수행과 수선(修仙)은 과연 무엇인가?”

계연의 말에 함축된 뜻이 심오하여, 그들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 육 산군과 호운은 차마 똑바로 계연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산군이 호운보다 살아온 세월이 기니, 먼저 말해 보거라.”

“네!”

맹호는 극도로 긴장하여 온몸에 식은땀이 나는 듯했다. 사지의 발바닥에서는 이미 땀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선생님의 물음에 답합니다. 저는 수행이란 초탈하고 장생(長生)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원하는 바를 모두 얻을 수 있고 근심으로 슬퍼하지 않는다면, 마음 가는 곳마다 평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옳은 말이다!”

계연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고작 몇 번 만났을 뿐이지만, 이 호랑이 요괴가 그에게 주는 놀라움과 흡족함이 적지 않았다. 조금 전 그에게 받은 제자의 예가 의외로 느껴졌다면, 지금은 정말로 그가 제자처럼 느껴졌다.

호운은 육산군의 말을 듣고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한마디로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이잖아? 그래, 네가 제일 크고 제일 세지! 계 선생님은 왜 육 산군을 칭찬하시는 거야?’

그러나 계연이 자신을 바라보자, 호운은 즉시 단정한 자세로 고쳐 앉아 맹호처럼 조금의 소홀한 태도도 보이지 않았다.

계연은 속으로 한 번 웃고서, 옥 비녀를 곁에 내려놓았다. 예전에는 자신이 여인처럼 보이는 것 같아서 머리를 풀어 내리는 일이 아주 적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엄밀히 말한다면, 이것은 계연이 처음으로 수행의 정수를 전하는 것이었다. 그는 깊이 생각에 잠겼고, 수업을 시작하는 첫 문장을 최대한 꼼꼼하게 고르려고 했다.

계연은 진지하고 정중한 모습의 맹호와 최대한 열심히 배우고자 하는 모습의 여우를 바라보며, 천천히 이 세계에는 없는 글을 읊조렸다.

“북쪽 깊은 바다에 물고기가 있는데, 그 이름은 곤(鯤)이라고 한다. 그 크기가 몇천 리가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이 물고기가 변신하여 새가 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한다. 붕의 등 너비가 몇천 리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힘껏 날아오르면, 그 날개는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같다…….(*<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편에 나오는 구절)”

계연은 이렇게 말한 후, 원문의 중요한 부분만 간략히 읊었다.

“……만약 천지의 올바름을 타고 여섯 가지 기운의 변화를 제어하여 끝없는 경지에서 노니는 사람이라면, 그가 어찌 의지하는 바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지인(至人)은 자아가 없고, 신인(神人)은 자취가 없고, 성인(聖人)은 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기나긴 한 편을 모두 읊자, 호운의 눈썹은 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육 산군은 때때로 놀라기도 했다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놓치기는 두려워, 그는 억지로 내용을 외우고 기억하려 했다. 마지막 두 구절 전의 한 구절은 그를 전율하게 했고, 그 뒤에 이어진 구절은 그저 신기할 뿐이라 그는 평정을 되찾았다.

계연은 붉은 여우를 건너뛰고, 바로 육 산군에게 물었다.

“어떤 생각이 있느냐?”

맹호는 이번에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겨 들은 말을 한 번 더 곱씹은 뒤, 망설이며 계연을 바라보았다.

“선생, 방금 읊으신 글에 이름이 있습니까?”

계연의 얼굴에 웃음이 퍼졌다.

“이 글은 <소요유>라고 한다!”

하얀 달빛이 쏟아지는 가운데 육 산군의 몸이 전율에 휩싸였다. 그는 다시 한번 계연에게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육 산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계연도 구태여 육 산군이 느낀 바를 묻지 않았다. 둘은 특별한 감각을 통해 서로가 느낀 바를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이런 느낌은 매우 신기하면서도 유쾌하기도 한 것이었다.

계연은 한쪽에서 어리둥절한 듯한 모습의 호운을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 지었다. 쌓은 수행이든 마음이든 아직도 한참 먼 것이 보였다.

“수행하는 요괴들은 천지의 영기를 모아 신체를 빚어낸다. 요기가 생겨나면 이것이 영험한 기운으로 변하며 신통력을 갖게 되지. 요괴들은 건곤(*乾坤: 우주, 천지)의 기운을 신체에 품기 위해 힘써 도를 닦는데, 모든 요괴가 수행에 있어 힘과 능력을 우선시한다. 동시에 인간의 신체를 부러워하고 자신은 이러한 신체를 갖지 못한 것에 대해 시기심을 품지. 하지만 마음을 두드려 도를 닦는 것에는 종(種)을 나눌 필요가 없고, 수행의 기회는 어디에나 있다.”

계연의 이야기를 들으며 육 산군은 당장 받아 적을 수 있는 종이를 찾아오고 싶었으나,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내용을 잊을까 봐 금세 포기했다.

계 선생이 오늘 밤 그들에게 알려주는 내용에는 모든 구절마다 대도(大道)가 함축되어 있었다. 계연의 지난 생의 말을 빌리자면 ‘알짜 정보’가 가득한 것이었다.

일반 요물(妖物)들의 수행과 비교하면, 계연은 영혼의 깨끗함과 마음의 단련, 음양(陰陽)의 이치와 도덕을 따르는 것을 중요시하여 천지(天地)와 하나 되는 것에 집중했다.

요물은 왜 요(妖)라고 불리고, 어찌하여 사악한 마귀들과 한통속으로 일컬어지는가? 그들의 마음가짐과 수행하는 방법과 행하는 일들이 오늘날 이들의 처지를 이렇게 만든 것이다.

“신체를 단련하고, 마음을 수련하여 영명(靈明)하게 하면 몸과 마음이 모두 깨끗하여 저절로 도가 깃든다. 이로써 요도(妖道) 또한 선도(仙道)가 될 수 있다!”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밝은 달이 검은 구름에 가려졌다. 그들이 앉은 돌은 더는 달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지 않았다. 이에 계연도 잠시 말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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