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63화 (163/892)

163화. 또다시 찾아온 망종(芒種)

쿠르릉-!

구름 속에서 천둥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고, 계연은 이것이 인간과 하늘이 교감한 결과임을 알아차렸다. 이 순간 ‘인간’은 ‘요괴’라는 단어로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육 산군이 수행하며 중요한 관문을 돌파할 때마다, 이런 비슷한 ‘교감’이 일어나고는 했다. 그 기운이 크고 강할 때마다 하늘에서는 더욱 빈번하게 천둥과 벼락이 내리쳤다.

이전에 호운이 횡골을 없앴을 때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호운이 가진 요기(妖氣)가 강하지 않은 데다가 대추나무가 그의 기운을 덮었기 때문에 천둥만 몇 번 치고 끝난 것이었다.

하지만 당연히 예외도 있었다. 벼락이 내려치고 폭우가 쏟아붓는 날씨에, 요괴가 사방이 훤히 뚫린 곳으로 뛰쳐나가 수행의 경지를 돌파한다면 그자는 스스로 거대한 피뢰침이 되어 벼락에 맞아 죽게 될 것이다.

“되었다, 연(緣)은 곧 법(法)이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여기까지 하자!”

계연은 한참 동안 침묵했다가 이렇게 말했다. 깊은 생각에 잠겼던 육 산군과 어떻게든 그의 말을 이해하려 애쓰던 호운은 깜짝 놀랐다.

“하하! 비록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내가 여기 돌 위에서 벼락을 맞으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느냐!”

이를 들은 맹호와 붉은 여우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이 가득하던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이 가득 뒤덮여 있었다.

계연은 비녀를 들어 대충 머리를 틀어 올린 다음, 적당한 위치에 꽂아 넣은 후 몸을 일으켰다.

“열심히 수행하고 스스로 잘 처신하거라. 멋대로 능력을 부리고 놀러 다닐 때가 아니니 말이다.”

여기까지 말하고, 계연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육 산군을 바라보았다.

“아무 데서나 내가 네 사부라고 말하고 다니면 안 된다.”

말을 마친 계연이 발을 한 번 구르자, 그의 발밑에 구름이 차오르더니 순식간에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육 산군은 거대한 몸체를 빳빳하게 굳힌 채 암석 위에 서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감정과 어리둥절함이 떠오르던 그의 눈빛은, 곧이어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찬 눈빛으로 바뀌었다.

맹호는 서둘러 몸을 일으키고는, 멀리 사라진 계연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제자는 사부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으르렁…!

맹호의 포효 소리에 수많은 동물이 놀라 잠에서 깨어났으며, 산등성이에 불어 닥친 광풍으로 인해 새들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육 산군은 도저히 이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흥!

호랑이의 포효성이 등 뒤의 산에서부터 울려오자, 구름을 타고 가던 계연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그 후 그는 구름을 타고 멀리 영안현에 도착했다.

육 산군의 도력은 높다고 할 수 없지만, 계연의 바둑돌 중에서는 그다지 낮지 않은 위치였다. 요괴가 영성을 수행하는 흔치 않은 상황이라, 선수(仙獸)들이 닦는 정통 수행법을 그에게 알려주기는 좋지 않았다. 게다가 이는 그의 흑돌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었다.

그의 바둑돌 중에서 육 산군의 위치는 이미 요괴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산군이 대단한 요괴가 될 잠재력이 있다고 3할 정도 믿었다면, 이제는 그 믿음이 7할 이상으로 올라섰다.

오늘 계연이 내린 가르침은 아주 친절하고 자세했다. 육 산군이 계연을 믿듯이, 계연은 정말로 이 비범한 맹호를 깊이 믿고 있었다.

이날 밤, 우규산 깊은 곳에서는 호랑이의 포효성이 멈추지 않았다. 이에 이곳에 머물던 새 떼들은 모두 놀라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호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상태에서 육 산군의 곁에 머물기가 두려웠던 것이다.

붉은 여우가 육 산군보다 잘하는 것 하나는 바로 문제없이 영안현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여우에게는 영안현이 저 산보다 편안하니, 호운은 하룻밤도 지체하지 않고 밤을 틈타 뛰어갔다.

