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위씨 부자(父子) 옥회산에 들어가다 (1)
계연은 소매를 휘둘러 돌로 된 탁자와 의자 위의 빗물을 날리고서 응굉에게 손짓했다.
“앉으세요, 응 선생님!”
“음, 계 선생께서도 앉으시지요.”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마자, 늙은 용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저 붉은 여우는 예전에 선생께서 구했던 그 여우가 아니오? 정말 재미있게 됐군그래. 저 윤씨 집안 아이도 영성(靈性)을 타고났으니, 계 선생께서 한 번 가르쳐보는 게 어떻소?”
“이미 가르침을 준 적이 있어요. 그러나 수선(修仙)하는 수행법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윤씨 집안 부자(父子)의 뜻은 만민(萬民)을 돕는 데에 있어요. 윤청이 아직 나이가 어려 노는 것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심성이 곧은 아이이니 분명 큰 인재가 될 거예요.”
늙은 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윤청의 집이 자리한 방향을 바라보았다.
“계 선생이 그런 평가를 할 정도면, 윤씨 부자는 인걸(*人杰: 걸출한 인물)이라는 두 글자를 붙일 만하군.”
그가 이렇게 말하는 도중에 계연이 오른손을 뻗어 휘둘렀다. 그러자 나무에서 순식간에 불타는 듯 빨간 대추 몇 알이 떨어져, 법력에 의해 탁자 위로 내려왔다.
모두 여섯 알이 떨어졌는데, 대추의 표면은 은은하게 불길이 솟구치는 듯했다.
“맛 좀 보세요, 제가 쩨쩨한 것이 아니라 이 화조(火棗)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비범해지거든요. 이것들은 모두 수십 개밖에 열리지 않아서 따는 대로 줄어들어요.”
“선생도 참……. 그래도 예전에는 두 개만 주더니, 오늘은 몇 개 더 많군.”
늙은 용은 한 번에 모든 대추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아삭아삭 소리를 내며 대추를 씹어 삼킨 그는 씨조차 뱉지 않았다.
응굉은 항상 손이 크고 호방했기 때문에, 계연도 그에 따라 통 크게 베푼 것이었다. 여섯 개일 뿐이지만, 이것들은 모두 제일 처음 열린 화조였다. 그것이 딱 열 개 남아있었는데 응굉에게 주고 나서 지금은 네 개만 남게 되었다.
“응 선생님, 최근에 여러 곳을 돌아다니셨는데 무슨 소식 들은 것 있으세요?”
계연이 묻는 것이 무엇인지 응굉은 알아차렸다.
“동토(東土) 운주의 남쪽에 도연(道緣)이 숨겨져 있다는 그 소문 말이군. 도연을 얻고자 하는 이들은 대체로 관망하는 자세로 세속을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하고 있었소. 재미있는 건, 그 진마가 도망치고 나서 남은 이들이 걸리적거렸는지, 대정이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은 용담호혈(*龍潭虎穴: 용이 사는 못과 범이 사는 굴. 아주 위험한 곳)이라는 소문을 내고 다녔더군…….”
늙은 용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이에 옥회산 수사(修士)들이 가만있지 못하고, 천기각으로 사람을 보내 해답을 구했다더군. 듣기로는 도중에 어느 삿된 것과 마주쳐 한바탕 싸움이 있었다고 들었소. 흠, 이 몸이 생각하기로는 8할은 그 진마와 관련이 있지 싶소. 우리에게 그렇게 당했으니 분 풀 데가 필요하기도 하고, 그곳은 남황(南荒) 땅이니까.”
계연의 깊이 가라앉은 회백색의 눈과 달리, 그의 마음에는 여러 생각이 교차하고 있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고요? 천기각은 그 동천(洞天)을 폐쇄한 것이 아닌가요?”
“선부(仙府)끼리는 항상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기 마련이지. 옥회산의 명성이 대단하지는 않지만, 이 사건의 중심에 놓여있으니 천기각에서도 방문을 거절하진 않은 것 같소.”
계연은 늙은 용의 말을 통해 다른 수선자들, 계주에 있는 그 옥회산이 나섰다는 소식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다.
그러나 응굉도 진마 때문에 그 일에 신경을 쓰고 있어서 안 것이고, 구체적인 상황은 싸운 양측만 알 것이다. 만약 어떤 의외의 일이 벌어지지만 않는다면, 응굉은 절대 먼저 옥회산과 접촉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 선생, 이왕 이런 일이 생겼으니 옥회산 쪽과 접촉해 보는 게 어떻소? 어쨌든 이 늙은이는 그 선장(仙長)들과는 말을 섞지 않을 테니 말이오.”
늙은 용은 일부러 ‘선장’ 두 글자를 길게 늘여 발음했다. 이는 계연 앞에서 응굉이 가끔 보이고는 하는 유치한 모습이었다.
계연은 응굉만큼 마음이 편하지 못했다.
“그 모호한 점괘가 천기각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나서, 대정국을 지켜보는 이들이 많아졌지만 옥회산은 달라요. 이 일을 잘 넘기지 못하면 그들은 이 소동의 한 가운데 서게 될 거예요.”
늙은 용은 계연을 보더니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
“낙관적으로 보아, 천기각의 점괘가 맞아떨어져 옥 뭐시기 산의 것들이 대정국의 기운을 흥성하게 하는 도연(道緣)의 기회를 잡는다 한들, 이것이 그들 자신을 위험하게 하진 않을 것이오. 그놈들의 능력이 그리 나쁘지 않고, 그들이 가지고 있다고 소문으로 알려진 칙봉 부적도 실제로 갖고 있소. 산악 부적이니 한 곳의 진신(眞神)을 그것으로 책봉할 수 있지. 그 부적을 다룰 수 있는 자는 없지만, 그것을 이용해 다른 선문(仙門)들을 누를 수는 있다, 이 말이오.”
“네? 그게 정말인가요?”
계연은 이를 듣고 놀라서 아연해 졌다. 산악 부적이 정말로 있다니? 늙은 용이 하는 말은 항상 믿을 만했지만, 이번에는 그도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계 선생은 모르시오? 선생이 계주에 잠시 머물렀기 때문에, 이미 이 일을 아는 줄 알았소만.”
계연은 고개를 저었다.
“이전에 이미 선생님께 말했다시피, 저는 정말로 이 세상 소식들을 잘 모릅니다.”
늙은 용은 눈썹을 찌푸리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계속해서 화제를 이어갔다.
“옥회산은 정말로 산악 부적을 가지고 있소. 사실 그 옥회산에 있는 이들이 참 머리를 잘 썼다고도 할 수 있지. 이런 소문이 도는 것을 알고도 덮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소문을 더 부풀리려고 했다네. 그래서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것이 그들의 허장성세(虛張聲勢)라고 여기게 되었지.”
“그럼 응 선생님께서는 그 소문이 사실인 걸 어떻게 아세요?”
“하하, 이 늙은이가 말이오, 예전에 진룡이 되려다 옥회산과 얽히게 된 일이 있었소. 진룡이 되는 것에 성공한 후 옥회산에 찾아가 한바탕 뒤엎으려고 했는데, 그들이 산악 부적으로 옥취산의 산세(山勢)를 이용해 나를 막았지. 그게 아니었으면 진작에 내 꼬리에 그 옥 뭐시기 놈들의 봉우리 몇 개는 무너졌을 거요.”
계연은 마음속으로 과연 용들은 함부로 건드리면 큰일 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몇 마디 바른말을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진룡으로 거듭나실 때, 물길을 이끌고 계주로 가 큰 홍수를 일으켰으니 옥회산 수사들이 막으러 나선 것도 사실 당연한 이치지요. 선생님께서는 계주를 위해 2백 년간 비를 뿌려 오시면서도, 아직도 옥회산을 원망하시나요?”
늙은 용은 이를 듣고 입을 벌린 채 자신의 좋은 벗을 바라보았다.
“계 선생은 내가 사리 분별도 못 하는 자가 아니라는 걸 알 것이오. 그 옥회산 놈들이 홍수가 한창일 때 와서 막았으면 내 또 모르오. 예전에 두명부 성황신으로 있던 이처럼 말이오. 비록 이미 유명을 달리했지만, 이 늙은이가 아주 존경하던 자이지. 그런데 그 어린놈들은 자옥진인(紫玉眞人)이라는 자를 선두로, 내가 강물에서 바다로 나아가려던 때 이 몸이 벌써 녹초가 된 줄 알고 강물을 끊어 용의 길을 막으려 했지! 그러니 내가 어찌용납할 수 있겠소?”