여명이 뜰 때가 되어서야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맹호는 그제야 잠잠해졌다. 육 산군의 영혼은 더욱 맑아졌고, 이제 그는 계연이 했던 모든 말들을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어젯밤 사부님께서 어떤 신묘한 수행의 기술을 알려주신 것은 아니지만, 이후 자신의 수행길에 있어 중요하게 될 난관을 모두 알려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대도(大道)의 방향이었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스승이 그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서 내게 거는 기대가 크셔. 그러니 언젠가 계 선생의 제자로서 알려질 때, 사부님의 명성에 금이 가지 않도록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 해!’

이런 신념을 가지게 된 육 산군은 자신이 원래 머물던 동굴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 동굴은 조용히 수행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는 더욱 밝고 넓은 곳으로 가고 싶었고, 그중에서도 오늘 밤 가르침을 듣던 그 암석 근처에서 머물고 싶었다.

육 산군은 밝은 달이 높이 뜨는 날에는 그 암석 위에 올라 수행하기로 이미 마음먹은 상태였다. 계연의 가르침을 듣던 어젯밤부터, 그 커다란 암석은 그에게 있어 이미 일반적인 바위가 아니게 된 것이다.

비록 사부님께서 그 여우를 제자로 인정한 건 아닌 것 같지만, 같은 가르침을 들은 이들로서 육 산군은 붉은 여우에게 일종의 친밀감을 느꼈다.

다만 그 여우가 너무나 무지하여, 이것이 얼마나 얻기 힘든 기회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육 산군은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이 귀한 도연(道緣)을 낭비하지 않도록 자신이 직접 그 작은 여우를 깨우쳐 주기로 했다.

한편 호운은 이미 영안현에 도착하여, 윤청의 옆에서 잠이 들어 있었다.

육 산군이 붉은 여우를 다그치겠다고 다짐하던 때에, 호운은 돌연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이 들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놀라 잠에서 깬 여우는 사방을 살피다가, 이곳이 윤청의 침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그제야 안심했다.

방금까지 호운은 우규산의 그 동굴 안에서 육 산군이 자신을 향해 커다란 입을 벌리고 포효하는 꿈을 꾸고 있었다.

* * *

거안소각의 생활은 비교적 평온했다. 계연은 다른 사람들처럼 해가 뜨고 지는 시각에 따라 생활했으나, 별과 달을 관찰하며 술법을 닦는 것도 잊지 않았다.

윤청은 서당에서 이미 나이가 가장 많은 학생이 되었다. 그는 시간 대부분을 훈장의 일을 거들며 보냈는데, 그의 학문은 이제 훈장이 가르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 윤청은 영안현을 떠나 춘혜부의 혜원서원(惠元書院)에 가서 공부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계연이 돌아오자 윤청은 그곳으로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계연은 그에게 강권할 수 없어, 윤청에게 완주로 서신을 보내 그의 부모의 회신에 담긴 결정에 따르라고 했다.

회신의 내용에는 분명 윤청에게 서원으로 가라는 말이 담겨 있겠지만, 두 주(州) 사이에 서신이 한 번 가고 오는 데에만 2, 3개월이 걸리니 이는 윤청에게 있어 결정을 미룰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어느 날, 서당이 쉬는 날에 윤청은 거안소각의 후원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붉은 여우도 돌 탁자 위에 누워 그와 같은 책을 읽으며, 때로 윤청과 함께 책을 낭송하기도 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이 장면을 보았다면 무척 재미있다고 느끼거나 혹은 놀라 자빠질 것이다.

한편, 계연은 옆에 앉아 <기도론(棋道論)>을 읽고 있었다. 이 바둑에 관한 서책은 영안현 저승에서 보내온 것으로, 모두 무판대인(武判大人)이 죽간(竹簡)에 새긴 것이었다. 그래서 계연은 손으로 글씨의 모양을 짚으며 읽을 수 있어 훨씬 편했다.

어느새 하늘은 다시 한번 먹구름에 뒤덮였다. ‘콰르릉’하는 천둥소리가 먼 곳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윤청과 호운은 이를 듣고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집중해서 책을 읽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계연은 죽간을 내려놓았다. 계연은 대추나무 그늘을 벗어나 하늘을 바라보더니 공기 중에 가득 찬 습기를 느꼈다.