늙은 용이 이렇게 말하는 동안 그의 입 주변에서는 이미 용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이를 느낀 대추나무는 나뭇가지를 가볍게 떨었다.
이를 본 계연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한창 기세가 날카로울 때는 잠시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게다가 이런 일은 당사자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 풀리는 법이었다. 두명부 성황신조차 교룡의 기척을 느끼고 금신(金身)의 법칙을 깨고 나왔으니, 옥회산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교룡이 진룡으로 거듭나기 위해 이미 강물을 따라 헤엄치고 있는 상황에서 방향을 바꾸려면, 용으로서는 엄청난 힘을 소모해야 했다. 그런데 응굉이 강에 이미 들어간 이후에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옥회산이 잘못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응굉이 화를 내는 것도 당연한 이치였다.
그러니 응굉이 바다에 들어서 진룡으로 거듭난 후에 옥회산을 손보러 간 것도 당연했다. 그가 통천강에 정착하게 된 것은 그다음 일이었다.
“되었소. 그들이 나를 한 번 내 앞길을 막고 나도 적당히 답례했으니, 지나간 일이라고 치지. 지난 일은 꺼내지 않는 게 좋겠소.”
사실대로 말하자면, 계연은 늙은 용도 자신이 홍수를 일으킨 것이 먼저라는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응굉의 성격에 어찌 옥회산에 한 번 보복하고 말았겠는가?
“아무래도 옥회산과 접촉하는 일은 제가 혼자 하는 게 낫겠군요.”
“그게 좋겠군!”
늙은 용은 마치 그 말 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웃은 후, 한마디 보탰다.
“사실 내가 느끼기에, 천기각의 점괘가 옥회산과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계 선생과 더 가깝다고 생각하오. 하하, 옥회산 놈들이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
자신의 일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으므로, 계연은 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 후로 천기각의 점괘와 관련된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는 말처럼, 사실 천기각이야말로 이 일을 해결해야 하는 주체였다. 그쪽을 지켜보는 이들이 대정국을 지켜보는 이들보다 훨씬 많았다. 다만 대정국 바깥의 일에 대해서는 그들도 손이 닿지 않으니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덕승부의 위씨 집안은 다른 이들의 시선을 피해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으나, 사람들은 이를 알지 못했다.
첫째로는 위무외의 일 처리가 조용하고 은밀했으며, 그와 접촉하는 이들도 자기들의 이익과 관련되어 있어 함부로 말하고 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씨 집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계 선생이 위씨 집안에 들른 이후로 위무외는 노태야(老太爺)를 뵈러 갔었고, 그 후로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준비를 서둘렀다.
이전에는 위무외 자신이 옥회산에 들어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서두르지 않고서 원생에게 얼마간의 준비 시간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고명한 계 선생의 확언이 있었으니, 이제 그는 일을 서두르려는 것이다.
이날은 5월 초아흐레 날로, 단양절(端陽節), 즉 단오절이 지난 지 며칠 되지 않은 날이었다. 계주에서는 단오절이라고 하면 알아듣기는 하지만, 그렇게 부르는 이들은 없었다.
이 세계의 역사에는 굴원(*屈原: 초(楚)나라의 정치인이자 시인. 멱라수(汨羅水)에 뛰어들어 자진한 뒤부터 그를 기리는 단오절 풍습이 시작되었다.)이 없어, 단양절의 유래에는 그에 관한 전설이 없었다.
주로 옛날에 하늘을 관찰하며 숭배하던 것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천간지지(*天干地支: 육십갑자의 윗 단위와 아랫단위를 이루는 요소를 합해 부르는 말로, 천간은 갑(甲), 을(乙), 병(丙) 등 10개, 지지는 자(子), 축(丑), 인(寅) 등 12개 글자를 말한다.)의 요인으로 인해 변했지만, 이곳에도 쫑즈(*粽子: 중국에서 단오절에 먹는 음식으로, 찹쌀 안에 여러 가지 소를 넣어 찐 음식)는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말을 탄 두 명의 기수(騎手)가 위씨 가문의 대문 앞에 섰다. 그들은 말에서 내려 문지기와 말을 나눈 후 급히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