“아, 그렇지. 어느새 또 망종(*芒種: 24절기 중 하나)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구나. 이 비는 좋은 비니 내려야 하지. 윤청아, 집으로 가서 빨래 거둬들여야겠다.”

“계 선생님, 저 오늘은 옷 안 널어놨어요!”

윤청은 계연을 향해 웃어 보이고는, 다시 호운과 함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럼 다른 곳으로 가서 읽으렴. 곧 비가 올 것 같으니, 안으로 들어와서 읽어.”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탁자 위의 나머지 죽간 두 개를 들고서 정방 안으로 들어갔다. 의자를 문 앞으로 옮겨 놓고 보니, 밖에 있는 윤청과 호운은 마침 책에 푹 빠진 모양이었다.

잠시 후, 첫 번째 빗방울이 땅에 떨어지고 이어서 점점 더 많아지더니 점차 큰 비로 변했다.

윤청은 “아이고!” 하며 책을 품에 끌어안고 서둘러 계연의 옆으로 뛰어왔다. 붉은 여우도 앞발을 들어 머리 위에 얹고 사람처럼 두 발로 뛰어왔는데, 그 모습이 퍽 우스꽝스러웠다.

바깥에서는 백성들이 다급하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작 하늘을 살피지 않고, 꼭 빗방울이 떨어지고 나서야 급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에고, 빨리 피해!”

“이렇게 갑자기 비가 오다니!”

“빨리 뛰어!”

“옷부터 거둬들여!”

그러나 대부분의 시골 사람들에게 있어 이 비는 축복이었다. 비가 내리면 강물의 물이 불어나 논밭의 수원(水源)이 충분해지기 때문이었다. 이 비는 영안현과 그 주변은 물론, 모든 계주 사람들에게 파종하기 좋은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솨아아…….

빗물이 지붕과 후원, 대추나무의 잎사귀에 후두두 떨어졌다. 빗물이 닿은 주변의 모든 것들이 계연에게는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계연이 문가에 앉아 눈을 감고 비가 대지를 적시는 것을 느끼자, 그 모습을 본 윤청과 호운은 더는 책을 읽지 않고 의자를 옮겨와 그의 곁에 앉았다. 붉은 여우는 윤청 옆에 앉아 꼬리로 바닥을 쓸었다.

반 시진쯤 지나자, 비가 점차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에 계연은 의자에서 일어나 문지방을 넘고서 처마 아래에 섰다.

거안소각의 문은 잠그지 않고 닫아 두기만 한 상태였다. 비가 채 그치기도 전에, 문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응 선생님, 어서 들어오세요!”

“허허, 실례하겠소!”

이렇게 말한 응굉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는데, 빗물에 그의 옷이 다 젖었으나 그는 개의치 않는 듯이 계연을 향해 공수했다.

늙은 용이 돌 탁자 곁으로 다가서자 곧 비가 그쳤다.

이에 후원의 대추나무는 두려운 듯이 나뭇잎을 흔들어 스스스, 잎이 떨리는 소리를 내다가 곧 평온해졌다. 곧이어 윤청이 놀라 몸을 일으켰다.

“어르신은…… 어르신은 한입에 열린 대추 절반을 전부 드시고, 저희 아버지를 취하게 했던 그 노선생(老先生) 아니세요?”

이는 윤청의 기억력이 남다른 데다 그날의 인상이 너무 깊었던 탓도 있었다. 게다가 응굉의 옷차림이 예전과 같았기 때문에, 한 번 보자마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본 것이다.

“허허허, 그게 바로 이 몸이오!”

늙은 용은 웃으며 수염을 쓰다듬었다. 계연은 고개를 돌려 윤청과 호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생님과 함께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니, 너희들은 이만 돌아가렴.”

계 선생님이 이렇게 말하면 정말로 중요한 일이 있는 것이었다. 이에 윤청과 호운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네.”

그들은 조심스레 까치발을 하고 비에 젖은 땅을 밟으며 거안소각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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